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7주일] 원수를 사랑하여라. (루카6,27-38)

2025. 2. 22. 오전 7:3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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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23일 일요일

[연중 제7주일] 원수를 사랑하여라. (루카6,27-38)

   


1독서<주님께서 임금님을 제 손에 넘겨 주셨지만, 저는 손을 대려 하지 않았습니다.>(1사무26,2.7-9.12-13.22-23)

2 사울은 이스라엘에서 뽑은 부하 삼천 명을 거느리고 지프 광야에 있는 다윗을 찾아 그곳으로 내려갔다.

7 다윗은 아비사이를 데리고 밤을 타서 군대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때 사울은 진지 안에서 머리맡 땅바닥에 창을 꽂아 놓고 잠들어 있었다.

아브네르와 그의 군사들도 사울을 둘러싸고 잠들어 있었다.

8 아비사이가 다윗에게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오늘 원수를 장군님 손에 넘기셨으니, 이 창으로 그를 단번에 땅에 박아 놓겠습니다. 두 번 찌를 것도 없습니다.”

9 그러나 다윗이 아비사이를 타일렀다. “그분을 해쳐서는 안 된다. 누가 감히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에게 손을 대고도 벌받지 않을 수 있겠느냐?”

12 다윗은 사울의 머리맡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나왔다. 주님께서 그들 위에 깊은 잠을 쏟으시어 그들이 모두 잠들었기 때문에, 다윗을 본 사람도 알아채거나 잠을 깬 사람도 없었다.

13 다윗은 맞은쪽으로 건너가 상대와 거리를 멀리 두고 산꼭대기에 서서,

22 “여기 임금님의 창이 있습니다. 젊은이 하나가 건너와 가져가게 하십시오.

23 주님은 누구에게나 그 의로움과 진실을 되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주님께서 임금님을 제 손에 넘겨주셨지만, 저는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이에게 손을 대려 하지 않았습니다.”

 

<화답송>시편103,1-2.3-4.810.12-13(8)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아픔을 없애시는 분. 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 내시고, 자애와 자비의 관을 씌우시는 분.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는 더디시나 자애는 넘치시네. 우리를 죄대로 다루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대로 갚지 않으시네.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가 먼 것처럼, 우리의 허물들을 멀리 치우시네. 아버지가 자식을 가여워하듯, 주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 가여워하시네.

 

2독서<우리가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1코린15,45-49)

45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인간 아담이 생명체가 되었다.”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46 그러나 먼저 있었던 것은 영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이었습니다. 영적인 것은 그다음입니다.

47 첫 인간은 땅에서 나와 흙으로 된 사람입니다. 둘째 인간은 하늘에서 왔습니다.

48 흙으로 된 그 사람이 그러하면 흙으로 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에 속한 그분께서 그러하시면 하늘에 속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49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

 

복음<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6,27-38)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27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29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두어라.

30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31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32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33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34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어 준다.

35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복수와 하느님 나라의 질서

 

사무엘상 26

먼저 다윗은 자신과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교훈합니다(6-12). 다윗은 사울과 군대가 깊이 잠든 것을 보았습니다. 3천 명의 군대가 마치 집단으로 마취에 걸린 것처럼 깊이 잠들었는데요. 이는 명백히 하느님께서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다윗과 동행한 아비사이는 이것은 하느님께서 사울을 다윗의 손에 붙이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원수를 갚을 기회이고, 왕이 될 기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다윗은 하느님이 놀라운 기적으로 주신 이 기회는 복수할 기회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질서와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교훈할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교훈은 다윗과 함께 하는 사람들, 사울과 함께 하는 사람들 모두가 꼭 들어야 할 중요한 교훈이었습니다.

다윗이 아비사이에게 사울을 죽이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말해줍니다.

첫째, 사울은 야훼께서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기 때문입니다(9). 야훼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왕을 대적하는 것은 곧 하느님을 대적하는 죄입니다.

둘째, 야훼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10). 즉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친히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기회를 주실 때, 우리의 뜻을 이룰 기회가 아닌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기회로 삼읍시다. 하느님이 기뻐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합시다.

하느님께서 합법적으로 세우신 직분자(국가의 위정자, 교회의 직분자, 가정의 부모)를 존중하고 순종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 직분자가 불의와 악을 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에도 선하고 지혜로우신 하느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에 맡깁시다.

