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5주일] 간음한 여인 (요한8,1-11)

2025. 4. 2. 오후 5: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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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6일 일요일

[사순 제5주일] 간음한 여인 (요한8,1-11)



주교회의의 판단에 따라, 이 주일부터 성당에 있는 십자가와 성화 상들을 가리는 관습을 보존할 수 있다(한국 교구들에서는 이 관습을 보존할 수 있다). 십자가는 성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 거행을 마칠 때까지 가려 둔다. 성화 상들은 파스카 성야 예식을 시작할 때까지 가려 둔다.

 

1독서<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이사43,16-21)

16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은 바다 가운데에 길을 내시고 거센 물 속에 큰길을 내신 분,

17 병거와 병마, 군대와 용사들을 함께 나오게 하신 분. 그들은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꺼져 가는 심지처럼 사그라졌다.

18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

20 들짐승들과 승냥이와 타조들도 나를 공경하리니 내가 선택한 나의 백성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고 광야에는 샘을 내고 사막에는 강을 내기 때문이다.

21 이들은 내가 나를 위하여 빚어 만든 백성, 이들이 나에 대한 찬양을 전하리라.

 

<화답송>시편126,1-2ㄱㄴ.2ㄷㄹ-3.4-5.6(3) 주님이 큰일을 하셨기에 우리는 기뻐하였네.

주님이 시온을 귀양에서 풀어 주실 때, 우리는 마치 꿈꾸는 듯하였네. 그때 우리 입에는 웃음이 넘치고, 우리 혀에는 환성이 가득 찼네.

그때 민족들이 말하였네. “주님이 저들에게 큰일을 하셨구나.” 주님이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기에, 우리는 기뻐하였네.

주님, 저희의 귀양살이, 네겝 땅 시냇물처럼 되돌리소서.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사람들, 곡식 단 안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

 

2독서<그리스도, 그분을 닮을 것입니다.>(필리3,8-14)

나는 8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9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오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 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고 있으려는 것입니다.

10 나는 죽음을 겪으시는 그분을 닮아, 그분과 그분 부활의 힘을 알고 그분 고난에 동참하는 법을 알고 싶습니다.

11 그리하여 어떻게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 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

13 형제 여러분, 나는 이미 그것을 차지하였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습니다.

14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로 부르시어 주시는 상을 얻으려고, 그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8,1-11)

1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2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3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4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5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6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7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8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9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11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사순 제5주일 제1독서(이사43,16-21)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 (18-19)

 

18-21절까지는 하느님께서 선택된 백성을 위해 베푸실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예고하는 내용이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느님께로부터 새로운 은혜를 받을 것을 기대하며, 과거의 기억을 버리라는 명령이다.

 

'예전의 일들' 해당하는 '리쇼노트'(rishonoth; the former things)는 복수형 명사로서 과거에 일어났던 여러가지 사건들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Forget the former things, do not dwell on the past.

 

그렇다면 '예전의 일들'이 무엇인가?   그것은 <새로운 탈출>이란 주제로 시작되는 앞의 16-17절의 출애굽 당시의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은 바다 가운데에 길을 내시고  거센 물 속에 큰 길을 내신 분,  병거와 병마, 군대와 용사들을 함께 나오게 하신 분,  꺼져가는 심지처럼 사그라졌다." (16-17)

 

즉 이스라엘의 맏아들을 구원하시고 이집트의 장자를 죽이신 사건을 비롯해 홍해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하시고, 이집트 군대를 수장시켜 버린 사건등이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사실 대대로 기억해야 할 일이다(탈출 12,42; 13,10).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 기념비적인 일들을 기억하지 말라고 명하신다.

우리는 이것은 세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번째는 하느님께서 과거의 출애굽 당시에 행하셨던 구원의 역사와  전혀 다른 방법으로 구원하여 주실 것임을 나타낸다.

두번째는 과거의 그 일보다 더 위대한 일, 즉 그 기적을 능가하는 기적 일으킬 것임을 나타낸다.

세번째는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체험할 것이기에  더 이상 과거의 역사를 기억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 즉 새로운 구원의 역사가 반드시 일어날 것임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라는 문장은 반어적 수사 의문문이다.  여기에서 '그것'은 앞의 '새 일' 지칭한다. 따라서 이는 새 일 반드시 일어날 것이며,하느님의 백성들이 그것을 친히 두 눈으로 목격하고, 모두가 그 새 일을 알게 될 것이라는 의미 지니고 있다.

