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주일] 카나에서 첫표징을 (요한2,1-11)

2025. 1. 17. 오후 5:4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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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9일 일요일

[연중 제2주일] 카나에서 첫표징을 (요한2,1-11)

   


1독서<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이사62,1-5)

1 시온 때문에 나는 잠잠히 있을 수가 없고 예루살렘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의 의로움이 빛처럼 드러나고 그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를 때까지.

2 그러면 민족들이 너의 의로움을, 임금들이 너의 영광을 보리라. 너는 주님께서 친히 지어 주실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리라.

3 너는 주님의 손에 들려 있는 화려한 면류관이 되고 너의 하느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이 되리라.

4 다시는 네가 소박맞은 여인이라, 다시는 네 땅이 버림받은 여인이라 일컬어지지 않으리라. 오히려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여인이라, 너의 땅은 혼인한 여인이라 불리리니 주님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 하시고 네 땅을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5 정녕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리라.

 

<화답송>시편96,1-2.2-3.7-8.910ㄱㄷ(3) 모든 민족들에게 주님의 기적을 전하여라.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세상아. 주님께 노래하여라,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나날이 선포하여라, 그분의 구원을. 전하여라, 겨레들에게 그분의 영광을, 모든 민족들에게 그분의 기적을.

주님께 드려라, 뭇 민족의 가문들아. 주님께 드려라, 영광과 권능을. 주님께 드려라, 그 이름의 영광을.

거룩한 차림으로 주님께 경배하여라. 온 세상아, 그분 앞에서 무서워 떨어라. 겨레들에게 말하여라. “주님은 임금이시다. 그분은 민족들을 올바르게 심판하신다.”

 

2독서<한 분이신 같은 성령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나누어 주십니다.>(1코린12,4-11)

4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5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6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7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8 그리하여 어떤 이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이,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에 따라 지식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9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 안에서 믿음이, 어떤 이에게는 그 한 성령 안에서 병을 고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10 어떤 이에게는 기적을 일으키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예언을 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영들을 식별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신령한 언어를 해석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11 이 모든 것을 한 분이신 같은 성령께서 일으키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그것들을 따로따로 나누어 주십니다.

 

복음<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셨다.>(요한2,1-11)

1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2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3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4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5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6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7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9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10 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러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11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연중 제2주일 제1독서 (이사야62,1-5)

 

"다시는 네가 '소박맞은 여인'이라, 다시는 네 땅이 '버림받은 여인'이라  일컬어지지 않으리라.  오히려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여인'이라, 너의 땅을 '혼인한 여인'이라 불리리니,  주님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하시고,  네 땅을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4)


시온이 주님의 축복을 온전하게 회복함을 예언하는 이사야서 62장 2-5절 가운데서, 62장 4절과 5절은 시온에 대한 주님의 축복이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축복된 순간인 혼인에 비유되어 묘사된다.


그 가운데 4절은 과거 시온을 버리운 자로 칭해지거나(이사54,6.7) 스스로 그런 존재로 여겼였지만(이사49,14), 주님의 회복된 은총을 받은 후에는 그 어느 누구도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과거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말미암아 그들을 바빌론의 손에 넘겨주고, 또한 약속의 땅을 황폐하게 내버려 두셨지만, 그것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니었다. 주님께서는 키루스를 통해 당신 백성을 회복시키셨으며, 나아가 그 민족을 통해 메시아가 나오게 하심으로써 그들을 영원히 버리신 것이 아님을 입증해 주셨다.


본문에는 히브리어에서 가장 강한 의미의 부정어 '로'(lo)와 '다시는'에 해당하는 '오드'(od)가 쓰여 과거와 달라진 시온의 면모를 한층 더 강조해 준다.

뿐만 아니라 "다시는 네 땅이 '버림받은 여인'이라 일컬어지지 않으리라" 란 표현에도  역시 부정어 '로'(lo)와 부사 '오드'(od)가 사용되어, 하느님의 백성과 더불어 그들의 땅 역시 과거의 황폐한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축복을 누릴 것을 강조한다.

