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6주일] 부자와 라자로 (루카16,19-31)

2025. 9. 26. 오후 12: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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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8일 일요일

[연중 제26주일] 부자와 라자로 (루카16,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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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이제 흥청거림도 끝장나고 말리라.>(아모6,1ㄱㄴ.4-7)

1 “불행하여라, 시온에서 걱정 없이 사는 자들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 놓고 사는 자들!

4 그들은 상아 침상 위에 자리 잡고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양 떼에서 고른 어린양을 잡아먹고 우리에서 가려낸 송아지를 잡아먹는다.

5 수금 소리에 따라 되잖은 노래를 불러 대고 다윗이나 된 듯이 악기들을 만들어 낸다.

6 대접으로 포도주를 퍼마시고 최고급 향유를 몸에 바르면서도 요셉 집안이 망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7 그러므로 이제 그들이 맨 먼저 사로잡혀 끌려가리니 비스듬히 누운 자들의 흥청거림도 끝장나고 말리라.”

 

<화답송>시편146,6-7.8-9.9ㄴㄷ-10ㄱㄴ(1)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주님은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고, 억눌린 이에게 권리를 찾아 주시며,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시네. 주님은 잡힌 이를 풀어 주시네.

주님은 눈먼 이를 보게 하시며, 주님은 꺾인 이를 일으켜 세우시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주님은 이방인을 보살피시네.

주님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나, 악인의 길은 꺾어 버리시네. 주님은 영원히 다스리신다. 시온아, 네 하느님이 대대로 다스리신다.

 

2독서<주님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계명을 지키십시오.>(1티모6,11ㄱㄷ-16)

11 하느님의 사람이여, 의로움과 신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십시오.

12 믿음을 위하여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십시오. 그대는 많은 증인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였을 때에 영원한 생명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13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 그리고 본시오 빌라도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신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그대에게 지시합니다.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나무랄 데 없이 계명을 지키십시오.

15 제때에 그 일을 이루실 분은 복되시며 한 분뿐이신 통치자 임금들의 임금이시며 주님들의 주님이신 분

16 홀로 불사불멸하시며 다가갈 수 없는 빛 속에 사시는 분 어떠한 인간도 뵌 일이 없고 뵐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께 영예와 영원한 권능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복음<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루카16,19-31)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20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21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연중 제26주일 제1독서 (아모6,1ㄱㄴ.4-7)

 

"그들은 상아 침상 위에 자리 잡고,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양 떼에서 고른 어린양을 잡아먹고, 무리에서 가려낸 송아지를 잡아먹는다."  (4)

 

아모스서 6장 4-6절은 이스라엘의 부유층들과 권력자들의 사치스럽고 부패한 생활을 구체적으로 고발하는 내용이다.

 

이들 각 절들을 시작하는 첫 단어는 정관사 '하'(ha)를 수반하는 남성 복수 분사형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표현상의 특징은 세 절 각각에서 묘사하는 모든 내용이 북부 이스라엘의 특별한 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새 성경은 이런 본문의 강조점을 살려 '그들은'이라고 번역하였다.

 

아모스서 6장 4절은 그들의 호화스럽고 타락한 일상 생활을 묘사한다.

본문의 '상아 침상'에서 '침상'에 해당하는 '밋토트'(mittoth)의 원형 '밋타'(mitta)는 본래 '안락의자'나 '침대'모두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그러나 '밋타'(mitta)는 창세기 47장 31절, 사무엘 상권 19장 13절 등 구약의 대부분에서 침대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본문의 침대가 '상아'('셴'; shen; ivory)로 장식된 것을 보면, 일반 가정의 침상이 아니고 고위 관리나 부유층의 집에만 있는 호화스럽운 침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본문에서 '밋토트'(mittoth)는 '자리 잡고'에 해당하는 '쇼케빔'(shokebim)함께  사용되었다.

