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5일 일요일(자선 주일)
[대림 제3주일]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 (루카3,10-18)
제1독서<주님께서 너 때문에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시리라.>(스바3,14-18ㄱ)
14 딸 시온아, 환성을 올려라. 이스라엘아, 크게 소리쳐라. 딸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5 주님께서 너에게 내리신 판결을 거두시고 너의 원수들을 쫓아내셨다. 이스라엘 임금 주님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니 다시는 네가 불행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16 그날에 사람들이 예루살렘에게 말하리라. “시온아, 두려워하지 마라. 힘없이 손을 늘어뜨리지 마라.”
17 주 너의 하느님, 승리의 용사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다. 그분께서 너를 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신다. 당신 사랑으로 너를 새롭게 해 주시고 너 때문에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시리라.
18 축제의 날인 양 그렇게 하시리라.
<화답송>이사12,2-3.4ㄴㄷㄹ.5-6(◎6) ◎ 기뻐하며 외쳐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희 가운데 계신 분은 위대하시다.
○ “보라, 내 구원의 하느님. 나는 믿기에 두려워하지 않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굳셈. 나를 구원해 주셨네.” 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
○ 주님을 찬송하여라. 그 이름 높이 불러라. 그분 업적을 민족들에게 알리고, 높으신 그 이름을 선포하여라. ◎
○ 위업을 이루신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이 하신 일 온 세상에 알려라. 시온 사람들아, 기뻐하며 외쳐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희 가운데 계신 분은 위대하시다. ◎
제2독서<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필리4,4-7)
형제 여러분, 4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5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6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7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복음<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루카3,10-18)
군중이 요한에게 10 물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11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12 세리들도 세례를 받으러 와서 그에게, “스승님,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자,
13 요한은 그들에게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 하고 일렀다.
14 군사들도 그에게 “저희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요한은 그들에게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 하고 일렀다.
15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16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17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치우시어, 알곡은 당신의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18 요한은 그 밖에도 여러 가지로 권고하면서 백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대림 제3주일 제1독서(스바3,14~18ㄱ)
주님께서 보호하셨다'는 이름 뜻을 지닌 '스바니야'서의 작중 연대를 1장의 머리글을 보면, 요시야 임금 통치 시절(B.C.640-609년)로 제시한다.
한 세기 이상 고대 근동 전체를 호령하던 아시리아 대제국이 서서히 몰락해 가는 것을 보면서 유다 임금 요시야는 가나안의 바알 숭배와 아시리아의 천체 숭배를 근절하는 종교개혁을 단행한다(2열왕23,4-14).
이런 상황에서 스바니야 예언자는 주님의 권능이 온전히 드러나게 될 주님의 날을 선포한다.
스바니야서는 니네베의 파괴를 주님께서 하늘과 땅의 임금이심을 드러내는 사건으로 계시한다. 스바니야서의 대부분은 요시야 임금의 통치 시절과 부합하지만, 일부 대목은 유배 이후의 상황을 반영한다.
예를들어, 오늘 독서의 예루살렘의 재건을 노래하는 마지막 대목 3장 14-20절은 이 책의 다른 대목보다 적어도 한 세기 이상 늦게 곧 6세기 말에 작성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스바니야서는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부분(1,2-2,3)은 예루살렘의 주민들에게 보내는 경고의 신탁이다. 그들은 야훼 종교와 주변의 다른 다신교를 혼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야훼 하느님의 주권과 권능을 제대로 인정하지도 않고 거기에 존경을 표하지도 않았다.
둘째부분(2,4-15)은 이스라엘 이외의 다른 민족을 거슬러 선포한 신탁이다. 주님의 주권은 사방의 민족뿐만 아니라 그들이 섬기는 모든 신들에게까지도 미친다.
마지막 세째부분(3장)은 다시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관심을 집중한다. 먼저 예루살렘 주민을 대표하는 지도자, 통치자, 예언자, 사제들의 잘못을 고발함으로써 그 곳을 단죄한다(3,1-4). 대신과 판관들은 백성들을 착취하고, 예언자들은 거짓 예언으로 사람들을 속이며, 사제들은 종교 혼합주의로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짓밟는다.
이런 예루살렘의 불의와는 달리, 하느님께서는 날마다 올바른 판결을 내리시는 공정한 분이시다(3,5). 그분은 당신의 도읍인 예루살렘만은 당신을 경외하고 당신의 가르침을 받들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들은 그분의 기대를 저버리고 빗나갔다(3,7). 그래서 그분은 뭇 민족과 더불어 당신의 백성도 없애 버리기로 작정하셨다(3,8-9).
