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7월 27일 일요일
[연중 제17주일] 성령을 청하여라 (루카11,1-13)
제1독서<제가 아뢴다고 주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창세18,20-32)
20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원성이 너무나 크고, 그들의 죄악이 너무나 무겁구나.
21 이제 내가 내려가서, 저들 모두가 저지른 짓이 나에게 들려온 그 원성과 같은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보아야겠다.”
22 그 사람들은 거기에서 몸을 돌려 소돔으로 갔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주님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23 아브라함이 다가서서 말씀드렸다. “진정 의인을 죄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24 혹시 그 성읍 안에 의인이 쉰 명 있다면, 그래도 쓸어버리시렵니까? 그 안에 있는 의인 쉰 명 때문에라도 그곳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25 의인을 죄인과 함께 죽이시어 의인이나 죄인이나 똑같이 되게 하시는 것,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온 세상의 심판자께서는 공정을 실천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26 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소돔 성읍 안에서 내가 의인 쉰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들을 보아서 그곳 전체를 용서해 주겠다.”
27 아브라함이 다시 말씀드렸다. “저는 비록 먼지와 재에 지나지 않는 몸이지만,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
28 혹시 의인 쉰 명에서 다섯이 모자란다면, 그 다섯 명 때문에 온 성읍을 파멸시키시렵니까?”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그곳에서 마흔다섯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파멸시키지 않겠다.”
29 아브라함이 또다시 그분께 아뢰었다. “혹시 그곳에서 마흔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마흔 명을 보아서 내가 그 일을 실행하지 않겠다.”
30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아뢴다고 주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혹시 그곳에서 서른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그곳에서 서른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 일을 실행하지 않겠다.”
31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 혹시 그곳에서 스무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스무 명을 보아서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
32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다시 한번 아뢴다고 주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혹시 그곳에서 열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
<화답송>시편138(137),1과 2ㄴ.2ㄱㄷ과 3.6-7ㄱㄴㄷ.7ㄹ-8(◎ 3ㄱ) ◎ 주님, 제가 부르짖던 날, 당신은 응답하셨나이다.
○ 주님, 제 마음 다하여 당신을 찬송하나이다. 제 입의 말씀을 들어 주시기에, 천사들 앞에서 찬미 노래 부르나이다. 거룩한 성전 앞에 엎드리나이다. ◎
○ 당신은 자애롭고 진실하시니, 당신 이름 찬송하나이다. 제가 부르짖던 날, 당신이 응답하시고, 저를 당당하게 세우시니, 제 영혼에 힘이 솟았나이다. ◎
○ 주님은 높이 계셔도 낮은 이를 굽어보시고,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알아보시나이다. 제가 고난의 길을 걷는다 해도, 원수들의 분노 막아 저를 살리시나이다. 당신은 손을 뻗치시나이다. ◎
○ 주님은 오른손으로 저를 구하시나이다.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리라! 주님, 당신 자애는 영원하시옵니다. 당신 손수 빚으신 것들 저버리지 마소서. ◎
제2독서<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셨습니다.>(콜로2,12-14)
12 여러분은 세례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습니다.
13 여러분은 잘못을 저지르고 육의 할례를 받지 않아 죽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분과 함께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복음<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루카11,1-13)
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4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5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연중 제17주일 제1독서 (창세18,20-32)
그 무렵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원성이 너무나 크고, 그들의 죄악이 너무나 무겁구나. 이제 내가 내려가서, 저들 모두가 저지른 짓이 나에게 들려온 그 원성과 같은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 보아야겠다." (20-21)
'원성', '부르짖음'에 해당하는 '자아카트'(zaaqath)는 '소리지르다'(1열왕22,32), '소리를 지르다', '외치다'(1사무28,12)를 뜻하는 '자아크'(zaaq)에서 유래하여 '울부짖는 소리, '외침'(예레27,28)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 단어는 본문에서 하늘을 향한 억울한 사람들의 애절한 호소인 듯이 보인다. 이 단어가 '크다'는 의미를 지닌 '랍바'(rabba)와 함께 쓰여 소돔과 고모라인들의 죄악이 극에 다다랐음을 보여준다(창세4,10참조).