본문은 선민 이스라엘이 누리는 축복이 총체적 축복임을 동일한 형식의 문장을 반복 사용하여 강조하는 것이다.

 

"오히려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여인'이라, 너의 땅은 '혼인한 여인'이라 불리리니"

시온 백성이 다시는 버리운 자, 또한 그 땅이 다시는 황무지라 불리지 않을 것임을 언급 한데 이어, 그들이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며 그 이름으로 불릴 것을 선언한다.


여기서 '내 마음에 드는 여인'에 해당하는 '헤프치 바흐'(hephtsi bah)는 '나의 기쁨이 그녀에게 있다'(My delight is in her)라는 의미이다. '헤프치'(hephtsi)의 원형 '하파츠'(haphats)는 원래 간절히 염원하거나 기뻐하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이다.

그리고 '바흐'(bah)는 전치사 '뻬'(be)에 '그녀'라는 여성 3인칭 접미어가 결합된 형태의 표현이다. 여기서 여성 3인칭은 이사야서 62장 1절의 시온을 지칭한다.


시온이 하느님의 뜨거운 기쁨이 되는 것은 하느님의 주도적 은총에 기인하며, 이것은 궁극적으로 하느님께서 새롭게 당신의 거처로 세우실 교회가 메시아의 구원사업 근거하여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과 기쁨의 대상이 될 것임을 나타낸다.

또한 '혼인한 여인'에 해당하는 '뻬울라'(beullah)는 원래 '혼인하여 주인이 되다'는 의미의 동사 '뻬알'(baal)의 수동태 분사 여성형으로서,혼인을 하여 남편의 소유가 된 여인을 의미한다.


위의 '헤프치 바흐'(내 마음에 드는 여인)와 '뻬울라'(혼인한 여인)는  이사야서 62장 4절 후반절에서 '주님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 하시고'와 '네 땅을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으로 해설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과거에 하느님의 영광이 떠나 버렸던 땅(이사54,6)에 다시 그 영광이 돌아와 옛 지위를 회복하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에제43,2-5).

이 '헤프치 바흐'(빨리 읽어서 '헵시바')와 '뻬울라'(빨리 읽어서 '쁄라')는 이사야서 62장 2절에서 예언되었던 '새로운 이름'과 관련되어 시온의 회복이 완전할 것임을 보여준다.

 

'주님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 하시고, 네 땅을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유 접속사 '키'(ki)로 시작하는 본문은 왜 시온이 '헵시바'로 칭해지며, 그 땅이 '쁄라'로 일컬어지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한다.

여기에서 '마음에 들어 하시고'에 해당하는 '하페츠'(haphets)는 완료 시제로 되어 있고,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이기'에 해당하는 '팁바엘'(thibbael)은 미완료 시제로 묘사되어 있다. 문맥적으로 볼 때 여기의 시제는 미완료가 타당하다.


그렇다면, 완료 시제로 된 '하페츠'(haphets)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이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는데,  하나는 주님께서 언제나 시온을  마음에 들어하신다는 해석이며, 다른 하나는 주님께서 시온을 돌이키실 일이 비록 미래의 일이지만, 너무나 확실하기 때문에 마치 과거에 이루어진 일처럼 표현되었다는 해석이다.


문맥상 여기서 사용된 완료 시제는 예언적 완료라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의 기쁨을 표현한 '헵시바'라는 칭호는 시온이 받을 새로운 이름이기 때문이다.

즉 과거 얼마의 기간동안 시온은 주님의 기쁨을 잃어버렸지만훗날 메시아 구원 사업의 결과로 새로운 이름인 '헵시바'로 칭해짐으로써, 그의 기쁨을 회복하였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주님께서 시온을 마음에 들어하시는 시점은 이 예언이 주어진 시점보다 미래에 이루어질 일을 말하는 것이다.