그러나 주님의 뜻을 받드는 적은 수의 겸손한 이들을 살아남게 하심으로써, 그들에게서 당신의 백성을 새롭게 일으키리라고 하신다. 이들이 바로 '남은 자들'이다.
"나는 네 한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니,그들은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리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불의를 저지르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그들 입에서는 사기치는 혀를 보지 못하리라. 정녕 그들은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으며, 풀을 뜯고 몸을 누이리라." (3,12-13)
주님께서 친히 보살피시고 다스리시는 이 남은 자들을 통하여 주님의 도성 시온은 회복되고,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은 온 세상 민족들의 칭송을 받으며, 이름을 떨치게 될 것이다(3,16-20).
"딸 시온아, 환성을 올려라. 이스라엘아, 크게 소리쳐라. 딸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4)
여기서 제시되는 '시온의 딸'과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딸'은 모두 동격이다. '환성을 올려라'와 '크게 소리쳐라'와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란 점층적 표현을 사용하여 그 기쁨을 매우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환성을 올려라'에 해당하는 '란니'(ranni)의 기본형 '라난'(rannan)은 '소리내어 노래하다'는 의미를 가지며, 기쁨에 겨워 크게 소리내어 노래하는 것을 말한다.
'크게 소리쳐라'에 해당하는 '하리우'(hariu)의 기본형 '루아으'(ruah)는 '부르짖다', '외치다', '즐거이 부르다'등으로 번역되는데, 여기서는 부르짖듯 큰소리로 즐거이 노래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란 표현에서 사용된 '즐거워하여라'에 해당하는 '웨알레지'(wealezi)의 원형 '알라즈'(allaz)는 '기뻐 날뛰다','몹시 기뻐하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전쟁의 승리와 같은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인하여 잔치를 열거나 격렬하게 움직이면서 기뻐함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영어로 표현하면 'sing', 'shout out', 'Be glad and rejoice' 라는 점층적 표현을 쓸 수 있겠다.
본절에 사용된 이러한 점층적 표현은 하느님께서 가져다주실 선민의 복락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선민의 이러한 기쁨에 대한 세 단문처럼, 하느님의 기쁨에 대한 세 단문이 3장 17절 하반부에 점층적 표현으로 교차 대구를 이루며 나온다.
"(주 너의 하느님, 승리의 용사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다.) 그분께서 너를 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신다. 당신 사랑으로 너를 새롭게 해주시고, 너 때문에 환성을 올리며 기뻐 하시리라." (17)
'그분께서 너를 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신다','당신 사랑으로 너를 새롭게 해주시고', '너 때문에 환성을 올려 기뻐하시리라'는 사실상 같은 개념으로 삼중적으로 강조해서 표현하고 있다.
이전에 하느님의 분노가 진노의 대상이었던 선민들이 완전히 용서받고 거룩하게 되어, 하느님의 사랑과 기쁨의 대상이 됨을 보여주고 있다.
원문은 '그가 베푸는 그 사랑 안에서 스스로 만족하시고 기뻐하시며, 조용히 그 사랑을 향유하실 것이다.' 라는 뉘앙스를 강하게 드러낸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의 애틋함을 더욱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를 향하신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크시면, 그 사랑에 스스로 빠져서, 만족과 기쁨으로 잠잠히 안식하실 수 있겠는가!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을 이보다 더욱 절실하게 나타내는 표현이 있을 수 있겠는가!
전능하신 용사의 강한 이미지(17절 전반부)가, 그가 구원을 베푸신 그 자녀를 향한 어버이의 사랑으로 놀랍게 승화되고 있는 것이다(17절 후반부).
이러한 선민에 대한 하느님의 그쁨을 묘사하는 표현은,결국 하느님의 선민에 대한 사랑의 깊이를 보여주면서, 한편으로는 장차 선민들이 하느님께로부터 흠없이 거룩하게 성화될 것임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영어로 하면 이런 의미일 것이다.
"He will take great delight in you, he will rest(quiet) you with his love, he will rejoice over you with singing."
