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3월 17일 화요일
[사순 제4주간 화요일] 벳자타 병자 치유 (요한5,1-16)
제1독서<성전 오른쪽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았네.>(에제47,1-9.12)
1 천사가 나를 데리고 주님의 집 어귀로 돌아갔다. 이 주님의 집 정면은 동쪽으로 나 있었는데, 주님의 집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 물은 주님의 집 오른쪽 밑에서,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려 갔다.
2 그는 또 나를 데리고 북쪽 대문으로 나가서, 밖을 돌아 동쪽 대문 밖으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보니 물이 오른쪽에서 나오고 있었다.
3 그 사람이 동쪽으로 나가는데, 그의 손에는 줄자가 들려 있었다. 그가 천 암마를 재고서는 나에게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발목까지 찼다.
4 그가 또 천 암마를 재고서는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무릎까지 찼다. 그가 다시 천 암마를 재고서는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허리까지 찼다.
5 그가 또 천 암마를 재었는데, 그곳은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어 있었다. 물이 불어서, 헤엄을 치기 전에는 건널 수 없었다.
6 그는 나에게 “사람의 아들아, 잘 보았느냐?” 하고서는, 나를 데리고 강가로 돌아갔다.
7 그가 나를 데리고 돌아갈 때에 보니, 강가 이쪽저쪽으로 수많은 나무가 있었다.
8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나가,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9 그래서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12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
<화답송>시편46,2-3.5-6.8-9(◎8) ◎ 만군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네. 야곱의 하느님이 우리의 산성이시네.
○ 하느님은 우리의 피신처, 우리의 힘. 어려울 때마다 늘 도와주셨네.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네. 땅이 뒤흔들린다 해도, 산들이 바다 깊이 빠진다 해도. ◎
○ 강물이 줄기줄기 하느님의 도성을,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거처를 즐겁게 하네. 하느님이 그 안에 계시니 흔들리지 않네. 하느님이 동틀 녘에 구해 주시네. ◎
○ 만군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네. 야곱의 하느님이 우리의 산성이시네. 와서 보아라, 주님의 업적을, 이 세상에 이루신 놀라운 일을! ◎
복음<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었다.>(요한5,1-16)
1 유다인들의 축제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2 예루살렘의 ‘양 문’곁에는 히브리 말로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이 있었다. 그 못에는 주랑이 다섯 채 딸렸는데,
3 그 안에는 눈먼 이, 다리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 있었다.
4 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도 있었다.
5 예수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6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는,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그에게 물으셨다.
7 그 병자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9 그러자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 그날은 안식일이었다.
10 그래서 유다인들이 병이 나은 그 사람에게, “오늘은 안식일이오. 들것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 하고 말하였다.
11 그가 “나를 건강하게 해 주신 그분께서 나에게,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12 그들이 물었다. “당신에게 ‘그것을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요?”
13 그러나 병이 나은 이는 그분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였다. 그곳에 군중이 몰려 있어 예수님께서 몰래 자리를 뜨셨기 때문이다.
14 그 뒤에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성전에서 만나시자 그에게 이르셨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15 그 사람은 물러가서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라고 유다인들에게 알렸다.
16 그리하여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하셨다고 하여, 그분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사순 제4주간 화요일 제1독서 (에제47,1-9.12)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나가,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8)
에제키엘서 47장 8절은 주님의 집(성소)에서 발원한 물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서 그 바다를 살릴 것이라고 천사가 에제키엘에게 설명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천사는 그냥 '물'이라고 하지 않고 '이 물'이라고 표현했다. '이 물'에 해당하는 '함마임 하엘레'(hammaim haelleh)에서 정관사와 지시대명사가 결합된 '하엘레'(haelleh; These)와 더불어 '함마임'(hammaim; water)에도 정관사 '하'(ha)가 있다.
이것은 사해 바다를 살릴 물이 에제키엘서 47장 1절에서 묘사된 주님의 집(성소)으로부터 흘러나온 물이고, 또한 에제키엘서 49장 7절에서 묘사된 강가에 수많은 매우 질이 좋은 나무들을 만들어낸 물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즉 천사가 강조하는 것은 단지 죽은 바다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적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기적을 일으킨 그 물이 주님의 집(성소)에서 흘러나온 사실에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에제키엘서 47장 8절의 '이 물'은 하느님의 현존과 임재가 회복된 주님의 집(성소)으로부터 흘러나온 물인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할 땅을 하느님의 첫 창조와 종말론적인 하느님의 나라의 축복을 모두 향유할 수 있는 낙원으로 탈바꿈시킬 물이라는 두 가지 사실이 함께 강조되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하느님의 현존과 임재를 드러내는 '이 물'은 하느님께서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백성들이 하느님을 떠나게 했던 모든 죄악으로부터 떠났음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하느님과 백성들의 관계를 회복시킬 것을 상징하는 '화해의 물'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물은 백성들이 돌아와 하느님께서 주시는 먹기에 좋은 열매와 약재료가 될 만한 푸른 잎과 풍부한 고기(수자원)을 보장하는 축복의 물이요, 생명의 물이다.