 

다윗은 사울과 그의 군대장 아브네르와 그의 군대에게 교훈합니다(13-25). 다윗은 그들이 야훼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생명을 지키는 중요한 책임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았다고 책망합니다.

이 책망의 이면에는 사울이 이렇게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며 악을 행하는데도, 하느님의 편에서 사울에게 직언을 하며 신하의 도리를 다하는 사람이 없다는 꾸짖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의 잘못에 대하여 조언하면서, 그가 이런 잘못을 저지르는데 두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는데, 하나는 야훼께서 충동하셨을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충동한 경우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죄와 함께 사울의 주변에서 사울을 섬기는 사람들의 잘못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왕을 대적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그 왕이 잘못된 길을 걸을 때 바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조언하고 돕지 않는 것도 잘못입니다. 물론 하느님으로부터 직분을 받았음에도 자신을 위해 악용하는 것도 잘못이지요.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죄입니다.

 

복수와 직분이라는 주제는 우리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특별히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직분에 참여하는 직분자임을 생각할 때, 우리는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존중해야 하고, 서로의 잘못을 모른척하지 말고 말씀으로 지혜롭게 조언해 주어야 합니다.

때로 원수와 같이 나를 힘들게 하는 지체가 있을 때에도 하느님의 의로우신 판단을 신뢰하고, 우리는 할 수 있는대로 선을 행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교훈을 생각하며 특별히 우리 교회와 가정과 국가에 주님께서 세우신 직분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연중 제7주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요한 신부)

 

오늘 복음을 듣고 있으면, 이 계명들을 지키며 사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인지 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주하는 자를 축복해 주고, 학대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뺨을 때리면 다른 뺨을 내밀고, 겉옷을 가져가면 속옷까지 내주라고 하십니다.

심지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원수’(怨讐)란 자기나 자기 집안에 어떤 중대한 해를 끼쳐 깊은 원한이 생긴 사람을 뜻할 텐데, 이런 자를 우리가 어떻게 용서까지는 해 볼 수 있다손 치더라도 정말 사랑까지 할 수 있을까요?

이런 비상식적인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그 근거로 아버지 하느님께서 지니신 자비와 사랑을 제시하십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곧 하느님께서 그러하시기에 그분의 자녀이기를 바라는 우리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 자체로 정의한 요한 서간의 저자도 이 점을 명확하게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1요한 4,11).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하느님께서 본디 그러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비와 사랑이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더라도 이는 어쩔 수 없는 그분의 속성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계명들은 사실 ‘하느님’의 행동에서 그 주체가 ‘우리’로 바뀐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당신께 원수와 다름없는 이를 사랑하시는 분이시고, 당신의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똑같이 인자하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결국 오늘 계명은 당신 자녀들이 당신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기를 바라시는 아버지의 호소인 셈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 신앙인들은 아버지를 닮은 사람이고 또 닮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버지를 닮으려는 자녀의 노력을 보시는 하느님께서는, 겨자씨만큼 작은 우리의 사랑을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는 나무만큼 성장시키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생명의 말씀

 

우리는 참 가톨릭적인 사람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황금률이라 합니다.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많은 종교들이 전하는 종교적인 가르침일 뿐 아니라 인류 보편적 가치입니다.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와 더불어 사회 문화적 가치 그리고 윤리를 긍정하는 모든 이에게 행위의 근원이 되는 가르침입니다.

함께 사는 삶을 이해하는 평범한 사람이 일상을 살아가며 간직하려는 보편적인 가르침입니다.

보편성을 지닌 황금률은 시간, 장소, 문화, 민족의 한계가 없습니다.

기간 한정, 지역 한정, 인물 한정 없이 소중한 가르침으로 지켜져 왔습니다만, 그 실현은 녹록지 않습니다.

그 현실적 가르침이 논어 공야장(公冶長)편에서 공자와 자공의 이야기로 전해 옵니다.

자공이 말합니다. “남이 나에게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나도 남에게 그것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스승님이 말씀하십니다. “사야, 네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안도감이 몰려옵니다.

