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5주일]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13,31-33ㄱ.34-35)

2025. 5. 17. 오전 10: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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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8일 일요일

[부활 제5주일]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13,31-33.34-35)


   


1독서<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을 교회에 보고하였다.>(사도4,21-27)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21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으로 갔다가 이어서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

22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리고 교회마다 제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의탁하였다.

24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피시디아를 가로질러 팜필리아에 다다라,

25 페르게에서 말씀을 전하고서 아탈리아로 내려갔다.

26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티오키아로 갔다.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선교 활동을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에 맡겨졌었는데, 이제 그들이 그 일을 완수한 것이다.

27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교회 신자들을 불러,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화답송>시편145,8-9.10-11.12-13ㄱㄴ(1) 저의 임금이신 하느님, 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미하나이다.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네.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시며, 그 자비 모든 조물 위에 내리시네.

주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 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당신의 위업과 그 나라의 존귀한 영광, 사람들에게 알리나이다. 당신의 나라는 영원무궁한 나라, 당신의 통치는 모든 세대에 미치나이다.

 

2독서<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묵시21,1-5)

나 요한은 1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2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3 그때에 나는 어좌에서 울려오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4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5 그리고 어좌에 앉아 계신 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복음<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3,31-33.34-35)

31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33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007년 07월 02일 - 오네시모를 받아 주오.

                             

 부활 제5주일 제1독서 (사도14,21ㄴ-27)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22)

 

'힘을 북돋아 주고'로 번역된 '에피스테리존테스'(episterizontes)의 원형 '에피스테리조'(episterizo) 더욱 굳게하고 강화하며 더욱 확실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사도행전에서만 4회 쓰였는데(사도15,32 .41; 18,23), 모두가 사람의 마음과 교회의 신앙심을 확고하게 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들이 복음을 전한 리스트라와 이코니온과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의 제자들의 신앙이, 행여 유다인들의 박해와 핍박과 이전 삶의 유혹으로 흔들리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의 마음으로, 그들의 신앙을 더욱 확고하게 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다.

이런 일들은 몇 마디 격려로 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마음을 합심해서 기도하는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을 것이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환난을 겪어야만 했다. 그리고 이 환난은 그들만이 아니라 복음을 전수받고 믿기 시작한 성도들에게도 닥치는 것이다.

따라서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은 점점 증가하는 박해로 인해 믿음을 버릴 소지가 다분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믿는 이들에게는 필연적으로 환난이 따르며, 그러한 환난을 믿음과 인내로 극복해야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가르쳐 그들로 하여금 믿음에 굳게 서도록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는 '데이'(dei)라는 단어가 쓰였는데, 이것은 '~해야 한다'(must)라는 필연성을 나타내는 동사이다. 즉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는 것이 필연적인 일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런데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 바오로 당시의 성도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만이 아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자 하는 모든 세대의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 세상은 하느님의 원수인 마귀들이 공중을 다스리는 지배자들로서, 지금도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불신자들안에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에페2,1참 조).

따라서 세상의 풍조에 따라살면서 악한 영들의 지배를 받고 있는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을 미워하기 때문에, 성도들은 그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환난을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성도들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때 이상하게 여기거나 환난 때문에 신앙을 저버려서는 안된다.

 

만약 우리가 환난이 두려워 신앙을 버린다면, 하느님의 나라에는 결코 들어갈 수 없다.

로마서 8장 17절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라고 계시한다.

또한 로마서 8장 18절에서는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계시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때문에 환난을 당할 때, 우리를 위해 대신 수고 수난하신 주님의 십자가상 고난과 장차 주어질 놀라운 천상 영광을 바라보며, 더욱 믿음을 굳게 가져야 한다.

 



 2007년 07월 02일 - 오네시모를 받아 주오.

[백] 부활 제5주일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는 그 나름대로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리를 삶에서 실천하도록 계명을 제시합니다. 그리스도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그리스도교의 계명은 “사랑하여라!”로 요약됩니다.

그런데 이 계명의 목적어가 구약과 신약이 조금씩 다르고, 또 신약에서도 공관 복음과 요한복음이 서로 다릅니다.

