[연중 제20주일] 나는 분열(分裂)을 일으키러 왔다. (루카12,49-53)

2025. 8. 15. 오후 4: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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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7일 일요일

[연중 제20주일] 나는 분열(分裂)을 일으키러 왔다. (루카12,49-53)


   


1독서<이제 도성에는 더 이상 빵이 없습니다.>(예레38,4-6.8-10)

4 대신들이 임금에게 말하였다. “예레미야는 마땅히 사형을 받아야 합니다. 그가 이따위 말을 하여, 도성에 남은 군인들과 온 백성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사실 이자는 이 백성의 안녕이 아니라 오히려 재앙을 구하고 있습니다.”

5 이에 치드키야 임금은 , 그의 목숨이 그대들의 손에 달려 있소. 이 임금은 그대들의 말에 어찌할 수가 없구려.” 하고 말하였다.

6 그들은 예레미야를 붙잡아 경비대 울안에 있는 말키야 왕자의 저수 동굴에 집어넣었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밧줄로 묶어 저수 동굴에 내려보냈는데, 그곳에는 물은 없고 진흙만 있어서 그는 진흙 속에 빠졌다.

8 에벳 멜렉은 왕궁에서 나와 임금에게 가서 말하였다.

9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 저 사람들이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한 일은 모두 악한 짓입니다. 그들이 그를 저수 동굴에 던져 넣었으니, 그는 거기에서 굶어 죽을 것입니다. 이제 도성에는 더 이상 빵이 없습니다.”

10 그러자 임금이 에티오피아 사람 에벳 멜렉에게 명령하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 가운데 서른 명을 데리고 가서, 예레미야 예언자가 죽기 전에 그를 저수 동굴에서 꺼내어라.”

 

<화답송>시편40,2ㄱㄴ.2-3.4.18(14) 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

주님께 바라고 또 바랐더니, 나를 굽어보셨네.

외치는 내 소리 들어 주셨네. 나를 멸망의 구렁에서, 더러운 수렁에서 꺼내 주셨네. 반석 위에 내 발을 세워 주시고, 발걸음도 든든하게 잡아 주셨네.

새로운 노래,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을, 내 입에 담아 주셨네. 많은 이들이 보고 두려워하며, 주님을 신뢰하리라.

나는 가련하고 불쌍하지만, 주님은 나를 기억하시네. 저의 도움, 저의 구원 당신이시니, 저의 하느님, 더디 오지 마소서.

 

2독서<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히브12,1-4)

1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2 그러면서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3 죄인들의 그러한 적대 행위를 견디어 내신 분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낙심하여 지쳐 버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4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복음<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12,49-5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연중 제20주일 제1독서 (예레38,4-6.8-10)

 

이에 치드키야 임금은   "자, 그의 목숨이 그대들의 손에 달려 있소. 이 임금은 그대들의 말에 어찌할 수가 없구려." 하고 말하였다.  (5)

 

예레미야서 38장 4절에서 일부 대신들이 예레미야가 도성에 남은 군인들과 온 백성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죄목으로 처형할 것을 치드키야 임금에게  말했음을 밝혔다.

그리고 이어지는 38장 5절은 치드키야 임금이 책임 회피적으로 대신들의 청을 허락하였음을 밝힌다.

 

치드키야 임금이 예레미야 처형에 대해 임금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한 사실은 '그대들의 손에 달려 있소'에 해당하는 '뻬예드켐'(beedkem)이란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이것은 처분권이 대신들에게 달렸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치드키야는 자신이 남부 유다 왕국의 임금으로서 모든 일을 법에 따라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과 위치에 있었지만,  예레미야의 처분에 대해서만큼은 예레미야의 사형을 청한 대신들에게 전적으로 위임해 버린다.

 

이러한 책임 회피는 주로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첫째는 당시 치드키야가 정치적으로 상당히 미약했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치드키야는 유다 백성들과 정치 세력들의 지지를 입고 왕 위에 오른 인물이 아니라 바빌론의 꼭두각시로 임금 자리에 앉혀진 인물이었다(2열왕24,17).

