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4주일] 참 행복 (루카1,39-45)

2024. 12. 27. 오후 3:4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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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2일 주일

 

[대림 제4주일] 참 행복 (루카1,39-45)

 

제1독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미카 5,1-4ㄱ)

1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 그러므로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주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리라. 그 뒤에 그의 형제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리라.

3 그는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주 그의 하느님 이름의 위엄에 힘입어 목자로 나서리라. 그러면 그들은 안전하게 살리니 이제 그가 땅끝까지 위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4 그리고 그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

 

화답송 시편 80(79),2ㄱㄷㄹ과 3ㄴㄷ.15-16.18-19(◎ 4)

◎ 하느님저희를 다시 일으켜 주소서당신 얼굴을 비추소서저희가 구원되리이다.

○ 이스라엘의 목자시여, 귀를 기울이소서.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분, 광채와 함께 나타나소서. 당신 권능을 떨치시어, 저희를 도우러 오소서. ◎

○ 만군의 하느님, 어서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살피시고 이 포도나무를 찾아오소서. 당신 오른손이 심으신 나뭇가지를, 당신 위해 키우신 아들을 찾아오소서. ◎

○ 당신 오른쪽에 있는 사람에게, 당신 위해 키우신 인간의 아들에게 손을 얹으소서. 저희는 당신을 떠나지 않으오리다. 저희를 살려 주소서. 당신 이름을 부르오리다. ◎

 

제2독서 <보십시오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히브10,5-10)

5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6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8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복음<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루카1,39-45)

39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대림 제4주일 제1독서 (미카예언서 5,1-4ㄱ)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 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

 

본절은 종말에 한 위대한 왕이신 메시아의 탄생과 그가 행하실 구원 사업에 대한 예언이다. 이를 시작하는 본문에는 그가 태어날 장소로 베들레헴이 언급된다.

여기서는 베들레헴의 연약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메시아가 오실 장소가 되는 그 땅의 영광스런 미래를 보다 강조하여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한다.

 

그런데 원문은 '너'에 해당하는 '웨앗타'(weathah)가 가장 먼저 나온다. 이것은 직역하면, '그러나 너는'(But you)이 된다. 여기서 '그러나' 해당하는 접속사 '와우'(wau)는 앞선 내용과 5장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원문을 감안하면,앞선 4장의 마지막 구절은 이스라엘의 왕 혹은 오실 메시아가 모욕을 당할 것이란 내용이며, 본절은 메시아의 위대하심과 그 근본의 영원성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이 둘은 모두 메시아에 관한 내용을 언급하지만, 4장 14절은 메시아의 구원 사업 말기에 당할 모욕에 관한 것이고, 5장 1절은 메시아의 기원 및 탄생에 관한 대조적 내용이므로 '그러나' 라는 접속사로 본절을 시작하는 것이다.

 

또한 이 접속사에 이어지는 단어는 인칭 대명사이다. 이 인칭 대명사 다음에 이어지는 베들레헴과 에프라타라는 두 고유 명사가 동일 대상을 가리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사용된 것은, 그만큼 가리키는 대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구체적인 대상을 분명하게 언급하는 고유 명사보다 그 대상이 누구인지 불분명한 인칭 대명사를 먼저 사용한 것은 예외적 어순이다. 이렇게 한 것은 독자로 하여금 여기서 가리키는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해 관심을 증폭시키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이렇게 강조된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서쪽 8km 지점에 위치한 유다 산골의 마을이다. '베들레헴' 즉 히브리어로 '베트 레헴'(beth lehem)은 '빵의 집' 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그 땅의 토지가 비옥하여 각종 과일들이 무성하게 자라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토양 조건과 관련된 이름으로 풀이된다.

 

베들레헴은 지질학적으로만 아니라 신앙적인 차원에서나 정치,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성읍으로 여겨졌다.

구약 성경에서 선민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 위해 이주하는 도중에 그의 아내 라헬이 벤야민을 출산하고 죽은 장소로 처음 공개된다(창세35,19).