'그들의 죄악이 너무나 무겁구나'
'무겁구나'에 해당하는 '카바드'(habad)는 '무겁다'(2사무14,26), '병들다', '둔하다'(이사39,1)는 뜻으로 죄가 너무 많아 무거워서 움직이기에 둔할 정도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특히 '너무가', '대단히', '매우', '심히'라는 뜻을 가진 '메오드'(meod)가 이 단어와 함께 사용되어 소돔 사람들의 '죄악'(hatatham; '핫타탐')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심각했음을 보여준다.
소돔 성의 멸망은 그 도시에 만연된 죄악상이 이처럼 극에 달하였기 때문인데, 이들은 성적으로 깊은 타락의 늪에 빠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매우 부패해 있었던 것이다.
한편 이러한 소돔은 고모라와 함께 그 이름이 후세 사람들에게 '죄악의 도시'를 대표하는 명칭이 되었고 (이사3,9; 예레23,14; 마태10,15), '소도미아'(sodomia)하면 자연법이면서 동시에 신법을 거스르는 죄인 '동성연애'(Homo Sexuality , Lesbian)를 뜻하게 되었다.
"그들과 같은 식으로 불륜을 저지르고 변태적인 육욕에 빠진 소돔과 고모라와 그 주변 고을들도,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아 본본기가 되었습니다." (유딧1,7)
'이제 내가 내려가서'
'내려가다'로 번역된 '에라다'(eradah)는 '야라드'(yarad)의 1인칭 권유형으로서 '나로 하여금 내려가게 하라'( Let me go down)로 직역할 수 있지만, 그 본래 뉘앙스는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에게 명령하시는 것으로서 하느님의 강한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즉 울부짖는 소리의 원인이 무엇인지 직접 사실을 조사하러 내려가시겠다는 것이다.
'저들 모두가 저지른 짓이'로 번역된 '아수 칼라'(asu kalla)에서, '칼라'(kalla)는 원래 명사로서 '완성', '성취'라는 뜻이 있으며, 부사로 사용될 때는 '완전히', '정녕', '모두'(탈출11,11)라는 뜻을 가진다.
그리고 '저지른 것'으로 번역되는 '아사'(asa)는 '만들다'(탈출20,11; 1열왕15,13), '어떤 일을 하다'(탈출5,9; 느헤4,15)라는 뜻으로서 본문에서는 소돔과 고모라인들이 행한 죄악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의 문자적 의미는 '그들이 완전히 행했는지'이며, 의역하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죄악을 다 저질렀는지'이다.
'나에게 들려온 그 원성과 같은 것인지 아닌지를'
'나에게 들려온'에 해당하는 '합바아 엘라이'(habbaa ellai)에서 '들려온'으로 번역된 '합바아'는 직역하면 '온'(which has come)이다.
사실 부르짖음에 대해서 '듣다'라는 동사 '샤마'(shama)가 더 어울리지만, 굳이 여기서 '오다'라는 뜻이 있는 '뽀'(bo)가 사용된 것은, 하느님께서 부르짖는 소리만 듣는 것이 아니라 부르짖으며 다가오고 있는 인격체 전체의 모습을 자세히 살피신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세상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을 살피시며, 당신의 공의에 따라 역사를 진행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알아 보아야 겠다'
'알아 보아야겠다'에 해당하는 '야다'(yada)에는 철저히 조사하여 정확한 실상을 파악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본문은 하느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에 대하여 결국 그들이 회개하지 않을 때는 심판을 통해 멸망시키겠다는 것과 동시에 하느님은 인간의 죄를 피상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조사하심은 물론 반드시 결산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연중 제17주일] 오늘의 묵상 (김인호 루카 신부)
신학생 시절, 성체 조배를 할 때 자주 분심이 들었던 저는 주위의 동료들을 보면서 그들에 대한 부러움과 기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저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보니 참으로 부끄러워했어야 하는 점은, 그 당시 어느 누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청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오늘 제자들은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 내용과 함께 그 자세까지도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안에서 “아버지”라는 호칭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군더더기도 없이 “아버지”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부르실 때 사용한 이 호칭은 아들과 아버지의 친밀하고 특별한 관계를 말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이 호칭으로 하느님을 부르라 하십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라고 말씀하시며 성모님을 어머니로 소개하신 것처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당신께서 하느님과 맺고 있는 친밀하고 특별한 관계, 곧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초대하십니다.
아버지와 나누는 친밀함은 기도의 핵심이며 목표입니다.
‘아버지’라는 호칭 하나만으로 ‘다른 민족 사람들의 빈말’(마태 6,7 참조)이 필요 없습니다.
