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승천 대축일]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 (루카24,46-53)

2025. 5. 30. 오후 1:32:53

글자

 

20250601일 일요일

[주님 승천 대축일]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 (루카24,46-53)


   


1독서<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다.>(사도1,1-11)

1 테오필로스 님, 첫 번째 책에서 저는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처음부터 다 다루었습니다.

2 예수님께서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분부를 내리시고 나서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다 다루었습니다.

3 그분께서는 수난을 받으신 뒤, 당신이 살아 계신 분이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사도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면서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4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실 때에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나에게서 들은 대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기다려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며칠 뒤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6 사도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 물었다. “주님, 지금이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다시 나라를 일으키실 때입니까?”

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한으로 정하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

8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신 다음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10 예수님께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갑자기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렇게 말하였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화답송>시편47(46),2-3.6-7.8-9(6) 환호 소리 가운데 하느님이 오르신다. 나팔 소리 가운데 주님이 오르신다.

모든 민족들아, 손뼉을 쳐라. 기뻐 소리치며 하느님께 환호하여라. 주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 경외로우신 분, 온 세상의 위대하신 임금이시다.

환호 소리 가운데 하느님이 오르신다. 나팔 소리 가운데 주님이 오르신다. 노래하여라, 하느님께 노래하여라. 노래하여라, 우리 임금님께 노래하여라.

하느님이 온 누리의 임금이시니, 찬미의 노래 불러 드려라. 하느님이 민족들을 다스리신다. 하느님이 거룩한 어좌에 앉으신다.

 

2독서<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에페1,17-23)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18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 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빕니다.

19 또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되기를 빕니다.

20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21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과 주권 위에, 그리고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불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22 또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복음<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강복하시며 하늘로 올라가셨다.>(루카24,46-53)

46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4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48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49 그리고 보라,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 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

50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베타니아 근처까지 데리고 나가신 다음,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

51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52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53 그리고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



 

 

 

주님 승천 대축일 제1독서 (사도1,1-11)

 

예수님께서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분부를 내리시고 나서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다 다루었습니다." (2)

 

'승천하신 날 까지의'

 

'승천하다'로 번역된 '아넬렙테'(anelepthe)는 단순히 '들어 올리다' 라는 의미를 갖는 '아날람바노'(analambano)의 과거 수동형이므로, '올려졌다'(he was taken up)이라는 의미이며, 본문은 '그가 올려진 날까지'(until the day in which he was taken up)로 번역되어야 한다.

 

11절에서는 이 동사의 수동태 분사 '아날렘프테이스'(analemptheis)를 '승천하신'(올라가신)으로 번역했다. 이 동사는 물론 승천을 가리키지만, 승천이란 구체적 사건을 통하여 보여지는 예수님의 높아지심, 즉 현양의 신분도 암시하므로, '올리우신'(올리우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특히 여기서 수동형은 신적(神的) 수동태로서, 예수께서 전능하신 하느님의 능력에 의해 승천하셨으며, 이로써 본래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신분을 완전히 회복하는 현양을 이루셨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루카 복음 사가는 이미 루카 복음 24장 51-53절에서 마태오가 기록하지 않은 예수님의 승천 기사를 다루었고 사도행전의 서두에서 다시 언급함으로써, '승천 모티프'(ascension motif)를 루카복음과 사도행전의 가교로 사용하면서 동시에 예수 승천의 역사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분께서는 수난을 받으신 뒤, 당신이 살아 계신 분이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사도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면서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3)

 

본문은 십자가 수난 후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까지 40일간의 예수님의 행적을 요약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수난을 받으신'에 해당하는 '파테인 아우톤'(pathein auton)은 '고통을 당하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파스코'(pasko)의 부정(不定;Indefinite) 과거 부정사와 3인칭 단수 대명사가 나란히 쓰인 형태이다.

원문 성경은 수난 받으신 주체가 아무 죄도 없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인칭 대명사를 사용했으므로, 이것을 번역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원문의 어순은 예수께서 '수난을 받으신' 것 보다 '드러내셨습니다'(파레스테센;parestesen)을 더 앞에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이 부활 후에 발현하신 일을 더 강조하려는 루카의 의도 때문이다.

