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봉헌 축일] 제 눈이 구원을 봤습니다. (루카2,22-40)

2025. 2. 1. 오전 8:19:19

글자

 

20250202일 일요일

[주님 봉헌 축일] 제 눈이 구원을 봤습니다. (루카2,22-40)


   


1독서<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말라3,1-4)

1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2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3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4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화답송>시편24,7.8.9.10(10ㄴㄷ) 만군의 주님, 그분이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성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영원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임금님 들어가신다.

영광의 임금님 누구이신가? 힘세고 용맹하신 주님, 싸움에 용맹하신 주님이시다.

성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영원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임금님 들어가신다.

영광의 임금님 누구이신가? 만군의 주님, 그분이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2독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히브2,14-18)

14 자녀들이 피와 살을 나누었듯이, 예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15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6 그분께서는 분명 천사들을 보살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보살펴 주십니다.

17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 자비로울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한 대사제가 되시어, 백성의 죄를 속죄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8 그분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

 

복음<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루카2,22-40)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주님 봉헌 축일 독서(말라3,1-4)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1ㄷ,ㄹ)

 

하느님께서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리고 고대하던 주님이 홀연히 그의 성전에 올 것을 예고하신다.

여기서 '주님'과 '계약의 사자'는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주님' '계약의 사자'가 동의어로 됨으로써, 계약의 사자인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와 주 하느님은 동일한 분이시라는 것이 성립된다.

이같은 사실은 요한 복음 1장 1절과 필리피서간 2장 6절에서도 유사하게 제시되지만, 삼위일체의 진리를 입증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계약의 사자'에 해당하는 '우말르아크 합베리트' (umallak habberith;  the messenger of the covenant)로 표현된 것은 그가 성부 하느님에 의해 보내심을 받은 사자, 곧 하느님의 계약을 실현하기 위하여  파견된 분이심을 나타낸 것이다.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하느님의 계약이란 옛 시나이산 계약(옛 계약; 구약; 舊約)과 대비되는 '새 계약'(the new covenant)이다.

 새 계약(신약; 新約)에 대해서는 과거 이사야 예언자(이사55,3; 61,8), 예레미야 예언자(예레31,31-34), 에제키엘 예언자(에제16,62; 37,26)등에 의해 이미 예언된 적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 구원 사업이라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당신 자신이 흘리신 피가 바로 새 계약을 이루시는 피임을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면서 선언하셨다(마태26,28).

 

그런 점에서 말라기 예언서 1장 1절ㄷ은 하느님께서 자신의 무죄한 피를 흘려 백성들과 하느님 사이를 새 계약으로 일치시킬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와 메시야를 보내실 것을 예언한 것임에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너희가 찾던'에 해당하는 '앗템 메바크쉼'(athem mebaqshim)은 히브리어에서 사용을 안해도 의미가 통하는 2인칭 복수 대명사와 '구하다', '추구하다', '찾다' 등의 의미를 지닌 '빠케쉬'(bakesh) 동사의 강조 분사형이 사용되어, 직역하면 '바로 너희들이 간절히 구하고 있는'으로 번역할 수 있다.

또한 '너희가 좋아하는'에 해당하는 '앗템 하페침'(athem hapetsim)은 '바로 너희가 몹시 기뻐하는'이라는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사실 동의적 대구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표현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야를 얼마나 간절히 열망하였는지를 잘 드러낸다.

그들이 메시야를 갈망한 것은 메시야가 선민 이스라엘로 하여금 과거 다윗과 솔로몬 시대와 같은 영광을 누리는 시대를 도래케 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주 하느님께서 계약의 사자, 곧 메시야가 '홀연히'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메시야가 오실 때 그들이 알지 못하고 준비하지 못할 것임을  의미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피트옴'(pithom)은 '갑자가', '놀랍게', '예기치 않은 때에' 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메시야가 누구도 알지 못할 만큼 은밀하게 온다는 의미,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놀라게 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메시야가 오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 나태하여 그를 알아보지 못할 것임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장차 메시야의 재림 때의 상황과도 긴밀하게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메시야께서는 분명히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날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셨다.