이 글을 발견하고 또 다른 보편성에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황금률에 담긴 보편적인 가치를 모두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모두가 보편적으로 실현하지 못한다는 그 보편성에 안도합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어. 마땅한 가르침대로 살지 못하는 현실에 부끄러운 마음을 나만 갖고 사는 것이 아니었어. 가르침의 현실을 나만 못 사는 것이 아니었어.’ 현실이…. 그렇습니다.

좋은 가르침이고, 당연한 말씀이며, 마땅히 그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남에게 내가 바라는 그대로 해 주고 착한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데, 내가 바라는 대로 남이 해 주어야 하고 남들이 나에게 착한 일을 해 주기를 바라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황금률의 반작용을 몸소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보편적인 황금률뿐 아니라 종교적 윤리를 대하는 마음도 비슷합니다.

사람은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내 뺨을 때리면 나도 때립니다.

내 것을 가져가면 경찰에 신고합니다. 예수님은 그러지 말라 하십니다.

미워하는 사람에게 사탕 하나 더 주고, 뺨을 때리면 지갑도 내주며, 내 것을 가져가면 덤으로 더 주라고 하십니다.

그 말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유치부 때부터 주일학교에서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합니다. 그렇게 다시금 우리의 보편성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보편적인 가치를 보편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아주 보편적인 모습으로 그 보편성을 살지 못합니다.

나만 그런 거 아닙니다. 알고 보니 옆 사람도 그렇습니다. 건너편 사람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아십니다, 우리가 아주아주 보편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스도교인 역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오늘 복음 말씀을 건네시는 겁니다.

잘하고 있으면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래도 해보라고, 잘 안 되는 거 아는데 그래도 해 보라고, 잘 좀 해 보라고. 그렇습니다. 잘 안 되는 거 아는데도 해보려 애쓰는 것이 보편적인(catholic) 신앙인의 보편적인 일상입니다.

 

김한수 토마스 신부 

 

 

 

 

 

 연중 제7주일 복음(루카6,27~38)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29)

 

루카복음 6장 27절과 28절에는 2인칭 복수 인칭 대명사 '휘민'(hymin)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명령의 대상을 '너희'라고 하는 데 반해, 루카복음 6장 29절부터 31절까지는 2인칭 단수 인칭 대명사 '세'(se) 즉 '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2인칭 복수에서 단수로 전환한 것은 이 말을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개인을 보다 깊게 성찰하도록 하기 위한 의도이다.

그리고 '뺨'에 해당하는 '시아고나'(siagona; cheek)는 정확히 사람 얼굴의 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턱' 또는 '턱뼈'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5장 39절에서는 '오른뺨'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대 근동에서 손으로 뺨을 때리는 것은 매우 모욕적인 일이었다.

특히 히브리인들은 오른손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오른뺨을 때렸다는 것은 정면에서 손등으로 쳤을 경우나 뒤에서 손바닥으로 쳤을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유다 풍습으로 볼 때 손등으로 때리는 것은 손바닥으로 때리는 것보다 두 배나 모욕을 주는 것이다. 또한 등 뒤에서 때렸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불의의 공격을 받은 것이 된다.

 

그러나 본문은 이때에 오히려 '다른 뺨'도 돌려대라고 말한다.

이것은 실제로 왼편 뺨까지 때리도록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어떤 경우에라도  직접적으로 복수하지 말고 고통과 모욕을 견디라는 교훈이다.

 

원수들의 경멸적인 폭행을 당하더라도, 같이 대적하여 맞서기보다는 사랑의 원리로 무저항, 무보복의 행동을 보이라는 명령이다.

이것은 어떤 문제에 직접 대응하여 복수가 악순환되는 것을 막고, 오히려 상대방에게 관용과 무저항으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라는 말이다.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두라'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5장 40절은 루카 복음 6장 29절의 후반절과는 달리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마태오 복음사가는 속옷을 먼저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웃의 겉옷을 담보로 잡을 수 없다는 율법의 규정을 잘 알고 있는 유다인을 대상으로 복음을 기록했기 때문이다(탈출22,25~26).

 

속옷은 겉옷보다 가격이 싸고, 보잘것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다.