그런데 '쇼케빔'의 원형 '샤카브'(shakab)는 구약에서 대부분 죽어서 영원히 눕는경우나  남녀간의 부적절한 성관계를 묘사하는 경우에 주로 사용되었다(창세19,33; 54,2).

 

본문의 '상아 침상 위에 자리 잡고'라는 표현도 북부 이스라엘의 부유층 사람들의 사치스런 면모를 반영하는 것일 뿐 아니라 문란하게 성적 관계를 맺는  그들의 퇴폐적인 삶의 면모를 암묵적으로 지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안락 의자'에 해당하는 '아르소탐'(arsotham)의 원형 '에레쉬'(eresh)는 침대보다는 침대 대용으로 사용되는 일종의 쿠션이 달린 커다란 방석이나 의자 위에 놓인 방석으로 볼 수 있다.

'에레쉬'가 시편 6장 7절에서는 슬픔에 찬 시편 기자가 눈물을 흘리는 요로 묘사되었고, 시편 9장 12절에서는 의자 위에 놓은 방석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새 성경에서는 '밋타'(mitta)는 '침상'으로,  '에레쉬'(eresh)는 '안락의자'로 번역하였다.

그런데 본문에서 '에레쉬'(eresh)는 '비스듬히 누워'에 해당하는  '우쎄루힘'(useruhim)과 함께 사용되었다. 이것은 말 그대로 기지개를 켜는 것, 즉 잠에서 깨어 몸을 뒤트는 정도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여기서 분사형, 즉 현재 계속되는 상태를 나타내는 의미를 지닌 표현으로 사용되어 마치 안락한 의자나 쿠션 위에서 지속적으로 하품하고  몸을 오그렸다 폈다를 반복하는 것을 연상케 한다. 이것은 그들이 사치스런 삶을 살 뿐 아니라 게으르고 태만한 삶의 면모를 묘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양 떼에서 고른 어린양을 잡아먹고, 우리에서 가려낸 송아지를 잡아먹는다'

 

이스라엘의 고위층들이 성적으로나 향락적 측면에서 문란하고 사치스러운 삶을 살았다는 상반절에 이어 본문에서는 그들이 고대 근동에서 매우 귀중한 가축이었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쉽게 잡아 먹기 어려운 어린양이나 송아지를 잡아먹었다는 내용을 다룬다.

 

여기서 '잡아 먹고'에 해당하는 '오켈림'(okellim)은 '먹다'라는 의미를 지닌 '아칼'(akal)의 분사형이다.  따라서 이것을 직역하면 '잡아 먹는 자들'이 된다.

이것은 부유한 자들이 특별한 잔치나 행사가 있을 때만 어린양이나 송아지를 잡은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빈번하게 이런 귀한 고기들을 먹었다는 의미이다.

 

또한 그냥 어린양을 잡아 먹고, 송아지를 잡아먹는다고 할 수도 있지만, 어린양은 '양 떼에서'라는 표현이 수식하고, 송아지는 '우리에서'라는 표현이 수식한다.

'양 떼에서'와 '우리에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서 표현에는 모두 '~으로부터'라는 의미의 전치사 '민'(min)이 사용되었다.

이것은 그들이 양 떼 중에서, 그리고 소 우리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것만을 골라서 먹었다는 뉘앙스를 전달한다.

또한 이것은 나아가 그들이 날마다 가축들을 잡아먹어도 될 정도로 수많은 양 떼와 송아지가 있었다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일반 백성들은 아모스서 2장 6절에서처럼, 빚돈 몇 푼이나 신 한 켤레의 빌미로 노예로 팔려 갈 정도의 빈곤한 삶 살았고, 아모스서 5장 11절처럼 농사를 짓는 이들 중에 힘없는 사람들은 과중한 세금과 권력자들이 요구하는 뇌물로 말미암아 그야말로 피폐한 삶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부유한 자들은 가난하고 힘든 자들에게서 쥐어 짜낸 돈으로 수많은 양 떼와 송아지 떼를 사서 키우면서, 값비싼 고기들과 음식들을 날마다 즐기는 호사스러운 삶을 살았던 것이다.