 

이곳은 유다의 자손 페레츠 가문이 살았으며(1역대4,4), 구약 성경의 여덟 번째 정경인 룻기에서 다윗의 증조부 보아즈가 살던 곳으로(룻기2,4), 구약의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며 메시아를 예표하는 왕으로 일컬어지는 다윗의 고향으로도 소개된다(1사무16,1;17,12).

 

그런데 본문에서는 베들레헴이라는 지명과 함께 에프라타라는 지명이 같이 열거된다. 이 두 지명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명이 있다.

 

먼저 베들레헴 작은 성읍 언급한 것이고, 에프라타 베들레헴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그러나 창세기에서 야곱이 유언중에 베들레헴을 에프라타와 동일한 장소로 정확히 동격으로 언급하는 것을 보면(창세48,7) 이 견해는 받아 들이기가 힘들다.

 

그 다음 베들레헴은 지정학적 지명이라고 한다면, 에프라타 사회학적 지명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실제로 에프라타의 이름은 칼렙의 두번째 아내의 이름이고(1역대2,19) 칼렙의 자손 중의 한 사람의 이름이기도 하다(1역대2,52).  따라서 베들레헴 지역을 이들의 이름을 반영하여 칼렙 에프라타라고 부르기도 한다(1역대2,24).

 

하지만 에프라타를 반드시 이런 사회학적 의미를 갖는 지명으로 보아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베들레헴이 '빵의 집' 이라는 풍성함의 의미를 갖는 지명인 것처럼, '에프라타'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프라타'(ephratha)  '열매를 맺는' 이라는 풍요로움을 나타내는 지명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에프라타를 베들레헴의 옛 이름으로 보는 견해이다.

 

한편 이 두 지명에 대하여 잘 어울리지 않게 보이는 '보잘것없지만' 이라는 서술어가 사용되었다. 이에 해당하는 '차아르'(tsair)는 '둘째의','작은'(창세19,38),'미천한'(시편119,27) 이란 의미이다.

이 단어는 후반절의 '아득한 시절'(영원) 이라는 의미의 '올람'(olam)이나 '옛날'(태초)이라는 의미의 '케렘'(qerem)이라는 단어와 대조를 이룬다.

 

다시 말해서 본절은 풍요로움과 미천함이라는 두 이미지가 대조를 이루고 또한 영원함과 보잘것 없음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대조는 몇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이스라엘이 죄와 불순명으로 인해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나, 이후 베들레헴에서 나신 메시아에 의해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메시아의 출신지는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장소이지만, 그가 다스릴 곳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전 우주적 장소가 될 것임을 나타내는 곳으로도 볼 수 있다.

셋째, 그리스도께서는 지극히 낮은 곳으로 육화하시지만, 궁극적으로 그의 구원 사업과 승리로 인해 영원히 영광을 받으실 것임을 나타낸 것으로 보는 것이다.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 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 위해 오시는 메시아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여기서 '다스릴 이'에 해당하는 '모셸'(moshel)이 하느님을 주어로 사용될 경우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의미가 된다(창세1,18).

 

그러나 이 단어는 하느님에 대해서보다 오실 메시아에 대해 더 많이 사용되었는데 자신의 어깨에 왕권이 놓인 분으로(이사9,5), 정의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으로(2사무23,3), 이스라엘을 다스릴 통치자(예레30,21) 등으로 묘사하는 데에 사용된다.

 

한편 오실 메시아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그 분이 누구로부터 올 것인지를 명시적으로 밝힌다.

여기서 '너에게서' 에 해당하는 '밈메카'(mimmeka)는 '분리','이탈','기원' 등을 나타낼때 사용되는 전치사 '민'(min)과 2인칭 단수 접미어가 부착된 것으로,'너로부터' 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너'는 베들레헴을 가리킨다.