만약 예수께서 부활하셨더라도, 제자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으셨다면(1코린15,6),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이 확고히 정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 가지 증거로'

 

예수께서 보여 주신 부활의 확실한 증거는, 과거 영적으로 우둔하고 다분히 비겁했던 예수님의 제자들을 열정적이고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복음의 전사들로 변모하게 한 원동력이다.

물론 그들로 하여금 온전한 모습의 사도로 바뀌게 한 결정적 요인 가운데 하나가 사도행전 2장에서 일어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까지의 40일 동안 보여 주신 확실한 많은 증거 역시, 그들로 하여금 예수께서 진정한 하느님의 아들로서 인류를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로부터 구원할 분이심을 확실히 믿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증거'로 번역된 '테크메리오이스'(tekmeriois)는 '확실한 표적에 의해 보여 주고 입증하다' 라는 의미를 지니는 동사 '테크마이로'(tekmairo)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의심할 바가 없이 명쾌하고 확실한 표징이나 징표'라는 의미이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몸으로 나타나셔서 제자들이 보는 눈 앞에서 십자가 처형때 입으신 상흔을 보이시고(요한20,20), 그들과 함께 구운 생선을 잡수시는 등(요한21,9-14) 예수께서는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사실을 제자들에게 분명한 증거로 보여 주셨으며, 루카는 이 사실을 이처럼 명확한 의미를 가진 단어로 표현했던 것이다.

 

'사십일 동안'

 

예수께서 죽으신지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까지의 날 수가 40일 이라는 기록은 신약 성경 전체에서 본문에만 있다. 이것은 역사가로서 루카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기록이다.

 

'사십'(텟세라콘다; tesserakonta)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완전수이며 많음을 상징하는 숫자였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서 산에 머문 기간과(탈출24,18 ;34,28) 예언자 엘리야가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기 위하여 걸어간 날수(1열왕19,8) 및 예수께서 공생활 활동 기간 전 광야에서 단식하던 기간이 사십일이었다.(루카4,1.2)

 

이러한 날수는 물론 실제적인 기간을 가리키지만, 동시에 부족함이 없는 충만한 기간이었음을 상징한다.

본문에 있어서 루카가 사십 일이라는 기간을 굳이 밝히는 이유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시며 자신을 보이시고 하느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신 날수가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실 때에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나에게서 들은 대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기다려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며칠 뒤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4-5)

 

'함께 계실 때에'로 번역된 '쉬날리조메노스'(synalizomenos)는 문자적 의미로 '함께 식사할 때에'나 '함께 모였을 때에'라는 표현 모두 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단어의 원형 '쉬날리조'(synalizo)는 '함께'를 뜻하는 접두어 '쉰'(syn)에 '소금'을 뜻하는 '할스'(hals) 또는 '운집함'을 뜻하는 '할레스'(hales)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단어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만약 어원적으로 볼 때, '쉬날리조'가 '쉰'과 '할스'에서 유래했다면, 이 단어는 '어느 누구와 함께 소금을 친 것, 즉 음식을 먹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 되고, '쉰'과 '할레스'에서 유래하였다면 '함께 모여들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 된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은,  반대로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것은 첫째, 제자들이 그들의 지도자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한 예루살렘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이 언제 자신들까지도 잡아 들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고, 둘째 그들의 집이 갈릴래아에 있었으므로 굳이 예루살렘에 머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제자들의 속사정을 모르실리 없는 예수께서 굳이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미 구약에서 예루살렘이 율법과 야훼의 말씀이 나오는 곳으로(이사 2,3 ; 미카4,2) 예언된 사실을 성취하기 위해서이다.

 

둘째, 예루살렘은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인간의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한 구원의 시발점이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즉 이곳은 구원의 시발점이며, 약속하신 성령이 임할 장소로서 교회의 시발점인 동시에,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곳에서부터 온 유대아로 또한 세계 각 곳으로 복음이 퍼져 나가게 될 복음의 근원지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8절)

 

세째,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핍박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한 성읍인 예루살렘에 성령이 임하고 초대 교회가 세워짐은 사탄의 세력에 대한 승리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원사적 측면에서 중요성을 지닌 예루살렘은 신학적으로 보더라도 큰 의미를 지닌다.