그리고 3장 16절 상반부에 선민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종말론적 심판과 구원의 날, 결정적인 '그 날'이 반드시 도래할 것임을 강조하면서, 그 날을 바라보고, 주어진 현실 가운데에서 좌절하지 말고, 하느님께 대한 신앙으로 굳게 설 것을 권면함과 동시에 이를 통해 선민들을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너에게 내리신 판결을 거두시고,너의 원수들을 쫓아내셨다.' (15)
'주님께서 너에게 내리신 판결을 거두시고'란 표현은 주님의 사죄의 은총을 나타낸다. 여기서 '거두시고'로 번역된 '헤씨르'(hesir)는 '제하다','제거하다'란 뜻의 동사 '쑤르'(sur)의 사역형이다.
이스라엘의 구원에 있어서 행하신 하느님의 주권적 역사를 '쑤르'란 동사를 사용하여 다시 한번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들 가운데서 '거만스레 흥겨워하는 자들을 치워 버리리라'(11절) 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을 두렵게 하는 형벌을 제거하기까지 하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그들의 구원을 가로막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완전히 제거하신다. 이러한 능력을 지니신 주님만이 진정하고도 완전한 구원을 이루실 수 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더 나아가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외부적 위협마저 철저히 제거하신다. 즉 이스라엘의 원수를 쫓아내시는 것이다.
여기서 '판결'(형벌)은 주님께서 판결하여 내리시기로 결정하신 심판을 의미하며, '원수'란 심판의 형벌을 수행하기 위해 주님께서 모으셨던, 이방의 여러나라와 민족들(8절)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 심판을 끝마치시고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 대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기 때문에, 더 이상 그들은 필요가 없게 되었다. 오히려 그들은 이 남은 자들에게 위해를 가할 소지가 충분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들을 쫓아내신 것이다.
'힘 없이 손을 늘어뜨리지 마라' (16)
'두려워하지 마라'는 직설적인 표현에 이어,'네 손을 늘어뜨리지 마라'는 간접적인 표현이 사용된다.
'손을 늘어뜨린다'고 하는 것은 절망이나 낙심의 상태를 묘사하는 히브리적 관용구이다(2사무4,1; 이사13,7; 예레6,24).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 그들의 왕으로 계시기 때문에, 결코 두려워할 것도 그리고 낙심하거나 좌절할 일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전달한다.
즉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그들의 왕으로 그들 앞에서 싸우실 것이기 때문에, 결코 어떤 대적과 어떤 전쟁에서도 그들은 패하지 않으며, 어떤 원수도 그들에게 해악을 끼치지 못하니,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 너의 하느님, 승리의 용사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다' (17)
'승리의 용사'에 해당하는 '낍보르'(gibor)는 전투의 문맥에서는 '용사','전사'를 언급하고 있다(여호1,14; 6,2; 판관5,13; 2사무1,19 등).
그러나 이 단어가 하느님께 적용될 경우에는 단순히 '용사'를 언급하는데 그치지 않고, 모든 싸움에서 승리를 가져다 주시는 '전능하신 용사'라는 개념을 내포하게 된다.
즉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전능하신 용사이심이 선포되고 있는 것이다(이사10,21). 그는 이러한 능력으로 그의 백성들을 모든 전투에서 구원하시며 승리로 이끄신다. 따라서 하느님의 백성은 어떤 역경 가운데서도 궁극적으로 안전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다.
'축제의 날인양 그렇게 하시리라. 나는 너에게서 불행을 치워버려, 네가 모욕을 짊어지지 않게 하리라.' (18)
새 성경의 번역이 좀 잘못된 것 같다. 여기서 선민은 '축제(절기)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들'로 묘사된다. 이것은, 이방인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신분의 제약으로 '축제'(절기)때마다
그 '축제'(절기)를 지켜야하는 장소였던 예루살렘에, 사실상 참여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것임을 전제한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그들은 '축제'(절기)로 인하여 항상 근심하는 처지에 놓일 수 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불행'이요,'모욕'으로 표현), 본절에서 하느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자들을 모으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주님의 구원이 선포되고 성취되는 그 날에, 그들은 그들의 거룩한 산 시온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며, 그곳에서 마음껏 주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쁨으로 축제(절기)를 지키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예언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하느님의 회복의 역사로 인해, 그들의 어깨 위에 드리워진 모욕(치욕)의 짐은 벗어지게 될 것이다.
2024년 12월 15일 일요일
[자]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김재덕 베드로 신부)
군중도, 세리들도, 군사들도 모두 세례자 요한에게 똑같이 묻습니다.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루카 3,10)
세례자 요한은 이 물음에 다른 답을 합니다.