 

즉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너에게서 나올 것이라는 표현은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복음서의 진술을 통해 확인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심으로 성취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나를 위하여' 로 번역된 '리'(ly) '~에게' 혹은 '~을 위하여' 라는 의미를 갖는 전치사 '레'(le)에 일인칭 단수 접미어가 결합된 형태이다. 이 경우 '나'는 본절의 화자이며 메시아를 보내신 파견자이신 하느님이 된다.

 

그렇다면, 본문은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출생할 것인데, 그분께서 세상에 오시는 목적이 하느님을 위해서 즉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임을 강조하는 예언이 된다.

 

또한 본문의 '나오리라' 는 표현은 메시아의 출생 혹은 세상에 오실 때와 관련된 본절의 문맥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해당하는 '예체'(yetse)의 원형 '야차'(yatsa)는 밖으로 나간다는 장소적 이동을 의미하는 단어이지만, 생물의 번식이나(창세1,24), 사람의 출생 표현할 때에도 사용되는 단어이다(창세38,28.29). 여기서는 '탄생하다' 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앞절에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오실 메시아 탄생과 관련하여 베들레헴이라는 장소적 배경을 강조하였지만, 본문에서는 오실 메시아가 탄생 이전 태초부터 존재하셨다는 시간적 배경을 강조한다는 면에서 서로 대구를 이룬다.

 

또한 앞절은 메시아의 인간 세상에서의 강생이라는 제한된 현현에 대하여 국한하여 묘사한 것이라면, 본문은 메시아의 우주적 기원에 대한 설명이라는 보다 더 큰 존재 규명의 의미를 담고 있다.

 

 본절이 그리는 메시아는 한계를 갖는 인간이면서 한계가 없는 권능한 신적 존재이기도 하며, 또한 인간 세계의 시간에 의해 제한을 받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모든 시간 개념을 뛰어넘는 영원한 존재임을 나타낸 것이다.

 

오늘 우리가 메시야 탄생에 관한 비밀을 예언한 미가서를 묵상하는 것은 영원으로부터 이 세상을 구원하고자 메시야를 보낼 하느님의 계획이 다윗의 가문안에서 구체적으로 성모님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대림 제4주일 제2독서 (히브10,5-10)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5~7) 

 

 히브리서 10장 5~7절까지는 시편 40장 7~9절을 인용한 것이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로 번역된 '튀시안 카이 프로스포란 우크 에텔레사스'(thysian kai prosphoran uk ethellesas; sacrifice and offering you did not desire)에서 서술어 '에텔레사스'(ethellesas; you desired)라는 2인칭 단수 부정(不定) 과거에 '우크'(uk; not)가 붙었다.

 

구약 성경에는 본문과 유사한 표현들이 있다. 호세아 예언자의 입을 빌어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호세6,6)라고 말씀하셨다. 

 

사무엘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임의로 제사를 드린 사울 왕에게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1사무15,20) 라고 지적하였다. 

 

제사 제도를 제정하고 허락하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정 원하시는 것은 제물이 아니었다. 그 제사 행위를 통해 당신 백성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범죄하지 않는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이었다. 

 

무수한 제사를 드리면서도 죄에서 떠나지 않았던 이스라엘에게 하느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입을 통해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는 물렸다. 황소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나는 싫다. 너희가 나의 얼굴을 보러 올 때 내 뜰을 짓밟으라고 누가 너희에게 시키더냐?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초하룻날과 안식일과 축제 소집 불의에 찬 축제 모임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 (이사1,11~13)라는 충격적인 책망을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은 제사 자체를 목적으로 착각하고 죄에서 떠나지 않으면서 계속해서 제사드리는 데에만 전념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히브리서 서간의 수신자들 역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의 믿음을 버리고, 구약의 제사 제도로 회귀하려는 유혹에 직면해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라고 번역된 '소마 데 카테르티소 모이'(soma de katertiso moi; but a body you prepared for me)는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과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은 '오즈나임 카리타 리'(oznaim karitha li)로 표기되어 있고, 새 성경 시편 40장 7절에는 '오히려 저의 귀를 열어 주셨습니다'로 번역되어 있다. 

