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일] 초대받은 당신 (루카14,1.7-14)

2025. 8. 30. 오전 7: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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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31일 일요일

[연중 제22주일] 초대받은 당신 (루카14,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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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너를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집회3,17-18.20.28-29)

17 얘야, 네 일을 온유하게 처리하여라. 그러면 선물하는 사람보다 네가 더 사랑을 받으리라.

18 네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더욱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

20 정녕 주님의 권능은 크시고 겸손한 이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

28 거만한 자의 재난에는 약이 없으니 악의 잡초가 그 안에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29 현명한 마음은 격언을 되새긴다. 주의 깊은 귀는 지혜로운 이가 바라는 것이다.

 

<화답송>시편68,45ㄱㄷ.6-7ㄱㄴ.10-11(11ㄴㄷ) 하느님, 당신은 가련한 이를 위하여 은혜로이 집을 마련하셨나이다.

의인들은 기뻐하며 춤을 추리라. 하느님 앞에서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너희는 하느님께 노래하여라. 그 이름을 찬송하여라. 그 이름 주님이시다.

고아들의 아버지, 과부들의 보호자, 하느님은 거룩한 거처에 계시네. 하느님은 외로운 이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시고, 사로잡힌 이들을 행복으로 이끄시네.

하느님, 당신은 넉넉한 비를 뿌리시어, 메말랐던 상속의 땅을 일구셨나이다. 당신 백성이 그곳에 살고 있나이다. 하느님, 당신은 가련한 이를 위하여, 은혜로이 마련하셨나이다.

 

2독서<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입니다.>(히브12,18-19.22-24)

18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만져 볼 수 있고 불이 타오르고 짙은 어둠과 폭풍이 일며

19 또 나팔이 울리고 말소리가 들리는 곳이 아닙니다. 그 말소리를 들은 이들은 더 이상 자기들에게 말씀이 내리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22 그러나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23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또 모든 사람의 심판자 하느님께서 계시고,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이 있고,

24 새 계약의 중개자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복음<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14,1.7-14)

1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다.

7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8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9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10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 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11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이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연중 제22주일 제2독서 (히브리12,18-19.22-24ㄱ)

 

"그러나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22)

 

옛 계약을 가졌던 구약의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대하여 품고 있었던 공포감에 대하여 기록한 히브리서 12장 18-21절과는 달리, 히브리서 12장 22-24절에서는 성도에게 부여된 새 계약과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과 가지는 새로운 관계가 언급되고 있다.

 

이처럼 내용이 전환되는 구절의 시작인 본문 즉 '알라 프로셀렐뤼타테'(alla prosellelithate)는 '그러나 여러분이 나아간 곳'(히브12,22) 이라는 뜻으로서, 히브리서 12장 18절의 '우 프로셀렐뤼타테'(u prosellelithate)와 첨예한 대조를 이룬다.

 

옛 계약(구약) 아래에 있는 성도들은 지상에 임재하신 하느님 대전에도 나아가지 못했고, 그 음성을 듣는 것도 두려워했으나(히브12,18), 새 계약(신약) 아래에 있는 성도들은 하늘에 계시는 하느님께도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지금 그리스도인들을 기다리고 있는 영광에 관해 말한다.

그는 지금 자신의 독자들 중에 영육간에 지친 사람들, 피곤한 사람들, 배교의 위험을 안고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이미 목적지에 가까이 이르렀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탁월한 영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그 최후 승리의 자리에서 뒤로 물러서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자신의 독자들이 마라톤 풀코스를 거의 다 달려와서 결승점이 보이는 트랙의 마지막 지점인 직선 코스에 접어들었다고 격려하면서 그들을 기다리는 영광을 기술해 주고 있다.

즉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다시 뒤로 돌아가거나 주저앉지 말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과거 옛 계약(구약) 아래에 있던 백성들은 그렇게 나아가고 싶어도 나아가지 못했던 반면, 새 계약(신약) 아래에 있는 성도들은 하느님 대전에 너무나 손쉽게 나아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 유혹과 피곤함에 넘어져 뒤돌아서 돌아가 버린다면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도성'으로 번역된 '폴레이 테우 존토스'(pollei theu zontos)는 지상의 시나이 산 그리고 지상의 예루살렘과 대조되는 하늘의 시온산, 하늘의 예루살렘에 대한 표현이다.