즉 이곳은 예수님의 십자가상 제사의 예표요, 모형이라 할 수 있는 이사악을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번제로 바치려 했던 장소이며(창세22,2.14), 신약 교회의 모형이라고 볼 수 있는 성전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은 신도들의 영원한 처소가 될 새 예루살렘의 모형이 되기도 한다.(묵시21,1-7)

 

예수께서는 바로 이러한 예루살렘을 신약 교회의 출발지로 삼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사도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 것을 명령하신다. 루카 복음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나자렛에서 시작하여 갈릴래아와 유다를 거쳐서 예루살렘에서 마무리하였다.

 

한편, '예루살렘'에 해당하는 '히에로솔리마'(hierosolyma)는 히브리어 '예루샬라임(jerushaleim)을 음역한 것이다. '예루샬라임'은 '기초를 놓다', '건축하다' 등의 뜻이 있으며, '도시', '도성'으로도 번역될 수 있는 '예루'(jeru)와 '평화'란 뜻이 있는 '샬롬'(shalom)의 변형 '샬라임'(shalaim)이 합성된 것이다. 따라서 이는 '평화의 거주지' 혹은 '평화의 도성'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 장소가 이러한 의미를 갖게 된 것 역시, 이곳이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거룩하신 하느님과 죄인인 인간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지고, 또한 평화의 영이신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하느님과 평화를 이루는 사도들의 모임인 교회가 이곳에서 시작될 것이라는 예언적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성령 강림이 임박한 시점에 초대 교회의 구심점이 될 사도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게 함으로써, 이미 하느님의 구원 사업의 계획 가운데 있었던 예루살렘 교회의 탄생을 가능케 하신 것이다.

 

'나에게서 들은 대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기다려라'

 

본절의 예수님의 말씀에는 삼위일체 하느님이 모두 등장한다. 먼저 '나에게서'는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가리키고, '아버지'는 성부 하느님을 가리키며, '약속하신 분'은 성령 하느님을 가리킨다.

 

성령은 아버지, 즉 성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영이다.(요엘2,28.29; 에제 36,26.27) 또한 예수님께서는 성령은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고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바 있다.(요한14,16.26)

예수님께서는 이 일이 이루어지도록 기도까지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요한14,16)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승천한 이후에 이 땅에 남겨질 그의 제자들이 스승없이 복음 전파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아시고, 성령께서 제자들과 함께 해 주실 것을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신 것이었다.

 

또한 루카는 제자들의 복음 선포가 하느님의 영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사도행전의 시작을 성령의 강림과 내주에 대한 약속을 거듭 확인하는 내용으로 기록하고 있다.(4.5.8절)

 

본절은 성령 하느님께서 필연적으로 성부 하느님, 성자 하느님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함께 활동하심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는 성자 그리스도의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역사하심을 암시한다.(사도2,33)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고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을 성령께서 이어서 계속하신다는 것은, 구원사의 전개 과정에서 볼 때, 온 인류를 위한 더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승천하지 않으시고 이 땅에 계속 남아 계셨다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존재 방식이기는 하지만, 육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거슬러 영적인 몸으로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이 정상적이거나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고 성령이 오심으로 인하여 영적 은혜가 온 세상에 편재하게 되는 것이다.

 

'요한은 물론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며칠 뒤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본절은 멀게는 요엘서 3장 1-2절의 새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시겠다는 예언과 연결된다. 가깝게는 마르코복음 1장 8절의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고 한 세례자 요한의 예언 성취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고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세례'라는 의미의 '밥티스테세스테'(baptisthesesthe)의 원형  '밥티죠'(baptizo)는 '담그다'는 뜻과 함께 '씻다'라는 뜻을 가진다. 세례는 '죄로 오염된 옛사람이 죽고 회개하여 하느님을 향해 새 사람이 되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사도행전 2장 1-4절과 연관지어 볼 때, 우선 직접적으로 불혀같이 갈라지는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게될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다는 것은, 마치 물 속에 흠뻑 잠기는 것처럼, 성령의 세력에 완전히 사로잡혀서 권능(특은)을 덧입어(8절)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부활하신 직후 제자들에게 명령하셨던 요한 복음 20장 22절의 "성령을 받으라" 라는 말씀은 그 당시 이루어졌고, 만일 이루어졌다면, 여기에서의 성령 강림 예언과 사도행전 2장 1-4절에서의 성령 강림 사건과 어떻게 조화가 되는가?