 

따라서 임금 자리에 등극할 때부터 정권 장악력이 약했으며, 국가가 위기에 처할수록 휘하 세력을 통솔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정치 실세인 대신들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는 치드키야는 예레미야가 주님의 예언자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즉 치드키야는 자신이 예레미야의 목숨을 처결하면, 자신이 그에 대해 주님께로부터 징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치드키야는 이러한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예레미야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이 임금은 그대들의 말에 어찌할 수가 없구려'

 

본문은 이유 접속사 '키'(ki)로 시작하는 문장으로서 왜 예레미야의 처분권이 임금 자신에게 있지 않고, 그 사건을 청한 대신들의 손에 달려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치드키야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신이 그들이 말하는 것을 조금도 거스를 수 없다고 말한다.

사실 이런 표현은 임금으로서의 자신의 품위와 위신을 너무나 많이 떨어뜨린 말이며, 임금으로서의 체통을 다 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연중 제20주일] 매일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378번, 신약 성경에서 71번이나 나옵니다.

불은 하느님을 상징합니다. 불은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냅니다(창세 15,17; 탈출 3,2 참조).

또한 불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예레 20,9 참조).

모세는 하느님을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만나고,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말씀이 마음속에서 불타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불과 같아서 원수들을 태워 버리고 죄악을 정화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불, 예수님께서 세상에 지르신 불은 무엇입니까?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이, 하느님의 말씀이 세상에 비추어지고 타오르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이시고 그분의 빛이시고 불이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선물인 성령도 불의 강림으로 표현됩니다(사도 2,3 참조).

이 불이 세상을 밝힙니다. 불이 빛이 되어 어둠을 물리칩니다. 우리를 인도하는 불입니다.

동물적 본능이나 욕구가 아니라 하느님의 불, 예수님의 빛이 불처럼 우리를 이끕니다.

그래서 복음은 세상에 불을 지핍니다.

세상의 부조리와 비인간화된 구조와 차별과 돈에 대한 탐욕과 권력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불사르려 합니다.

여기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은 폭력까지 휘두르며 이 불을 끄려 합니다.

 

복음서는 헤로데가 무죄한 아이들을 살육하는 이야기를 전합니다(마태 2,16-18 참조).

예수님조차 복음의 불을 끄려는 사람들에게 넘겨지시어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신앙인에게 미움과 폭력과 교만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거스르고 악을 지키려는 술책에 대하여 신자들은 분열을 감수해야 합니다.

거짓 평화와 부정으로 이룬 일치는 세상을 더 악으로 물들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께서 지피신 불이 잘 타고 있습니까?

가족들 사이에 복음의 정신이 타오르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불이 우리 마음속의 이기심과 어두운 욕망을 태워 정화해 주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20주일 복음(루카12,49~53)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49~50)

 

루카 복음 12장 49~53절은 복음이 확산될 때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되는 진리와 비진리의 처절한 투쟁과 충돌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루카 복음 12장 49절과 50절은 예수님의 십자가상 구속사업을 통한 구원의 복음 전파에 수반되는 현상을 '불'과 '세례'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이미 타올랐으면'으로 번역된 '에이 에데 아넵테'(ei ede anepthe; (if) it were already blazing)에서 '아넵테'(anepthe)동사가 '불이 붙었다'는 의미를 지닌 부정(不定)과거형으로 완전히 불붙은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성서학계에서는 이미 불이 붙었으나 완전하게 붙어 더 잘 타오르게 되기를 바라는 의미로 본다.

 

여기서 '불'로 번역된 '퓌르'(pyr; fire)는 신앙인과 불신앙인간에 조성되는 적대감이나 박해로 인해 믿음의 자녀들이 겪게 되는 '고난'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제시하는 영생의 복음적 가치관과 세상의 가치관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불'과 같은 충돌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불신앙과 미움, 죄악과 불의 그리고 박해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지만, 바로 그 무죄하신 예수님의 고난의 '세례'가 믿는 이들에게는 영원한 복락과 축복이 되고, 고난과 박해를 저지른 자들에게는 '심판'의 '불'이 됨을 선포하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천상과 영원을 바라보며, 하나 밖에 없는 '하느님의 말씀'이요,'진리'이신 예수님의 가르침 때문에  기쁘게 고난을 감수할 의지와 신앙이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당장에는 그 진리 때문에 세속화(世俗化)되고 인본주의(人本主義)로 흐르는 교회 안에서조차 따돌림당하고 배척 받는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스테파노의 순교 형장을 천상에서 서서 바라보시고 동참하시는 것(사도7,55~56)으로 위로를 삼고, 보이지 않는 주님께만 인정받는 자세로 꿋꿋이 살아갈 수 있는지 스스로 물어 보아야 한다.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50)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거두어 달라고 세 번씩이나 기도하셨다. 