 

그곳은 계속해서 살아계시는 영원하신 하느님의 성(城)으로서, 바오로가 증거한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갈라4,26) 및 사도 요한이 본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묵시21,2)과 일치한다.

 

여기에서 '도성'에 해당하는 '폴레이'의 원형 '폴리스'(pollis)는 그리스의 도시 국가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그리스의 자유 시민은 '폴리스'에 대해 개인의 절대적인 충성을 바쳤고, 행정과 통치에 관여하였다.

'폴리스'는 아무에 의해서도 지배를 받지 않겠다는 정치적 의지의 독립된 표현이었다.

 

그러나 구약의 희랍어 번역 성경 70인역(LXX)에서는 주로 히브리어 '이르'(yr)의 역어로 나타나며, 이 '이르'는 그리스의 '폴리스'와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구약에서는 모든 요새화된 고지가 '이르'(yr)로 지칭되었다.

즉 이것은 외적이 침입하지 못하는 안전한 곳이라는 의미가 강조되는 단어이다.

 

그 가운데서도 구약 시대에 '이르'(yr)로 지칭되었던 예루살렘은 특별한 곳으로 언급된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선택하신 도성이요(2역대6,38), 하느님의 도성(시편46,5; 48,2), 대왕님의 도읍(시편48,3)이다.

그러나 이 찬란한 명성을 지닌 지상의 예루살렘은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의 그림자였을 뿐이다.

 

새 계약(신약) 아래에 있는 성도가 이른 곳은 그림자가 아닌 실체, 곧 하느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늘의 예루살렘이다.

그곳은 하느님께서 지배하시는 곳이요, 새 계약(신약) 아래에 있는 모든 성도는 하늘의 자랑스러운 시민이었다(필리3,20).

 

'무수한 천사들'로 번역된 '뮈리아신 앙겔론'(myriasin anggellon)은 하늘의 도성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사들이 하느님 대전에 그분을 모시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무수한'으로 번역된 '뮈리아신'(myriasin)의 원형 '뮈리아스'(myrias)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수(an innumerable multitude), 무제한적인 수(an unlimited number)을 의미한다.

 

사도 요한은 그 숫자가 '수백만 수억만'이라 했으며, 그렇게 어마어마한 숫자의 천사가 하늘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찬양하고 있다고 진술했다(묵시5,11,12).

그 많은 무리의 천사들이 날마다 찬양하는 광경을 통해 하늘 예루살렘의 축제의 분위기를 연상할 수 있다.

 

예언자 다니엘도 환시 가운데 천국을 보았는데, 그가 보니 하느님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모시고 선 이가 억만'(다니7,10)이라고 하였다.

이 천사들은 모두 하느님을 시중드는 영이지만, 또한 구원을 상속받게 될 이들인 성도들을 섬기고 봉사하는 일도 한다(히브1,14).

 

 

 


 


[연중 제22주일] 매일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기원후 2세기 무렵의 천문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태양계 모델을 제시합니다. 이른바 천동설입니다.

그리고 약 1400년 뒤에 또 다른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가 프톨레마이오스의 모델을 뒤집습니다.

그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반대로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른바 지동설입니다.

코페르니쿠스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관념을 뒤집으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당신 삶의 중심이 누구인가? 당신인가 아니면 하느님인가?’

또는 ‘당신은 다른 이들을 다스리며 살아가는가, 아니면 당신이 하느님의 다스림 아래에 살고 싶은가?’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를 따르는 이들은 “내가 우주의 중심이다.”라고 말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고자 합니다.

자신은 선하고 자신의 판단은 올바르다고 여기며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합니다.

반면 코페르니쿠스의 모델을 따르는 이들은 이와 정반대로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우주의 중심’이시고, ‘예수님께서 나의 중심’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우리 삶의 식탁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모시고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분의 자리는 끝자리입니다.

그곳이 바로 하느님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곳에서 하느님의 양식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을 만나며 하느님과 같은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고 살게 되기를 기도합시다.

오늘 복음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말은 “초대(招待)”라는 단어입니다.

무려 아홉 번이나 되풀이됩니다. 이 단어의 성경 원어는 ‘칼레오’, 곧 ‘부르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부름받은’ 이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첫자리가 아니라 끝자리로 부르셨음을 기억합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22주일 복음 (루카14,1.7-14)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13~14)

 

루카 복음 14장 13절에서 '장애인들'과 '다리저는 이들'로 번역된 '아나페이루스'(anapeirus; the crippled; the maimed)와 '콜루스'(cholus; the lame)는 원래 둘 다 동일하게 '절름발이'를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 두 단어를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다.