 

그런데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의 '귀를 열어 주셨습니다'라는 표현은 본래 '순종하도록 했다'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의미는 히브리인들의 관습에서 나왔다. 즉 유대인들은 종을 부릴 때 6년 동안만 일하게 하고, 일곱째 해에는 자유로이 놓아주어야 했다(신명15,12). 그러나 종이 주인을 평생토록 떠나지 않겠다는 자유의지를 밝히게 되면, 주인은 송곳을 가져다가 그의 귀를 문에 대고 뚫어 평생 종이 되게 할 수 있었다(신명15,16.17). 

 

따라서 종이 자발적으로 자기 귀를 뚫도록 주인에게 맡기는 것은 그가 평생 기쁨으로 주인의 뜻을 받들어 섬기겠다는 표시였다. 이런 측면에서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은 '귀를 열어 주셨습니다' (뚫으셨습니다)는 표현을 쓴 것이다. 

 

그 다음으로 히브리서 저자가 인용한 70인역(LXX)의 경우를 살펴보면,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라는 표현이 '주님의 뜻을 기꺼이 복종하겠다'라는 의미를 나타내며, 이런 측면에서 이 말이 '귀를 열어 주셨다'라는 표현과 같다는 견해를 가진다. 

 

이러한 뉘앙스를 살려 본문을 설명하면, '내가 주님의 뜻을 기꺼이 따르고 순종하도록 주님께서 그 수단으로써 한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가 될 것이다. 

 

한편, '마련해 주셨습니다'에 해당하는 '카테르티소'(katertiso)는 2인칭 단수 동사로서 그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하느님'이시다.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뜻을 순종하여 속죄의 제물을 드리도록 새 계약의 제물, 곧 '몸'을 준비하신 분은 구속 사업의 경륜을 주관하시는 성부 하느님이신 것이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번제물'에 해당하는 '홀로카우토마타'(hollokautomata)는 '전부'를 뜻하는 '홀로스'(holls)와 '불사름'을 뜻하는 '카우토스'(kautos)의 합성어인 '홀로카우토마'(hollokautoma)의 복수형으로서 '모두 태워 드리는 번제물'을 의미한다. 이 제사에 대한 규정은 레위기 1장 8절, 9절, 12절, 13절 등에 잘 나와 있다. 

 

또한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로 번역된 '우크 유도케사스'(uk eudokesas; you were not pleased)는 '만족하지 아니하신다' 또는 '동의하지 아니하신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구약의 제사 제도에 대해 나타내시는 반응이다. 구약의 제사는 모두 동물을 제물삼아 드린 제사였다. 이 제사들로는 인간의 죄를 제거할 수 없었다. 종교 혹은 예배의 본질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께 나아가게 하는 것인데, 구약의 제사들은 한 사람도 하느님께 인도하지 못했던 것이다(히브10,1). 

 

사실 구약의 제사 제도를 제정하신 분은 하느님이신데, 바로 그 하느님께서 제사 제도를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제사를 미워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구약 제사로서는 하느님을 온전히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제사의 한계성을 밝히는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하느님을 완전하게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구약 제사와 다른 그 무엇이 요구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그 구속 성혈의 공로를 믿는 믿음이다. 이것만이 완전한 구원을 가능하게 한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백성들에게 엄중한 죄의 결과를 경계하며 죄를 짓지 않도록 하려는 측면에서, 그리고 장차 올 새 계약(신약)에 대한 일시적인 예표를 삼고자 하는 측면에서 제사 제도를 명한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구약의 제사 자체보다는 그 이면에 담긴 순종을 원하셨고 (1사무15,22.23; 시편51,18.19), 백성들이 그 제사 제도를 통해 죄에서 떠나는 것(이사1,11~17; 호세6,6)과 장차 올 온전한 제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두루마리에' 

 

'두루마리'로 번역된 '엔 케팔리디 비블리우'(en kephallidi bibliu; in the volume of the book; in the scroll; the roll of book)는 '두루마리 책'을 가리킨다. 본절에 언급된 두루마리 책은 임금이 지켜야 할 규정을 기록한 신명기 17장 14~20절, 또는 순종에 대해 기록한 신명기 28~30장을 지칭한다는 견해들이 있다.