반면에 겉옷은 가격도 비싸고, 일교차가 심한 팔레스티나에서 밤에 덮고 자야 하는 필수품이므로, 전당잡힐 수조차 없는 품목이었다(탈출22,26; 신명24,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옷을 달라고 하는 이에게 더 비싸고, 없으면 당장 추위에 떨어야 하는 겉옷까지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양도하라는 것은 무조건적인 자기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재산상의 분쟁이나 강도를 당한 상황에서 속옷조차 취하려는 상대에 대하여 저항하지 말고, 오히려 사랑을 베풀라는 뜻이다.

반면에 루카복음은 중요한 것을 달라는 이에게 사소한 것까지도 모두 주라는 뜻으로 겉옷을 먼저 언급했지만, 내용은 동일하다.

 

 




 

 

20250223일 일요일

[연중 제7주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기름부음받은이”(1사무 26,9)는 축성된 이를 가리킵니다.

구약에서는 왕, 사제, 예언자가 물질적인 기름부음으로 하느님의 일을 하도록 축성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최초의 임금으로 기름부음받아 성별된 사울에 대한 다윗의 충정은 영웅적입니다.

이는 사울을 존경해서라기보다는 그를 임금으로 축성하신 하느님에 대한 경외와 충실일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에 이르면 단연 탁월하게 축성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물리적인 기름이 아니라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으로 기름부음받고 축성되십니다.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말하듯이 구약에서 물질적인 것으로 예표되던 것들은 이제 신약에서 영적인 것으로 실현되어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기름부음받으시고’(그리스 말로 크리스토스기름발린 이라는 뜻) 우주의 임금이 되십니다.

다윗이 물질적인 기름으로 축성된 사울 임금에게 보인 존경이 그러하다면 성부에게서 성령으로 기름부음받으시어 축성되신 그리스도에 대한 존경은 어떠해야 할까요!

오늘 복음이 요구하는 행동 방식은 인간적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동기는 결국 지극히 높으신 분”(루카 6,35) 하느님이십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찾아다니던 사울을 살려 줌으로써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원수 사랑의 탁월한 본보기를 보여 주는 다윗이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그러하였듯이 말입니다.

우리의 용서와 자비의 기준은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6,36) 자비로울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우리가 베푸는 용서와 자비는 더 높은 수준으로 돌려받을 것입니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2025년 2월 23일 [연중 제7주일]

 

그러나 ☞ 그러므로 복음(福音)

 

1독서(1사무26,2.7-9.12-13.22-23)

사울은 이스라엘에서 뽑은 부하 삼천 명을 거느리고 지프 광야에 있는 다윗을 찾아 그곳으로 내려갔다.

= 하느님의 뜻을 적대해 하느님의 진노로 버림받은 사울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던 다윗을 시샘하여 죽이러 찾아간 것이다.

 

다윗은 아비사이를 데리고 밤을 타서 (사울의)군대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그때 사울은 진지 안에서 머리맡 땅바닥에 창을 꽂아 놓고 *잠들어 있었다아브네르와 그의 군사들도 사울을 둘러싸고 *잠들어 있었다. 8 아비사이가 다윗에게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오늘 원수를 장군님 손에 넘기셨으니이 창으로 그를 단번에 땅에 박아 놓겠습니다두 번 찌를 것도 없습니다.” 9 그러나 다윗이 아비사이를 타일렀다. “그분을 해쳐서는 안 된다누가 감히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 이에게 손을 대고도 벌 받지 않을 수 있겠느냐?” 12 다윗은 사울의 머리맡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나왔다주님(야훼)께서 그들 위에 *깊은 잠을 쏟으시어 그들이 모두 잠들었기 때문에다윗을 본 사람도 알아채거나 잠을 깬 사람도 없었다.

= 성경은 분명하게 하느님께서 깊은 잠에 빠지게 하셨다고 밝힌다.


13 다윗은 맞은쪽으로 건너가 상대와 거리를 멀리 두고 산꼭대기에 서서, 22 응답하였다. “여기 임금님의 창이 있습니다젊은이 하나가 건너와 가져가게 하십시오. 23 주님(야훼)은 누구에게나 그 의로움과 진실을 되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오늘 주님께서 임금님을 제 손에 넘겨주셨지만저는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 이에게 손을 대려 하지 않았습니다.”

= 하느님께서 죽이라 하신 것을 죽이는 것이 선이며 의이다. 그러나 뱀의 유혹대로 사람이 선악을 스스로 판단하여 ‘죽이는 것은 악이지’ 하며 죽이지 않는 것이 악이며 불의다.

