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를 피하는 핑계와 구실

2016. 10. 9. 오후 4:3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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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를 피하는 핑계와 구실(1) 


해를 자주 하기를 싫어하는 사람 또는 조금도 고해를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여러 가지 핑계와 구실을

들고 나선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대게는 고해할 죄가 없다고 한다. 도대체 이 말이 참말일까?

성령은 “성인도 하루에 일곱 번 죄에 빠진다”고 기록하게 하셨다.

그리고 복음사가(福흡史家) 요한도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는 진실이 없다”고 했다.


자기에게 고해할 만한 죄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결점을 못 보는 불쌍한 맹인이다.

이것은 참으로 드문 일이겠지만 고백하기 싫어서 하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정결한 사람은 조그마한 더러움도 참지 못하지만 정결하지 못한 사람은 커다란 얼룩이 있어서 진흙 투성이가 되어도 무관심하는 일이 많다.


어느 사관(士官)이 한 신부를 찾아가서 “신부님,똑똑히 말씀해주시지요.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고해할 의무가 있습니까? 저는 진정 그래서 고해를 하지 않습니다” 라고한다.

신부는 즉시 대답하기를 “사관님! 내가 아는 범위로는 죄를 안 짓는 사람은 이런 사람들입니다.

아직 깨달음이 열리지 않은 아이들과 불행하게도 깨달음을 잃어버리게 된 미치광이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고해 사제에게 말할 것이 없다. 도둑질한 일이 없고,사람을 죽인 일이 없고,남을 미워해본 일이 없고 남을 괴롭힌 일도 없는 그러한 경우와,또는 그대의 둔한 양심이 작은 거짓말,작은 욕설,쓸데없는 생각과 애착과 마음의 산란과 작은 게으름 등을 예사로 여겨 넘기는 경우에 고해 사제에게 가서 “나는 할 말이 없습다”라고 해도 좋다.

신부는 애덕과 경험을 다하여 그대가 발견하지 못하는 것을 그대 마음속에서 찾아내 보일 것이며

그대에게 타이르고 권면하고 아마 조그마한 보속까지 주실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대의 마음은 고해하기 전보다 유쾌해지고 무슨 짐을 벗은 듯이 가뿐함을 느끼면서 고해소에서 물러나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천주의 대리자 앞에 갔던 것을 후회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고해하러 갈 기분이 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마음이 괴롭고 불안한가? 걱정이 있어 그런가?

덮어놓고 가보는 것이 좋다. 고해 사제는 그대의 기분을 잘 이해할 것이요 사랑으로 그대를 도와줄 것이다.

사람이 성사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성사가 사람을 위해 정해진 것이다.

천주께서는 그대가 할 만한 일을 하는 데 만족하게 여기신다. 우리가 선의를 가지고 고해 사제와 천주께 대한 신뢰심만 있으면 넉넉하다. 다른 것은 고해 사제가 그대를 도와줄 테니까.


내게는 고해할 틈이 없고 또 고해하기에는 여러 가지 불편이 있다. 이런 말은 너무나 건방진 핑계일 것이다.

하면 되고,하지 않으면 안된다. 무슨 일이든지 안되는 것은 자기가 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격언을 다시 생각해보자. 자신의 물질적 이익 건강 금전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과 얼마만한 시간을 허비하는가?

영혼을 생각하는 것을 썩어진 육신을 위하는 것만큼은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영혼을 위해 허비한 시간은 이 세상에서도 천주께서 꼭 갚아주실 것이다.


어느 날 예수회의 어느 신부에게 어깨가 쩍 벌어진 시골 사람 한 사람이 고해를 하러 왔다.

신부는 그에게 묻기를 “당신 요전 고해는 언제 하였소?" 한즉, 그는 “네 10년 전입니다”라고 한다.

“그러면 지금 좋은 고해를 하고 싶습니까?" “네 신부님!" “그러면 돈 10리라를 내시오"

“무어요,10리라? 저는 지금까지 고해를 무료로 하는 줄 아는데요"

“예 그렇소. 고해는 무료입니다. 공짜로 하면 되는 고해를 왜 10년 동안이나 안 했소?"

그 시골 사람은 신부의 말씀을 잘 알아들었다. 그는 성교회의 제3규와 4규가 무엇인지도 잘 깨닫게 되어, 자기의 냉담을 뉘우치고 그때부터는 자주 고해를 하기로 신부에게 약속했다.