 

'수금 소리에 따라 되잖은 노래를 불러대고, 다윗이나 된 듯이 악기들을 만들어낸다.' (5)

 

'되잖은 노래를 불러대고'에 해당하는 '합포레팀'(haporetim)에서  '헛된','되잖은' 이라는 형용사가 나타내듯이 타락한 부유층들이 날마다 이런 저런 악기를 만들고 즉흥적으로 그것을 연주하며, 아무 의미도 없는 노래를 쓸데없이 주절거리는 상황을 비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구약에서의 노래는 거의 대부분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 하느님의 은혜롭고 놀라우신 역사에 대한 증거와 이에 대한 감사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탈출15,1; 신명31,22; 2사무22,1).

하지만, 본문에서는 예외적인 것으로 그저 순간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특별한 의미나 가치도 없는 노래를 중얼거리듯 부르는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다윗은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악기를 만든 것과는 달리 타락한 부유층들과 집권층들은 자기 자신들의 향락적 여흥을 위해 악기를 만들었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하느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원수들에게 쫓기면서도 하느님을 신뢰하여 찬양했던 다윗의 지극히 신실한 모습과 많은 부와 강성한 군대를 가지고 매우 평화스러운 삶을 살면서도 하느님을 사랑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삶, 매일 매일 쾌락의 노래 가락에 젖어 사는 타락한 북부 이스라엘의 부유층의 모습을 극적으로 대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접으로 포도주를 퍼마시고, 최고급 향유를 몸에 바르면서도,  요셉 집안이 망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6)

 

사치와 향락에 빠져 사는 타락한 부유층의 잘못된 삶에 대해 고발하는 내용 중에 본절은 값비싼 포도주나 기름을 해프게 사용하는 낭비에 대해 지적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포도주는 물처럼 자주 마시는 일종의 음료수였다.

하지만 지나치게 마셔서 만취하게 되면, 포도주도 다른 술처럼 사람의 이성과 신앙을 마비시켜서 죄를 짓게 만든다. 성경은 이것에 대해 경계하는 직설적인 가르침과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잠언20,1; 23,1; 31,4; 창세9,20-25; 창세19,33-35).

 

문제는 여기서 '대접'에 해당하는 '미즈라크'(mizraq)를 성전의 '제사용 대접'(sacrificial bowls)으로 보느냐, 아니면 성전 기물들처럼 매우 귀한 재료인 금이나 은같은 것으로 고급스럽게 만든 잔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느냐 하는 것이다.

 

전자로 본다면, 이것은 단지 주흥을 돋우는 것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그 기물들을 사용하여 섬기는 주님을 향한 경멸과 멸시의 의미를 지녀서 하느님의 신성까지 모독하는 데까지 이르렀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보통 후자로 해석하는데, 이것은 부유층들이 술잔 하나를 사용해도 극도로 사치스런 행태를 보였으며, '미즈라크'(mizraq)가 '뿌리다', '많이 흩트리다' 등의 의미를 지닌 '자라크'(zaraq)에서 유래하여, '대접', '대야', '물동이' 등 많은 양의 액체를 담는 용기를 나타내는 표현이기에, 그만큼 그들이 아예 술에 찌들어 사는 삶, 폭음을 일삼는 방탕한 삶을 사는 것을 나타내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최고급', '귀한'에 해당하는 '레쉬트'(reshith)는 '가장 좋은', '가장 먼저의'라는 의미인데, 이것은 가나안 지역에서 양산되는 일반적인 올리브유가 아니라 값비싼 나르드 향이나 스바 여왕이 솔로몬 임금에게 선물로 가져온 귀한 향료와 같은 것으로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는 극상품 기름을 가리킨다(1열왕10,10).