아울러 ‘아버지’라는 호칭은 아버지와 이루는 관계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한 자녀라는 사실도 알려 줍니다.
서로서로 형제로 대하는 것이 ‘아버지’라는 호칭의 진정성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기도가 더 단순해지고 깊어져야 하겠습니다.
(김인호 루카 신부)
복음(루카11,1-13)
1ㄱ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 어떤 곳, 어떤 사람?- 현세(現世)의 ‘나’, ‘우리’가 되라는 것이다.
1ㄴ“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4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 한 대목, 한 대목씩 풀어보자.
*“아버지” - 우주 만물을 완벽하게 창조하신,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그리고 그렇게 나(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시다.
(야고1,18)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 육(肉)의 창조에서 영(靈)의 자녀로 재창조로 하시는 아버지시다. 진리(眞理)의 말씀으로 곧 진리이신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약속으로, 그분의 십자가(十字架)로 재창조하시는 아버지다.
(히브12,10-11) 10 육신의 아버지들은 자기들의 생각대로 우리를 잠깐 훈육하였지만,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훈육하시어 우리가 당신의 거룩함에 동참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11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다. 그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이다.
*“아버지의 이름(뜻)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 아버지의 이름(뜻)이, 거룩하심을 먼저 아버지께서 드러내 주셔야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성령(聖靈)께서 알려 주시고 깨닫게 해 주신다.
(1코린2,10)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洞察)하십니다.
=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 곳이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 나라는 통치(統治)의 개념이다. 통치는 그 나라의 법으로 이루어진다. 곧 아버지의 나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법이기에 그 말씀에 순종(順從)해야 한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하고 기도 했으니(세례 받았으니) 그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아버지의 말씀을 사는 것이 아닌, 내 말(뜻)을 위해 사는 아버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예수께서 십자가의 대속, 그 죽음으로 아버지의 이름(뜻), 나라를 완성하신 것이다.
(1베드2,9-10) 9 그래서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 분의 “위업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10 여러분은 한때 하느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그분의 백성입니다. 여러분은 자비를 입지 못한 자들이었지만 이제는 자비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로마5,8-11) 8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9 그러므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1 그뿐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 나(우리)는 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생명)의 양식으로 매일 되새겨야(먹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육(죽음)으로 재빨리 돌아간다.
그래서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다. - 매일, 날마다 주시는 독서(牘書)와 복음(福音)을 육의 뜻, 만족을 위해서가 아닌, 영의 생명을 위한 양식으로 묵상(黙想)하고 먹어야 한다. 내 이름, 뜻이 아닌 아버지의 이름, 뜻을 위한 말씀으로, 곧 인간의 지혜가 아닌 하느님의 지혜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고, 그 성령께서 해 주셔야한다고 앞서 묵상하는 것이다.(1코린2,10참조) 그렇게 용서로 재창조가 이루어진다.
(요한5,24)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에페1,7)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1요한2,12) 12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그분의 이름 덕분에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 우리의 인생은, 이 역사는 그리스도로 받는 용서의 역사(歷史)다.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 새 계약인 그리스도의 피, 십자가(十字架)로 너와 나의 모든 죄의 용서가 다 깨끗이 씻겼음을 믿는 것, 그것이 하느님께 받는 용서(容恕)다. 그렇게 하느님의 뜻인 용서가 완성된다.
(1요한1,9-10) 9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인정)하면, 그분은 성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10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 우리 안에 그분의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 율법(제사와 윤리)은 절대 용서를 줄 수 없다. 세상의 계명, 의(義)도 용서를 줄 수 없다. 재물(財物)이 하늘의 용서를 둘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참 같아 보이기에, 그 모든 유혹(誘惑), 악(惡)에 빠지지 않게 기도(祈禱)해야 한다. 성령께서 함께하셔야 가능하다.
(요한16,8)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보내주신 사제의 묵상글로 마무리한다.-
(2코린3,3) “여러분은 분명히 우리의 봉사직으로 마련된 그리스도의 추천서입니다. ”
= 추천서(推薦書)- 이것은 주님께로부터 온 계시(啓示)입니다. 얼마나 멋진 성소(聖召)입니까?
우리 안에 새겨진 성경의 주님의 계시를 그 누구나 읽을 수 있다면, 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들 안에 살아 움직이는 확신에 찬, 주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또 우리 각자가 주님 사랑의 태양으로 빛날 수 있다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써 놓으신 말씀을 이해하게 되고, 우리는 기쁨과 환희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이웃이 내 안에서 지금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요. 나의 행동을 인도하는 것이 주님의 성령(聖靈) 맞습니까?