고해성사를 보아도 내게는 별로 신통한 것도 없고,아무런 진보가 없다. 그런 판단을 할 권리는 그대에게 없다.

그것은 고해 사제에게 속한 권한이다. 그리고 그대의 추리와 사고방식이 틀렸다. 진보가 없다는 것은 자주 고해를 하지 않았거나, 혹시 어쩌다가 드물게 한 번 하거나 말거나 한 탓이겠지,고해를 하지 않고 지나면 모르는 사이에 악으로 기울어지 게 되는 법이다.



고해를 피하는 핑계와 구실(2) 


어떤 죄를 범한 경우에는 나를 잘 아는 신부에게 고해할 용기가나지 않는다. 그렇다. 

꼭  그대가 아는 신부에게 가서 고해할 필요가 없다. 고해는 자유다. 그대를 모르는 신부들이 얼마든지 있다.

어느 신부를 찾아가든지 무서워하지 말고,부끄러워 하지도 말고, 솔직히 고해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다음 고해하기 위해 또 그전 고해 사제에게 가서 어떻게 고해할까? 보통으로 고해할 뿐이다.

다른 신부에게 한 번 고해해서 사함을 받은 것을 또 그 신부에게 되풀이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할 수 있으면 그대가 신뢰할 수 있는 고해 사제를 정해두고 항상 그 신부에게 고해하는 것이 제일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늘 고해받는 신부는 우리의 사정과 영혼상 여러 가지 경우를 잘 이해하여 적절한 지도와 편달을 해주시므로 우리 영흔은 차츰 완덕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만일 내가 정해둔 신부가 계시지 않고 다른 신부에게 가기 싫을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그대에게 반문하고 싶다. 만일 그대가 치명적 상처를 받았을 때나 모르고 독약을 먹어 생명이

위험하였을 때 그대는 생명을 건지기 위해서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제일 가까운 의사를 찾아갈 것이 아닌가?

어디에 가고 없는 아는 의사를 기다릴 것인가? 이와 같이 그대 영혼의 치명적 상처요,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독약인 죄를 즉시 빼어 버리려면 그대가 가고 싶지 않는 고해 사제에게라도 가야할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그 고해 사제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고해 사제는 그대를 천사가 아닌 인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대의 용기와 겸손과 정직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더 갖게 될 것이다.

어쨌든 그 신부가 무엇을 생각하든지 그대 자신이 마음의 평화를 얻으면 그만이 아닌가?

전혀 고해를 하지 않은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고해를 해서 무엇하나?" “고해를 할 필요가 무엇인가?"

나는 그 사람에게 대답하노니 그것은 천주의 명령이니까, 그대에게 절대로 필요하니까,고해만으로 죄가 사해지니까, 고해만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죄가 남아 있으면 지옥으로 갈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으니까…. 그대가 내 말을 비웃어도 좋고 부정해도 좋다. 그러나 아무리 비웃고 부정한다 해도 ‘천주’ ‘영원’ ‘영혼’ ‘지옥’ , ‘천주의 정의로우심’ , ‘사후 심판’ 의 진리를 그대가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어째서 고해를 할 필요가 있는가? 그대의 영혼의 바른 상태를 그대에게 거짓 없이 진정으로 말해줄 친구의 말을 들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고해를 하지 않고 불행하게도 죽으면 의심 없이 지옥으로 떨어지므로 필요하다.

또 어떤 사람은 “나는 고해라는 것을 신용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런 사람은 한 번 고해성사를 잘 보면 단번에 신용할 것이다. 처음에는 그대처럼 신용하지 않다가 마침내 고해를 신용하게 된 사람 중에는 그대보다 유명한 사람 위대한 사람들이 많다.


다음 이야기를 들어보라. 어느 날 성 요한 비안네에게 한 신사가 찾아왔다.

그의 첫마디 말을 듣고 난 성인은 말씀하시기를 “자 고해소로 가서 고해합시다”라고 하니까 그 신사는

대답하기를, “그런데 저는 그것을 신용하지 않습니다”라고 한다.

신부는, “상관 없습니다. 내가 당신 대신으로 신용하니까. 자,고해를 합시다"  

“그러나,신부님! 바로 말씀드리지요. 저는 고해같은 것을 업신여기기는 합니다마는 그리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그 신사가 어떤 핑계와 어떤 구실을 들고 나서도 소용이 없게 되었다.

