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14일 일요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人子도 들어 올려져야(요한3,13-17)
제1독서<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민수21,4ㄴ-9)
4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5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6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
7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청하였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을 우리에게서 치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8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9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화답송>시편78,1-2.34-35.36-37.38(◎7ㄴ) ◎ 하느님의 업적을 잊지 마라.
○ 내 백성아, 나의 가르침을 들어라. 내 입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내가 입을 열어 격언을, 예로부터 내려오는 금언을 말하리라. ◎
○ 죽이시던 그때서야 그들은 하느님을 찾고, 그분께 다시 돌아와, 하느님이 그들의 바위이심을 기억하였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이 그들의 구원자이심을. ◎
○ 그 입으로 그분을 속이고, 혀로는 그분께 거짓말을 하였네. 그분께 마음을 굳건히 두지 않고, 그분 계약에 충실하지 않았네. ◎
○ 그분은 자비로우시어,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멸망시키지 않으셨네. 당신 분노를 거듭 돌이키시고, 결코 진노를 터뜨리지 않으셨네. ◎
제2독서<하느님께서 그분을 드높이 올리셨습니다.>(필리2,6-11)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6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8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11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복음<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요한3,13-17)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9월 14일 금요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민수21,4ㄴ-9)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5)
'에게'로 번역된 전치사 '뻬'(be)는 '~안에' 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을 향하여', '~을 대항하여'(against) 란 뜻을 가진다. 그리고 '불평하였다'로 번역된 '예답베르'(yedabber)의 기본형인 '따바르'(dabar)는 '말하다' 란 뜻을 기본적으로 갖는 동사이다. 따라서 직역하면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을 대항하여 그리고 모세를 대항하여 말했다' 가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칠고 험한 광야길로 인해, 그리고 물도 없고 식물도 없음으로 인해 하느님을 대항하는 죄를 범한 것이다. 결국 장래에 대한 희망과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기 못했던 그들은 결국 광야길을 견디지 못하게 되었고, 그들의 마음은 마침내 하느님을 적대하고 원망하는 죄를 범하게 된 것이다.
'이 보잘것없는 양식도 이제 진저리가 나오.'
먼저 '보잘것없는' 에 해당하는 '켈로켈'(qelloqel ; light)이란 형용사의 어근은 '가벼운', '가치없는', '만족스럽지 못한' 이란 의미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 단어와 같은 어근의 동사 '칼랄'(quallal)의 사역형이 '~을 경멸하여 하찮게 여기다' 라는 뜻이 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2사무19,44 ; 이사8,23 ; 에제22,7)
따라서 '이 보잘것없는 양식'(ballehem haqqelloqel ; 빨레헴 학켈로켈) 이란 '가치없는 음식', '하찮은 음식' 이란 뜻이며, 전통적으로는 '곡식 대신으로 쓰이는 구황(救荒)식량이나 맛없는 음식'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러나 여기서 '보잘것없는 양식' 이란 특별히 '만나'를 지칭한다.(탈출16,31)
그리고 '이제 진저리가 나오'로 번역된 '카차'(qatsa)의 원형 '쿠츠'(quts)는 '싫어하다', '멀리하다'(잠언3,7), '멸시하다', '미워하다'(1열왕11,25), '역겨워하다', '가증히 여기다'(레위20,23) 등으로 번역되는데, 이 동사는 단순히 싫어하는 정도를 넘어서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며, 나아가서는 그 대상이 없어지고 끊어지기를 바라는 감정적 반응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난 40년간의 광야 생활 동안, 하늘에서 매일 내려 주시는 만나가 이제 싫증이 나고, 싫어지게 되었다고 불평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만나는 출애굽 초기, 굶주림에 허덕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느님께서 직접 내려 주신 것이었다.(탈출16,10)
처음엔 꿀처럼 달았던 만나를 그들은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지만, 약 40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만나' 가 싫어지고 질리게 되었던 것이다.