 

먼저, 구약에서는 대표적인 목적어가 “주 하느님”으로 되어 있습니다.

유다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쉐마 이스라엘’(이스라엘아, 들어라.)에서 이것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5).

 

공관 복음을 보면 신약의 예수님께서도, 구약의 전통 안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가는 계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계명에 레위기 19장 18절에서 발견되는 이웃 사랑에 대한 계명을 덧붙여 ‘사랑하여라!’는 계명의 목적어를 이중으로, 곧 하느님과 이웃으로 밝혀 놓았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 사랑의 이중 계명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예수님께서 주신 새롭고 유일한 계명이 “서로 사랑하여라.”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어지는 요한복음 15장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서로 사랑하여라”(15,12.17).

따라서 적어도 요한복음에서 ‘사랑하여라!’는 계명의 목적어가 분명히 하느님에게서 사람에게 옮겨 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사랑이 한쪽의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라, 서로 간의 사랑이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단 하나의 계명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은 ‘서로’라는 낱말에 주목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첫째 편지가 들려주는 다음의 말씀도 함께 기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1요한 4,12).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2007년 07월 02일 - 오네시모를 받아 주오.

 

 [부활 제5주일]

 

하느님께서 *믿음의 문을 열어 주셨다.

 

2독서(묵시21,1-5)나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 첫 창조가 새 창조로 완성된 하느님나라다.

 

(창세1,1-2) 1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2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3 그때에 나는 어좌에서 울려오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보라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5 그리고 어좌에 앉아 계신 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 첫 창조를 새 창조로, 하느님께서 손수 완성하신 새롭게 하신 일이다. 우리의 구원의 상태로 하느님나라의 완성이다.

 

(갈라6,15) 15 사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옛것은 지나갔습니다보십시오새것이 되었습니다. (~아멘)

 

오늘은 다른 분의 글로 배우고자 편집해서 올립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 구원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해 주는 것이 성령이라면 분량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단순히 구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성경이 주어진 것이라면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구원 받는 것“ 이라는 몇마디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창세기부터 요한 묵시록까지 그 긴 기록이 필요합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택하셔서 예수님을 믿게 하셔야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로마8,28-30)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29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로마9,11-16) 11 두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그들이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하느님께서는 당신 선택의 뜻을 지속시키시려고, 12 또 그것이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부르시는 당신께 달려 있음을 드러내시려고,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 하고 레베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3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나는 야곱을 사랑하고 에사우를 미워하였다.” 14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하느님 쪽이 불의하시다는 것입니까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15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가 자비를 베풀려는 이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정을 베풀려는 이에게 동정을 베푼다.” 16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

 

*구원은 첫 창조를 새 창조로 이루신 것처럼하느님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느님에게서 완성되는 것입니다곧 구원은 설득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그냥 택한 자들에게 거저 주어지는 것입니다.(에페2,8)

성경은 인간들을 구원으로 이끌기 위한 설득의 책도 아니고단순히 인간의 구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놓은 책도 아니다앞에서 확인 했듯이 성경은 시간의 시작인 한 처음에서 시작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의 완성인 최후의 종말에서 끝이 납니다.

새 하늘과 새 땅다른 말로 다시는 타락하거나 배반할 수 없는 하느님 나라의 완성입니다인간의 구원은 그 원대한 하느님의 계획중의 일부일 뿐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완성이 이루어지기 위해 구원 받은 인간이 필요한 것이지 인간의 구원이 하느님나라의 완성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하느님의 백성들을 구원 하셔서 하느님의 일이 완성되는 도구로 쓰시기 위함” 까지를 범위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하느님의 도구로 하느님의 일에 쓰임을 받기 위해서는 하느님이 누구신지를 알고하느님의 계획이 무엇이지를 알아야 하기에 하느님은 당신 백성들에게 믿음이라는 것을 주셔서 당신과 당신의 계획을 계시하시는 것입니다그것이 구원입니다. (믿음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히브12,2)

 

(시편119,138) 138 당신 법을 정의로크나큰 성실로 내려 주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를 보면 믿음의 문을 열어주셨단다.~