요한 복음 20장 22절의 말씀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약속하는 상징적 행위로 보는 것이 좋고, 죄사함의 은총으로 양심의 평화를 주는 고백성사의 사죄권에 대한 말씀으로 보면 된다.

 

'주님, 지금이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다시 나라를 일으키실 때입니까?' (7)

 

'다시~일으키실'(회복하심) 이에 해당하는 '아포카티스타네이스'(apokathistaneis)는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주다' 라는 의미를 지닌 '아포카티스테미'(apokathistemi)의 직설법 현재 동사이다. 이 동사는 미래적 의미를 지님에도 불구하고, 현재형으로 기록된 것이다.

이것은 루카가 제자들이 정치적 의미의 하느님 나라의 회복을 매우 임박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나타내기 위하여, 명백한 미래적 사건을 묘사하는 데도 현재형으로 기록한 것이다.

 

본문에서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령 세례를 베푸시는 시점이, 자신들이 희구하고 있던 로마의 정치적 속박으로부터 자기 민족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때인가를 물은 것이다. 이것은 제자들의 영적 무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질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신 다음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예수님께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갑자기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9-11)

 

9절에서 11절까지는 예수의 승천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써 예수께서는 강생하신 후,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명하신 구속사업을 완전히 마치신 후 다시 하늘 보좌로 돌아가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심판주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하늘 보좌에서 계속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신다.

 

여기서 '보는 앞에서'로 번역된 '블레폰톤'(bleponton)은 현재 능동 분사로서 '보고 있을 때' 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승천이 제자들이 보고 있을 때 이루어졌다는 것은, 승천이 꾸며 낸 일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임을 보여준다.

 

또한 '오르셨는데'에 해당하는 '에페르테'(eperthe ; he was taken up)는 2절의 '승천하신'에 해당하는 '아넬렙테'(anelepthe)처럼 신적(神的) 수동태이다. 예수님의 승천은 바로 예수님의 지상의 모든 활동을 기쁘게 여기신 성부 하느님의 장엄한 역사적 행위였다.

 

예수께서 구름에 싸여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을 하느님이신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인간이 되어 탄생하신 사실 만큼이나 신비한 일이었다.(루카 2,5-7)  이 세상에 신비하게 오신 예수께서는 신비하게 이 세상을 떠나가셨고, 또한 재림 때에도 천군 천사와 함께 심판주로서 신비하게 오실 것이다.

 

한편, 루카복음 24장 50,51절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손을 들어 제자들을 축복하셨다. 루카 복음은 예수님을 제자들을 축복하는 대사제의 모습으로, 제자들은 예수님을 예배하는 모습으로 승천 기사를 다루었다.

본장의 승천 기사가 역사적 측면을 강조했다면, 루카 24장은 예배적 측면을 강조한 것이다.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직역하면, '구름이 그들의 눈(시야)으로부터 그를 붙잡아 데려갔다' 이다. 성경에서 '구름'은 예수님의 신적 권세를 나타내는 데 자주 사용된다. 예수님께서 타볼산에서의 변화(마르 9,7 ; 루카 9,34.35), 올리브산에서의 승천과 재림에 대한 말씀(마태26,64 ;마르13,26) 이라는 중요한 사건들에 있어서, 구름과 함께 등장하시는 모습은, 과거 하느님께서 모세의 만남의 천막에 영광으로 임재하셨던 일을 상기시킨다.(탈출40,35)

 

'그들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본문에서 '하늘'은 물론 공중을 의미하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늘은 반드시 장소적 개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라논'(uranon)원형 '우라노스'(uranos)는 신약 성경에서 272회나 사용된 단어로서, 다양한 용례로 사용되었다.