급기야 이들은 이 양식에 대한 불평을 하게 되었고, 나아가서 양식을 주신 하느님의 존재와 출애굽 자체마저 원망하게 되고 말았다.(민수20,24 ; 신명9,24) 이것은 곧 하느님께 대한 심각한 불신앙이었고,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는 교만한 행위였다.(시편100,4 ; 콜로1,12 ; 1테살5,18 ; 2테살2,13)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뱀들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6)
'불 뱀들을'은 원문에서는 '한네하쉼 핫세라핌'(hannehashim hasseraphim; venomous snakes ; fiery serpents)으로 나온다. '불 뱀들' 이란 단어는 '뱀'을 뜻하는 '네하쉬'(nehash)의 복수형인 '네하쉼'(nehashim)에 '불에 사르다'(민수19,5), '불타 버리다'(1사무30,3) 란 뜻을 지닌 동사 '사라프'(saraph)에서 유래된 명사 '세라핌'(seraphim)이 결합된 것이다
이 뱀들은 당시 이스라엘이 여행하던 광야 지역(특히 아라바 지역)에 많이 서식하던 독사(毒蛇)가운데 한 종류로서(신명8,15) 등에 '불타는 듯한 붉은 반점' 이 있는 뱀을 일컫는다. 이 뱀들은 독성이 강하여 한번 물리게 되면, 그 독이 온몸에 퍼지며 높은 열이 올라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불뱀'이란 이름은 뱀의 모양 뿐만 아니라 그 맹독성을 강조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보내셨다'로 번역된 '와예살라흐'(wayeshallah)는 '살라흐'(shallah)의 강조형에 접속사 '와우'(wau)가 결합된 형태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이나 선물 등을 '보내다' 란 뜻을 지닌 '살라흐'(shallah)가 강조형으로 쓰이면, '놓아 주다', '보내주다'(레위14,53), '풀어주다', '해방하다' 란 의미를 지니게 된다.(이사45,13 ; 즈카9,11) 본문에서는 하느님께서 보호의 손길을 거두시고, 심판을 위해 적대적인 것을 풀어 놓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예레9,16 ; 아모4,10)
하느님께서는 가나안 진입을 위한 남은 여정을 참아내지 못하고, 식물과 물이 없음으로 하느님께 교만하게 대적하여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신다. 아라바 광야에서 서식하던 '불 뱀'들을 보내셔서 물게 하시는데, 이것은 만물의 주인되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이 만드신 피조물을 사용하셔서, 초자연적인 역사를 이루시는 능력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로마11,36참조)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았다' (9ㄴ)
'쳐다보면' 으로 번역된 '웨힙비트'(wehibbit ; when he beheld ; when anyone looked at)는 이사야 예언서 5장30절을 제외하고, 모든 용례에서 본문에서처럼 사역형으로만 사용되는 동사 '나바트'(nabat)에 접속사 '와우'(wau)가 결합된 형태로 쓰였다.
'나바트'(nabat)는 '지켜보다', '바라보다'(탈출33,8), '살피다', '살펴보다'(시편142,5), '바라다 보다'(애가5,1), '바라보다', '앙망하다'(시편34,6) 등으로 번역되는데, 특히 이 동사가 '하느님을 바라보다' 란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시편34,6 ; 이사51,1 ; 22,11) 본문 역시 온전한 믿음과 신앙의 눈으로 하느님만을 바라본다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구리뱀'(네하쉬 한네호셰트; nehash hannehosheth ; the serpent of brass ; the bronze snake)을 달아 놓은 기둥(장대)을 바라보면 살게 될 것이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따라 그것을 바라보는 자는, 불뱀에게 물린 상처와 모든 증상이 말끔히 낫게 되었다.
이처럼 '나바트'(nabat)라는 단어의 의미대로, 그들의 '바라보는' 행위는 하느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이었으며, 이것을 통해 구원의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요한3,16)
즉 본문은 불평불만에 가득찼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느님께로 돌아왔고, 또한 그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였을 때에, 마침내 하느님께서는 진노를 거두시고 백성들과의 관계를 회복하셨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우리도 십자가상의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봄으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음을 알게 해 준다.(콜로2,14.15)
9월 14일 수요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건너가는 두 번의 여정에서(탈출 15,22-18,27; 민수 10,11-21,35 참조) 굶주림과 갈증, 지도자의 권위에 대한 회의, 이민족의 공격으로 자주 불평과 갈등에 빠졌는데, 제1독서는 두 번째 광야 여정의 말미에 있었던 구리 뱀 사건을 전합니다.