성인은 친절이 넘치는 고집으로 그를 굴복시켜 마침내 고해를 하게 했다. 고해를 하고 난 그 신사는 너무나 기쁘고 너무나 즐거워하는 낯으로 고해대에서 일어서더니, “신부님! 감사합니다. 저도 신용합니다.

참으로 기니쁩다. 신부님은 제게 이 보다 더 좋은 선물을 주실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감탄했다.


고해를 피하는 핑계와 구실(3) 


또 어떤 사람은 “나는 고해하는 방법을 모르니까"라고 말한다. 바른 고해를 하고 싶다는 뜻만 있다면 이보다 더 쉬운 방법이 없을 것이다. 의사에게 당신 몸의 병을 이야기하듯 당신 영혼의 병을 고해 사제에게 말하면 넉넉하다.

어쨌든 고해 사제에게 가보라. 신부는 꼭 당신을 도와 고해를 잘 하도록 해주실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고해를 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위선자나 대죄인이라 부를지 모르니까 고해를 하지 않겠다”라고 말한다.

그럴까? 그대는 허수아비인가? 그대의 용기는 어디에 두었는가? 만일 세상 사람들이 자주 고해하면 남을 속이는 것,남을 업신여기는 것,도둑질,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살인,사음 같은 죄악이 적어지고,감옥이나 유치장이 줄어들 것이다.


만일 누구든치 고해를 하면 정결과,선행과 근신이 더해져서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편안하게 살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세계의 문화와 문명은 건전하게 발전할 것이다. 어떻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고해할 용기가 없는 사람은 사람이 보지 않는 곳으로 가서 고해하면 그뿐 아닌가?


또 어떤 사람은 “우리 성당 주임신부를 신용할 수 없으니까 고해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좋다.

그러면 다른 본당 신부에게 가서 고해하면 되지 않는가? 큰 축일이나 무슨 명절 때 다른 본당으로 가서 고해하고, 행복에 가득 찬 기쁜 얼굴로 돌아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가 종종 보는 일이다. 

영혼의 병을 보이러 이웃 본당 신부에게 가는 것이 무엇이 그리 어려운가?

만일 그대가 뜻하지 않게 어떤 환란을 당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대가 성사를 받지 못하고,또는 모령성체를 하고 갑자기 죽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 그대는 어린이 같은 걱정을 버리고 단순히 본당 신부를 신용할 수 없다고 그대 영혼을 구하는 큰 일을 위험천만하게 방치할 필요가 있겠는가?


또 어떤 사람은 “나는 아무래도 죄를 떠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는 지옥의 영원한 고통 속으로 들어가고 싶단 말인가? 한 때의 쾌락 때문에 천주께 모욕을 주고,예수 그리스도를 언제든지 괴롭게 하여 우시게 할 작정인가?

어떤 사람은 또 “나는 아무개와의 관계를 끊을 수 없다” 고 말한다.

죄를 지을 기회를 만들어주는 사람은 그대에게 큰 원수이며 저주받아 마땅할 존재인데, 관계를 끊지 못하겠단 말인가?

그대는 죽을 때도 그 사람과의 관계를 끊지 못할 것인가? 그 사람이 그대와 함께 무덤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하던가?

그를 심판석에도 지옥에까지도 데려갈 셈인가? 그 사람이 그대에게 불명예 수치,멸망의 원인이 될 줄을 모르는가? 

관계를 끊을 수 없다는 말보다 차라리 끊기 싫다는 말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나쁜 습관을 매로 고친 사람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또 어떤 사람은 “고해는 신부들이 만들어낸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럴까? 그 말이 사실일까? 확실한 일일까?

그렇다면 발명자의 이름을 대보라. 그의 이름을 말하지 못하겠으면 적어도 발명 연월일과 장소만 말해도 좋다.

그것도 말하지 못하겠으면 아무 것도 모르면서 말한 것 아닌가? 물론 그대도 그런 신부가 없다는 것을 잘 알리라.

그대의 말은 되는 대로 한 말이겠지. 그대가 고해를 믿지 않으려고 거짓인 줄 알면서도 일부러 그렇게 말해 본 것이겠지. 또 어떤 사람은 “고해하는 사람은 죄가 많은 악인이다” 라고 말한다. 아 이 말은 흔히 듣는 말이요 잘 쓰이는 구실이다.