 내 인생의 물독에 주님을 가득 채우며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카나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아 가십니다(2,1-2). 그분께서는 사랑과 일치, 창조와 생명이 시작되는 기쁨의 잔치에 함께 참여하신 것입니다. 그 잔치에는 혼인 당사자뿐 아니라 세리와 어부 등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가진 제자들, 예수님의 어머니 등 여러 부류의 사람이 함께 있었습니다. 

혼인 잔치의 축제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데 포도주가 떨어집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 해서 혼인이 성사되지 않는 일은 없겠지만 기쁨의 분위기가 식어버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단지 흥이 깨지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리를 떠나감으로써 혼인 잔치집이 텅 비게 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어머니가 나서서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고 말합니다(2,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2,4) 하며 거절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메시아로서 와 계시므로 이미 구원의 때가 와 있음에도 그렇게 말씀하신 까닭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모든 것을 다 이루시는 그때는 지금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거절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마리아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2,5). 마리아는 이미 잉태 고지를 받을 때부터 아들이 구세주로 왔음을 알고 있었고,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음을 믿으셨기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시고(2,7),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십니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물을 신랑이 처음에 내놓았던 포도주보다 더 좋은 포도주로 바꾸어주심으로써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제자들의 믿음을 불러일으키십니다(9-11).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교회, 가정, 수도공동체는 혼인 잔치와 같습니다. 누구나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고, 그분께서 함께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삶의 축제에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가난한 사람과 부자, 권세가와 사회적 약자들 모두가 차별 없이 초대받았습니다. 

포도 없이 물이 포도주가 될 수 없듯이 이렇게 함께하는 것은 불편하고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그분과 함께한다면 물이 포도주로 바뀌듯 기쁨과 축제로 바뀔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고정관념과 선입견, 사고의 틀을 벗어버리고 영혼의 빈자리에 그분을 모셔야 합니다.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이 표징에서 물과 포도주 사이에 예수님의 말씀이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 세상사, 일상의 만남 등 우리의 모든 일이 일종의 ‘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포도주 곧, 모든 이에게 기쁨을 가져다주고 선을 불러일으키는 선물과 의미로 바꿔주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개인과 사회라는 물독에 사랑과 관심의 물, 정의와 평화의 물, 공감과 공생의 물을 가득 채워 모든 관계를 기쁨과 생명이 꿈틀거리는 축제로 바꿔놔야겠습니다. 





 

 

연중제2주간 월요일 복음(요한12,1~11)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았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3)  이 여자를 그냥 놔 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7) 

 

요한 복음 12장 3절에 예수님을 위한 잔치의 식탁에서 라자로의 동생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다가 예수님 발에 붓고, 자기 머리 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린다.

요한 복음 12장 5절에는 그 값어치가 300 데나리온어치라고 말한다. 건강한 노동자가 안식일을 제외하곤, 거의 1년 동안 일해서 얻을 수 있는 총수입에 해당한다.

'리트란'(litran)은 '한 근'을 말하는 중량의 단위로 대략 340g(12온스)정도이다. 마르코 복음 14장 3절에는 '한 근'이 들어가는 '옥합'으로 나온다.

 

그런데 마태오나 마르코 복음은 향유를 머리에 부은 것처럼 묘사하고 (마태26,7; 마르코14,3), 요한 복음은 향유를 발에 부은 것으로 묘사한다. 왜 그럴까?

마리아는 당시 귀한 손님에게 존경을 표하는 관습따라 기름을 머리에 부었다.그런데 이 기름은 양이 적지 않아 몸을 타고 내려와 두 발까지 적셨다. 

이것은 아마도 마태오나 마르코 복음에서 맨 처음의 기름을 머리에 부은 동작이 시작되는 상황을 묘사하고, 요한 복음에서는 기름을 부어 발에 떨어진 결과를 묘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요한 복음사가가 언급한 발은 당시 사람들에게 신체 부위 가운데 발이 가장 천시된 것과도 관련된다. 