 

(탈출12,29) 29 한밤중에 주님께서는 이집트(적대국땅의 맏아들과 맏배를곧 왕좌에 앉은 파라오의 맏아들부터 감옥에 있는 포로의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까지 모조리 치셨다. (~외 민수기25,-10 참조)

= 하느님께서 다윗보다 못하시며 악이라는 말인가? 물론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죄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절대 죄를 용납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이다.

다윗은 ‘선악으로 먹지 말라’는(창세2,17) 하느님의 말씀보다 선악으로 먹으면 ‘하느님처럼 된다.’는 뱀의 유혹을 먹은 아담처럼(창세3,5) 하느님처럼의 자리에 앉아 스스로 선악의 판단을 한 것이다. 오늘 다윗의 모습을 보고 ‘훌륭하다. 본받자’ 한다면 그 역시 다윗과 함께 ‘하느님처럼의 자리’에 앉은 교만인 것이다.

본문 12절에서 하느님은 분명 악(사울)을 죽이라고 그 사울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시면서 까지 그를 다윗에게 넘겨주신 것이다. 악을 죽이는 선을 행하라 하신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죽이는 선을 행하지 않았다. 다윗은 사울같이 ‘하느님처럼’의 자리에 앉아 악을 행한 것이다. 그것을 불법, 곧 ‘자기만족을 위한 자기 의로움’이라는 것이다.(마태7,21-23 루가 16,15 로마10,1-3참조)

 

(창세2,17)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그 열매를 따 먹는 날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 모든 인간은 다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우리들)을 살리시기 위해 우리의 추악한 죄를 깨끗하게 씻어 없애줄 그 죄의 대속, 속죄 제물로 당신 아드님 예수를 인간(사람)의 육을 입히시어 이 세상에 구원자로 보내셨다.

 

(로마5,10)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 구약, 죄의 그 옛 계약을 대속으로 완성하시고 하늘의 용서, 거룩, 의, 구원을 주시는 새 계약으로 오신 것이다. 그것이 기쁜 소식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 누구도 죄인으로 판단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곧 용서란 우리 인간의 언어(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루카6,27-28.37-38)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곧 사람들이 좋게 말하는 율법(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이 아닌 하늘의 대속, 그 새 계약의 말씀을 듣고, 믿는 이들은 원수를 사랑하고, 축복하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씀으로~.

성경의 사랑은 인간의 감정, 감성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 했다. ‘의로운 의무’라 했다.(금요묵상참조) 예수님의 대속, 그 새 계약의 말씀으로 내가 용서, 자유, 구원을 거저 받았음을 믿는다면 나를 미워하는 원수도 하느님의 용서, 자유, 구원 받았음을 인정하는 그 용서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다. 의무요 의로움인 사랑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 그 기쁜 소식, 말씀을 몰라, 옛 계약 그 율법(제사, 윤리)의 삶으로 죄의식과 온갖 고통, 질병에 시달리는 이웃들에게 그 기쁜 소식, 복음을 전하는 것, 그 또한 용서이며 사랑이다.

‘의로운 의무를 행한 참 사랑’이다. 그러므로~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남을 단죄하지 마라그러면 너희도 단죄 받지 않을 것이다용서하여라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 말씀을 옛 계약, 그 율법으로 주면, 심판으로, 죄로 되받을 것이고(로마3,20) 그리스도의 대속, 그 새 계약으로 주면 죄의 용서, 자유, 의, 거룩으로 되받는다.(히브10,9-18)

*말씀의 결론, 가르침의 결론이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으로 맺지 못하면, 그 하나가 빠지면 헛것이 된다. 곧 인간의 도리인 사람의 의로움을 위한 가르침으로 결론지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구원의 길(道)인 그리스도의 대속, 그 하늘의 의로움으로 결론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구원의 진리, 올바른 가르침이다.

 

(마태6,33)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보호자이신 천주의 성령님!

듣는 마음과 귀를 열어주소서, 오늘 말씀을 구원의 양식으로 주셨음을 깨닫게 하소서. 하늘의 양식으로 먹고, 마시고, 입어 이 땅에서 부터 하늘을 살게 하소서. 율법신앙으로 늘 죄의식과 걱정과 두려움에 사는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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