이런 나르드 향을 몸에 바르는 것은 질병이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몸에 향을 내고 좋은 피부를 가꾸기 위한 것으로서 사치와 향락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끝으로 이처럼 온갖 향략을 누리는 자들이 요셉 집안이 망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질책이 나온다. 여기서 요셉의 환난은 그들과 형제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스런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이것은 그들에게 닥칠 하느님의 심판과 비참한 곤경의 상황을 암시하기도 한다.

 

 


[연중 제26주일]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현세의 부유함과 가난함이 각각 하느님의 축복과 저주의 결과라 믿어 왔던 구약 시대의 이해를 수정하고(19-26절), 회개와 구원의 길이 성경 말씀 안에 있음을 선포합니다(27-31절).

비유 속 라자로는 언뜻 무력하고 수동적인 인물로 보이지만, 그의 이름은(엘아자르: ‘하느님께서 도우신다.’는 뜻) 그가 하느님께 희망을 두며 가난하고 고된 삶을 성실히 살아 낸 의인임을 드러냅니다.

반면에 날마다 호화롭게 지내면서도 대문 앞 라자로를 계속 외면하였던 부자의 삶은, 제1독서에서 아모스 예언자(기원전 760-750년 무렵 활동)가 꾸짖으며 심판을 경고한 지난날 이스라엘 백성의 향락과 사치를 빼닮았습니다.

부자의 삶은 겉으로는 호화롭게 보이지만, 하느님께서 맡기신 재화를 자신만을 위하여 쓰고 도움이 간절한 이를 외면한 까닭에 영원한 상실과 절망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부자는 자신처럼 향락만 꾀하는 형제들을 돌이킬 유일한 방법이 특별한 이적이라 생각하지만, 그는 또 틀렸습니다.

믿음이 없고 회개할 의지도 없는 이에게 이적은 특이한 체험 정도에 그칠 뿐, 그의 삶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힘은 이적이 아니라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 곧 성경 안에 이미 들어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성경을 읽고 하느님 말씀을 가슴에 새겨, 거룩한 삶을 다짐하고 실천에 옮기는 그 노력 안에 우리 구원의 길이 있습니다!

“가난한 이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주님께 꾸어 드리는 이, 그분께서 그의 선행을 갚아 주신다.”(잠언 19,17)라는 구절을 마음에 새겨 실천한다면, 비유 속 부자와 같은 이기적인 삶은 피할 수 있겠지요.

제2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의로움과 믿음,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며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강수원 베드로 신부)

 

 


예수님 십자가는 우리에 대한 하느님 사랑

 

복음(루카16,19-31)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 부자, 본문 앞 15절에서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사람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는 부자다. 모세의 자리에 앉은 ‘자주색 아마포 옷을 입은 사제(司祭)’다.(탈출28,28 레위6,3 참조) 자주색 옷은 피(血), 죽음의 옷을 뜻한다. 그리고 그냥 아마포 옷이 아닌 고운 아마포 옷이다.

그러니까 아주 비싼 옷을 입고 권위의식을 갖고 사람들의 대접을 받으며 호화롭게 살았다는 것이다.

 

20 그의 집(성전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21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 부자(사제)가 인색해서가 아니다. 그의 식탁까지 오도록 배려한 부자다. 그러나 그 부자(사제)의 식탁(제사)에는 가난을 해결해 줄, 곧 생명의 참 양식을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히브10,11-12) 11 *모든 사제는 날마다 서서 같은 제물을 거듭 바치며 직무를 수행하지만그러한 것들은 *결코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1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부자도 죽어 묻혔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 죽어서도 사제의 권위를 누리려 한다. 다 버리고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태23,11)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 좋은 것- 부자. 나쁜 것-가난. 우리의 관점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마태5,3-4) 3 “행복하여라마음이 *가난한 사람들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슬퍼하는 사람들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 건너는 길은, 지금 살아있을 때 이룰 수 있다.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곧 오늘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 그 말씀을 찾아 믿고 가는 것이다.

 

(골로1,13) 13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십자가로다.