 

요한 복음사가는 값비싼 향유와 발을 대비시킴으로 마리아의 헌신을 높이 평가한다.

유대 사회에서 여자가 머리를 풀어 헤치는 것이 수치로 여겨졌던 당시에, 마리아는 이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기 시작했다.

 희랍어의 'ekmasso'(엑맛소)는 '씻다'(wash)의 의미가 아니라 '닦아내거나 문지르는 것'(wipe)을 나타낸다. 

 

마치 미용사나 우리 자신이 화장품을 얼굴에 골고루 성의를 다해 문질러 주듯이,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에 부은 향유를 골고루 문질러 드린 것이다. 

예수님을 향한 그녀의 뜨거운 마음과 넘치는 사랑을 주체하지 못하고 취한 아름다운 행동이었다.

열 두 사도의 당가를 맡고 있었으나 돈도둑이었던 유다 이스카리옷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요한 12,6),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 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요한12,5)하고 가증스런 발언을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사랑으로 한 행위에 쓰여진 기름이 당신 자신의 장례(죽음)날을 위하여 준비되어 온 기름임을 밝히신다(요한12,7). 

주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 그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가장 값진 것을 주님께 드린다. 그래서 향유의 냄새가 집안 가득 퍼지게 된다.

 

'이 여자를 그냥 놔 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7)

 

요한 복음 12장 7절의 앞에 나오는 동사 '그냥 놔 두어라'에 해당하는 '아페스' (aphes; let alone)는 그 원형 '아피에미'(aphiemi; 용납하다, 허락하다)의 명령형이다. 

그러나 뒤에 나오는 동사인 '간직하게 하여라'에 해당하는 '테레세'(terese; she has kept)는 그 원형이 '테레오'(tereo; 지키다, 간직하다)인데, 여기서는 가정법의 구조로서 '~하도록'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니까 명령형이 아니고 가정법 문장으로서 '그녀를 버려 두어라, 나의 장례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할 수 있도록'으로 번역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번역은 이미 향유가 든 옥합을 깨트려 그것을 예수님께 부음으로써 다 소비해 버렸다는 문맥과는 맞지 않기 때문에 다소 의역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그래서 알렉산드리아 사본에서는 이 구절의 '간직하게 하여라'에 해당하는 '테레세'(terese)동사에 대해서, 가정법을 인도하는 접속사 '히나'(hina; ~하도록)을 생략하고, 이 '테레세'동사 대신에 3인칭 단수 직설법 완료형'테테레켄'(tetereken)으로 썼다. 

이 완료형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간직하여 왔다는 의미를 선명하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영어로 하면, 'Leave her alone; for the day of my burial she has kept this'이고,  번역하면, '그녀를 내버려 두어라. 그녀는 나의 장례 날을 대비하여 이것을 간직하여 왔다.'이다. 

 

당시 마리아는 존경하는 분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지금까지 간직하여 온 값비싼 향유를 아낌없이 예수님께 부었다. 

하지만 천주성(神性)을 가지신 예수님께서는 이런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마리아로 하여금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당신의 장례를 예비하는 큰 일을 하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평소 돈 도둑이었던 유다가 '가난한 자' 운운하며 그것이 아깝다고 이야기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요한 12,8)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가난한 자' 해당하는 희랍어 단어는 '톤 프토콘'(ton ptochon)인데, 상대적으로 가난한 자들이 아니라 끼니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극빈자들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곧 이 세상을 떠나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항상 그들과 함께 있는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 보다 당신 자신의 죽음을 예비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평소 강조하신 가난한 자에 대한 우선적 관심에 반(反)하는 말씀이 아니다. 

그 시기에 무엇이 더 본질적으로 우선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며, 열두 사도단의 당가(살림, 재정)를 맡아 돈을 빼 돌리기 위해 가난한 자의 구제를 명분으로 내세우는 유다의 사악한 마음의 심중을 찌르는 말씀인 것이다.