 

또한 여기서 사용된 동사는 미완료 형태의 동사로서,  장래에 알게 될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 대해 의심하고 믿지 않는이스라엘의 불신앙을 질타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본다.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 (19)

이것은 출애굽 사건과 다른 방식으로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구원하실 것을 보여준다. '광야에 길을'이란 표현은 16절의 '바다 가운데에 길을 내시고, 거센 물 속에 큰 길을 내신' 이라는 표현과 관련되어 있다.

 

과거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이끄시기 위해 홍해를 가르고 길을 만드신 하느님께서는 바빌론에서 가나안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시기 위해 그 가운데에 있는 광야에 길을 내실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단지 바빌론에서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 있을지라도 반드시 구원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사막에 강을'이란 표현은 바빌론에서 가나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내가 나를 위하여 빚어 만든 백성,  이들이 나에 대한 찬양을 전하리라." (21)

하느님께서 왜 그의 백성을 이방 압제자들의 손에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그들을 해방하여 고국으로 귀환하게 하시는지, 그 근본 이유를 말해준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본래 하느님만을 위한 존재이며 하느님을 찬양하기 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들은'에 해당하는 '암 주'(am zu)는 ' 이 백성은'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문장 성분상 목적어임에도 불구하고 문두에 위치하여 특별히 강조되어 있는데, 많은 백성과 민족 중에서 바로 이 백성만큼은 특별히 하느님 당신을 위해서 만드셨다는 뉘앙스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나에 대한 찬양을 전하리라." (21)

하느님께서 그의 백성에 대해 기대하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찬양을 이방 모든 백성들이 알 수 있도록 만방에 선포함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의 자녀로 선택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시는 궁극적 목적 바로 이것이다.

 


 

 

[사순 제5주일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구약의 율법에는 이웃의 남편 또는 아내와 간음한 자는 죽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레위 20,10; 신명 22,22-24 참조).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왜 이 규정을 주셨을까요?

그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도 거룩함 속에 머무르도록 해 주시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레위 11,45; 20,26 참조).

 

오늘 복음에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율법 규정을 근거로 간음한 여인을 단죄하려 합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우려고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하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하고 받아치십니다.

그러자 단죄하던 자들은 하나둘 떠나갑니다.

타인에게 적용하는 단죄의 기준을 자신에게 적용할 때, 아무도 하느님과 이웃 앞에 죄인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이웃을 평가하려는 잣대를 날카롭게 ‘연마’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냅니까?

그렇게 마련한 잣대를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얼마나 엄격하게 적용하며 내면화하고 있습니까?

율법의 본정신인 거룩함은 어쩌면 이웃을 향한 잣대에 집중하기보다, 자기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것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고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을 통하여 가르쳐 주십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사순 제5주일]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요한7,53-8,11)

7,53 그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가고 8,1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2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 저마다(헤가토스-모두) 집(보이코스-우상의 집, 신전) 직역하면 사람들이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한 저마다의 뜻을 위한 집(성전)으로 돌아갔다. 곧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 하느님의 뜻, 나라가 아닌 자신의 뜻을 위한 신앙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다시 가르침을 주시겠다는 모습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3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4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5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6ㄱ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 율법을 근거로 심판으로 가면 안 된다. 그 율법의 심판을 대속의 죽음으로 완성하신 진리를 찾아야 한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다.

 

(마태5,17)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요한19,30) 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6ㄴ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7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8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 두 번 쓰셨다. 곧 하느님께서 손가락으로 써 주신 십계명이다.

 

(탈출31,18) 18 하느님께서는 시나이 산에서 모세와 말씀을 다 하신 다음, 당신 *손가락으로 쓰신, 돌로 된 두 증언판을 그에게 주셨다.

= 그후, 이스라엘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하느님의 진노(震怒)로 증언판이 깨진다. 곧 그들이 다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때 모세가~

(탈출32,32)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으려거든, 당신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제발 저를 지워 주십시오.”

= 그들의 죄로 자신이 속죄 제물로 죽고 그들을 살려 달라는 기도를 드린다. 구원자 예수님의 모형이다.

 

(탈출34,27)27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말을 기록하여라. 나는 이 말을 조건으로 너와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다시 증언 板을 주시는데 곧 율법의 옛 계약이 깨지고 대속, 그 구원의 진리인 새 계약을 주시는 모습인 것이다.

본문 7절에서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를 직역하면 ‘돌이 이미 던져 졌는데~’이다. 그 돌을 이미 예수님께서 대신 맞으셨다는 것이다.