 

(요한14,2-3)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 부활을 위한 십자가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아브라함 할아버지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 다섯, 율법(제사와 윤리)의 행위를 고집하는 부자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 모세와 예언자들, 곧 성경(聖經)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말씀하신다.(루가24,44) 그 모세와 예언자들이 전(傳)한 말을 듣지 않으면, 곧 하느님의 새롭고 살아있는 구원의 길인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십자가(十字架)를 통한 구원을 깨닫지 못하면, 진리로 믿지 못하면, 아무리 큰 기적을 보고, 체험을 해도, 믿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실제로 죽었던 라자로가 살아나자 살리신 예수님과 라자로를 죽이려했다. ~

(요한11,53) 53 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요한12,9-10) 9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다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10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 기적은 그 기적의 의미, 뜻을 깨닫지 못하면 사람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다. 믿음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여자와 아이들 외에 남자(장정)만 오천명을 먹이신 그 표징, 기적을 베푸신 후,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신 것이다.

 

(마태14,22.30-31) 22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30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그래서 물에 빠져들기 시작하자, “주님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31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 제자들을 바다로 내 보내셔서 풍랑을 맞게 하신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오병이어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그 믿음이 없음을 보게 하신 것이다. 곧 당신께서 뽑으신 사람들은 풍랑, 고난, 시련을 통해서라도 믿음을 갖도록 만드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고난, 시련 속에서도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잠언5,21) 21 사람의 길은 주님 눈앞에 펼쳐져 있고 그분께서는 그의 모든 행로를 지켜보신다.

 

(예레31,28) 28 전에 내가 뽑고 허물고 부수고 없애며 재앙을 내리려고 그들을 지켜보았듯이이제는 세우고 심으려고 그들을 지켜보겠다주님의 말씀이다.

= 다시 살리시기 위한 풍랑이며, 고난, 시련이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고난, 시련이기에 이겨낼 수 있음이다.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형제도 이해 못하는) 지난 시련, 고난의 시간을 되돌아보니 그 긴 시간을 겪어낸 것이 아니었음을 오늘에서야 절실히 깨닫는다.

주님께서 함께 하셨기에, 아니 나를 업고 동행(同行)하셨기에 이겨낼 수 있었음을 믿는다. 그래서 라자로와 같은 나의 불행, 환난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한다.

 

(로마5,3-5)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우리가 알고 있듯이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4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5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은총이신 보호자 성령님!

늘 저희 모두의 마음에 충만 하소서보이는 시련고난이 아닌세상 풍랑속에서 동행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26주일 복음 (루카16,19-31)

 

 "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24ㄴ~26)

 

살아 생전에 병들고 굶주림에 지쳐 있었던, 자기 대문 앞의 거지 라자로에게 어떠한 자비도 베풀지 않았던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주제넘은 요구를 하고 있다.

 

그것도 자신이 멸시했던 라자로를 통해 물 한 방울만 떨어뜨려 달라고 한다.

차마 많은 것을 청하지 못하고 손가락 끝에 찍은 물을 구하는 부자의 상황과 심정이 어떠할지 짐작이 된다.

지상에서 호의호식 하며 배불리 먹던 부자는 이제 물 한 잔도 아닌 말라붙은 혀를 식힐 한 방울의 물을 구걸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

 

특히 '식히게'로 번역된 '카탑쉭세'(katapsykse)는 뜨거워 메말라버린 혀를 식히고 촉촉하게 해달라는 뜻으로서 부자가 처해있는 곳이 얼마나 뜨겁고 견디기 힘든 곳인지 보여 준다.

살아 생전 거지 라자로를 쳐다 보지도 않았던 부자가 이제 자신의 비참한 처지로 말미암아 라자로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아이러니하다.