그러나 당신이 이 길을 걸어가지 않으시면, 인류가 아버지 하느님 대전에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을 길이 없다.

 

당신의 천주성(神性)으로서 아담으로부터 인류 종말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과거에 지었고, 지금도 짓고 있으며, 앞으로 지을 모든 죄들이 당신의 전지(全知)하심으로 다 들어오며 다 보고계신다. 

그 안에는 나의 죄도, 너의 죄도, 우리 모두의 죄도 다 들어있다.

 

그러기에 이 겟세마니의 밤은 참으로 괴롭고 가슴아픈 밤이다. 

이제 이 인간들이 저지르는 모든 죄를 무죄(無罪)하신 당신의 인성(人性)으로 자발적으로 대속(代贖)해야만 아버지 하느님의 공의(公義)가 채워지고,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모독당하신 아버지 하느님의 선성(善性)과 성성(聖性)이 회복되신다.

 

죄(罪)를 제외하고는 우리와 똑같은 나약한 인간성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참으로 견디기 힘들어 하시는 밤이다.

겟세마니의 밤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과 당신의 나약한 인성(人性) 사이의 전쟁터이다.

이 겟세마니의 밤은 예수님 당신의 천주성(天主性)과 인성(人性) 사이의 갈등과 충돌의 시간이다.

 

그러나 인류를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주는 이 대속의 십자가의 길은 영원으로부터 하느님 아버지께서 계획하신 일이요, 예수님 당신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요 사명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대속의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당신 사명인 인류구속사업을 이루실 날을 답답한 심정으로 애타게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을 표현하고 계신다.

 

바로 그 말씀이 루카 복음 12장 49절의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how I wish it were already blazing!) 그리고 50절의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how great is my anguish until it is accomplished!)로 표현된다.

 

본문에서 예수님의 '세례'는 일차적으로 인류의 죄로 인해 당해야 하시는 고난을 가리킨다.

궁극적으로는 고난의 절정인 십자가상 죽음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십자가의 죽음을 알고 계셨고, 이것을 이룰 날이 속히 오기를 답답한 심정으로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대속적 죽음을 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을 세례(洗禮)란 용어로 표현한 또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

세례가 갖는 씻음(정화)과 정화의 의미 가운데서 일치(一致)의 의미와 깊은 관련이 있다.

 즉 세례는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구성원(지체)이 되는 심오한 의미가 있고, 그리스도의 체험이 우리의 체험이 된다는 영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 우리의 죽음이 될 수 있으며,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 삶을 얻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루카 복음 12장 49~53절에서 당신이 감당하실 고난을 보여주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그날까지 믿음의 자녀들은 그리스도께서 체험하신 것과 같은 고난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제자가 스승보다 나을 수 없고, 종이 주인보다 나을 수 없듯이 우리 믿음의 자녀들은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고난을 통한 영광의 길,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파스카 신비를 걸어가야만 한다.

 이 땅에서 고난, 고난, 고난 또 고난은 없다. 또한 이 땅에서 영광, 영광, 영광 또 영광도 없다. 고난 한번, 영광 한번, 영광 한번, 고난 한번이다.

그래야만 절망하지 않고, 그래야만 겸손하게 성소(聖召)와 소명(召命)의 삶을 잘 마칠 수 있다.

 

특별히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 사랑 때문에, 예수님께서 제시한 영생의 복음적 가치관 때문에 억울한 고통, 터무니 없는 사악한 고통을 겪고 있는 믿음의 자녀들은 예수님께서 간택하신 특별히 사랑받는 제자요, 특별 관리 대상자들이며, 성령과 말씀과 희생 제사의 도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0250817일 일요일

[연중 제20주일] (김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 독서와 복음의 공통 주제는 끝까지 전력 질주하라.’입니다.

1독서의 배경은 기원전 605년부터 587년으로 추정됩니다.

유다 임금 치드키야와 바빌론 임금이 패권을 다투는 가운데 예레미야 예언자는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고

하느님께서 유다 왕국의 멸망을 선언하시고 새로운 구원 계획을 세우실 테니 지금의 정치적 정세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합니다.

2독서인 히브리서는 유다교에서 그리스도교로 넘어온 이들 가운데 머뭇거리며 결단을 내리지 못한 이들에게 쓴 서간입니다.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히브 12,1).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12,2).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12,4).