에돔 임금이 길을 막자, 왔던 길을 되돌아가게 된 이스라엘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져, 모세와 아론을 탓하고 하느님의 선물인 만나를 “보잘것없는 양식”이라 폄훼하며 불평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시나이 계약을 맺고 계명을 따르기로 맹세한 이 백성이 이토록 쉽게 순명과 믿음의 자세를 버린다면 결코 가나안 땅에서 축복의 삶을 이어 갈 수 없음을 아셨기에, 광야의 불 뱀(독사)을 보내시어 그들을 나무라시며 가르치셨습니다.
다만 백성이 불평과 불신을 멈추고 회개하였을 때에는, 모세가 기둥 위에 달아 놓은 구리 뱀을 쳐다본 이들을 모두 살게 하시어 곧바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교회의 교부들(유스티노, 암브로시오, 아우구스티노)은 구리 뱀을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구리 뱀을 달아맨 기둥을 십자가로 풀이하면서, 이 구원 사건을 주님의 십자가 사건의 예형(豫形)으로 가르쳤습니다.
‘빨리빨리’ 문화와 전자 기기의 즉각적 응답에 익숙해진 오늘날, 하느님의 섭리를 믿고 우리를 위하여 마련하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삶의 태도와,시간과 수고가 필요한 영적 진보가 더 힘들게만 느껴집니다.
일상 속 불 뱀 같은 괴로움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더라도, 자주 시선을 들어 올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사랑과 구원 의지를 바라보며 위로와 확신을 얻는 지혜를 가집시다.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요한 12,32).
(강수원 베드로 신부)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우리의 용서, 구원의 모든 것을 이루신 하느님의 의로우심이 주가 되어야 한다.
복음(요한3,13-17)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 구약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양식, 곧 만나가 있었지만 그 만나는 보 잘 것 없다며, 그 마나 양식은 맛없고 진저리가 난다며 불평하여 죽게 된 죄인들을 위해 모세(중개자)가 간청하여 기도를 드리자 하느님께서 불 뱀을 만들어 기둥에 달아 그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 것이라고 하셨다.
(지혜16,11-12) 11 당신의 말씀을 기억하라고 그들은 이빨에 물렸다가 곧바로 구원되었습니다. 깊은 망각에 빠지지 말고 당신의 선행을 늘 염두에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12 그들을 낫게 해 준 것은 약초나 연고가 아닙니다. 주님, 그것은 모든 사람을 고쳐 주는 당신의 말씀입니다.
= 그러나 그들은 그 후에 그들은 하느님 뜻은 깨닫지 못하고 자신들의 뜻을 위한 기둥으로 향(기도)을 피우며 섬겼다. 그래서 히즈키아는 그 구리 뱀을 조각 내었다.(2열왕18,14)
*그렇듯 오늘날도 하느님의 뜻, 말씀을 보 잘 것 없는 것으로 생각하며 적대하는, 그 죽을 우리 죄인들을 살리시려 한 분, 중개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죄인들의 죄로 대신 십자나무(기둥)에 달리시는 그 하느님의 용서, 그 계약을 이루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1베드2,24) 24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
15 그래서~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영원한 생명, 영생(永生)은 시간적개념이 아니다. (지옥에서도 영원히 산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생은, 거기에 더 이상 손댈 것도 없는, 더 진전될 여백이 없는 아름다움과 완성의 극치, 즉 신적인 성품을 지닌 생명을 ‘영원한 생명’이라고 한다. 영원함이란~ 더 이상 부족한 것이 없는 완전한 극치의 상태를 말한다.
그러니까 영원한 생명이란~ 완성과 완전의 개념이다.
(로마6,22) 22 그런데 이제 여러분이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종이 되어 얻는 소득은 성화로 이끌어 줍니다. 또 그 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 영원한 생명은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으로 주어졌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달려가야 할, 키워가야 할 목적지인 것이다.