아울러 하느님께서는 그 계약의 사자가 '자기 성전'에 오실 것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에 해당하는 '헤칼로'(hekallo)는 '그의 성전'(his temple)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그의 궁전'(his palace)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여기서 통치자가 머무는 처소인 '궁전'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를 사용한 것은 성전이 바로 만왕의 왕이신 주 하느님께서 통치하시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탄생하신 지 여드레 만에 성전을 방문한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지 40일 만에 성전에서 봉헌되었고(루카2,22-39), 마지막 수난 주간이 시작할 때에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셨던(마태21,12-17) 사건을 예고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헀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메시야가 오시는 성전을 '그의 성전'이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관련해서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예루살렘 성전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자리, 곧 메시야께서 당신 스스로 자원하여 이루실 구원사업으로 말미암아 세우실 당신의 몸인 교회, 당신의 인류구원사업이 계승되는 성사적인 인간 집단인 교회,

즉 하느님의 백성들이 거룩한 공동체 한 가운데 영신적 임금으로 좌정하셔서 통치하실 것임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3)

 

'깨끗하게 하고' 해당하는 '웨티하르'(yethihar)의 원형 '타헤르'(thaher)는 어원상 육체적, 도덕적으로 불결하지 않고 깨끗하고 순수한 상태를 나타낸다 (창세35,2; 레위12,7; 민수8,21; 에례33.8).

이 단어는 구약에서 78회 나오는데, 그 가운데서 정결례 의식을 주로 다루는 레위기에서 무려 35회가 나온다.

그러니까 이 단어는 제사와 관련하여 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하느님께서 당신께 합당한 백성들로 세우기 위해서 그 선택한 백성들을 영적,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거룩하게 한다는 의미, 즉 성화(聖化)의  의미 사용되었다.

 

그런데 말라기는 이러한 사실을 보다 힘주어 강조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마치 금과 은을 정련하듯이 그들을 정련하신다고 진술한다.

여기서 '정련하여'(단련,연단)에 해당하는 '웨직자크'(yeziqaq)의 원형 '자카크'(zaqaq)는 광석을 정련할 때에 불순물을 용해시켜 버리고 순수한 금속만을 추출해 얻는 과정을 나타내는 단어이다(욥28,1).

 

여기서 이 단어는 메시아께서 레위 자손으로 표현된 신약의 백성들을 깨끗하게 하시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거룩한 고난, 시련과 환난 등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성령의 불로 그들의 죄악을 사를 때에 고통스러울 것이며, 그들의 인격의 모난 부분을 깎아 내고 연마할 때 아픔이 수반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결과 그들은 정금같은 순수한 면모를 갖춘 참 하느님의 백성, 거룩한 성도라 일컬음을 받기에 합당한 거룩한 신앙의 인격을 갖추게 될 것이다(욥23,10; 야고 1,4)  

 

특별히 오늘 2월 2일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봉헌 생활의 날'로 제정하여

자신을 주님께 봉헌한 수도자들을 위한 날로 정하여 모든 신자들이 수도 성소를 위해 특별히 기도하고 봉헌생활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권고하고 있기에, 사제와 수도자 그리고 봉사자들의 거룩한 정결, 봉헌된 정결, 성결(聖潔)에 대한 가르침이라 생각하여 중요한 단어들을 묵상해 보았다.   