이와 같은 권고들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는 하였으나 아직 전력 질주하지 못하는 이들을 향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사명을 전합니다. 성경에서는 이 하느님 심판의 도구로 쓰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종말론적 심판을 상징하는 의 이미지에, 성령으로 말미암은 세례와 성령 강림 때에 나타난 을 연결합니다.

게다가 가정 분열이라는 주제도 가져오는데, 가까운 이들의 분열은 예언 전통에서 종말에 일어나는 환난의 특징입니다(미카 7,6; 하까 2,22; 말라 3,24 참조).

이처럼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종말론적 심판과 더불어 가까운 이들과 멀어질 수 있다는 절박감도 가지게 합니다.

우리에게도 신앙 여정은 선택입니다. 이미 예수님을 따르기로 하였다면, 이제 전력 질주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끝까지 달리는 데 여러분의 발목을 잡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김상우 바오로 신부)



 

  하늘나라와 어린이에 대한 이미지 결과

 

2025년 08월 17일 [연중 제20주일]

 

예언 되신 불로 태우시며 부수시는 그리스도

 

복음(루카12,49-5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 십자가의 대속, 그 죽음의 세례를 말씀하심이다.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아니다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아들이 아버지에게어머니가 딸에게딸이 어머니에게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 인간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재앙의 말씀으로 들린다. 1절에서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라’ 하셨고, 42절에서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라’ 말씀하셨다. 곧 ‘그리스도의 세례’-,그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얻는 하늘의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가족들의 생각마음속에 들어있는 바리사이들의 누룩그 위선의 가르침을 부수시고 살리시려 오심이다.

인간의 의()가 왜 위선인가인간 스스로의 의로는 결코 하늘의 평화구원에 이를 수 없는데도 구원의 진리로 말하기 때문이다.(로마3,20참조)

 

예언(豫言)되신 불로 태우시며 부수시는 그리스도~

(말라3,1-4) 1 보라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너희가 찾던 주님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그가 온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2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있을  있겠느냐그는 제련사의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3 그는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4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즈카13,8-9) 8 주님의 말씀이다 땅에서 삼분의 이가 잘려 죽고 삼분의 일만 살아남으리라. 9 나는  삼분의 일을  속에 집어넣어 은을 정제하듯 그들을 정제하고 금을 제련하듯 그들을 제련하리라그들은 나의 이름을 부르고 나는 그들에게 대답하리라나는 ‘그들은 나의 백성이다!’ 하고 그들은 ‘주님께서는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하리라.” 

= 하느님은 당신의 백성, 자녀들을 불로 정제, 제련 하신다. 그것이 은총이다.

 

(로마5,20-21) 20 율법이 들어와 범죄가 많아지게 하였습니다그러나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21 이는 *죄가 죽음으로 지배한 것처럼, *은총이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의로움으로 지배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 법이 ‘죄가 죄로 드러나게 했다’는 것(로마7,13), 그래야 십자가로 용서받을 수 있으니까.

 

(히브12,6-8.10-11) 6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7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8 모든 자녀가  받는 훈육을 받지 않는다면여러분은 사생아지 자녀가 아닙니다. 10 육신의 아버지들은 자기들의 생각대로 우리를 잠깐 훈육하였지만그분(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훈육하시어 우리가 당신의 거룩함에 동참할  있게  주십니다. 11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1독서(예레38,4) 대신들이 임금에게 말하였다. “예레미야는 마땅히 사형을 받아야 합니다그가 이따위 말(하느님의 말씀)을 하여도성에 남은 군인들과 온 백성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사실 이자는 이 백성의 안녕이 아니라 오히려 *재앙을 구하고 있습니다.”

= 인간의 욕망을 위해 사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은 사기를 떨어뜨리는 재앙의 소리로 들린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이들에게, 곧 용서, 자유를 믿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하느님을 갈망하는 이들에게는 ‘구원의 기쁜 소식, 복음’으로 들린다.

 

(1베드1,23) 23 여러분은 썩어 없어지는 씨앗이 아니라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 살아 계시며 영원히 머물러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예수) 통하여 새로 태어났습니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옛것은 지나갔습니다보십시오새것이 되었습니다

 

* 강도가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 자신의 뜻을 부인하고, 부수고, 십자가의 주님을 믿어 새 사람, 새 것이 되었다.

(루가23,43)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 망설이는 동안 시간은 망설임 없이 흐른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아버지의 훈육을 받고구원의 훈련속에 있음을 감사하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마음에발길에 충만하소서아버지의 나라가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16년  8월  26일   금요일    예레미야  38 장 - 40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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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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