 

이 견해를 포함하여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이 모든 성경의 중심이라고 말씀하신 점에 비추어 볼때(요한5,39), 이것은 구약 성경 전체를 가리킨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는다. 사실 몇몇 성경 구절들만이 아니라 구약 성경 전체는 그리스도께로 집중되어 있다.  

 

성경의 어떤 책, 어떤 장이든지 그것을 해석할 때에 그리스도를 배제하고서는 구원사를 전개해 가시는 하느님의 뜻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가 없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내용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죽기까지 복종하셨다(필리2,8).

 

따라서 '이루러'로 번역된 '포이에사이'(poiesai; to do)는 '포이에오'(poieo)의 부정사이다. '이루다','행하다', '만들다'를 뜻하는 '포이에오'(poieo) 동사는 모든 활동을 포괄하여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용어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측면에서 하느님의 '뜻'에 해당하는 '텔레마' (thellema; will)을 이루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그분께서 아버지와 갖는 관계의 일면을 본다. 그분께서는 아버지의 뜻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리고 언제든지 기꺼이 순종하고자 하셨다. 특히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니 동산에서 번민에 싸여 기도하신 내용 가운데도 그분의 이러한 마음이 잘 드러난다(마태26,39).

 

 

 

 

 

 [대림 제4주일사제의 묵상 (서철 바오로 신부)

 

천사는 아기를 낳지 못하는 친척 엘리사벳의 잉태 이야기를 통하여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강조하고 동정녀의 몸으로 잉태한 마리아를 격려합니다.

이에 마리아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응답합니다(루카 1,26-38 참조).

그 응답으로 마리아가 날마다 겪어야 하는 죽음의 위험과 오해의 현실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리아는 며칠 밤낮을 걸어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밤길을 걷는 동안은 두려움의 시간이기도 하였을 것이고,

낮에는 빛이 있어 설렘의 시간이 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한 두려움과 설렘,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 두 사람의 만남에 성령께서 함께하셨습니다.

엘리사벳이 말합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마리아가 응답합니다.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1,48).

 

혼자 견디는 시간이 고독할수록 만나는 시간의 친밀감은 더 커집니다.

어떤 관계에서 풀리지 않는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느님과의 만남을 먼저 가져야 합니다.

 

하느님과 만남은 고요함 속에서 그분의 소리가 내 마음에 울릴 때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오래도록 함께하는 시간은 하느님을 통하여 모든 존재와 내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합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환한 빛이 솟아오릅니다.

 

이제 솟아오른 빛은 다른 빛을 찾아 나서고, 또한 그 빛을 알아봅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태중에 있는 말씀의 빛을 알아보고 그 빛 속에서 기뻐합니다.

말씀의 빛은 언제나 갇혀 있지 않습니다.

친구에게로, 이웃에게로, 세상으로 노래처럼 퍼져 나갑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그토록 기뻐하며 다가올 다른 세상을 노래합니다.

말씀의 길은 내 안에서 세상 밖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때로 슬픔도 힘이 됩니다.>

 

언뜻 생각하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 같지만 곰곰이 되짚어보면 수긍이 되는 말이 있습니다. 고통이 때로 인생의 약이 될 수 있다는 말, 슬픔이 때로 힘이 될 수 있다는 말...

 

아쉽지만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모든 것으로부터의 애착을 끊어버리는 순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대 자유’의 기쁨을 만끽할 가능성도 있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출가(出家)를 감행합니다. 사서 고생을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걸어오던 탄탄대로를 벗어나서 일부러 가파른 언덕길을 선택합니다. 안락함과 따스함을 포기하고 신산(辛酸)하고 고독한 삶을 선택합니다.