상황이 역전된 현세와 내세와의 자리바꿈의 뚜렷한 차이를 볼 수 있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는 이유 부사절을 이끄는 접속사 '호티'(hoti; for)로 시작되는데, 부자가 왜 물 한 방울을 구하는지 그 이유를 보여 준다. 그는 뜨거운 불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로 번역된 '오뒤노마이'(odynomai) '몹시 아프게 하다', '몹시 괴로워하다', '몹시 고통을 당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오뒤나오'(odynao) 현재 수동태로서 뜨거운 불길 속에서 계속적으로 격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부자의 상황을 보여 준다.

이 고통은 절대자 하느님의 심판에 의한 고통이며, 여기서 불길은 죄인의 최종적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묵시19,20; 20,10; 21,8).

 

현세에서 매일 잔치를 벌여 사치와 쾌락을 일삼았던 부자는 죽음과 동시에 헤어날 수 없는 심판의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져 고통으로 일그러진 모습으로 아브라함을 애타게 부른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품속에서 평화와 안식을 누리는 라자로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것이다.

루카 복음 16장 25절에서 아브라함은 애걸하는 부자의 청원을 들어줄 수 없음을 설명한다.

 

'좋은 것들'로 번역된 '아가타'(agatha)의 원형 '아가토스'(agathos)는 '선한', '유익한', '아량있는'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부자가 받은 '좋은 것들'은 살아 생전 그가 누렸던 부와 명성을 말하며, 동시에 그가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배려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는 하느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온갖 부와 명성과 즐거움을 누리면서도, 정작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조금도 동정을 베풀지 않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부자는 현세에서 '주는 것'에 무관심했고,  오로지 '받는 것'에 익숙한 삶을 살았다고 보면 된다.

 

아브라함은 서로 통교할 수 없는 공간상의 제약 뿐만 아니라, 세상에 있을 때 고통받던 라자로를 외면한 부자의 악함 때문에 부자를 외면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위로를 받고'에 해당하는 '파라칼레이타이'(parakaleitai;  he is comforted)는 '~곁에', '~가까이'라는 뜻이 있는 접두사 '파라'(para)와 '부르다', '초대하다'라는 뜻이 있는 동사 '칼레오'(kaleo)의 합성어로서 '곁으로 부르다'는 뜻이 있지만  본 단락에서는 '위로하다', '격려하다'는 뜻으로 의미가 확장된 '파라칼레오'(parakaleo)의 현재 수동태이다.

 

이것은 라자로가 계속적으로 외부로부터 위로함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러한 위로는 위로의 근원이신 하느님(욥기15,11; 즈카1,17)으로부터 오는 완벽한 위로인 것이다(2코린1,3.4).

 

한편, 루카 복음 16장 26절에서는 아브라함이 부자의 애절한 청원을 들어줄 수 없는 현실적 이유가 나온다.

아브라함이 말하는 '우리와 너희 사이'란 결국 저승과 낙원 간의 간격을 말한다.

 

'구렁'으로 번역된 '카스마'(chasma; a gulf; a chasm)는 '길게 갈라진 틈', '심연'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실질적으로 구렁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보는 것보다는, 지옥과 천국 사이의 넘을 수 없는 벽, 질적인 차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가로 놓여 있어'로 번역한 '에스테릭타이'(esteriktai; there is fixed)는 '흔들리지 않게 하다', '강화하다', '확고히 하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스테리조'(sterizo)의 완료 수동형으로서, 우리와 너희 사이에 있는 그 구렁은 이미 오래전부터 확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그 누구도 그것을 옮기거나 없애지 못한다는  강한 인상을 준다. 

말하자면, 죽은 후에 처해진 운명은 아무도 그 상황을 바꿀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20250928일 일요일

[연중 제26주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오늘 복음은 라자로가 어떻게 해서 하느님 나라에 가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루카 16,14)에게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은 부자의 태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비웃고 당신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바리사이들조차 사랑하시며 그들의 구원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말씀하십니다.

비유에서 부자는 왜 불타는 지옥에 갔을까요?