 

 


 


[주님 봉헌 축일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주님 봉헌 축일인 오늘 교회는 성전에 봉헌되신 예수님을 기념하고특별한 방식으로 주님께 자신을 봉헌하며 축성 생활을 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더불어 세례와 함께 주님의 자녀가 된 모든 그리스도인 또한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여야 함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봉헌은 무엇을 의미할까요봉헌은 단순히 어떤 결심이나 서원과는 다른 더 근본적인 행위입니다

결심은 어떤 일을 하겠다고 앞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을 향하려는 결심도 있지만결심이라는 행위 자체는 결심한 것을 향하여 를 잘 가다듬고결심한 바를 실천으로 옮길 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 자신에게 집중합니다

그러나 봉헌은 에게서 벗어나, ‘봉헌받는 분에 집중하는 것이고마음이 에게서 떠나 다른 분에게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서원은 자신에게 엄격한 의무를 부과하면서하느님께 특정한 일을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물론 그 약속의 궁극적 목적이 자신을 하느님의 사랑에 맡기는 봉헌이 될 수는 있겠지만서원 자체는 어떤 객관적인 일을 하는 의무를 받는 것입니다

봉헌은 결심이나 서원처럼 사랑이 자라나고 확인할 수 있는 어떤 일을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봉헌은 직접 마음에서 마음으로인격에서 인격으로 사랑 자체가 자유롭게 흐르는 것입니다

봉헌은 아주 순수하고아주 명료하며아주 진지하게 나를 다른 이에게 주는 사랑의 행위입니다(칼 라너기도의 절실함과 그 축복에 대하여』 참조).

주님께 나 자신을 봉헌한다고 하면서도 봉헌받는 분이 아니라 봉헌하는 ’ 자신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는지또는 봉헌의 행위보다 봉헌을 위한 개별적인 수단이나 에 더 마음을 많이 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

 

죄인들의 피난처, 도피성인 십자가의 그리스도

 

독서 (히브2,14-18)

14 자녀들이 피와 살을 나누었듯이, 예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15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 악마가 어떻게 죽음의 권능을 같게 되었을까?

 

(창세2,17)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 이 말씀을 어긴, 아담과 하와는 반드시 죽어야 했고, 그들이 죄를 짓도록 속였던 뱀에게 ‘너는 저주를 받아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죄인)를 먹어라’ 하셨기 때문이다.(창세3,14참조) 그래서 하느님께서 죽어야할 그 죄인들을 너무나 사랑 하셨기에 그들을 구원할 구원자 예수님을 보내셨다. 그 죄인들의 죄를 받아 대신 죽고 당신의 생명을 주시는 십자가의 예수님이시다.

 

(로마5,18-21) 18 한 사람(아담)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듯이, 한 사람(예수)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 19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20 율법이 들어와 범죄가 많아지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21 이는 죄가 죽음으로 지배한 것처럼, 은총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로움으로 지배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시메온이 성령의 보호와 이끄심으로 당신의 생명을 주시는 그 예수님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루카2,24)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 한쌍(짝), 두 마리(분열-무리), 뱀의 유혹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선악의 둘로 분열시켰던, 그리고 그 법으로 갈라졌던 이들을 모두 하나로 완성하시는 중재의 예수님이시다. 곧 십자가로 분열(둘)을 하나로 완성시켰다. 그래서 율법으로 알고(로마3,28. 7,10) 그 죄(빚문서)를 십자가에 못박아 없애 버리셨음을(골로2,14), 그리고 그 죄인들을 의롭게 하시려 부활하셨음을 알아 그분과 하나가 되는 것이 구원이다.(로마4,25참조)

 

(갈라4,4) 4 그러나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갈라3,19) 19 그렇다면 율법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약속을 받은 그 후손(예수)이 오실 때까지, 사람들의 범법 때문에 덧붙여진 것입니다.

 

(로마10,4) 4 사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이십니다. 믿는 이는 누구나 의로움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 끝(텔로스, 멀리있는 목표), 율법(토라, 손가락으로 무엇을 가리키다)은 예수 그리스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 그리스도를 기다렸던, 갈망했던 시메온(시몬)에게 성령이 함께하셨다. 성령은 기다리는 이들에게 가신다(지혜6,13)

 

다시 복음으로~

(루카2,25-30)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다시 독서로 가자

16 그분께서는 분명 천사들을 보살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보살펴 주십니다. 17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 자비로울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한 *대사제가 되시어, 백성의 죄를 *속죄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 대사제는 죄인들의 죄를 속죄, 죄를 대속하시는 피난처, 도피성이다.