(사도14,26-27) 26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티오키아로 갔다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선교 활동을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에 맡겨졌었는데이제 그들이 그 일을 완수한 것이다. 27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교회 신자들을 불러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 성경은 바로 그 하느님의 목적과 계획이 무엇이며, 그 일을 이루시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분의 계획하신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 인간들이 어떤 지경에서 어떻게 구원을 받아야 하는지 기록된 책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관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고 피부에 와 닿는 문제가 우리의 구원이기에, 우리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구원 방법으로 제시된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문제가 확인이 된 성도들’은 거기서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성경이 거기서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한 인간의 구원에서 끝을 맺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들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완성되는 하느님 나라’로 끝을 맺습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성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은혜)으로 ‘하느님의 일에 초청된 자들’로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통하여 무엇을 추구하며 어떤 종류의 열심을 부려야 하는 지를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하느님께서 시간을, 천지를 창조하신 후 역사와 우주를 경륜해 가시는 최종목적은 죄인들의 구원이 아니라, 죄인들의 구원으로 말미암게 되는 하느님나라 완성이라는 것입니다.

 

(에페3,15.18-19) 15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종족이 아버지에게서 이름(생명의 존재)을 받습니다. 18 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하느님 사랑의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19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복음(요한13,31-35)

31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 독립투사로 민족을 사랑했던 가리옷유다, 가난한 사람을 생각할 줄 알았던 유다. 그 자신의 뜻, 의, 명예를 위해 예수님을 따랐던 유다가 나간 뒤에 하신 말씀이다.

 

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 영광(독사), 하느님의 신성과 본성인 그 사랑은 피의 새 계약인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에서 드러난다.

 

33 얘들아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너희는 나를 찾을 터인데내가 유다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이제 너희에게도 말한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34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서로 사랑하여라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새 계명으로 서로 사랑하면 예수님이 계신 곳, 하느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말씀이시다. 계명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확인했고, 공부했다.

그러니까 새 계명은, 하느님의 모든 계명을 온전히 다 지킬 수 없어 영원한 죽음에 갇힐 수 밖에 없는 하느님의 백성, 자녀들을 구하시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죽으신, 그 그리스도의 피의 새 계약’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십자가의 복음, 그 사랑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여 살면서 이웃과 서로 그 사랑의 말씀을 나누면, 곧 구원의 진리로 전하면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피의 새 계약’이 빠진 사랑은 유다 처럼 사람의 죄를 없애지 못할 뿐더러, 신앙의 최종 목적인 하느님나라를 이루는 하느님의 의(義), 거룩, 영광을 드러내지 못한다.

 

모든 것을 깨닫고 기억하게믿게 하시는 믿음의 영이신(요한14,26)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오늘 말씀을 통해 믿음의 문이 열렸으니 믿음이 자라나게 하소서그 믿음의 실체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성도의 삶을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내버려두지 마소서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5)

 정 세라피아 수녀


옛날에 어머니 말을 무척이나 듣지 않는 청개구리가 있었습니다. 어머니 청개구리는 아들 때문에 너무도 상심하여 급기야 병이 들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어머니는 아들을 불러 "내가 죽고 나면 냇가에 묻어 다오." 하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늘 거꾸로만 하던 아들 청개구리라 그랬던 것이지요.

그런데 아들 청개구리는 어머니의 마지막 부탁이라 말씀대로 냇가에 묻었습니다. 그래서 청개구리는 비만 오면 무덤이 떠내려갈까 봐 '개굴개굴' 우는 것이랍니다. 

너무도 잘 아는 '효'에 관한 우리나라의 설화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길어온 이야기 또 하나. 