나도 그 말에 한 걸음 양보해서 말하겠다. 고해를 하기는 하는데 나쁜고해, 즉 모고해를 하는 사람은 고해를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고약할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모고해하는 그 사람들 자신의 수치요 멸망이지, 바른 고해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


만일 천주께서 모든 사람의 영혼을 우리 눈앞에 나타내 보이신다면 고해 한 사람의 영혼과 고해를 하지 않은 사람이나 드물게 한 사람의 영혼 사이에는 굉장한 차이가 있음을 볼 것이다. 이것은 빨래한 수건과 때 묻은 수건을 한데 둠과 같을 것이다.



고해를 피하는 핑계와 구실(4) 



고해한 사람 백 명 중에서 악한 사람 한 두 명 많아야 열 명이 된다고 하면, 고해하지 않은 사람 백 명 중에 고해를 하지 않기 때문에 악인이 된 사람을 90명 이상 발견할 것이다.

가레라니 신부가 말하기를 “마을에서 생기는 도둑놈,강도,살인자,부정한 계집, 윤락여성 같은 죄인,그리고 교도소와 유치장을 채우는 모든 수감자들은 고해하는 사람 중에서 나오지 않음을 즉시 알 수 있다” 라고 했다.

현대의 어느 유명한 작가의 글에 이렇게 쓰여 있다. 아이야! 너는 고해를 모독해도 좋다. 그러나 너를 기르기 위해 너의 어머니가 모든 희생을 달게 받게 한 것도 고해의 힘일 것이다. 남편이여! 고해를 모독해도 좋다. 그러나 그대가 집에 없을 때 그대 아내의 정조를 굳게 지커게 한 것도 고해의 힘일 것이다. 부자여! 고해를 업신여겨도 좋다.

그러나 인간의 법률만으로는 늘 불안하지만 그대가 재산이나 권력을 지니고 있게 하는 것도 고해의 힘일 것이다.


그리고 다음 세 가지 점을 마음속에 두는 것이 좋겠다.

1. 고해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자신을 깨끗하게 보존하려는 의향이 있어 만일 죄로 더렵혀진 경우에는 즉시 더러움을 씻어 깨끗하게 할 결심을 갖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생각해 볼 것이다.

2. 나쁜 욕망을 탐하려는 사람이 흔히 고해를 중지하고,고해하지 않는 사람 축에 들어가고마는 것이 사실인가,아닌가를 생각해 볼 것이다.

3. 개심하겠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이 무엇보다도 먼저 고해 사제를 찾아가는 것이 사실인가 아닌가를 생각해볼 것이다.


가레라니 신부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위에 말한 세 가지가 사실이라면 천주의 나라가 고해법 없는 세속 나라보다 도덕 수준이 훨씬 높을 것이다. 그래서 고해법이 없는 세속 나라에는 고해법이 있는 신자들 단체보다 훨씬 악덕이 많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말해온 고해에 대한 핑계와 구실은 이성(理性)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마음과 욕심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마음으로부터 악한 습관을 쫓아내고,악한 욕심을 누르려면 지금까지 고해를 신용하지 않은 그대도 다른 신자들과 같이 고해 사제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고해를 해보자.


여러분은 지금까지의 설명을 통해 이러저러한 핑계와 구실을 찾을 일이 못된다는 것을 잘 알았을 것이다.

성 바오로 사도가 하신 다음의 말씀을 머리에 아로새기자.

우리는 말할 것도 없고 하늘에서 온 천사라 할지라도 우리가 이미 전한 복음과 다른 것을 여러분에게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갈라 1,8)


그대는 잘 알아들었을 것이다. 나는 진정으로 그대에게 바라노니 고해를 바르게 또한 자주 하여 착한 신자가 되라. 고해는 생명이요 빛이다. 개종한 지 얼마 안된 어떤 박사가 우연히 신부를 만나 잠깐 그를 바라보다가 즉시 공손히 인사를 하고 나서 “당신은 저의 고해 사제지요”라고 말했다. 신부는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글쎄요. 그럴지도 모르지요”라고 대답했다. 박사는 “그렇습니다. 당신은 저의 고해 사제입니다.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저의 행복의 은인입니다. 왜냐하면 고해를 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신자임을, 또는 신앙을 가졌다고 자랑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부활 대축일의 본분을 다하지 않은 어느 변호사가 이 박사의 말을 듣고 감동받아 고해할 결심을 한 후 고해하고 나서는 친구들에게도 열심히 권했다 한다. 이와 같은 사례로 볼 때 고해하는 사람은 고해성사가 참으로 우리 영혼의 성스러운 약이요,생명이요,빛이라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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