 

지금 이 시대 빈부의 양극화를 보면서 특히 재벌들의 회개가 많이 필요한 시기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리고 각계 각층의 지도자들이 자신은 조금도 불편함이 없는 하이 클래스로 살고 있으면서도  입으로는 '서민 운운, 비정규직 운운, 절대 빈곤 퇴치 운운'하는 것을 본다. 

사랑도, 나눔도, 자선도 자기 밥통 안에서 말보다 행함으로 먼저 나와야 된다. 

 

예수님께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자와 당신을 동일시하시며, 애덕 실천의 여부가 최후 심판의 척도가 된다는 것을 마태오 복음 25장에서 계시하신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가난한 자도, 부자도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 인간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우리 존재와 생명의 근본이며 목적이신 주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제외되어 있으면 안된다.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상의 죽음을 통한 구속의 효력이 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야 한다. 예수님의 보배롭고 거룩한 피가 가난한 자도 부자도 영혼의 때를 씻어내지 못한다면, 현세적 재화의 나눔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화폐로 환산될 수 있는 외적, 물질적 재화가 그 사람의 영혼을 구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소위 우리의 나눔이라는 것도 언제가는 없어지고 말 이 세상과 현세만을 위한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20250119일 일요일

[연중 제2주일] (김동희 모세 신부)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기적으로 알려진 카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입니다.

이 기적의 시작점은 성모님이십니다. 먼저, 성모님께서는 혼인 잔칫집의 곤란함을 재빨리 알아차리셨습니다.

성모님께서 그 잔치에 즐기는 이로 계셨는지 아니면 일손을 보태어 돕고 계셨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뒤에 일꾼들을 부리시는 그분의 솜씨로 보아 잔치 준비에 큰 도움을 주고 계셨겠다고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어서 성모님께서는 그 집의 곤란한 사정을 아들 예수님께 신속히 알리십니다.

성모님의 역할은 중재자이십니다.

곤란한 이의 사정을 아들 예수님께 부지런히 전달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호히 거절하십니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

그러나 신뢰의 어머니 마리아께서는 실망하시지 않고 일꾼들에게 이르십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2,5).

예수님의 뜻을 따르시면서도, 예수님께만 신뢰와 희망을 두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당신의 때가 오지 않았음을 밝히시며 거절하시고도, 어머니의 의탁과 간절한 희망을 보시고는 그 때를 앞당기시어 당신의 계획을 바꾸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사랑에 대하여 가르치시면서 자주 말씀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위하여 시간을 내는 것이며, 필요하다면 그를 위하여 자신의 계획을 내려놓는 것이라는 점입니다(모든 형제들, 63.101항 참조).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은 당신의 계획을 내려놓으시고 응답하심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사랑으로 우리에게 오신 구세주의 표징입니다.

우리도 주님과 이웃에게 시간을 내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꼭 필요하다면 자신의 계획을 내려놓을 수 있는 관대한 마음, 열린 마음, 흔쾌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김동희 모세 신부)

 


 

 

 

2025년 1월 19일 [연중 제2주일]

 

말씀을 받아 공부(工夫)하는 이들은 피가 물이 되어 영원한 안식(安息)을 누리게 됨을 안다

 

1독서(이사62,1-7)

1ㄱ 시온 때문에 나는 잠잠히 있을 수가 없고 예루살렘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 땅의 존재들, 그들 신앙의 삶을 걱정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이다.

 

1그의 의로움이 빛처럼 드러나고 그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를 때까지.

= 땅의 존재들은 자신들을 위한 하늘의 대속, 그 하늘의 의로움을 거저 받아 구원받는다. 그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이다. 창조 이전 구원자(그리스도)를 예비하셨던 그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 계약이다.(에페1,4)

 

그러면 민족들이 너의 의로움을임금들이 너의 영광을 보리라너는 주님께서 친히 지어 주실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리라.

= 새 예루살렘, 새로운 피조물, 곧 하늘로 땅이 하늘이 되는 것. 흙인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너는 주님의 손에 들려 있는 화려한 면류관이 되고 너의 하느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이 되리라.