 

때로 훌훌 한번 털어버리면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습니다. 때로 바닥까지 완전히 내려가 보면 얼마나 편안한 느낌이 드는지 모릅니다. 때로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생의 가장 밑바닥에 서보면 그리 나쁜 기분만 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완전히 비운 우리 안에 성령께서는 너무도 쉽게 임하십니다. 편안하게 당신 거처를 마련하십니다. 그때 우리 삶은 다시 한 번 영적으로 수직상승할 좋은 기회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현실적인 눈, 인간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때 참으로 기구한 두 여인의 만남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너무나 이상한 만남입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만남입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만남입니다.

 

한 여인은 노인인데 해산을 앞두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나 이상한 나머지 뒤에서 말들도 많습니다.

 

다른 한 여인은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가졌습니다. 정식으로 혼인도 하기 전에 아기를 가졌습니다. 당시 사회 분위기 안에서 큰 일 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더 웃기는 일은 이런 기막힌 만남인데도 불구하고, 어이없는 만남인데도 불구하고 두 여인의 만남은 기쁨과 감격, 행복에 찬 분위기입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샘솟아 오르는 환희의 기쁨을 억제할 수 없었던 나머지 두 여인은 부둥켜 앉고 노래를 부릅니다.

 

인간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한편의 코미디 같은 장면이지만, 하느님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더할 수 없는 은총의 분위기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육적인 눈으로 바라볼 때 너무나 이상하고, 다른 한편으로 안쓰러운 만남이겠지만 성령의 눈으로 바라보니 더 할 나위 없이 소중한 만남으로 변화되는군요.

 

구세사의 가장 큰 두 주역이 될 두 사람의(예수님과 세례자 요한) 모친들의 만남.

 

요즘은 이제민 신부님께서 쓰신 ‘수동의 영성’을 영적독서로 읽고 있습니다. 참으로 주옥같은 묵상들을 모아놓으셨네요.

 

 “수난은 인생의 완성이며 목표이다. 우리 인생은 수난의 의미를 깨닫고 동참할 때 완성에 이르게 된다. 우리가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믿는 이유도 예수님의 인생 마지막에 전개된 수난사 때문이다. 수난을 당하시는 그분의 얼굴에서 우리가 희망해왔던 것이 이루어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나무가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듯이 내 힘을 죽인 곳, 모욕과 침 뱉음과 폭력을 다 참아 받아들인 곳에서 인생은 꽃을 피우게 된다.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 얼굴은 비록 고생으로 주름이 깊게 패였을지라도 평온하다. 아름답다.”

 

인고의 세월을 잘 견뎌낸 두 나무-엘리사벳와 마리아-는 마침내 선구자였던 세례자 요한과 구세주였던 예수님을 활짝 꽃피워냈습니다.

 

엘리사벳과 마리아는 오랜 의혹과 안타까움의 세월을 끝까지 잘 견뎌내었으며,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에 구세사 안에서 큰 역할을 하신 분으로 길이 기억에 남게 되었습니다.

                                 

 


 

 

2024년 12월 22일 [대림 제4주일]

하느님의 약속을 그냥 붙드세요.

 

오늘은 묵상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까(너무 방대해서설명글을 자세히 쓰지 않았습니다본문과 연결되는 성경 말씀의 장,절만 제시했습니다오늘1,2독서와 복음은 다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찾아보시고 이해가 안 되면 말씀 안에 하느님의 약속을 그냥 붙드세요. 그래도 돼요.

 

입당송(이사 45,8) “하늘아위에서 이슬(-말씀)을 내려라구름아의로움(하늘의 대속)을 뿌려라(우리)은 열려 구원(-말씀)이 피어나게의로움도 함께 *싹트게 하여라나 주님이 이것을 *창조하였다.”

= 십자가(十字架)의 예수 그리스도, 그 복음(福音)이다. 창조 사흗날(3), 씨(후손-말씀-예수)의 희생, 대속의 죽음(창세1,11참조),

 

그 씨(예수)가~

1독서 (미카 5,1-4)

1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빵의 집),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예수)가 너에게서 나오리라(예수)의 뿌리는 옛날로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ㄱ 그러므로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예수)를 낳을(깨달을때까지 주님(야훼)은 그들을 *내버려 두리라.

