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3월 02일 일요일
[연중 제8주일]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루카6,39-45)
제1독서<말을 듣기 전에는 사람을 칭찬하지 마라.>(집회27,4-7)
4 체로 치면 찌꺼기가 남듯이 사람의 허물은 그의 말에서 드러난다.
5 옹기장이의 그릇이 불가마에서 단련되듯이 사람은 대화에서 수련된다.
6 나무의 열매가 재배 과정을 드러내듯이 사람의 말은 마음속 생각을 드러낸다.
7 말을 듣기 전에는 사람을 칭찬하지 마라. 사람은 말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화답송>시편92,2-3.13-14.15-16(◎ 2ㄱ) ◎ 주님, 당신을 찬미하오니 좋기도 하옵니다.
○ 주님을 찬미하오니 좋기도 하옵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여, 당신 이름 찬송하나이다. 아침에는 당신 자애를, 밤에는 당신 진실을 알리나이다. ◎
○ 의인은 야자나무처럼 우거지고, 레바논의 향백나무처럼 자라나리라. 주님의 집에 심겨, 우리 하느님의 앞뜰에서 우거지리라. ◎
○ 의인은 늙어서도 열매 맺고, 물이 올라 싱싱하리라. 불의가 없는 나의 반석, 주님이 올곧으심을 널리 알리리라. ◎
제2독서<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1코린15,54-58)
형제 여러분, 54 이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으면, 그때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
55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
56 죽음의 독침은 죄이며 죄의 힘은 율법입니다.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58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주님 안에서 여러분의 노고가 헛되지 않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복음<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루카6,39-45)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39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40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41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43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44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연중 제8주일: 다해: 언행의 중요성
지난 주일에 우리는 독서와 복음을 통하여 원수까지도 사랑하여 그로 하여금 하느님을 만나게 해줄 수 있는 사랑의 문화를 이룩해 나가는 것에 대해 들었다. 이제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 자신의 우리가 사용하는 언행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자신을 열어 보이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나누는 도구 중 하나가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속담에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듯이 한 마디의 말은 다른 사람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슬픔과 분노를 자아내기도 한다.
제1독서: 집회 27,5-8: 열매로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
1독서에서 말이 인격판단의 기준이 된다고 말한다. 말은 내면적 인간의 외적 표현이다. 말은 사람의 속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사용하는 말이나 말씨야말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재는 저울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의 속뜻을 드러내신 것이 말씀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말씀은 창조적인 권능을 가지고 계시며, 인간을 해방시킬 수도 있고 구원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이니 우리가 하는 말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즉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이 늘 하느님의 말씀과 일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제2독서: 1코린 15,54-58: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을 하라
사도 바오로께서는 부활의 희망이 주어진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때문이라고 하면서 이 때문에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님의 일을 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하는 일은 헛되지 않다고 하신다(58절).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닮고 또 잘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행하지 않고 사탄의 말에 그 마음을 빼앗긴 결과 죄를 짓게 되었다. 잘못된 말과 거짓된 말을 받아들여 표현한 것이 죄가 되었고 죽게 되었다. 우리 마음의 창고가 악으로 가득 차 있어 거기에서 거짓된 말이나, 잘못된 말을 꺼내게 되면 그것은 죽음에로 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고, 참된 좋은 말을 꺼내면 우리를 또 다른 사람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말씀 자체이신 예수께서는 진리의 말씀으로 사탄과 거짓을 이기시고 우리에게 생명과 구원을 가져다 주셨다. 이 거짓된 마음에 흔들리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우리의 마음에서 좋은 것을 꺼낼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말씀을 행할 때, 구원이 있고 생명이 있다.
그러기에 주님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헛되지 않다고 사도 바오로께서는 말씀하신다. 이제 다시 한번 우리의 마음이라는 창고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재고조사를 해보자.
재고조사를 하면서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을 더럽힐 수 있는 악한 것들은 모두 버리고 좋은 것들을 잘 정리하여 언제든지 원하는 때에 원하는 좋은 것을 꺼낼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정리해 보자.
항상 좋은 열매를 꺼낼 수 있기 위해서는 이러한 마음의 정리를 통하여 하느님 앞에 올바로 서 있을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 내 마음의 창고에서 무엇을 꺼낼 수 있을까?
복음: 루카 6,39-45: 마음속에 가득 찬 것이 입 밖으로 나온다.