 

(민수35,25-28) 25 공동체는 그 살인자를 피의 보복자의 손에서 구하여, 그가 피신해 있던 도피 성읍으로 돌려보낸다. 그는 거룩한 기름을 부어 세운 대사제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서 살아야 한다. 26 그러나 만일 살인자가 피신해 있던 도피 성읍의 경계 *밖으로 나가면, 27 피의 보복자가 도피 성읍의 경계 밖에서 그 살인자를 발견하고 그를 살해하여도, 피의 보복자에게는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28 살인자는 *대사제가 죽을 때까지 반드시 도피 성읍에서 살아야 한다. 대사제가 *죽은 다음에야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갈 수 있다.

= 우리의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 그분의 죽음으로 얻는 용서, 자유, 해방이다.

 

18 그분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

=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고난과 유혹이다.

 

(루가9,22) 22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 우리의 피난처를 위한 고난이다.

 

(루가4,1-3.6) 1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2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 그 기간이 끝났을 때에 시장하셨다. 3 그런데 악마가 그분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6 그분께 말하였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

= 재물, 욕망의 유혹과 세상 권세와 영과의 유혹이다.

 

(루가4,9-10) 9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너를 보호하라고 명령하시리라.’

= 신앙의 기적적인 유혹이다. -예수님은 온전한 인성으로 유혹을 받으셨음을 놓치면 안된다.- 예수님께서 그 모든 유혹을 말씀으로, 곧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으로 다 이겨내시고 승리를 우리에게 전가(傳家, 물려줌)시켜 주셨다.

 

(1코린15,57)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1요한5,4) 4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히브4,15) 15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 ~(*똑똑히 기억 합시다)

 

☨천주의 성령님! 저희 마음이 기다리며 갈망하게 하시어 우리의 죄를 속죄하신, 도피성이신 대사제와 하나가되게 하여 주소서 의탁합니다.~~아멘!!!

 

 

 

 

 

 

 주님 봉헌 축일(봉헌 생활의 날)복음 (루카2,22~40)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그들은 또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23~24)

 

루카 복음 2장 23절은 탈출기 13장 2절, 12절, 15절에 나타나는 내용인데, 복합적으로 인용되었다.

여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사람이 맏아들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규정 및 관습의 시작은 출애굽 때 마지막 재앙이었던 이집트의 맏아들 재앙때 부터였다.

 

하느님께서 이집트의 모든 처음 난 맏배 및 맏아들을 죽일 때 히브리인들은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문상인방에 바름으로써 재앙을 면했고, 그 결과 히브리인들의 모든 처음 난 맏배 및 맏아들은 하느님의 것으로 여기고 거룩하게 구별되어 바쳐져야 했다.

그 가운데 동물의 처음 난 맏배는 다 희생 제물로 주 하느님께 바쳐야 했고, 사람의 맏아들은 다른 것으로 대속하면 되었다(탈출13,13.15).

 

이것이 후에는 사람의 맏아들 대신에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하느님께 바치는 것으로 바뀌었으며(민수3,41), 레위 지파는 개인적인 모든 일을 중단하고 오로지 주 하느님만을 섬기는 일에만 전념하여야 했다.

또한 인구 조사시 레위인의 숫자는 22,000명이었고, 다른 모든 지파의 맏아들의 숫자는 22,273명이어서 레위인으로 대속하지 못한 273명에 대해서는 5세겔의 성전세로 대신 속죄하게 하였다(민수3,43.46.47).

 

그러나 그 후 5세겔의 대속 값은 모든 맏아들에게 적용되었고, 이스라엘 맏아들들은 이것을 통해 자신이 하느님께 봉헌된 자임을 상징적으로 표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출애굽의 구원을 베푸신 주 하느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주님께 대한 봉헌과 헌신과 섬김을 다짐하는 율법적 관례로 이어져 내려왔다.