= 그리스도로 되는 것이다.

 

4ㄱ 다시는 네가 소박맞은 여인이라다시는 네 땅이 버림받은 여인이라 일컬어지지 않으리라.

= 여인(땅)이 소박(버림) 받았다는 것은 남자가 없다는 것이다. 곧 땅의 예루살렘이 율법에 머물러 남자(씨-말씀), 곧 진리(그리스도-남자)를 빼앗겼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를 주어 회복 시키시겠다는 구원의 말씀이다.

 

4오히려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여인이라너의 땅은 혼인한 여인이라 불리리니 주님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 하시고 네 땅을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로.....)

 

(갈라3,27) 27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정녕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리라. 6ㄱ 예루살렘아너의 성벽 위에 내가 *파수꾼들을 세웠다그들은 낮이고 밤이고 잠시도 잠잠하지 않으리라.

= 파수꾼? 밤낮으로 쉬지 않고 늘 깨어 지키시며, 기도하시며, 이끄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약속, 진리로 보내주신 보호자 성령이시다.

 

6주님의 기억을 일깨우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마라. 7 그분(성령)께서 예루살렘을 일으켜 세우시어 세상에서 칭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너희는 그분(성령)을 쉬시게 하지 마라.

= 땅 예루살렘을 하늘 예루살렘으로~곧 땅(흙)인 피조물인 우리가 하늘의 존재가 될 때까지 성령께서 일하시게 하라는 말씀이다.(요한14,26 16,15 로마8,6 에페1,14 참조)

 

(묵시2,7.11) “7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승리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하느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해 주겠다. 11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승리하는 사람은 두 번째 죽음의 화를 입지 않을 것이다.” (그 외 묵시2,17.29 3,6.13 참조)

 

(묵시3,22) 22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 우리가 쉬지 말고 성령을 청(請)하고, 구(求)하면, 성령(聖靈)께서 우리의 생명, 구원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신다는 말씀이다. (루가11,9-13참조)

 

복음(요한2,1-11)

1ㄱ 사흘째 되는 날,

= 요한복음 1장부터 보면 일곱째 날이다. 곧 7(안식)에 관한 말씀을 하시겠다는 것이다.

 

1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 말씀을 잉태하여 아들을 낳은 마리아다. 곧 아기가 짐승(죄인)들의 집에, 짐승의 구유(먹이통)에 뉘여 졌고, 그것이 죄인들, 쓴물들의 양식(생명)으로 오신 구원자의 표징이었다.(루가2,11-12)

오늘 마리아(쓴물), 곧 마리아들의 안식을 위한 혼인잔치라는 것을 말씀하고 싶으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고 강조한 것이다.

 

예수님(표징)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 독서에서도 확인했듯이 ‘여자(땅)가 남자(하늘)와 한 몸’일 때 안식을 누린다. 그것이 하늘나라의 혼인잔치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값으로 죄인들을 구하신 뒤 이루어지는 혼인잔치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4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血)를 뜻한다. 그래서 아직 피를 흘리실 때가 아니라고 하신 것이다.

 

*십자가의 대속, 그 죽음의 때에~

(요한19,34)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6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 돌로 된 물독(항아리) 여섯 개- 율법의 돌이다. 곧 죽음의 법인 율법(제사와 윤리)으로 깨끗해 졌다고 고집하는 유대 신앙의 거짓 됨, 헛됨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 율법의 돌 항아리 6에 예수님의 말씀인 물(1)이 들어가 6+1=7 안식이 되는 것임을 보여주신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9ㄱ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포도주는 물이라는 것이다. 곧 피는 물이라는 것이다. 피가 물이 되어 생명수가 된다는 것이다.

피에 머무르면, 곧 피를 마시면 죽는다. 사람은 물을 마셔야 산다. 그래서 이집트(세상)의 첫 재앙으로 물이 피로 변해, 그 피로 많은 피조물들이 죽었던 것이다.(탈출7,20 - 필히 보시라) 

곧 세상과 함께하는 율법신앙은 죽음이라는 것이다.