기도; 나의 예수님, 당신을 닮게 하소서. 이웃을 위해서도 축복하시어 그들도 당신을 닮게 하소서,
5ㄱ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 다시- 주님의 기도를 다시 가르치시려 하신다. 그중 핵심인 ‘일용할 양식’을 말씀하시려는 것이다.
5ㄴ“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 빵 세 개(트레스 알토스-셋 빵) ‘셋 이라는 빵’ 곧 셋(3)이라는 성격의 빵이라는 것이다.
(1요한5,5-8)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 물은 갈증(죄인)으로 목이 타는 이들을 살리는 생명수로 하느님의 말씀을, 피m 하느님의 뜻인 죽을 죄인들을 살리시는 곧 그들의 죄를 씻는 그리스도의 피, 그 새 계약을, 성령은 그 생명수와 새 계약의 말씀, 그 복음을 진리로 죄인들에게 무죄를 증언하시며 구원의 완성을 이루신다. (로마58,1~ 히브10,15~) 하느님나라는 그 셋을 하나로 쉼, 안식이 완성된다. 그것이 하느님 나라의 원리인 양식이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 온 가족이 쉼, 곧 안식에 들어갔으니 일어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 줄곧 졸라대면(아나데이아- 수치, 체면을 버리고 받을 것이 있는 것처럼 뻔뻔스럽게), 기도하면, 그러면 ‘쉼, 안식에 필요한 모든 것의 전부(다)’인 그 셋(3을 줄 것이라는 말씀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 청하여라(아이테오- 빚 갚으세요)- 먼저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니 청하면 반드시 주실 것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약속, 맹세는 구약에서부터 주어졌다.(탈출6,1-8)
* 찾아라(제테오- 껍데기, 겉의 속) - 율법과 말씀 그 문자 속에, 그리고 우주만물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 사랑을 깨닫게 해달라는 것이다.
* 두드려라(낙하- 죽일 목적으로 치다) - 구원의 길, 문이신 예수님, 그분을 표징과 기적, 능력의 주님이 아닌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매 맞으시고 죽으시는 주님, 구원자로 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열릴 것이다. 하늘의 찢어지고, 열리고 생명의 물, 피가 나온다는 말씀이다.
(마르15,37-38) 37 예수님께서는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다. 38 그때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
(요한19,34)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민수20,11) 11 그러고 나서 모세가 손을 들어 지팡이로 그 바위를 두 번 치자(때리자-죽이자), 많은 물이 터져 나왔다. 공동체와 그들의 가축이 물을 마셨다.
= 바위- 예수 그리스도다(1코린10,4참조)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 청하고(아이테오), 찾고(제테오), 두드리면(낙하) 하늘의 지혜로 알아듣게 된다는 말씀이다.
(1코린2,6-10) 6 성숙한 이들 가운데에서는 우리도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 지혜는 이 세상의 것도 아니고 파멸하게 되어 있는 이 세상 우두머리들의 것도 아닙니다. 7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롭고 또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8 이 세상 우두머리들은 아무도 그 지혜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9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 성령의 이끄심을 받으면 생명의 말씀을 인간, 세상의 지혜로 받지 않게 된다. 죽음의 법, 심판의 계명으로 받지 않게 된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참) 대신에 뱀(거짓)을 주겠느냐? 12 달걀(생명)을 청하는데 전갈(죽음)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 기도의 목적은 하느님의 말씀이시며 그리스도의 영, 진리의 성령을 받는 것이다.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야 위의 모든 말씀이 이해되어 믿을 수 있다. 그래서 그 성령으로 땅(세상)의 모든 것에서 자유하게 된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로마8,9-10.16) 9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16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주님께 청하여라, 찾아라, 두드려라 하시며 약속하신 성령님! 오늘도 청하고, 찾고, 두드리니 충만하시어 진리, 구원의 길을 걷도록 이끌어 주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17주일 복음 (루카11,1-13)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르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9~10)
루카 복음사가는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해 11장 5~8절에서 '한밤중에 찾아온 벗의 비유'를 들고, 기도 응답에 대한 보다 분명한 확신을 주기 위해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세로 기도할 때 반드시 응답받으며, 하느님께서 응답하신다는 내용이 기록된 11장 9~13절을 첨가한다.