 

'아기를~주님께 바쳤다'(22)

 

이 구절은 한글 새 성경에서는 루카 복음 2장 22절과 23절을 중첩되게 번역했으나, 원문은 22절의 맨 끝에 나온다.

'아기를 바치고'에 해당하는 '파라스테사이'(parastesai; to present him)의 원형 '파리스테미'(paristemi)는 '곁에 두다'(to place beside),'보이다'(to show), '성별하여 드리다'(to consecrate)의 뜻이다.

이와 같이 '주님께 바치는 것'은 맏아들을 하느님께 드리고, 대신 속죄를 위해 대속 값을 치르는 것과 관련된 것이다(민수3,13; 18,15.16).

 

그러니까 무죄하신 예수님 개인으로는 속죄 값을 바칠 필요가 없었지만, 그 부모의 입장에서는 모든 맏아들에게 규정된 그 속죄 값의 규정을 지켜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의 속죄 값은 예수님께서 장차 중재자로서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게 될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사무엘의 경우처럼(1사무1,11.22.28) 하느님께 온전히 바쳐짐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자리에까지 나아감을 뜻하고 있다.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이것들은 출산 후 산모가 지켜야 할 정결례에 바쳐야 할 제물이다(레위12,6~8).

나자렛 성 가정은 가난하기 때문에 일년 된 어린 양이 아니라,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쳤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29)

 

루카 복음 2장 29절부터 32절까지는 일반적으로 '시메온의 고별 노래'라고 불린다.

여기서 '주님'으로 번역된 '데스포타'(despota; Sovereign Lord)는 기본형 '데스포테스'(despotes)의 호격이다.

'데스포테스'(despotes)는 '주인', '소유주'라는 뜻인데, 동일한 의미로 성경에서 749회나 사용된 '퀴리오스'(kyrios)와 달리 10회 밖에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데스포테스'(despotes)는 자신이 '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절대적인 주권과 능력을 인정하는 분'에 대해서 사용하는 상대방을 매우 높이는 강한 의미를 지닌 말이다(사도4,24; 묵시6,10).

 

시메온은 하느님을 '데스포테스'(despotes)라고 표현했을 뿐 아니라, 자신을 '당신 종', 즉 '톤 둘론 수'(ton doulon sou; your servant)라고 분명히 말하는, 하느님의 절대 주권과 소유권을 인정하는 매우 경건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제야'라고 번역된 '뉜'(nyn; now)이 문장의 처음에 와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새로운 차원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것은 인류 구원의 여명이 밝아오는 의미 뿐만 아니라 시메온 개인에게도 구원자를 기다리는 영적인 부담감과 책임감에서 해방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뒤이어 나오는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라고 번역된 '아폴뤼에이스'(apolyeis; depart; dismiss)는 '자유롭게 하다'를 의미하는 '아폴뤼오'(apolyo)의 2인칭 단수이다.

이 단어는 완곡어법으로 쓰여 '죽을 수 있도록 하다'라는 뜻을 내포한다.

 

이제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 주셨으므로 아무런 미련 없이 눈을 감을 수 있다는 말이다.

즉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라는 표현은 시메온이 매우 늙었으며, 지금까지는 구원자를 기다리는 사명과 희망으로 살아왔으나, 이제 그 사명과 희망이 완전히 성취되고 끝났음을 표현하고 있다.

 

'말씀하신 대로 ~평화로이'

 

'말씀'으로 번역된 단어 '레마'(rema; word)는 루카 복음 2장 26절에 나오는 '성령의 알려주심'을 가리킨다.

그런데 시메온은 '레마'(rema) 앞에 '토'(to)라는 정관사를 붙였을 뿐 아니라, 뒤에 2인칭 단수 소유격 대명사 '수'(sou)를 덧붙여서 '성령의 알려주심'을 '성부 하느님의 말씀'과 직접 연결시키고 있다.

 

이제 시메온은 자신이 바라던 바가 성취됨으로 인해 참 평화를 얻었다.