오늘 복음은 평지설교의 결론 부분이다.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스승을 따라 행동하라고 가르치신다.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을 올바로 알아듣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 가르침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으며 올바로 인도할 수 있겠는가?
또한 다른 사람의 잘못을 고쳐주는 것도 힘들다. 그러기에 먼저 자신의 삶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하신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격이 되어서는 안 되며, 자신이 스승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제자가 되어서는 안 되고, 자신은 큰 잘못을 범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남이 범하는 조그만 잘못도 참아주지 못하고 드러내려는 위선적인 면을 없애라고 하신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요한 8,7)고 하시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위선이 된다는 것이다.
나무에 대한 비유도 마찬가지이다. 집에서 잘 기른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는다. 절대로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반대로 나쁜 나무는 즉 손질을 받지 못한 나무는 별 도움이 안 되는 열매를 맺는다(43절).
나무가 어떤 지는 그 나무 열매를 보고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가시나무에서 아주 맛있는 무화과를 거둘 수 없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둘 수 없다(44절).
이것은 우리가 판관 9,1-21에서 왕으로 선출된 아비멜렉의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여룹바알의 막내아들 요담은 아비멜렉이 자기 형제 70명을 죽이고 왕이 되었을 때에 왕의 선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거기서 올리브 나무와 무화과 그리고 포도나무의 선성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이 나무들은 자기의 소임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겠다고 하였다.
“내 어찌 기름을 내지 않고, 이 훌륭한 과일을 내지 않고, 이 술을 내지 않고, 다른 나무들을 내려다보며 으스대겠는가?”(8-13절)하고 왕의 자리를 사양했으나, 가시나무는 수락하여 왕이 되었고 그 가시나무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아비멜렉을 선출하여 왕으로 세운 세겜 사람들과 아비멜렉은 멸망하였다는 기사가 있다(참조: 판관 9.22-57절).
이제 이 비유는 사람에게 적용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착하다면 좋은 나무와 같이 자기 마음의 좋은 보물창고에서 선을 내어놓을 것이다. 반대로 악한 사람은 그의 마음의 악한 창고에서 오직 악만 흘러나올 것이다(45절; 참조: 마태 12,34-35).
사실 인격을 나타내는 마음은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통하여 말하게 되는 것이며, 선이나 악을 말한다면 그것은 각자 안에 담겨져 있는 “창고”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입은 인격의 도구이며, 행위에 있어서 전 인격을 가리킨다. 이것은 긍정적일 수 있거나 파괴적일 수 있다(45절).
그러므로 좋은 나뭇가지에 시간에 맞추어 붙어있으면서 좋은 나무를 기르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모든 자녀들의 마음에 하느님 자신이 주시는 아주 귀한 보물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신뿐 아니라 남에게 있어서도 망가지고 말 것이다
연중 제8주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요한 신부)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을 잔 부스러기 같은
‘티’와 일반 성인 크기의 배에 달하는 ‘들보’가 함께 비교되는 해학의 말씀 속에서,
우리네 인간의 타고난 기질이 엿보입니다.
그것은 알게 모르게 우리가 남을 비판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타인의 잘못을 지적함으로써 얻는 자기만족과 뿌듯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상대보다 우위에 서서 그의 단점을 고쳐 주겠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하곤 합니다.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와 비슷한 말들을 얼마나 자주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 복음은 그 비판적인 시선을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돌리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남을 지적할 때 들이대는 엄격한 잣대로 먼저 자기 자신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학교에 상주하고 있는 저에게 오늘 복음 말씀은 큰 묵상 거리로 다가옵니다.
신학생들을 지도하며 ‘진실해야 한다’, ‘성실해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 ‘형제적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등
다양한 요구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생들의 잘못이나 단점이 보일 때면 어김없이 지적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런 기준이나 잣대가 나에게도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부끄럽게도 저 자신에게는 무척이나 관대한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참으로 누군가의 변화를 바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에게 ‘본’(本)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묵상해 봅니다.
상대방의 눈 속에 박힌 티를 빼내 주겠다고 신나게 소매를 걷어붙이기보다,
자기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를 빼내려는 노력을 상대방에게 보여 주는 것이 훨씬 감동적입니다.
회개는 그렇게 쌍방에서 함께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정순택베드로 주교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오늘 복음 대목은 루카 복음서의 ‘평지설교’의 뒷부분에 해당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마태오 복음의 ‘산상수훈’과 비교해 보면, 마태오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참된 행복을 포함하여 많은 가르침을 주시는 긴 담화문(마태 5-7장)인데 비해, 루카 복음에서는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어’ 특별히 제자들에게 주시는 상대적으로 짧은 가르침입니다.