피의 제사가 물의 잔치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시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피와 물이 함께 내렸는데 피를 먼저, 물을 나중에 소개한 것이다.

 

9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 10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도 몰랐지만, 물을 퍼간 일꾼들, 곧 말씀을 받아 공부하는 이들은 피가 물이 되어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됨을 안다는 것이다.

 

(요한4,14)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11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 죄인(짐승)들의 먹이, 곧 죄인들의 생명수, 양식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흘리실 피. 그 구원의 말씀, 물의 표징으로 대속, 그 사랑의 빛인 영광 드러내셨음을 믿는가? 혹 거꾸로 물이 포도주로 변한 그 죽음의 기적으로 믿는 것은 아닌지.....

또한 성모님께 청하면 때가 되지도 않았는데 기도를 들어 주신다는, 그 헛된 망상의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파수꾼이신 보호자 성령님!

오늘도 성경을 공부하면 할수록 저희들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낍니다다만 예수님을 우리 마리아(쓴물)들의 속죄제물로 내 주신 하느님께파수꾼으로 모든 말씀을 깨닫고 믿도록 늘 일하시는 성령님께 감사찬미영광을 드리옵니다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25년 1월 19일 연중 제2주일 

 

그분이 말씀하시는 대로 해 보세요

 

‘싫어. 내 마음대로 할 거야!’ 반항기 넘치던 시절, 어른들을 향해, 세상을 향해 한두 번씩은 품어 보았을 마음의소리일 겁니다. 혹은 육성으로 상대에게 날아가 흔적을 남겼을 수도 있겠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너 사춘기야?’라는 상대의 반응을 여전히 접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일상의 소소한 일에서 부터 사회적 규범과 가치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자유와 판단이 중요한 원리로 작용하는 시대입니다.

자율적 존재로서의 존중이 요구되고, 자율성이 판단 기준의 첫 자리를 차지하는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나의 의사에 거스르는 요청과 규정에 ‘왜?’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외부 압박에 대한 거부감은 그렇게 거침없는 반항기에서 비롯될 뿐만 아니라 수동성에 대한 시대적 학습의 누적이기도 합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시대의 이해와 흐름을 역행하는 언사입니다. 그런데 시대를 거슬러 누군가 이야기하는 대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느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시간을 함께 살아가면서도 시대에 거스르는 의미를 살아가려는 사람입니다. 

시대의 요구보다 하느님 말씀을 첫 자리에 두려는 사람입니다. 시대에 뒤처지고 바보같이 보이는 수동적 삶을 살아가려는 것은 그것이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혼인 잔치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어머니가 일꾼들에게 건네신 조언을 요한복음사가가 전해 줍니다. 

그 조언에 따라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지향에 따라 움직여 보았습니다. 예수님 뜻에 일치하여 움직였습니다.

그 움직임이 어느 순간 기적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분의 뜻과 하나가 되었더니,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었습니다.

 성모님의 조언을 간직한 사람들이 그분의 말씀과 지향에 따라 마음과 몸을 움직여 변화를 일구어냈습니다. 그렇게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서 일하는 이들은 주님의 뜻과 일치함으로써 변화됩니다. 그렇게 주님과의 일치에서 변화가 시작됩니다.

내 생각, 이해, 고집에서 벗어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 뜻을 헤아려 보는 순간부터 변화는 시작됩니다.

잔칫상의 일꾼들에게 건네주었던 성모님의 조언대로 우리는 하느님 말씀을 따라 살아갑니다. 아니, 살아가려 애씁니다. 

그렇게 하느님 말씀과 일치하는 삶을 살아가려 애쓰는 그리스도인은 이미 변화의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상의 자그마한 변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이미’ 하느님과의 일치를 ‘여기서’ 시작한 복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말씀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복된 사람들입니다. 주님 말씀과 일치하여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김한수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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