 

9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11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 간음하지 마라는 그 차원이 아니라 예수님 당신께서 대신 돌을 맞으셨으니까 율법(제사와 윤리)의 신앙으로 다시 돌아가지 말라는 말씀이시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신앙의 목적지인 자기 버림, 자기부인으로 하느님께 감사의 영광을 드릴 수 있는 것이다.(루가9,23 이사437 참조)

 

*결론이다. 예수님 곁에 죄가 드러난 그 여자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성경의 간음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셔서 깨끗하게 하신, 그리고 그 죄인들을 당신의 신부로 맞아주신 그 예수님을 주인, 주님으로 의지하지 않고 여전히 세상의 힘, 나의 힘을 의지해서 사는 것이 죄, 불의, 간음인 것이다. (요한1서2,15-17참조)

하늘의 생명이 아닌 땅의 목숨을 위해 사는 것이 간음이다.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아는 자만이 예수님 곁에 남게 되는 것이다.

 

(에페5,13) 13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모두 *빛으로 밝혀집니다.

 

☨천주의 성령님! 저희가 주님의 약속 그 말씀으로 자기 버림, 부인을 두려워말게 하소서.~아멘!!!.

 





 

 

사순 제5주일 복음 (요한8,1-11)

 

그들은 주 하느님께서 저녁 산들 바람 속에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과 그 아내는 주 하느님 앞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창세3,8~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였다." (6)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갑자기 등장한 예수님의 존재는 매우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이루어졌던 성전에서의 매매 행위를 질책하고 단죄하였으며, 안식일 규정까지 어긴 자로 여겨졌다.

그리고 자신들이 갖지 못한 이적을 행하는 권능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고 생각했다.

 

급기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가르침과 사회적 입지를 흔들어 놓는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하여 성전 경비병들을 파견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요한7,45).

따라서 이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로 이루어진 유능한 이들을 보내어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고 결국 파멸케 하려는 계략을 꾸몄다.

이것을 위해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올가미에 걸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요한8,6ㄱ).

 

그들은 예수님을 단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존재로 여겼기에 이러한 계략은 결국 하느님을 시험하는 불경을 저지른 꼴이 된 것이다.  

영적 무지와 종교적 편견으로 가득찬 그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예수님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행하겠다는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요한 복음 8장 6절의 '쓰기 시작하였다'에 해당하는 '카테그라펜'(kategraphen; started to write)은 '카타그라포'(katagrapho)의 미완료 시제로서동작의 개시를 나타낸다.

말하자면 '쓰거나 그리기 시작하였다'는 뜻이 된다. 이 동사는 '쓰다'는 뜻 뿐만 아니라 '그리다'(draw figures)는 뜻도 있다.

 

예수님께서 땅에 무엇인가를 쓰신 것은 예수님께 와서 흥분하며 조급하게 판단을 요구하는 무리들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들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을 고소하려는 사악한 음모와 한 여인이 죽을 수도 있는 험악하고도 긴박한 상황 속에서 놀라운 평정심을 유지하시며 땅에 조용히 글을 쓰시는 예수님의 이러한 행동은 당시 흥분된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요한 복음 8장 7절에 나오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는 말씀을 듣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 성서학자들은 예수님께서 땅에 무엇인가 쓰신 이 행위가 구약의 예레미야서 17장 13절을 연상시키는 상징적 행위라고 이야기한다.

요한 복음 8장의 간음하다 잡힌 여자의 이야기에서 요한 복음 8장 6절과 8절에 예수님께서 땅바닥에 글을 쓰신 것은 예레미야서 17장 13절을 연상시키는 상징적 행위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였다.' (6)

'너희가운데 죄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7)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8)
한마디로 '그 여자를 죽이려고 돌을 든 너희들도 똑같은 죄인'이라는 것이다.

'당신을 저버린 자는 누구나 수치를 당하고  당신에게서 돌아선 자는 땅에 새겨지리이다.  그들이 생수의 원천이신 주님을 버린 탓입니다.'  (예레17,13)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9)

나이가 많다는 것은 젊은이들보다 율법과 예언서의 말씀을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젊은이들보다 깨달음과 이해가 먼저 오는,  삶의 경륜과 지혜가 있음을 드러낸다. 

동시에 나이가 많다는 것은 오래 살았으니 죄도 많이 지었다는 것이다.

 

 

 

 

“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구요비 욥 주교(서울대교구 보좌주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만나면서 당신이 자비롭고 의로운 재판관이심을 계시하십니다. 