거기에는 참된 행복과 불행에 대한 가르침,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 남을 심판하지 말라는 가르침, 이렇게 크게 세 가르침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 복음 중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기’에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야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보고 빼낼 수 있음’을 말씀하시는 대목을 굳이 연결해 보자면 ‘남을 심판하지 마라’는 가르침과 연결됩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라는 오늘 예수님 말씀과 연결해서 제1독서에서는 집회서의 한 구절을 들려줍니다.
“체로 치면 찌꺼기가 남듯이 사람의 허물은 그의 말에서 드러난다 … 사람의 말은 마음속 생각을 드러낸다 … 사람은 말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과 집회서의 말씀은 단지 입조심, 말조심하라는 입단속이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마음을 닦아야 함을 말해 줍니다.
우리 마음 안에는 종종 선과 악이 충돌하기도 하고, 이기심과 박애의 마음이 갈등을 빚기도 하고, 좋은 의지가 게으름과 용기 없음에 눌려 씨름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일상 안에서 마음을 닦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오늘 제2독서에서 “이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으면, 그때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여기에 단초를 줍니다. 선과 악이 부딪히고, 이기심과 박애로 엉켜있는 우리의 마음을 ‘선한 곳간’으로 가꾸는 작업은 단순히 ‘굳은 결심’과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덧입어야 가능함을 말해줍니다.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몸소 받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기에, 우리의 삶이 예수님으로 덧입혀지고 우리도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짊어지고 참 해답을 찾으려 노력할 때, 우리의 마음도 ‘선한 것을 내놓는 선한 곳간’으로 변해갈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2025년 03월 02일 일요일
[연중 제8주일] (한창현 모세 신부)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내야,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제대로 빼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형제의 눈에 있는 티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데도 자신은 뚜렷이 보고 있다고 믿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빼내 주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자신이 뚜렷이 보지 못하고 있음을 먼저 살펴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를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상황에 적용해 봅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으면 감정에 영향을 받아 이성적으로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잘못한 것이 실제보다 더 크게 보이면서 그것을 중심으로 판단하고 단죄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상처를 받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눈에 들보가 박히게 됩니다.
상처로 내 눈에 박힌 들보를 빼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고와 판단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처받은 감정을 돌보고 용서하는 과정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용서에는 의지적 용서와 영적 용서 사이에 감정적 용서의 단계가 있다고 합니다.
이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과정이기에 인내와 용기 그리고 지혜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과 독서의 말씀이 이 긴 여정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나의 말들로 나의 마음속 생각들이 드러납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입으로 드러난 말들로 마음속 생각들을 살펴볼 때, 우리는 내 눈에 박힌 들보를 빼내고 용서의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한창현 모세 신부)
2025년 3월 2일 [연중 제8주일]
미사는 제사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대속, 그 새 계약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로 영광을 드리는 기쁨의 잔치다.
복음(루카6,39-45)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39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 무엇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시려는 것일까? 앞 38절로 가보자.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 하느님의 말씀을 율법, 그 옛 계약으로 주면 심판으로 죄를 되받을 것이고, 그리스도의 대속, 그 새 계약으로 주면 죄의 용서, 자유, 의, 거룩으로 되받는다. 라고 공부했다.
그 말씀의 비유로 그리스도의 대속, 그 새 계약을 모르는 눈먼 인도자, 곧 제사와 윤리, 그 율법자들을 따라가면 둘 다 구렁(지옥)에 빠진다는 말씀이다.
제2독서(1코린15,56) 56 죽음의 독침은 죄이며 죄의 힘은 율법입니다.
=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계명)로 받아 말하면 죄(罪)만 남는다.
1독서(집회27,4.7) 4 체로 치면 찌꺼기가 남듯이 사람의 허물은 그의 말에서 드러난다. 7 말을 듣기 전에는 사람을 칭찬하지 마라. 사람은 말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40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 제자는 스승의 뜻, 정신을 살며, 그 스승의 뜻, 정신을 드러내야한다는 말씀이다. 곧 예수님은 하늘 왕좌의 자리를 버리신 그 희생으로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대속으로 십자가에 달리셨다.