= 창세3,15 하와, 마리아(쓴물, 빈 땅)들이 씨(말씀)를 구원의 양식(빵-예수)으로 깨달을 때까지 쓴물, 빈땅 본능대로, 죄로 살도록(로마1,24) 내버려 두셨다.

 

2그 뒤에 그의 형제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리라.

= 예수를 낳은(깨달은) 말씀(진리)을 거짓 가르침에게 빼앗기지 않고 지킨 자들,

곧, 구약- 옛 계약(예레11,1-4 율법)> 신약- 새 계약(히브8,6-13 십자가)

 

3ㄱ (예수)는 주님(야훼)의 능력에 힘입어 주 그의 하느님 이름의 위엄에 힘입어 목자로 나서리라.

(공동번역성서) ‘야훼의 힘을 입고 그 하느님 야훼의 드높은 이름으로 목자 노릇을 하리니,’

= 엘리야,(말라기3,23) - 세례자 요한,(요한1,23)- 소리는 예수님의 모형(模型)

 

3그러면 그들은 안전하게 살리니 이제 그가 땅끝까지 위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4 그리고 그 자신(예수)이 평화가 되리라.”

= 미사 때 나누는 ‘평화(平和)’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다.

 

2독서(히브10,5-10)

그리스도(평화)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6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하느님두루마리(성경)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 성경(聖經)은 성령께서, 묵시(黙示)까지 다 완성하셨기에 부족(不足)함이 없다. (더 이상의 예언(預言) 말씀은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 율법(律法)은 믿음과 관련이 없기에(갈라3,12) 구원은 믿음으로(로마3,25), 구원은 주님의 것(요나2,10 묵시7,10)

 

그다음에는 보십시오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두 번째(십자가새 계약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율법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에 따라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 믿음으로 받는다. 구약은 신약에서 다 이루셨기에 더 이상의 예언(預言), 구원(救援)의 말씀이 없다는 것이다.

 

다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福音)~

복음(루카1,39-45)

39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 말씀을 받았을 때처럼(루가1,28)~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루가1,28)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엘리야 -요한가 뛰놀았다엘리사벳(루가1,36 (6)은 성령으로 가득 차

= 육(6+1=7)의 마리아, 곧 안식(7), 그 하나가 부족한(없는) 마리아에게 약속된 성령(聖靈, 루가1,35)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말씀요한1,14도 복되십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45 행복하십니다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무엇을 믿는가?- 천사의 인사말을 믿은 마리아다.

 

공동번역(루가1,28. 30-33.35.37-38)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 가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기뻐하여라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하고 인사하였다. 30 그러자 천사는 다시 '두려워하지 말라마리아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31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주 하느님께서 그에게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시어 33 야곱의 후손을 영원히 다스리는 왕이 되겠고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하고 일러 주었다.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37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 38 이 말을 들은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고 대답하였다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 갔다.

 

☨ 마리아와 엘리사벳을 믿음으로 이끌어 주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가 하느님의 구원 약속, 맹세인 예수(말씀)를 잉태하고 낳게(깨닫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24년 12월 22일 [대림 제4주일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의 첫 문장(루카 1,39)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 무렵 마리아는 일어나 서둘러 산악 지방에 있는 유다의 한 고을로 갔다.’ 태중에 계시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시면서 성모님께서는 지금 있는 자리에서 ‘일어나’ 엘리사벳에게 ‘서둘러’ 가십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다녀간 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믿음으로 순명하셨지만, 오해와 근거 없이 떠도는 이야기들로 힘드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께서는 ‘일어나셨습니다.’ 시선을 아래로, 문제가 있는 쪽으로 향하신 게 아니라, 위로, 하느님께서 계신 쪽으로 향하십니다. 

그리고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생각하신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도움을 주어야 할지 생각하십니다”(프란치스코, 대림 제4주일 삼종 기도, 2021.12.19.). 