11장 9절에 '청하여라'로 번역된 '아이테이테'(aiteite; ask)는 아랫 사람이 윗사람에게 청하는 것을 뜻할 때 사용되는 '아이테오'(aiteo)의 현재 명령형이다.
이것은 아들의 신분인 하느님의 자녀가 위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이 동사가 현재 명령법으로 사용되어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청할 것을 강력하게 명령하고 있으며, 또한 능동태로 사용되어 자신이 직접 청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이 단어가 '기도'와 관련해서 많이 사용되었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루카10,13; 마태18,19; 마르11,24).
한편 '주실 것이다'로 번역된 '도테세타이'(dothesetai; it will be given)는 '주다'를 뜻하는 '디도미'(didomi)의 미래 직설법 수동태이다.
희랍어 문법에서 미래 직설법은 미래에 반드시 발생할 어떤 사건에 대한 강한 확신을 뜻하므로, 여기서는 하느님께 청하면 '반드시 응답받는다'는 강한 확신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찾아라'로 번역된 '제테이테'(zeteite; seek)는'발견하기 위해서 애써서 찾는 것'을 의미하는 '제테오'(zeteo)의 현재 명령형이다.
'제테오'(zeteo)는 되찾은 은전의 비유(루카15,8), 되찾은 양의 비유(마태18,12)에도 사용되었고, 하느님을 찾는 데도 자주 사용되었으며 (신명2,29; 이사55,6; 65,1; 사도17,27), 천국의 잔치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묘사할 때에도 사용되었다(루카13,24).
따라서 '찾아라'는 것은 단지 성도 개인에게 필요한 것만을 위해 기도하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축복의 근원이신 하느님 자신을 찾으라는 의미까지도 포함된다.
한편 '얻을 것이다'에 해당하는 '휴레세테'(hyuresete; you will find)는 미래 능동태로서 '너희들이 능동적으로 발견할 것이다'는 뜻이다.
이것은 하느님을 향한 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이 생겨나는 것을 암시한다.
"너희가 나를 찾으면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내가 너희를 만나 주겠다." (예레29,13~14ㄱ)
그리고 '문을 두드려라'로 번역된 '크루에테'(kruete; knock)는 문을 열어주지 않고는 안되게끔 열성을 다해 간절히 두드린다는 의미를 가진 '크루오'(kruo)의 현재 명령형이다.
이렇게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면, 우리가 구하는 실제 내용이 하느님께 상달되어 문제에 대한 해결의 문을 하느님께서 반드시 확실하게 열어 주신다는 것이다.
'열릴 것이다'에 해당하는 '아노이케세타이'(anoigesetai; will be opened)는 '열다'를 뜻하는 '아노이고'(anoigo)의 미래 직설법 수동태이다.
이것은 멀지 않은 장래에 반드시 열릴 것이라는 확신을 불어넣어 주고, 또한 수동태로서 그 응답의 비결이 바로 하느님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루카 복음 11장 9절의 '청하여라', '찾아라', '두드려라'는 점점 적극성을 띠는 자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이같은 집요함과 끈질긴 인내, 그리고 열성이 담긴 기도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하여 루카 복음 11장 10절에서는 11장 9절의 이유를 밝히는 접속사 '가르'(gar; for; 왜냐하면)로 시작하여 왜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설명해준다.
11장 10절의 원문은 모두 동사가 현재 직설법으로 사용되어, 하느님의 기도의 응답이 먼 미래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일이라는 것을 생동감있고 실감나게 표현해 주고 있다.
2025년 07월 27일 일요일
[연중 제17주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어떤 제자가 예수님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루카 11,1)라고 청합니다.
보통 우리는 기도하는 것을 배운다면 그 방법을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방법이 아니라 내용을 알려 주십니다. 그러면서 “아버지”(11,2)라고 시작하게 하십니다.
아버지라는 말은 그 자체로 관계를 포함합니다. 자녀가 있어야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버지”라고 기도할 때 우리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우리는 자녀입니다.
또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우리는 그분을 똑같은 칭호로 부르신 예수님과 하나가 되고,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셨기에, 사형 선고를 당하시는 것도 마다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관계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름으로써 우리 자신의 부모님을 떠올리고, 하느님을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가까이 계신 분으로, 또 사랑이신 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녀를 위하여 그 무엇도 아끼지 않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 가운데 하느님의 사랑에 가장 가깝습니다.