제자인 우리들은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이 내 죄의 용서, 곧 구원의 승리, 진리임을 깨닫고 우리의 모든 죄가 깨끗이 씻겨 없어졌음을 믿는 것, 그래서 죄와 세상 욕망의 자신을 버리고, 예수님을 머리로 그분의 지체가 되어 따르는 것,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 예수님을 진리로 인정하지 않고 박해 했기에 제자인 우리 또한 박해를 받는다. 그 박해를 사는 것,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다.(요한15,19)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깨끗하고 거룩한 피로 내 모든 죄가 씻겨, 내가 깨끗하고 거룩해 졌음을 믿는 것,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다.
41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 예수님은 늘 율법자들에게 위선자라고 하셨다. 죄인들에게 위선자라고 한 번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왜? 율법은 죄를 알게 할 뿐, 생명, 구원을 주지 못하는데, 율법자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 그들의 행위와 말을 위선이라 하신 것이다. 곧 율법의 눈으로는 티, 흠으로는 절대로 없앨 수 없다는 말씀이다.
43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44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반드시 맺는다. 곧 ‘하늘의 용서, 자유, 구원을 주는 십자나무’다.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죄, 죽음, 심판을 주는 율법의 나무다.
오늘 독서에서 예수님께서 율법의 열매인 죽음, 죄를 삼켜 버리신 그 승리로 죽을 우리에게 하늘의 용서, 자유, 구원을 주셨음을 말한다. 사실 율법은 좋은 것이지만 인간을 그 모든 것을 다 지켜낼 수가 없기에 죽음의 독침인 죄가 된 것이다. (야고2,8-10 참조)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 사람의 마음은 ‘원래 악하다’고 하셨다.(창세8,21 마르7,20-23 로마3,9-18) 선한 것을 담아 선한 마음이 되어 선한 것을 내놓는 것이다. 곧 하느님의 말씀을 대속, 그 진리로 담으면 하늘의 용서, 자유, 생명을 주는 말이 나오지만, 율법을 담으면 죽음의 독침인 죄를 주는 말로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말중에 생선을 쌌던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나고, 향수를 쌌던 종이에서는 향이 난다고,....
제2독서(1코린15,53-54-58) 53 이 썩는 몸은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은 죽지 않는 것을 입어야 합니다.
= 썩고, 죽을 우리가 썩지 않는, 죽지 않는 그리스도를 구원의 진리로 반드시 입어야 한다는 말이다.(로마6,9)
54 이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으면, 그때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 55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 56 죽음의 독침은 죄이며 죄의 힘은 율법입니다.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 우리의 죽음, 죄를 삼키신 그 주님의 승리를 우리에게 거저 주셨다.
58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의 노고가 헛되지 않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 사람의 칭찬을 받는 율법의 의로움에 흔들리지 말고, 하느님의 칭찬, 영광을 받는 그리스도의 대속, 그 새 계약을 구원의 진리로 믿는 것, 주님의 일이다. 그리고 그 진리를 이웃에게 전해 하늘의 용서, 생명, 구원을 받게 하는 것, 주님의 일이다.
하나 더,- 우리는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 성경책의 말씀을 듣는데 얼마나, 그리고 그 말씀으로 하느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얼마나 쓰는가? 육을 위해, 곧 육의 건강을 위해 운동하는데, 그리고 미리 건강 검진하는데, 교양 지식을 위한 여러 책들을 읽는데, 그리고 TV를 보는 등, 그 육신을 위한 시간을 더 쓰지 않는가. 전부 다 중요하고 필요한 것 맞다. 그러나 영의 건강검진을 위해, 곧 구원을 위해 성경을 얼마나 보는가 말이다.
육을 위한 시간을 더하려 한다면 그의 영은 분명 허약해져 병들었음이다.
세상의 것을 담아 만족한다면 하느님의 것이 들어갈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루가2,6-7) 6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7 첫아들을 낳았다.(구원의 새 계약을 깨달았다는 것)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 마리아(쓴물)- 세상에 머무르는 우리의 모형이다. 율법, 그 옛 계약의 자기열심, 의(義)로 만족해 하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비유한 것이다.
(요한8,37) 37 나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 내 말(새 계약)이 너희 안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묵시12,7-8) 7 그때에 하늘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싸운 것입니다. 용과 그의 부하들도 맞서 싸웠지만 8 당해 내지 못하여, 하늘에는 더 이상 그들을 위한 (발붙일) 자리가 *없었습니다.
= 용, 율법을 선악의 법으로 행하게 한 뱀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말씀을 충만히 담게 하소서, 말씀 안에 머무르며 진리, 자유를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