먼저 '아나페로스'(anaperos)는 신체의 일부분이 잘려 나갔거나 그 기능이 완전히 정지된 '불구자'를 가리킨다면, '콜루스'(cholus)는 신체의 일부분의 기능이 불완전한 것을 가리킨다.

 

한글 새 성경은 이러한 장애의 정도의 차이를 '장애인들'과 '다리저는 이들'로 번역하여 구분했다.

 

이들은 신체 장애로 말미암아 가난할 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 대접을 받아도 아무 것도 갚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는 경제적인 무능력자들이었다.

 

오직 여기서만 나타나고 있는 가난한 이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대접하라는 명령은, 자비를 베풀 때 대가를 바라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은 루카 복음서 전체에 나타나고 있는 여자와 어린이와 죄인 및 이방인을 비롯한 가난한 이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로서의 소외된 자들에 대한 루카의 관심이 반영되어 있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루카 복음 14장 14절의 의인들이 부활하는 시기는 직접적으로 '보답을 받을'('갚음을 받을'; '안타포도테세타이'; antapodothesetai; will be recompensed; will be repaid) 시기를 가리키며, 또한 '행복할'('마카리오스 에세'; makarios ese; you will be blessed) 시기를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시간적으로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부활 시기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비록 이 비유가 잔치를 베푼 자에게 주는 비유이지만, 본문의 말씀은 성도들의 모든 삶에 있어서 그 초점이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하느님 나라의 영광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의 보답이 아니라 하느님의 보답을 받는 자가 될 것을 교훈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세에서 아무 것도 보답할 수 없는 자들을 대접하는 것은 마치 보화를 하늘에 쌓아 두는 것과 같은 것이다(마태6,20; 19,21).

 

그리고 여기서 '의인들'은 '악인들'과 대조되는 개념인데, 종말의 날에 부활하여 하느님의 축복과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자들을 가리킨다.

 

 

 

 

20250831일 일요일

[연중 제22주일] (김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에서 드러나는 주제는 겸손보상입니다.

1독서는 격언입니다.

네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더욱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집회 3,18).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야 주님 사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주의 깊은 귀는 지혜로운 이가 바라는 것이다”(3,29).

이는 경청으로 겸손을 표현한 것입니다.

2독서인 히브리서의 저자는 옛 계약보다 새 계약이 우위에 있음을 밝혔습니다(히브 3-10장 참조).

이제 12장은 그 정점에 이릅니다. 옛 계약인 시나이 계약과(탈출 19장 참조) 대조적으로 새 계약은(히브 12,22-24 참조) 영적이며 천상에서 이루어집니다.

새 계약의 중개자이신 예수님을 통한 계약의 장소는 시온산”,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 “천상 예루살렘”(12,22)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므로 유다인들이나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교만을 버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겸손한 마음으로 굳건히 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비유”(루카 14,7)는 지혜가 담긴 문장이라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이 지혜는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14,11)로 요약됩니다.

사회적 계급과 신분에 대한 유다인들의 집착과 바리사이들의 교만을 단죄하시며 경계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분께서는 참된 지혜인 겸손을 지니도록 권고하십니다.

사회적 약자인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14,13)을 잔치에 초대하라고 하십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보상을 바라지 않는 선행과 사랑 실천은 마침내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14,14)라는 말씀에 따라 참된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22주일]

 

招待를 받거든 끝자리에 앉아라.

 

복음(루카14,1.7-14)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다. 7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8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9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 할지도 모른다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10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여보게더 앞 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 올라앉게 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그러나 예수님은 꼭 그렇게 될 것을 전재로 하신 말씀이다.

 

11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 요점은 높아짐은 자신이 아니라 ‘남이 해준다.’에 있다. 그리고 사람 위에 ‘높아지기 위한 낮아짐’은 결국 높아지기 위한 것인데, 그런 계산된 낮아짐을 말씀하셨을까? 그리고 사람의 높아짐은 ‘헛되고 헛되다’ 하신 것을? 아니다. 그 높아짐과 낮아짐은 그런 말씀이 아니다. 혼인잔치의 비유임을 놓치면 안 된다.