천사들과(마태18,10 ; 에페3,15) 하느님의 보좌(묵시11,13)가 있는 곳이며,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곳이며(마르1,11 ;히브12,25) 성령이 내려오는 곳이며(사도2,2 ; 마태3,16), 진노와 심판이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다.(루카17,29) 히브리서에서는 예수께서 주권을 행사하시는 곳이다.(히브8,1)

 

이처럼 성경에서 '하늘'은 하느님과 예수님의 신성과 관련된 신학적 개념으로 자주 등장한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하늘로 오르셨다는 승천의 의미는, 장소적 이동의 개념을 넘어서 인간이 받는 제약이 없는 세계, 물리적 법칙이나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차원(세계)에로의 이동을 말한다.

 

'그들이 ~유심히 바라보고' 로 번역된 '아테니존테스'(atenizontes)는 '~에 눈을 고정시키다', '응시하다'라는 뜻을 지닌 '아테니조'(atenizo)의 현재 능동태 분사 복수형으로서, '있는데'로 번역된 미완료 동사 '에산'(esan)과 더불어 '그들이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즉 본문은 제자들이 예수께서 하늘로 올리워지고 구름 사이로 들어가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기까지, 잠시라도 그들의 눈을 떼지 못한 채로 보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흰 옷을 입은 두 사람'

 

'사람'이란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 가리키는 대상은 분명히 천사들이다. 사실 흰 옷 차림은 천사들의 상징히기도 하다.(마태28,3; 요한20,12) '흰'으로 번역된 '류카이스'(leukais)는 성경에서는 빛이 날 만큼 흰 상태나 광채가 나는 상태(마르9,3)를 나타내며, 주로 하느님이나 천사들의 신비스런 모습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마태17,2 ; 묵시1,14)

 천사들은 예수님의 승천과 함께 재림에 관한 사실까지 제자들에게 선포했다. 이처럼 루카는 예수님의 사적을 역사적 관점에서 철저히 기록함과 동시에, 예수님의 하느님의 아들되심을 보다 설득력있게 전하기 위하여 천사와 관련된 사건도 매우 자세하게 기록에 남겼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천사들이 제자들을 향해 부른 이 호칭은 그들의 신분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즉 제자들이 복음 전파의 사명을 망각하면, 갈릴래아의 일개 평범한 사람에 불과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요한 복음 7장 52절을 보면,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날 수 없다고 단정할 정도로 그곳은 영적으로 소외된 지역이고, 보잘것 없는 지방에 불과했다. 천사들은 앞으로 성령을 받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땅끝까지 용감한 복음의 증인이 될 것을 독려하고 있는 것이다.

별볼일 없는 갈릴래아 촌 사람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의 복음의 능력자가 될 것인가?

 

'왜 하늘만 쳐다보며 서 있느냐?'

 

'쳐다보며'로 번역된 '엠블레폰테스'(emblepontes)는 현재분사로서 진행적 의미를 나타낸다. 이런 뉘앙스를 살려 번역하면, '어찌하여 너희는 계속해서 서서 하늘을 향해 쳐다보고만 있느냐?' 이다. 즉 그들은 예수께서 사라지고 없는 하늘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또한 초대 교회의 현실을 염두에 두고, 루카가 천사의 말을 소개하고 있는 거이다. 초대 교회 신도들 가운데서는 그리스도의 재림만 기다리며, 현실적인 이 땅에서의 하느님의 일과 사명을 소홀히 하는 자들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육체를 입은 몸으로 구름과 함께 영광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듯이 그대로(ho tropon ; 호 트로폰 ; in like manner) 육체를 입은 몸으로 큰 영광가운데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가시적으로 재림하실 것을 가리킨다.

 

 

 

 오늘은 주님 승천 대축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충격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당신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음을, 십자가 사건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패배가 아니라 온전한 승리였음을 확인시켜 주신 뒤에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그렇다고 이 승천 사건이 예수님의 생애를 다룬 영화에 나오는 승천 장면이나, 성지에서 만나는 주님 발현이나 승천 장소에 남아 있는 발자국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구름을 뚫고 떠나버리셨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승천의 근본적인 의미는 공생활을 통하여 당신에게 맡겨진 일을 모두 완수하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본디 자리, 하느님 아버지의 오른쪽, 곧 하느님 차원으로 올라가셨음을 뜻합니다.