이는 율법학자들이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라는 질문에서 잘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두 차례나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시며’(요한 8,6-8 참조) 그 옛날 시나이 산에서 당신 손가락으로 율법을 쓰신(탈출 31,18 참조) 하느님의 모습을 재현하십니다. 

만일 예수님이 이 여인에게 ‘돌로 쳐라!’라고 명령하신다면 이는 ‘나는 세상을 심판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려고 왔다’(요한 3,17 참조)라는 평소의 가르침과 행동에 위배됩니다. 

또한 ‘이 여인에게 죄가 없으니 풀어 주어라!’라고 말씀하신다면 “나는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는 당신의 사명에 거스르는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죄인들은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죄인들이 죄인을 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율법은 지켜져야 합니다. 그러나 율법을 어기는 자들이 율법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성 아우구스티노).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 예수님은 죄를 단죄하십니다. 그러나 죄인을 단죄하지는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자기 내면의 깊은 곳에 새겨져있는 양심의 지성소(至聖所)로 돌아가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자기의 죄를 회개하여 의로워지라는 은총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오늘 복음을 읽으며 한국 법조계의 전설이신 ‘사도법관’ 김홍섭(바오로) 판사님이 떠오릅니다. 

이분의 위대함은 1950년~60년대에 사형수들의 최종 판결을 앞두고 실정법(實定法)과 하느님의 법이 담겨 있는 자연법(自然法) 사이에서 신앙인으로서 깊이 고뇌하며 판결하던 구도자적인 삶에서 비롯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낙태죄 위헌 여부’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고귀한 사명은 사회구성원들의 인간적인 이익과 여론에 부합하는 실정법적인 차원의 지침을 제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理性)으로 파악할 수 있는 하느님의 영원법인 자연법을 수호하고 구체화하는 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현재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여성과 임산부(姙産婦)의 자기결정권과 태아(胎兒)의 생명권(生命權) 중 어느 것이 자연법에 더 부합한지는 우리 모두에게 불문가지(不問可知)의 보편적인 진리라고 하겠습니다. 

태아는 산모와는 별개로 존중 받아야 할 고귀한 생명입니다. 

아무쪼록 헌법재판관 여러분의 지혜로운 판결을 간청하며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판결이 우리 모두에게 빛을 비추어 주기를 비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20250406일 일요일

[사순 제5주일] (안동훈 안드레아 신부)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7)라는 말씀을 이루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예수님께 끌고 와서 그분을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 처분을 여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지니시고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시며 중풍 병자와 죄 많은 여인을 용서하셨고(마태 9,1-8; 루카 7,36-50 참조),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마태 26,28) 당신을 희생하실 만큼 큰 자비의 마음을 지니셨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앞세워 여인을 돌로 쳐 죽여야 한다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거스르시지 않고 한말씀만 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그 말씀을 듣고 모두 자리를 떠나자 예수님과 그 여인만이 남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죄가 없으시기에 여인을 심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지만 그를 단죄하시는 대신 다시는 죄짓지 마라.”(8,11)라고 말씀하십니다.

여인을 처벌에서 구하실 뿐만 아니라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을 가르쳐 주시고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지은 우리를 심판하시기보다 용서하시며, 다시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고 악에서 구할 것입니다.

그러니 용기를 내 주님 앞으로 나아가 겸손되이 용서를 청하고 죄에서 돌아서서 회개의 결심을 해야 하겠습니다.

 

(안동훈 안드레아 신부)

 

 

 




 

 

 2025년 04월 06일 일요일 [사순 제5주일]


하느님거짓되고 불의한 자에게서 저를 구하소서.

 

1독서(이사43,18-21)

18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19 보라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

= 물 없는 광야같은 우리 삶에 강물로 새로운 길을 내신다는 약속, 계약이다. 이 말씀은 이미 창세기에서 부터 주셨다.(창세2,10-14)

*하느님의 말씀, 물이 구원의 왕, 예수 그리스도로, 생명수로 빠르게 퍼져나가 묵시(종말-완성)를 이루심을 공부했었다.

곧 제사와 윤리, 그 율법, 옛 계약을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으로 완성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의 법이다.

 

(예레3,31-32) 31 보라그날이 온다주님의 말씀이다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 32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십계명)과는 다르다그들은 내가 저희 남편인데도 내 계약을 깨뜨렸다주님의 말씀이다.