기도에 관한 오늘 복음 속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 사랑의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아버지로 시작해서, 또 다른 사랑의 관계인 친구 사이에 관하여 말씀하시고,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행동을 이야기하시며 마치십니다.
기도는 아버지와 이루는 관계입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과 예수님을 알고 그분과 일치하게 됩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
[연중 제17주일]
“祈禱 자차체가 生命, 救援이다. ”
복음(루카11,2-13)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4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 ‘일용할 양식’ (히브)에피우지온- 1꼭 필요한 양식. (아람)마헬- 내일의 양식, 다가올 시대의 양식. 곧 현세의 생존을 위한 양식이 아니다. (마태6,25 31-32참조) 그리고 내일, 곧 구원의 양식인 말씀은 이미 주셨다. 성경이다.
그런데 주신 그 성경 말씀을 선악의 도덕과 윤리, 계명으로 보고 행하려 한다면, 구원의 양식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심판, 죽음의 양식이 될 뿐이다.(이사29,13 로마3,20 티토1,14참조)
그러나 선이 악을 덮어 생명을 주는, 곧 죄인들의 죄를 덮어 살리시기 위해 하느님의 말씀(이름, 뜻, 나라)이 사람의 육신을 입고 오셔서 모든 사람들의 죄로 죽으시고 하늘의 생명을 주신, 그 ‘선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구원의 의(義), 진리, 새 계약으로 깨달아, 먹고 간직해야 구원의 양식이 된다.(요한14,6 에페2,1-6참조)
그러니까 일용 할 양식, 곧 성경 말씀을 하늘의 생명, 구원의 양식으로 먹을 수 있도록, 믿음과 깨달음을 위한 기도를 하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그래서 노후를 위한 윤리의 말씀, 계명이 아닌, 사후,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대속, 그 새 계약의 말씀으로 먹고 간직했을 때, *아버지의 뜻, 이름이 거룩히 드러나는 것이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신 것이며, *모든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거짓 유혹에 빠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히브리 문학법-‘카이즘 구조’다. 일명 ‘샌드위치공법’으로 양 옆에 빵이 있고 가장 중요한 핵심이 가운데 들어있다.
예수님의 청(請)으로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영원한 보호자 성령께서 늘 함께하시며 이끌어 주셔야 내 뜻, 내 나라, 내 이름을 위한 그 ‘빈말기도’가 아닌 아버지의 뜻,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이름을 위한 ‘올바른 기도’를 할 수 있다. 그래야 하늘의 영원한 안식, 생명, 구원이다.
5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 왜 빵이 ‘세(3) 개’만 일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줄곧 졸라대면, ‘아나데이아’ (수치심을 버리고, 체면을 버리고) 내 뜻(소원)을 들어주실 때까지,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말씀이 절대 아니다. 빵세 개만 체면불구하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거짓)을 주겠느냐? 12 달걀(생명)을 청하는데 전갈(죽음)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 '빵 세 개'- 성령 이시다. 올바로 깨닫고, 올바른 기도를 하게 해 주실 보호자시다.
(1요한5,6-8) 6 그분(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 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 *피- 하느님께서 세우신 율법(제사, 윤리), 그 옛 계약. *물- 성자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그 제사(옛 계약)를 완성하시고 주신, 살아있는 새 계약, 그 생명의 말씀(물)이다. *성령께서- 그 새 계약의 말씀을 기도하시며 구원의 진리로 가르치셔서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에게 완성하신다.
(요한14,26)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1코린2,10)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로마8,26) 26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 그러니 일용 할 양식을 올바로 먹고(영원한 안식, 평화, 생명을 위한), 올바른 기도를 하기 위해서, 체면 불구하고 하느님의 영이시며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 직접 매달려야한다.
내 뜻(소원)을 위해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는 묵주기도, 빈말을 되풀이 하는 기도를 할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마태6,7 25. 31-32참조)
또 성모님의 전구를 통해야 기도를 더 잘 들어 주신다면서 주로 묵주기도에 매달려 있다면 우리의 희망, 생명이신 예수님의 기도(요한17,9-11)와 성령님의 탄식의 기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보이는 말씀 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뜻, 구원의 복을 깨닫지 못하니, 보이는 복을 위해 성모님께 매달리게 된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성모님처럼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말씀이 저에게 이루어 지기를 바랍니다.” 거도하게 하소서. 그래서 빵세개, 그 삼위 하느님의; 말씀(뜻)을 깨달아 성모님처럼 삼위 하느님과 하나되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내버려두지 마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