성경에서 하늘은 우리가 보는 물리적인 공간일 뿐 아니라 하느님의 초월성, 하느님의 영역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마르코와 마태오 복음서에서와 달리 오늘 읽은 루카 복음서에서 주님의 승천을 겪은 제자들은,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에서 기도하며 지냅니다.

예루살렘이 제자들에게는 시련과 아픔의 도시였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유다의 배신과 베드로의 부인, 그리고 십자가의 처절함과 그에 대한 두려움에 도망치는 제자들의 모습을 간직한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더 이상 예루살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겪은 그 모든 것이 실패와 패배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승천을 통해서, 당신께서 보여 주신 그 모든 일이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따른 것이며, 당신의 십자가와 부활로 인간 구원이 결정적으로 실현되었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승리와 영광 속에 개선하시는 주님을 찬미합시다.


 (이성근 사바 신부)

 

 

  [주님 승천 대축일]

 

하느님의 힘능력이 우리를 이끌어 가신다.

 

독서(사도1,3-5)

그분(예수)께서는 수난을 받으신 뒤당신이 살아 계신 분이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사도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그러면서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어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 교회는 肉身(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실 때에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나에게서 들은 대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기다려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며칠 뒤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 성령을 받고, 그분의 가르침을 먼저 받고 땅(肉)의 일이 아니라 하늘의 영적인 일을 하라는 말씀이다.

 

(요한14,26)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1코린2,10)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 성령세례- 어떤 형식이나 예식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시메온 처럼(루가2,25-28) 하느님 나라를 갈망(渴望)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찾아가시는 것인데 그 갈망하는 마음 또한 말씀 안에 머무를 때 일어나는 것이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진리는 곧 성령이다.(1요한5,6)

 

(에페1,17-23)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성령))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 성령의 지혜와 계시로 그리스도를 죄인들의 대속의 제물로 보내신 그 사랑의 하느님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18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열어주시어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빕니다.

= 우리의 신앙의 목적이- 땅(세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받는 용서, 의, 거룩 곧 하늘의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임을 알라는 말씀이다. 그 모든 것을 이끄셨던 하느님의 용서, 자비, 사랑, 그 큰 힘, 전능하심을 알라 하신다.

 

(에페3,18-19) 18 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19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19 또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되기를 빕니다.

 

하느님의 큰 힘의 정의~

(에페2,1-9) 1 여러분도 전에는 잘못과 죄를 저질러 죽었던 사람입니다. 2 그 안에서 여러분은 한때 이 세상의 풍조에 따라, 공중을 다스리는 지배자, 곧 지금도 순종하지 않는 자들 안에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3 우리도 다 한때 그들 가운데에서 우리 육의 욕망에 이끌려 살면서, 육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랐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본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4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힘)으로, 5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6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호의로, 당신의 *은총이 얼마나 엄청나게 풍성한지를 앞으로 올 모든 시대에 보여 주려고 하셨습니다.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 인간의 선(善), 행위가 아닌 하느님의 선, 큰 힘, 그 은총이 구원을 이루심이다. 이것을 알고 믿는 것이 신앙이다.

 

20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 오른쪽- 오른, 올바른, 참 진리셨다.는 의미이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가 그의 이름으로 하늘과 땅을 다스리도록 그리스도께 주신 권능을 뜻하기도 한다.

 

21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과 주권 위에그리고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불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22 또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 교회가, 나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충만해져 있는가?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한 몸, 하나가 되신다는 것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머리로서 모든 것을 책임지시겠다는 것이다. 만물을 또한 말씀으로 지탱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하게 하심이다.

 

(히브1,3)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 세상 만물은 말씀으로 창조되어 말씀이 나(교회)를 지탱하고 있다.

 

오늘 복음에서 이 모든 말씀을 ‘교회(하느님백성)인 너희들아!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하신다.