이 평화는 시메온 개인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향해서도 구원자의 오심의 결과요 선물이 되었다.

이 '평화'로 번역된 '에이레네'(eirene; peace)는 하느님의 아들이 구세주로 이 땅에 오셔서 주시는 평화인데, 이 평화는 죄와 불순종으로 하느님과 원수가 된 인간과 하느님과의 화해에서 오는 구원이며(로마5,1.10), 반목과 질시로 벽을 쌓고 살아가는 인간들 관계 속에서의 평화일 뿐만 아니라(로마12,19), 염려와 근심, 격심한 감정의 혼란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인간 자신에게 이루어지는 평화이다(로마8,6).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원문의 서두에 나오는 '호티'(hoti; for)는 본문에서 이유 부사절을 이끄는 접속사로서, 앞에서 말한 자신의 평화로이 떠나감의 이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밝히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여기서 시메온이 '구원'을 본 주체는 '나', 즉 '에고'(ego)라고 하지 않고, '제 눈이' 즉 '호이 옵탈모이 무'(hoi ophthalmoi mou; my eyes)라고 한 것은 하느님의 구원을 분명히 보았음을 더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강조하기 위함이다.

 

또한 여기서 '구원'이라고 번역된 '소테리온'(soterion; salvation)은 형용사인데, 명사처럼 쓰여 '구원의 수단' 혹은 '구원 그 자체'를 의미한다(시편50,23; 이사56,1).

그리고 구원은 예수님께서 하신 어떤 구체적인 영적을 말하기도 하지만, 예수님 자신이 바로 구원 자체이심을 보여 주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을 자각했던 시메온은 사도 요한이 표현했던 그 기쁨을 맛보았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1요한1,1)

 

 


 

 

20250202일 일요일

[주님 봉헌 축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오늘 교회는 예수님의 부모가 율법에 따라 성전에서 아기를 주님께 바친 일을 기념합니다.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히브 2,17) 하였던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백성의 다른 맏아들들처럼 부모의 손으로 성전에 바쳐지십니다.

아기 스스로 자신을 바친 것이 아니라 부모가 바칩니다.

실제로 그리스 말 원문은 봉헌과는 조금 다른 나타내 보이다, 출현하다, 소개하다’(present)라는 뜻을 가집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오늘 복음을, 드디어 오신 구세주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대표하는 두 예언자를 통하여 당신 백성을 처음 만나는 자리라고 하십니다. 일종의 상견례인 셈이지요.

1독서에서 구세주께서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3,1)라고 한 말라키 예언자의 말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곧 아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뒤 처음으로 성전에서 아버지 앞에, 그리고 백성 앞에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축성 생활’(vita consecrata)의 날을 꽤 오랫동안 봉헌 생활의 날로 불러왔기에 축성 생활자들이 주님께서 성전에 바쳐지신 것과 같은 의미로 봉헌된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5년 전 이를 축성 생활로 번역하여 쓰기로 한 주교회의의 결정은 이런 혼란을 바로잡고 축성 생활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사실 축성은 오늘 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봉헌과는 쓰인 낱말과 그 뜻이 다릅니다.

축성 생활서원을 통하여 세 가지 복음적 권고의 의무를 받아들이는, 복음적 권고의 서원으로 이루어지는 신분”(교회 헌장, 44)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수도자를 포함하여 복음 권고를 서약하는 모든 이가 축성 생활자입니다.

올해 한국 교회 축성 생활의 해를 지내면서 축성 생활 성소를 위하여 더 기도합시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2025년 02월 02일 일요일 [주님 봉헌 축일]

 

주님 왜 부르셨어요?

 

독서(말라3,1-4) 1 “보라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너희가 찾던 주님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그가 온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2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3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4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 땅의 존재를 하늘의 존재로 하시기 위한 그 시련(試鍊)을 누가 견디어낼 수 있을까? 주님과 하나, 한 몸이 된 그 사람만이 견디어낼 수 있다.(1코린6,19-20참조)

 

(1코린1,23-24)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 ‘하느님의 힘, 지혜인 그리스도’로만 견디어낼 수 있다.