그 길, 방법이~
(요한17,2-3) 2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아들에게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을 주셨습니다. 3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 알고, 아는 그 앎이란 완전히 하나, 한 몸이 되는 것을 말한다.
(요한17,21) 21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 예수님은 우리 피조물을 하느님과 하나 되는 그 높은 경지까지 이끌어 가시려는 것이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상대의 모든 것, 인격과 성품에 이르기까지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예수님에 대한 정보, 지식을 아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아는 것이다. 곧 그분의 마음, 성품, 인격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2독서 (필립2,6-8) 6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한 대속이다. 이 이타(異他)의 사랑이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 아는 것이다. 나의 수고, 열심을 의지했던 그 자신을 부인하는, 버리는, 죽이는 그 성화로 십자가의 예수님을 나의 주님, 주인, 머리로, 그분의 지체로 하나 되는 것이다.
그렇게 더 이상 부족한 것이 없는, 완전한 극치의 신적 성품의 영원한 생명을 살도록 계획(계약)하시고 완성하신 하느님께 감사, 영광을 드려야 하는 것이 우리가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다.
☨ 보호자 성령님! 십자가를 바라보며 하느님의 한없는 사랑과 의로우심을 보게 하소서. 하늘을 향해 서 있는 나무(기둥)들을 볼 때도...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9월 14일 주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요한3,13~17)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16)
요한 복음 3장 16절에서 21절까지는 하느님께서 외아들을 보내신 이유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를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란 사실과, 그를 믿지 않는 사람은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구원과 심판에 대한 진리가 선명하게 비교된다.
한마디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밝혀진다. 특별히 이중에서 16절이 외아들을 보내신 하느님의 지극하신 사랑을 가장 잘 드러내므로, 사람들은 '작은 복음' 혹은 '복음서 안에 있는 복음'등으로 부른다.
여기서 '너무나'에 해당하는 '후토스'(hutos; so)는 '이렇게', '이와 같이' 등을 뜻하는 부사로서 하느님께서 세상에 대해 나타내신 사랑의 분량과 정도를 지시하는데, 원문에서는 이 단어가 문장의 서두에 나와 하느님의 사랑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사랑하신'에 해당하는 '에가페센'(egapesen; loved)의 원형은 조건없는 사랑, 영적인 사랑을 뜻하는 '아가페'(agape)의 동사형인 '아가파오'(agapao)이다.
희랍어로 번역된 구약 성경인 70인역(LXX)에서는 사랑을 나타내는 가장 일반적인 히브리어 단어 '아헤브'(aheb)를 거의 다 '아가파오'(agapao)로 번역했다.
히브리어 '아헤브'(aheb)에 나타난 사랑의 강도는 당신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무한한 애정을 말한다.
한편, '세상'으로 번역된 '코스몬'(kosmon; world)은 일차적으로 '인류'를 가리켜 쓰였으나, 특히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얻게 될 성도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러니 구약의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의 대상은 선민 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된다는 고정관념은 예수님의 이러한 선포를 통해서 완전히 무너지는 것이다.
사랑을 본질로 하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상과 유사성으로 만들어진 인간이 당신의 신성(천주성)에 참여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지성으로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자유의지로 그것을 실천하는 계명 준수를 통항 영생의 길이었다. 하지만 아담 안에서 모든 인류가 죄를 지어서 하느님의 신성에 참여하는 길이 막혀 버린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인류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있지만, 본질이 사랑이신지라 죄로 말미암아 상처받은 당신의 거룩하고 공의로운 마음을 풀기 위해서 당신과 위격과 레벨이 같으신 무죄하신 외아들을 사람이 되게 하셔서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인류의 죄를 대속(代贖)하게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뉘우치고(회개) 십자가에서 마지막 피 한방울, 물 한방울을 쏟기까지 자신을 사랑한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사람(믿음)은 누구든지, 성령 안에서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께 갈 수 있는 구원과 영생의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마치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서 존재하시는 분처럼 여겨진다. 그분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행동하고 계심이 예수님께서 천국의 영광스런 옥좌를 버리시고 비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사건, 특히 십자가상 죽음의 사건에서 분명하게 입증되었다.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에 해당하는 '파스 호 피스튜온 엔 아우토'(pas ho pisteuon en auto; whoever believes in him)는 앞선 15절에서도 반복되는데, 여기에 중요한 진리가 담겨져 있다.