  

 

 

 20250601일 일요일

[주님 승천 대축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루카 복음사가는 사도행전 머리말에서 예수님의 파스카 사건에서 승천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해 전하고,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서에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의 일을 전합니다.

사도들의 인간적인 처지에서 바라본 주님의 승천은, 주님께서 돌아가신 뒤 슬퍼하고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나 기뻐하다가 이윽고 헤어지는 사건입니다.

그렇지만 사도들은 주님께서 자신들과 영원히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았기에 슬퍼하기보다 크게 기뻐합니다.

이 땅 위의 희망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희망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희망은 승천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남겨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내내 당부하신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선포는 곧 이 새로운 희망의 선포를 뜻합니다.

파스카 사건의 증인으로서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한 사명을 받은 사도들처럼, 우리도 우리가 지닌 희망(에페 1,18 참조)의 증인이 되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시련과 절망을 겪고 있는 이웃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신앙에 기초한 우리의 희망을 삶으로 드러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올해 홍보 주일 담화에서 그리스도인에게 희망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조건이요 수동적인 낙관주의가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수행적인 덕임을 강조하십니다.

희망의 순례자들인 우리가 희년을 지내는 동안 피해 갈 수 없는 시련이나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희망을 잃지 않도록 은총을 청합시다.

또한 모든 이가 이 희망을 함께 나누도록 한쪽으로 치우친 언론과 가짜 뉴스에 휘둘리지 않도록 다양한 홍보 매체 안에서 늘 깨어 있도록 합시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주님 승천 대축일]

 

구름은 물로 이루어졌고물은 생명의 말씀이다. 

오늘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 사업을 완수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음을 기리는 주님 승천 대축일이다. 교회는 주님 승천 대축일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지 사십 일째 되는 부활 제6주간 목요일에 지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부활 제7주일로 옮겨 지낸다.

 

1독서 (사도1,4-11) 4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실 때에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나에게서 들은 대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기다려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며칠 뒤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6 사도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 물었다. “주님지금이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다시 나라를 일으키실 때입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한으로 정하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 8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신 다음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10 예수님께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는데갑자기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렇게 말하였다. “갈릴래아 사람들아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 구름에 감싸여 오르셨듯이, 구름에 씨여 오실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하신대로다. (마태24,30 26,64참조) 그러나 성령께서 눈을 열어 주셔야 볼 수 있다. 마음의 눈이다.

 

2독서(에페1,17-18)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18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빕니다.

= 마음의 눈? 성령의 이끄심으로 보고 깨닫는 것이다. (요한14,16.26 15,29 16,7 참조)

 

*구름은 하느님의 힘, 능력, 영광, 현존을 뜻한다. (탈출19,9.16 24,16 34,5 에제키엘1,27-28 30,1-3 시편104,3)

*구름은 성경의 모든 계약의 모형인 무지개 계약을 말씀한다. (창세9,13-17)

*구름이 이집트(세상)에서 탈출시켰다. 그리고 광야의 삶, 곧 우리의 고난, 시련의 인생길에서 함께 하시며 하늘로, 구원으로 이끄셨다. (탈출13,21-22 14,20-24 민수9,15-22 참조)

*심판의 구름이다.(스바1,14-17)

*하느님의 영광, 본질이신 예수님의 실체를 드러내셨던 구름이다. (마태17,5 묵시1,7 14,14)

 

오늘은 이집트, 곧 이 세상의 노예(奴隸)살이에서 탈출 시키시며 광야같은 인생길에 함께하시며 하늘로, 구원으로 이끄시는 구름을 만나고자 한다.

 

(탈출13,20-22) 20 그들은 수콧을 떠나 광야 가장자리에 있는 에탐에 진을 쳤다. 21 주님(야훼)께서는 그들이 밤낮으로 행진할 수 있도록 그들 앞에 서서 가시며낮에는 *구름기둥 속에서 길을 인도하시고밤에는 *불기둥 속에서 그들을 비추어 주셨다. 22 낮에는 구름 기둥이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을 떠나지 않았다.