온몸에 심한 화상을 입은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키울 수 없어서 고아원에 맡겼습니다. 고아원에서 서럽게 자란 아들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자수성가를 했답니다. 혼자 시골에서 근근이 생활하던 아버지는 아들이 보고 싶어서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를 구박했고, 화상으로 일그러진 아버지를 창피해 했습니다. 외롭게 살던 아버지가 위독하게 되어 동네 사람들이 아들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아버지의 유언이 있었습니다. "제발 화장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아들은 그 유언마저 뿌리치고 화장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내게 잘해 준 것이 뭐 있다고 때마다 찾아와 벌초하는 수고를 하게 하느냐고. 아버지를 화장한 뒤 아들은 유품을 정리하다가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읽으면서 어릴 적 자신의 불장난으로 집에 불이 났고, 아버지가 자신을 껴안고 나오면서 화상을 입었다는 것, 아버지한테는 아내를 구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되었으며 화상을 입은 아버지가 자신을 키울 수 없어 고아원에 맡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통곡했습니다. 아버지를 평생 원망한 것도 모자라 유언도 듣지 않은 때 늦은 후회! 아버지는 뜨거운 것이 싫었습니다.
청개구리는 늦게라도 유언의 참뜻을 깨닫고 무덤을 옮길 수 있었지만 이 아들의 아버지는 이미 재가 되어 사라졌기에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압니다. 온 세상이 다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이야기는 바로 오늘의 복음으로, 수난과 죽음을 앞둔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후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5)고 당부하신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제대로 사랑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창세 2,23)고 기뻐하던 아담은 금지된 나무 열매를 먹고는 그 책임을 여자에게 돌리고, 그 아들 카인은 동생을 죽이는, 사랑의 역사라기보다는 죄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의 대주제는 여전히 죄와 전쟁으로 점철된 역사 위에, 그리고 역사 속에 면면히 흐르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인류에 대한 사랑을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배신만 하는 이스라엘을 두고도 하느님의 외침은 이러했습니다. "에프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내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저버리겠느냐?"(호세 11,8) 인간에 대한 이런 하느님의 사랑은 예수님을 통해 확실히 드러났습니다. 

사랑을 수없이 말하지만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는 우리에게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떠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요한 13,34) 그렇게 사랑하라고....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희로애락을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들을 어떻게 돌보고 인내하고 가꾸셨는지를 살아 계실 때는 채 깨닫지 못했지만 돌아가신 뒤에 깨달았습니다. 스승님이 그들을 사랑한 것처럼 그렇게 사랑하라는 소명을….
그분은 무지하고 말귀 못 알아듣는 그들을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분은 성가시게 구는 군중들에게 친절하셨습니다.
그분은 더 많이 배우고 가진 것이 많은 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시기하지 않고 마귀를 쫓아내고 병을 고쳐주면서도 뽐내지 않았으며 보잘것없는 사람들한테도 무례하지 않았습니다.
오천 명의 배고픔을 채워주시면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으며 겟세마니에서 죽도록 힘들 때 함께 기도하지 않은 제자들에게 성내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에게 앙심을 품지 않았습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일을 기뻐하지 않았고, 철부지 어린이 같은 이들에게 드러내시는 하느님의 일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분은 간음한 여인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 당신의 죽음 앞에 도망갈 제자들을 믿고 그들이 당신의 길을 따르리라 바라며 유언을 남기고 모든 수난을 견디어 냈습니다.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3장에 비추어 볼 때 예수님 방식대로 사랑하는 것은 이러했습니다. 

유언의 뜻을 파악하지 못하고 내 방식대로 하다가 나중에 통곡하는 일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20250518일 일요일

[부활 제5주일] (김동희 모세 신부)

 

오늘 복음의 핵심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라는 새 계명에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계명을 당신 공생활 초기에 주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구원의 길에서 만난 이들에게 사랑의 계명에 앞서 사랑을 먼저 건네셨습니다. 계명은 구원하시는 사랑에 뒤이어 주어집니다.

그런데 이것은 정말 새 계명일까요?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말씀은, 이미 구약의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18)라는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 말씀이 새로운 계명이 되는 까닭은,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을 덧붙이셨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늦게야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사랑은 단순한 계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명령한다고 해서 지켜질 수 있는 의무가 아닙니다.

사랑은 우리가 받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솟구치고 흘러넘치는 구원받은 존재의 숨결입니다.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와서 세례를 받고 교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그분의 사랑을 만났습니다.

부모님과 가족들, 많은 선생님, 삶의 여러 길목에서 나를 격려하며 일으켜 주었던 고마운 은인들에게서 받은 수많은 사랑에 먼저 눈떠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모두를 기억의 창고에 저장하여 흘러넘치게 합시다. 신앙인으로 잘 살려면 잘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사랑받았음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성모님처럼 두고두고 간직하며 마음 깊이 간직합시다.