예수님 시대에 재산은 하느님의 축복으로 좋은 것이라 여겨졌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이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16,25)라고 하였듯이 재산은 하느님께 받은 것이지 처음부터 자기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본디 주인의 의도대로 써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가난과 고통이라는 악을 바라시지 않으므로 재산을 받은 사람은 가난한 이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부자는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재산이 자기 것이니 자기를 위해서 썼습니다.

그는 자기 안에 갇혀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열려 있지 않았습니다.

자기 즐거움만 보았기 때문에 라자로가 자기 대문 앞에, 그렇게 가까이 있었지만 보지 못하였습니다.

살아 있었을 때 부자와 라자로 사이에 존재하였던 큰 간격은 죽어서도 유지됩니다.

그가 살아서 라자로와 관계를 맺었다면 달랐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자는 자기 안에 갇혀 살았기에, 모세와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주님께도 열려 있지 않았습니다.

그 형제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지옥의 다른 이름은 이기심이 아닐까요?

 

(김태훈 리푸죠 신부)

 

 

  

 

2025년 09월 28일 [연중 제26주일]

 

제단에는 영원한 양식이 없다

 

복음(루카16,19-31)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은 사제의 옷이다.(탈출 28,39) 곧 사제가 날마다 제사 드리며 온갖 대접대우를 받으며 살았다는 것이다또한 제사를 날마다 드리는 그 자신의 열심의로움으로 만족해하며 사는 모든 이를 포함한다.

 

20 그의 집(성전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풋토코스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 율법의 의, 그 인간의 능력으로 도와줄 수 있는 가난(페네스)이 아니다. “풋토코스”- 사람의 힘, 능력으로 도와줄 수 없는 절대적 가난이다.

‘라자로’(하느님께서 도우시다), 곧 하늘의 힘, 의(義)가 내려와 도와 주셔야 할 가난이다.

 

(이사40,17) 17 민족들 모두가 그분(하느님앞에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분께는 아무것도 아니며 헛것으로만 여겨진다.

 

21 그는 부자의 식탁(제단)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 사제가 인색해서 주지 않아서 가 아니라, ‘제사의 식탁’에서는 절대적 가난, 곧 영(靈)을 구할 수 있는 하늘의 용서, 생명, 진리의 양식이 없다는 것이다.

그 ‘제사의 죽은 양식’을 먹지 않은, 그 가난한 라자로가 하느님나라에 들어간 것이다.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부자도 죽어 묻혔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 여전히 ‘자기 의’로 대접 받으려는 권위의식이다.

 

25ㄱ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 인간들의 관점으로 좋은, 나쁜 것이다. 곧 ‘풋토코스’ 의 가난, 그 나쁜 것은 하늘에서는 좋은 것이다. (마태5,3)

 

25ㄴ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아브라함 할아버지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 성경의 모든 말씀을 듣고 하느님의 뜻(일), 곧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을 진리로, 마음에 간직, 지켜서 받는 것이지, 기적(奇蹟)을 보고 받을 수 있는 하늘의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기적은 사람의 마음을 완악하게 할 뿐이다.

그래서 기적을 본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았다.(요한11,45-53)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다시 그리스도의 영, 곧 다른 보호자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신다. 그래서 ‘제사의 식탁, 제단에는 영원한 양식이 없어’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1코린6,19-20) 19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 20 하느님께서 값(그리스도의 피)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 그런데도 하느님께 영광 드리는 미사, 예배가 아닌, 부자, 곧 내 뜻, 영광을 위해 제사를 계속 드리고는 그것이 참(眞)인냥 위선의 헛된 신앙을 살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로마10,1-3)

 

(히브10,11) 11 *모든 사제는 날마다 서서 같은 제물을 거듭 바치며 직무를 수행하지만그러한 것들은 결코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 영원한 보호자진리의 길이신 천주의 성령님!

제사를 당신의 죽음으로 다 이루시고 완성하신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깨닫게믿을 수 있게 풋토코스의 마음을 주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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