군중에게는 이웃에 대한 무관심을 멈추고, 나누라고 합니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3,11).
세리들에게는 돈으로 저지르는 악을 멈추라고 말합니다.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3,13).
군사들에게는 폭력을 멈추고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3,14).
이러한 대답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웃에게 당연하게 저지르던 악행을 멈추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실 시간이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예수님을 맞이하는 준비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습관적으로 저지르며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타협하던 크고 작은 죄악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하느님께 돌아설 수 있고, 우리를 구원하시러 오시는 예수님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기뻐하라.’고 합니다.
“딸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스바 3,14).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필리 4,4).
예수님의 성탄이 다만 해마다 돌아오는 ‘기념일’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러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이 될 수 있도록,
세례자 요한의 권고를 마음에 새기며 성탄을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멘.
(김재덕 베드로 신부)
* 정말로 하느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기쁘십니까?
그 기쁨의 이유를 알고 계신지요? 곰곰이 묵상해 봅시다. -
2024년 12월 5일 [대림 제3주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복음(루카3,1-18)
(오늘 복음의 본문‘10절-18절’을 올바로 깨닫기 위해서 1절부터 묵상해야한다.)
1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제십오년,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 헤로데가 갈릴래아의 영주로, 그의 동생 필리포스가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의 영주로, 리사니아스가 아빌레네의 영주로 있을 때, 2ㄱ 또 한나스와 카야파가 대사제로 있을 때,
= 모두 자신들의 욕망(慾望)인 권력, 권세를 위해 하느님의 뜻을 적대(敵對)하는 자리에 있던 이들이다. 곧 하느님의 말씀, 지혜(智慧)로 죄인들을 구하시려 십자가(十字架)의 속죄 제물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拒否)하며 죽이는데 한 몫을 했던 죄인(罪人)들이다.
온 세상이 그 세상의 권력자(權力者)들과 종교(宗敎) 지도자(指導者)들의 권세(權勢)로 힘들어하던 때에~
2ㄴ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3 그리하여 요한은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4 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의 책에 기록된 그대로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 회개(悔改)의 선포(宣布) 소리다. *소리는 히브리어 ‘콜’로, 콜은 ‘코푸’와 ‘라메드’의 합성어라 했다. 그리고 ‘코프’는 ‘파괴하고 다시 세운다’는 뜻이고 ‘라메드’는 ‘가르치다, 교훈하다.’ 그리고 ‘소리, 콜’에서 파생된 말이 ‘카라, 초청’ 그 ‘카라’에서 파생된 말이 ‘칼레토스’ 곧 ‘파라 칼레토스. 성령(聖靈)’이다. 소리는 하느님의 뜻을 적대(敵對)하는 땅의 힘을 파괴(破壞)하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다시 세우기 위한 것이다.
성령(聖靈)을 청(請)하고 의탁(依託)하여~
5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 하느님의 뜻, 말씀이 구원(救援)의 진리(眞理)임을 믿고, 세상(世上)과 율법(律法)을 위해 살았던 힘겨운 골짜기 같은 삶에, 말씀을 희망(希望)으로 메우고, 교만(驕慢)으로 높아진 산과 언덕을 낮추면~
6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 구원(救援)은 믿음이다.(로마3,25-30참조) 하느님께서 대속(代贖)의 속죄(贖罪) 제물(祭物)로 예수님을 보내셨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약속(約束), 진리로 믿는 이들이 받는 구원이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에게 그 구원의 기쁜 소식, 말씀을 내리신 것이다. ‘소리를 내라’고, 선포하라고, 땅의 것을 파괴(否認)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여 다시 살아나라’고.....
7 세례자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군중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 세례(洗禮) 받을 이들에게 ‘독사의 자식?’ - 땅의 것, 곧 자신의 욕망(慾望)을 위해 받으려 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열성, 의로움을 위해 세례를 종교(宗敎)행위(行爲)로 추가하려 했기 때문이다.
*(갈라6,15) 15 사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8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는 말은 아예 혼잣말로라도 꺼내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
= 합당한 열매, 제사(祭祀)와 윤리(倫理), 그 율법의 행위가 아닌 곧 십자가의 대속, 그 제사로 죄인인 나를 거룩한 의인, 새 사람이 되게 해주신(히브10,12-14) 그 하느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영(靈)과 진리(眞理) 안에서 드리는 예배(禮拜)’의 신앙을 사는 이다.(요한4,25)
(로마11,36. 12,1) 36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1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내가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9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 좋은 나무에 붙어 있어야 좋은 열매(구원, 믿음)를 맺을 수 있다. 곧 내가 죽고, 좋은 예수님의 지체(肢體)가 되는 것이다.