 

(김동희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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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 5 주일; Eucaristia (뜻: 감사, 성체, 미사)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가지신 주인이십니다.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나왔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아버지는 아들에게 모든 것을 주십니다.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아버지께서 보내신 성령님께서 당신 위에 내리시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아들은 다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당신을 낮추시고 아버지를 높이십니다. 이것은 자신의 뜻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돌아가시는 모습입니다. 이 때 당신의 영을 아버지께 돌려드립니다. 이것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다시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시는데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아버지는 실상 아들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주시는 분이시라 아들에게 굳이 감사할 것이 없을 것 같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당신의 모든 것을 받아주기 때문에 아드님을 사랑하십니다. 나의 사랑을 베풀어 줄 상대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 상대에게 감사한 것입니다.


이태석 신부님께서 당신 사랑을 받아주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당신 모든 생명을 불사르셨듯이, 아버지께서도 당신 모든 것을 받아주고 당신을 영광스럽게 하는 아드님을 위해 당신 모든 것인 ‘영광’을 아드님께 주시는 것입니다. 

이 영광이 당신 생명이요 성령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기 위해 당신 생명을 바치셨다면 아버지께서도 아드님을 영광스럽게 하시기 위해 당신 생명을 바치시는 것입니다.

공놀이로 생각하면 쉬울 것입니다. 탁구나 테니스를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고가는 공이 없다면 두 사람은 굳이 탁구대나 테니스장에서 함께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서로 공을 상대방에게 보내면서 그 오고가는 공에 집중하며 둘이 하나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렇게 주고받는 끊임없는 움직임입니다. 만약 한 사람이 공을 받아치기를 그만둔다면 공은 땅에 떨어지고 그 공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있던 그들은 다시 관계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사랑은 추억이 아닙니다. 사랑은 현재상황입니다. 사랑은 현재 이 시간에 주고받는 ‘대화’와 같은 것입니다. 

이태석 신부님도 결코 주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당신 존재의 이유를 받게 되신 것처럼 사랑은 절대로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서로 주고받는 것이 ‘성령님’이고 생명이고 특별히 ‘감사’가 될 때 참 사랑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아버지와 한 사랑을 똑같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과 아버지간의 오고가는 사랑이 우리 각자에게서도 이루어져야 비로소 그리스도를 닮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똑같이 되지 않으면 그분의 아버지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대화를 하시기 위해서 말을 거셨고 우리는 감사와 순종으로 응답해 드려야합니다.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방법은 항상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는 것과 삶으로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빵을 나누어 주시기 전에 특별히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서도 적은 양의 음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오천 명이 앞에 있는데 단 두 명이 먹을 음식을 가지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니 그 음식이 모든 사람을 배부르게 먹이고도 남을 정도로 불어났습니다.

이 행위를 규칙적으로 하도록 예수님도 우리에게 예식으로 정해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미사입니다. 미사는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서 하느님께 제물을 봉헌하고 하느님께서는 그 제물을 우리에게 생명의 빵과 구원의 음료로 되돌려주시는 것입니다.

제대를 사이에 두고 감사와 봉헌과 은총이 서로 왔다갔다 거리면서 하느님과 인간이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제대를 통하여 하느님께 감사의 제물과 찬미를 올리고 하느님은 그 제대를 통하여 우리에게 넘치는 은총을 되돌려주십니다. 이 관계가 끊임없이 일어나야 하느님과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미사의 어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희랍어에서 온 것으로 ‘감사’ (Eucaristia)이고 또 하나는 라틴어에서 온 것으로 ‘파견’ (Missa)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새로운 계명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감사만 올리신 것이 아니라 죽기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심으로써 그 감사를 삶으로도 보여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미사 때 감사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도 예수님의 계명을 따름으로써 완전한 응답을 드려야 합니다.

결국 하느님뿐만 아니라 사랑을 실천해야 할, 즉 우리가 모든 것을 주어야 할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감사’한 마음을 지닐 때, 성체성사는 비로소 우리 안에서 완성되게 됩니다.


15/05/03 곤지암성당 교중미사 - 부활 제5주일·생명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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