새 성경에서 '누구나'로 번역된 '파스'(pas)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지적되는 대상의 종류에 속하는 것을 모두 다 포함하는 '전체', '전부'의 의미이다.
둘째는 지적되는 대상의 각각의 '개체'를 강조한다.
그러니까 이 단어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외없이 구원을 받는다는 보편적인 사실과 더불어, 구원은 개인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중요한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믿는 사람'에 해당하는 '호 피스튜온'(ho pisteuon)에서 '믿는'으로 번역된 '피스튜온'(pisteuon)은 현재 시제이므로 동작의 계속이나 반복을 의미한다.
이것은 구원에 이르는 진실한 믿음은 매일 매 순간 삶의 전과정에서 연속되는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에게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이지, 혹자가 생각하듯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단 한 번의 고백이 영원한 효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세상'이란 말은 '인류 전체'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우리 개개인을 지칭하는 용어라는 것을 밝혀야 한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개인적으로 사랑하시며, 마치 사랑할 사람이 단지 한 사람밖에 없는 것처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이 세상 전체를 사랑하시지만, 그 사랑은 또한 철저히 개별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멸망하지 않고'
'멸망하지'에 해당하는 '아폴레타이'(apoletai; shall perish)는 '아폴뤼미'(apollymi)의 부정(不定) 과거 가정법 중간태이다. 희랍어에서 능동태는 동작 자체를 강조하지만, 중간태는 동작의 주체를 강조하며 동작과 주어를 보다 밀접하게 연결시켜 준다.
말하자면, 이 문구는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이신, 바로 그 하느님의 목적이 잘 함축되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성부 하느님께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믿어서 '아폴레타이'(apoletai)에 이르지 않게 하시려고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아폴뤼미'(apollymi)는 '파괴되다', '멸망하다', '죽는다'는 뜻인데, 희망의 단절과 영원히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지는 것을 나타내며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이들의 처지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2025년 09월 14일 일요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오늘 제1독서에서 약속의 땅을 향하여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가야 하였습니다.
게다가 이 여정은 양식도 물도 부족하고 고생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이 해방의 여정을 후회하고 불평하며 주님을 원망하였고, 주님께서는 이들의 죄에 불 뱀을 보내셨습니다.
이 장면만 보면 우리는 하느님을 벌하시는 분이시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구원하시는 것으로 끝나는 오늘 독서 전체의 틀 안에서 그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불 뱀을 보내시지 않았다면 백성들은 자기들의 죄를 알아차리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불 뱀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죄를 고백하고 통회할 수 있었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하느님께 뱀을 치워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으라고 하시며,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민수 21,8)라고 하셨습니다.
백성들은 뱀이 없어지는 것을 구원으로 여겼지만, 하느님께서는 뱀을 바라보는 것으로 구원을 주셨습니다.
자신의 방식이 아니라 하느님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하느님 말씀에 따라 우리 죄와 그에 따른 결과를 마주할 때 구원을 받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구원자로 보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을 바라보며, 우리는 죄인인 우리 자신의 모습과, 죄에 대한 그 값을 치르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죄인이지만 주님께서 함께하시며 사랑하시는 나를, 또 죄를 지었지만 예수님 안에서 그 값을 치른, 구원된 나를 봅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
[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독서(민수21,4ㄴ-9)
4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 뜻대로 되지 않고 시간만 흐를 때,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루어지지 않을 자신의 뜻을 위한 신앙을 살기 때문이다.
(갈라5,17) 17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 반드시 이루어질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도 않고, 믿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구원)을 위한 신앙을 살 때, 조급(불안)한 마음에서 자유하게 된다.
5ㄱ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 이집트는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지만 영원한 멸망으로 이끄는 세상을 모형하고, 광야는 영원한 약속의 땅으로 건너가야 할 신앙 여정, 우리의 인생 길이다.