(요한15,5)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 세 종류의 사람이 묻는다. 그 세 사람이 내 안에 전부 있음을 봐야 한다.
10 군중(세례로 믿으려는 이들)이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11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 문자대로 내 것을 나누는 삶은, 구원을 위한 믿음과는 상관(相關)이 없다. 믿음을 위한 말로 알아 들어야한다. 곧 옷 두벌은 구약과 신약을 뜻하며, 구약은 속옷, 신약은 겉옷으로~ 구약을 신약에서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義)의 옷을 주라’는 것이다. 곧 ‘하늘의 용서, 생명을 주는 십자가(十字架)의 복음(福音)을 진리(眞理)로 먹고, 마시고, 입게 하라는 것’이다.
(로마13,14) 14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새 옷으로)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
12 세리(죄인)들도 세례를 받으러 와서 그에게, “스승님,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자, 13 요한은 그들에게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 하고 일렀다.
= 믿음의 목적, 곧 신앙(信仰)의 목적(目的)은 정(定)해져 있다. 구원(救援)이다. 자신의 뜻, 욕망(慾望)을 위해 세상의 것을 요구(要求)하지 말라는 것이다.
(1베드1,9) 9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6,7.33)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 영혼의 구원을 위한 것만 요구하라는 것이다.
14 군사(믿게된 신자)들도 그에게 “저희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요한은 그들에게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 하고 일렀다.
=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허락하신 것이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에 만족(滿足)하라는 것이다.
(히브13,5) 5 돈 욕심에 얽매여 살지 말고 지금 가진 것으로 만족하십시오. 그분께서 “나는 결코 너를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겠다.”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로마8,28)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구원)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 결론(結論) “저희가 어떵게 해야 합니까?“는 자신의 뜻을 위해 사는 자아(自我)숭배(崇拜)의 자기를 버리는(부인하는) 것이다.
15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 세상(世上)과 종교(宗敎) 지도자(指導者)들의 권력, 권세(權勢)로 무거운 삶, 무거운 짐의 신앙(信仰)을 살며, 하느님의 대속(代贖), 그 은혜의 약속, 그 구원의 말씀을 몰라 희망(希望)이 없어 힘들었던 이들 이기에 기대에 차 있었던 것이다.
16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 물세례가 아닌 성령세례를 받아야, 성령께서 두 벌 옷(구약, 신약)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씀으로 정해진 영혼의 구원을, 그리고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것에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나를 비우고 버리는, 자기 부인(否認)의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주신다. 우리 자신의 힘,(선, 열성)을 믿지 말고, 우리의 보호자(保護者)로 보내주신 하느님의 영, 성령(聖靈)을 의지하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2독서(필리4,7) 7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17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치우시어, 알곡은 당신의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 타작(打作)마당- 추수(秋收), 곧 심판(審判)의 장소(場所)이다. 심판 때에 율법(律法)을 열심히 지킨 사람의 의로움, 그 쭉정이는 치워지고(이사64,5 로마10,1-4 참조) 알곡, 하늘의 의로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분의 의로움을 전가(傳家)받아 가는 하느님나라(곳간)다. 기쁜 소식, 메시아의 복음(福音)이다.
18 요한은 그 밖에도 여러 가지로 권고하면서 백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 나는 어떤 기쁜 소식을 듣고, 의탁하며 사는가. 어떤 기쁜 소식을 전하는가......
1독서(스바3,17-18) 17 주(야훼) 너의 하느님, 승리의 용사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다. 그분께서 너를 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신다. 당신 사랑(대속)으로 너를 새롭게 해 주시고 너 때문에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시리라. 18 축제(혼인)의 날인 양 그렇게 하시리라. 나는 너에게서 불행을 치워 버려 네가 모욕을 짊어지지 않게 하리라.
=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하느님의 사랑으로 나의 불행(不幸), 모욕(侮辱, 죄)을 치우시고 새롭게 하신 후, 나 때문에 하느님께서 환성(喚聲)으로 기뻐하신다. 이 어찌 기쁜 소식, 복음(福音)이 아니겠는가~
☨ 오소서 성령님! 당신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진, 구원받은 합당한 삶, 어울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 나를 버리고, 비우고 하느님으로 기뻐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