 

독서(히브2,14-15) 14 자녀들이 피와 살을 나누었듯이예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그것은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당신의 죽음(대속)으로 파멸시키시고, 15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복음(루카2,22-35)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 하늘로부터 다시 새로 태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곧 첫 창조의 흙의 사람이 새 창조의 영(靈)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이신 아기 예수님께서 땅인 우리를 하늘의 존재로 새로 태어나게 하시기 위해 죽음의 법(法)인 율법(律法)에 봉헌되시는 것이다.(로마3,19- 갈라4,4-45 참조)

 

25ㄱ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 하느님의 진노로 버림을 받은 ‘시메온 지파’의 사람이다.(창세49,5-7참조) 그런 자신의 실체를 알았기에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25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 우리가 알아야 할, 받아야 할, 곧 나와 함께 하시며 나에게 주시는 위로의 말씀, 힘이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셨기에 작은 예물, 작은 아기를 일의 사람으로, 곧 자신의 구원자로 안을 수(받아들일 수)있었던 것이다.

 

29 그래서 주님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놀라워하였다?- 자신들이 낳은 아기를 자신들 보다 더 잘 알아서그 아기를 두고 한 놀라운 고백 때문에?. 이 부분에서 받아야 할 가르침은 내가 아는 율법(제사윤리)으로 섬기는 예수님보다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며 증언 해 주신곧 율법을 대속으로 완성하시고 주시는 하늘의 용서생명그 놀라운 새 계약의 구원자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 사람의 뜻, 의를 위한 율법, 그 ‘옛 계약은 헛되다.’하심으로 쓰러지게 하시고 하느님의 뜻, 의인 대속, 그 새 계약으로 다시 일으키시는 구원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의 의로움이 참이라 하는 인본주의 사람들에게는 반대를 받는 주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의 속셈이 드러난다.

*내 소원을 위한 신앙을 사는가? 내 소원을 위한 신앙을 산다면 우리가 좋아하는 그 주님이 오시는 날에 견딜 수도, 버티어낼 수도 없게 될 것이다.

 

은총(은혜진리)이신 천주의 성령님!

주님과 하나한 몸이되어 모든 시련을 이겨낼 수 있음을 알게 하셨으니 그리스도로 받라들여 한 몸이 되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주일복음강론

목록 전체보기 →
[연중 제6주일]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루카6,17.20-26)25.02.15조회 13[연중 제5주일]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루카5,1-11)25.02.08조회 15[주님 봉헌 축일] 제 눈이 구원을 봤습니다. (루카2,22-40)25.02.01조회 18[연중 제3주일] 주님의 은혜로운 해 (루카1,1-4; 4,14-21)25.01.25조회 14[연중 제2주일] 카나에서 첫표징을 (요한2,1-11)25.01.17조회 13[주님 세례 축일]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다 (루카3,15-16.21-22)25.01.11조회 15[주님 공현 대축일] 동방박사의 예물 (마태2,1-12)25.01.04조회 17[성가정 축일(가정 성화 주간)] 제 아버지의 집 (루카2,41-52)24.12.27조회 89[대림 제4주일] 참 행복 (루카1,39-45)24.12.27조회 64[대림 제3주일]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 (루카3,10-18)24.12.14조회 39[대림 제2주일]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루카3,1-6)24.12.06조회 57[대림 제1주일] 늘 깨어 기도하여라 (루카21,25-28.34-36)24.11.29조회 25[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진리를 증언하려고 (요한18,33ㄴ-37)24.11.23조회 38[연중 제33주일] 그 날과 그 시간 (마르13,24-32)24.11.16조회 86[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과부의 렙톤 두닢 (마르12,38-44)24.11.08조회 12[연중 제31주일]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 (마르12,28ㄱㄷ-34)24.11.02조회 15[연중 제30주일] 예리고 소경 치유 (마르10,46ㄴ-52)24.10.26조회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