5ㄴ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 양식, 물이 있긴 있는데 보 잘 것 없단다. 자신의 입맛에, 곧 자신들의 뜻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주신 만나와 바위를 쳐서 터져 나온 물이다. 하느님께서 주신 만나와 바위(그리스도)를 쳐서, 때려서 나온 물, 곧 내일의 생명인 구원, 영(靈)의 양식이 자신들의 입(뜻)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집트(세상)에서 먹었던, 육신의 뜻, 만족을 위한 육의 힘인 고기와 빵(떡)이 그리웠던 것이다.
그러니까 하늘의 양식(말씀)이 땅의 존재들에게는 맛이 없었던 것이다.
(신명8,3) 3 야훼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 하늘에서 내려주신 만나, 곧 하느님의 말씀을 보잘것없는, 진저리 나는 양식으로 보고, 생각하면 어떻게 되나? 창조 때 받은 하느님의 숨(생명력)이 없어진 먼지로, 곧 죄인으로 뱀의 먹이가 된다.
(창세3,14) 14 주(야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죄인)를 먹으리라.
= 사람(아담)에게 동산의 열매, 곧 하느님의 말씀을 선악의 법으로 먹어, 죄를 짓게 한 일이다.
6ㄱ 그러자 주님(야훼)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셨다.
= 죄를 없애시는 것, 하느님의 정의다.
6ㄴ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
= 말씀을 적대한 죄인이 죽는 것, 하느님의 공의다.(창세2,17)
7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청하였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을 우리에게서 치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 구원자의 중개 기도의 예형이다. 중개자는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1티모2,5)
8 그러자 주님(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 기둥, ‘스타오로스’- 계약- 십자나무. 곧 하느님의 구원의 계약인 십자가, 그 기둥에 달린 뱀을 보면 살게 되는 것이다.
9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 십자가를 쳐다봤다고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곧 뱀의 유혹을 먹고 하느님 처럼의 자리에 앉아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해 살려했던 자신의 교만, 그 죗성을 봐야 한다.
(지혜16,10-12) 10 독사의 이빨도 당신의 자녀들은 꺾지 못하였으니 당신의 *자비가 도우러 내려와 그들을 고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11 당신의 *말씀을 기억하라고 그들은 이빨에 물렸다가 곧바로 구원되었습니다. 깊은 망각(세상에 대한 욕망, 힘)에 빠지지 말고 당신의 선행(십자가의 대속)을 늘 염두에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12 그들을 낫게 해 준 것은 약초나 연고가 아닙니다. 주님, 그것은 모든 사람을 고쳐 주는 당신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의 자비,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셨고, 우리의 죄로 십자가에 달려 대신 죽으심, 곧 세상에 대한 욕망, 그 망각에 빠져 뱀에 물려 죽어있는 우리들을 구하시려는 구원자의 희생, 자비, 사랑을 깨달아 믿어야 한다. 곧 오늘 복음(福音)의 예수님 이시다.
복음(요한3,13-17)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 예수님만이 ‘구원자요 중개자’라 하심이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 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아멘)
= ‘십자가의 그리스도’로 거저 의인이 됨, 믿어지는가? 성령께 의탁 해야 만 믿고, 인내로 마음에 지킬 수 있는 말씀이다.
(묵시3,11-13) 11 내가 곧 간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지켜, 아무도 네 화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여라. 12 승리하는 사람은 내 하느님 성전의 *기둥으로 삼아 다시는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게 하겠다. 그리고 내 하느님의 이름과 내 하느님의 도성, 곧 하늘에서 내 하느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흰돌, 새계약)을 그 사람에게 새겨 주겠다. 13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 말씀을 깨닫고 믿을 수 있도록 영원한 보호자로, 탄식의 기도로 가르치시는, 또한 생명으로 늘 함께 해 주시는 성령님!
주님의 목소리, 한 말씀을 알아듣지 못해 뱀의 유혹, 거짓가르침을 먹고 조급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저희 안에 충만 하소서. 십자가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로, 자유로, 새것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뱀의 선악의 말, 세상 힘의 논리인 말을 이상한 말로 분별할 줄 알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