= 인간들의 뜻을 위한 계명으로 만들어 하느님의 뜻, 사랑을 깨뜨린 것이다.(이사29,13참조)

*오늘 복음에서 율법, 계명으로 간음한 여자를 죽이려하자, 예수님께서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는데 돌판에 둘로 주신 십계명이다.(탈출31,18참조) 그 옛 계약은 법으로 죄를 드러내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8,7) 하셨을 때 모두 떠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땅에 다시 쓰신, 옛 계약을 땅에 쓰신 후 지우시고 새 계약으로 다시 쓰신 그 새로운 길, 사랑, 자비의 자리에 남아있던 여자가 죄를 용서받는 것이다. 땅, 흙인 여자(죄)의 마음(생각)에 새 계약, 그 법을 넣어주신 것이다.

 

(히브10,15-17.19-20) 15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증언해 주시니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6 “그 시대(십자가)가 지난 뒤에 내가 그들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17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19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우리는 예수님의 피(새 계약덕분에 성소(하늘의 모형)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20 그분께서는 그 휘장을 관통하는 새롭고도 살아 있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곧 당신의 몸을 통하여 그리해 주셨습니다.

 

복음(요한8,10-11)

10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그자들이 어디 있느냐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11 그 여자가 선생님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가거라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 여자는 또 죄를 지을 것이다. 죄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로마3,10-12 참조) 피조물인 인간이 하느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위해 자신의 힘, 의(義)를 의지하는 것이 간음이며 죄다.

그 죄의 때에 주님께서 다시 쓰셨던, ‘새 계약으로 주셨던 용서로 다시 죄에 묶이지 말라’는 말씀이다. 죄를 져도 무방하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그 차원을 넘어선 ‘용서를 알라’는 것이다. 율법(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에 묶이지 말라는 말씀인 것이다.

그런데 율법으로 흠 없이 의롭게 사는 사람일수록 그리스도의 대속, 피의 새 계약, 그 새로운 길을 가려는 이들을 박해하며 그 일에 동참하는 것이 하느님의 일, 봉사라고 착각한다. 그것이 곧 거짓된 불의다.(요한16,2참조)

 

(시도8,1) 1 사울(바오로)은 스테파노를 죽이는 일에 찬동하고 있었다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그리하여 사도들 말고는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사도22,3-4) 3 “나는 유다 사람입니다킬리키아의 타르수스에서 태어났지만 이 도성 예루살렘에서 자랐고가말리엘 문하에서 조상 전래의 엄격한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았습니다오늘날 여러분이 모두 그렇듯이 나도 하느님을 열성으로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4 또 신자들을 죽일 작정으로 이 새로운 길을 박해하여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포박하고 감옥에 넣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새로운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한 고백이 오늘 제2독서다.

2독서(필리3,7-14) 7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 자기의 의, 명예, 가문 등 스팩(specific)이다.

 

그뿐만 아니라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율법에서 오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고 있으려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을 믿어 거저 얻는 의로움이다.

 

10 나는 죽음을 겪으시는 그분을 닮아그분과 그분 부활의 힘을 알고 그분 고난에 동참하는 법을 알고 싶습니다. 11 그리하여 어떻게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성경 말씀 안에 머무르며 새 계약으로 새 것, 새 사람이 됨을 깨닫는 것이 시작이다.

 

12 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아멘) 13 형제 여러분나는 이미 그것을 차지하였다고 여기지 않습니다그러나 이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습니다. 14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로 부르시어 주시는 상을 얻으려고그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앞을 향하여, 곧 새로운 길인 그 새 계약으로 내달리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우리는 제사와 윤리, 그 율법신앙이 몸에 익숙해져 있기에, 그 옛 계약을 버리는, 부인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성경 안에서 매일매일 그 옛 계약의 헛됨을 깨닫고 구원의 힘, 진리인 새 계약으로 건너야 한다. 그것이 율법의 역할이다,(갈라3,24)

 

(로마7,22-25. 8,1-4) 22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23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24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이렇게 나 자신이 이성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섬기지만육으로는 죄의 법을 섬깁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새 계약)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옛 계약)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곧 당신의 친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4 이는 육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채워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의 뜻만족(자기 의명예재물)을 위한 옛 계약의 신앙이 영의 구원에 해로운 것임을 보게(깨닫게하소서새로운 길인 그리스도의 대속그 피의 새 계약의 지고한 가치를 깨닫고 하늘의 용서생명을 위해 달리는 신앙을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에게 성령의 불을 놓으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간음한 여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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