출산을 앞둔 엘리사벳을 도우시려고 임신하신 몸으로 약 150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서둘러’ 가십니다.
‘일어나다’, ‘서둘러 가다’. 성모님의 이 행동으로 태중에 있던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고,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행복 선언을 합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신약 성경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진 이 행복 선언은 많은 오해와 어려움 속에 계시던 성모님의 입에서 ‘마니피캇’(마리아의 노래)이라는 하느님을 향한 기쁨의 찬미가가 터져 나오게 합니다(1,46-55 참조).
절망스러운 상황일수록 성모님의 본보기를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때일수록 ‘그 자리에서 일어나’ 오히려 이웃에게 다가가 도움을 주는 신앙인이 됩시다. 

우리는 이때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마태 25,40) 안에 계신 주님을 만나며, 그분께서 마련하신 특별한 은총과 위로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루카 1,39). 아멘. 


(김재덕 베드로 신부)



 

 

  

20241222[대림 제4주일]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루카1,39-45)

39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 성령과 함께하는 이의 반응이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ㄱ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 () 안에 아기들, 곧 구약의 예언자 세례자 요한이 신약의 진리(예수)를 만나 기쁜 것이다.요한-자신이 태어나 선포할~ 세상의 죄를 없애실 하느님의 어린양, 그분을 만나 기쁜 것이다.자신의 짝을 만난 기쁨이다.

 

(마르10,45) 45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마태11,28)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41ㄴ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 두렵고 떨렸던 마리아에게 엘리사벳의 입을 통하여 성령께서 다시 한번 믿음의 확신을 주신다. 마리아가 되어야 한다.

성경말씀, 곧 하느님의 말씀을 내 주님(연인)의 대속, 그분의 목숨으로 받는 구원, 그 진리로 받는다면~ 성령께서 나에게도 은총이 가득한 로마노야 기뻐 하여라 주님께서 함께 하시니 모든 이 중에 복되며 네 안(태중)에 말씀이 또한 복되도다.“ 말씀으로 복된 것이다.~하신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 41절에서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지금 44절은 인사말 *소리가 들리자, 그 소리 하느님의 평화를 비는 인사말 소리다.(마태10,12참조)

소리-파괴하고 다시 세우기 위해 교훈하고 가르친다는 의미라 했다. 그러니까 마리아의 인사말 소리는- 세상의 평화를 위해 사는 이들의 생각과 삶을 부수시고 다시 가르치시어 하늘의 평화를 주시는 그 하느님의 뜻으로 인사했던 것이다. 성령을 받은 태안에 요한이 그 하느님의 뜻을 기뻐한 것이다. (정말 그랬을까?-그런데 관심을 두면 안된다. 성경에서 전하고 싶은 요점을 알아듣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듯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평화, 그 소리를 들었을 때 기뻐 할 줄 아는 것이 신앙이다. 그래서 성령과 함께하는 그리스도인만이 기뻐할 줄 아는 소리, 콜 이다. 또한 그 기쁨은 말씀의 힘이다. 말씀 자체가 기쁜 소식이기 때문이다. 기쁨은 찾아 얻는 것이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진리의 영, 성령이시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 믿음이 복이다. 믿음은 세상을 이긴다. 믿음은 자신을 이긴다. 세상을, 나 자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을 이기지 못한다. 나는 자신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나 내 주님 예수께서 나와 세상을 이기시고 그 승리를 나에게 전가 시켜 주시기 때문이다.

 

(1요한5,3-5) 3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4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1코린15,57)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 믿음이 복이다. 행위의 신앙으로는 생길 수 없는 믿음이다. 본당 활동 등, 행위 신앙을 할 수 없는 요즘이 성경을 진지하게 공부할 때라는 것이다. 내 주님, 연인의 사랑을 받고 믿을 수 있는 때라는 것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내 연인의 기쁨의 소리를 잃지 않게 저희 모두를 의탁하오니 보호 하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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