= ‘기둥(스타오로스) - 하느님의 계약(스타오로스)’ 같다. 구름이 밤에는 불 모양으로(민수9,16)~

 

(탈출14,20-25) 20 그리하여 그것은 이집트 군대와 이스라엘 군대 사이에 자리 잡게 되었다그러자 그 구름이 한 쪽은 어둡게 하고다른 쪽은 밤을 밝혀 주었다그래서 밤새도록 아무도 이쪽에서 저쪽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뻗었다주님께서는 밤새도록 거센 샛바람으로 바닷물을 밀어내시어바다를 마른 땅으로 만드셨다그리하여 바닷물이 갈라지자, 22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걸어 들어갔다물은 그들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다. 23 뒤이어 이집트인들이 쫓아왔다파라오의 모든 말과 병거와 기병들이 그들을 따라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24 새벽녘에 주님(야훼)께서 불기둥과 구름 기둥에서 이집트 군대를 내려다보시고이집트 군대를 혼란에 빠뜨리셨다. 25 그리고 그분께서는 이집트 병거들의 바퀴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시어병거를 몰기 어렵게 만드셨다그러자 이집트인들이 이스라엘을 피해 달아나자주님(야훼)께서 그들을 위해서 이집트와 싸우신다.” 하고 말하였다.

= 전쟁은 하느님께서 하신다는 것이다. (1사무17,48)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구름에 싸여 오신다는 것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빛내주실 하느님의 계약(기둥), 계시의 성령으로 다시 오셔서 영원한 보호자로 함께 하시며, 함께 싸우시고 승리하시어(1코린15,57) 구원의 판결, 그 심판으로 하늘에 이르도록 이끄시며 가르치시고, 깨닫고, 기억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요한3,17)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사제의 가르침> 예수님께서 ‘승천(昇天) 하셨다’는 것은 장소적인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서 인간으로 오셨던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셨음’을 의미합니다. 시간과 공간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던 예수님께서 이제는 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알고 있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떠나심을 기뻐하며, 찬미하며, 기도로써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의 또 다른 존재양식인 ‘보호자’를 믿음으로 기다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1베드2,25) 25 여러분이 전에는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었지만이제는 여러분 영혼의 목자이시며 보호자이신 그분께 돌아왔습니다.

 

영원한 보호자이시며 하느님의 영광의 지혜계시의 영이신 천주 성령님!

우리의 삶속에서 늘 함께 하시며 하느님의 나라로 이끄시니 감사 합니다저희 모두의 마음을 불을 놓으시어 오늘 말씀이 믿음으로 자라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매일미사2024년 05월 11일 토요일 [백] 부활 제6주간 토요일[백] 주님 승천 대축일 - 전야 미사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주일복음강론

목록 전체보기 →
[삼위일체 대축일]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요한16,12-15)25.06.14조회 10[성령 강림 대축일] 성령을 받아라. (요한20,19-23)25.06.06조회 48[주님 승천 대축일]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 (루카24,46-53)25.05.30조회 11[부활 제6주일] 성령께서 기억하게 (요한14,23ㄴ-29)25.05.25조회 17[부활 제5주일]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13,31-33ㄱ.34-35)25.05.17조회 13[부활 제4주일] 아버지와 나는 하나 (요한.10,27-30)25.05.10조회 14[부활 제3주일] “나를 따라라.” (요한21,1-19)25.05.03조회 17[부활 제2주일]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요한20,19-31)25.04.26조회 12[주님 부활 대축일] 예수님께서는 살아나셔야. 요한20,1-9)25.04.19조회 17[주님 수난 성지 주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 (루카22,14―23,56)25.04.12조회 18[사순 제5주일] 간음한 여인 (요한8,1-11)25.04.02조회 10[사순 제4주일] 두 아들의 비유 (루카15,1-3.11ㄴ-32)25.03.29조회 12[사순 제3주일]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멸망 (루카13,1-9)25.03.22조회 14[사순 제2주일] 변모(變貌)축일 (루카9,28ㄴ-36)25.03.14조회 16[사순 제1주일] 광야 유혹(誘惑) (루카4,1-13)25.03.08조회 25[연중 제8주일]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루카6,39-45)25.03.01조회 10[연중 제7주일] 원수를 사랑하여라. (루카6,27-38)25.02.22조회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