그러니까 혼인잔치의 주인공, 곧 윗자리의 주인이신 우리의 신랑과 한 몸이 되기 위한 낮아짐을 말씀하신 것이다. 참으로 지극히 높으신 분,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기 위한 낮아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랬을 때, 높으신 분 안에서 높아지는 것이다.

초대해 주신 하느님께서 윗자리의 아들 그리스도와 혼인 시키심으로 높여 주신다. 꼭, 반드시.(2독서 참조)

불이 타오르고 짙은 어둠과 폭풍이 일며, 또 심판의 나팔이 울리고 말소리가 들리는 곳이 아닌,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 곧 그리스도 안에 높아진 이들의 모임이 있는 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낮아짐으로 높아짐의 현실이 되는 것이다.

 

강아지(犬)의 자리까지 낮아져 예수님의 칭찬을 받은 여인이 있다. ~

(마태15,26-28)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여자가 “주님그렇습니다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아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네가 바라는 대로  것이다.” 바로  시간에  여자의 딸이 나았다

 

(루가17,9-10) 9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해야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 자기 의로움으로 챙겨 높아지지 말라는 말씀이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 앞에 없음이다. 흙의 티끌인 무일 뿐이다. 그것을 인정하기 위한 것이 신앙 생활이다.(코헬3,18참조)

 

12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이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장애인들다리저는 이들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 인간은 왜, 하느님께 받는 영광, 칭찬보다 사라질 것임을 알면서도 사람들에게 받는 영광, 칭찬을 더 좋아할까? 어리석기 때문이다. 곧 강아지보다, 쓸모없는 종보다, 더 추악한 죄인이기 때문이다. 뱀의 유혹을 먹고 모두 하느님처럼의 자리에 앉아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사는 뱀의 후손, 아담들이기 때문이다.

 

제사와 윤리로 의롭게 산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요한8,43-44) 43 어찌하여 너희는  이야기를 깨닫지 못하느냐너희가  말을 들을  모르기 때문이다. 44 너희는 너희 아비인 악마에게서 났고너희 아비의 욕망대로 하기를 원한다그는 처음부터 살인자로서진리 편에   적이 없다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그가 거짓을 말할 때에는 본성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그가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기 때문이다

= 뱀의 본성을 먹고 거짓이, 악이 본성이 된 우리의 마음이다.

 

(히브9,14 10,22) 9,14 (그러나영원한 영을 통하여  없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죽음의 행실에서 얼마나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있겠습니까?  10,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아멘

 

☨ 우리의 깨어있음이 되어주시는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가 사람들 위에 높아지기 위한 낮아짐이 아니라지극히 높으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기 위한 낮아짐으로 하늘의 안식평화가 현실이 되는 신앙을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흙인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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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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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십자가 현양 축일] 人子도 들어 올려져야(요한3,13-17)25.09.12조회 27[연중 제23주일] 제 십자가(十字架) (루카14,25-33)25.09.05조회 21[연중 제22주일] 초대받은 당신 (루카14,1.7-14)25.08.30조회 17[연중 제21주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루카13,22-30)25.08.22조회 29[연중 제20주일] 나는 분열(分裂)을 일으키러 왔다. (루카12,49-53)25.08.15조회 65[연중 제19주일] 준비하고 있어라 (루카12,32-48)25.08.09조회 51[연중 제18주일] 탐욕(貪慾)을 경계하여라 (루카12,13-21)25.08.02조회 24[연중 제17주일] 성령을 청하여라 (루카11,1-13)25.07.25조회 17[연중 제16주일] 좋은 몫 (루카10,38-42)25.07.19조회 20[연중 제15주일] 누가 나의 이웃이냐? (루카10,25-37)25.07.11조회 16[연중 제14주일] 이름이 하늘에 기록 (루카10,1-12.17-20)25.07.05조회 41[베드로와 바오로 사도 축일]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 (마태16,13-19)25.06.27조회 11[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오병이어(五餠二魚) (루카9,11ㄴ-17)25.06.21조회 14[삼위일체 대축일]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요한16,12-15)25.06.14조회 11[성령 강림 대축일] 성령을 받아라. (요한20,19-23)25.06.06조회 49[주님 승천 대축일]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 (루카24,46-53)25.05.30조회 11[부활 제6주일] 성령께서 기억하게 (요한14,23ㄴ-29)25.05.25조회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