즉 에제키엘은 '이 물'이 축복과 풍요를 상징한다는 구약 성경의 일반적인 의미만 갖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공존하는 온전한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는 종말론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에제키엘 예언자가 강조한 하느님 나라의 종말론적인 의미를 갖는 '이 물'은 창세기 2장 9-17절에서 묘사된 에덴에서 발원하여 생명 나무를 비롯한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자라게 한, 첫 창조의 동산에서 흘러나온는 물의 개념과 관련된다.
또한 에제키엘서에서 제시되는 '이 물'은 요한 묵시록 22장 1-5절에서 '새 예루살렘'에서 수정처럼 빛나는 생명수의 강으로 표현된다.
에제키엘서의 물이 하느님의 현존과 임재가 회복된 주님의 집(성소)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처럼 요한 묵시록의 물도 하느님과 어린 양의 어좌로부터 나와서 흘렀다.
그리고 에제키엘서의 물이 강가에 무성하고 풍성한 나무를 자라게 한 것처럼 요한 묵시록의 물도 강 이쪽 저쪽에서 생명 나무를 자라게 하고 다달이 열두번 열매를 맺고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에 쓰이게 한다.
또한 이 생명수의 강이 흐르는 새 예루살렘에는 다시 저주가 없고 하느님만이 영원토록 왕으로 다스리시는 온전한 하느님의 나라가 유지된다.
요한 묵시록에서 에제키엘서의 '이 물'을 종말론적 하느님의 나라를 완성하는 물로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에제키엘서에서 사용된 '이 물'에 하느님의 나라를 완성하는 물이라는 신학적 개념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에제키엘서의 '이 물'은 하느님과 관계의 회복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첫 창조사업을 회복하는 물이면서 동시에 재창조 사업을 완성하는 즉 종말론적인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는 물이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단지 옛 고향으로 돌아오는 정치적 해방이나 민족적 회복에만 관심을 가지고 무너진 성전 건물을 다시 지어 옛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다시 이루려는 외형적 번영에만 마음을 기울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에제키엘서 47장의 8절의 '이 물'의 개념을 통해 새로운 메세지를 주는 것이다.
즉 하느님께서 앞으로 이루시고자 하시는 일은 단지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이나 외형적 발전과 성장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온 우주의 창조주로서의 하느님의 영광 회복과 그 분을 신뢰하고 따르는 온 세상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 나라의 풍요와 즐거움을 맛보고 체험하며 살도록 하는, 하느님 나라의 건립에 있음을 알리고 있다.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간다'
에제키엘서 47장 1-5절은 주님의 집(성소)에서 흘러나온 물이 일반 성인(成人)의 키를 훨씬 넘길 정도록 깊고 넓은 강을 이루었다는 내용이었다. 에제키엘서 47장 8절은 그 물이 동쪽으로 계속 흘러가 아라바를 지나 사해로 흘러 들어갈 것이라는 내용이다.
여기서 '아라바'(arabah; 구약에서 평지, 사막, 나룻터로 번역)는 이스라엘의 땅 중에서 남북 방향으로 가로질러 형성되어 있는 저지대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아라바는 남북으로 가늘고 길게 뻗은 모양을 하며, 60% 이상이 지중해 해면보다 더 낮은 극저지대를 형성하였다.
예루살렘의 주님의 집(성소)으로부터 흘러나온 물은 자연스럽게 고지대인 서쪽의 예루살렘에서 저지대인 동쪽의 요르단 계곡 쪽으로 흘러갔을 것이고, 다시 사해 인근의 아라바 저지대를 지나 사해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에제키엘서 47장 8절의 상반절은 주님의 집(성소)에서 흘러나온 물이 사해로 흘러 들어갈 것이라는 내용이고, 후반절은 바다로 흘러 들어간 물로 인해 그 바다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다.
한편 '되살아난다'에 해당하는 '웨니르페우'(wenirpheu)의 원형 '라파'(rapha)는 '고치다' 혹은 '치료하다'의 의미이다.
특히 '라파'가 창세기 20장 17절에서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취했다가 그의 가문의 대가 끊어질 위기에 놓였는데, 아브라함이 그를 위해 기도한 뒤에 아비멜렉 집안의 모든 태가 열려 다시 자녀를 낳을 수 있도록 '고쳐 주었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
따라서 에제키엘서 47장 8절은 죽은 바다가 되살아났다는 즉 무생물이 생물이 되었다는 뜻으로 번역하기 보다는 생명체가 잉태되거나 번식되지 못하는 바다가 생명이 살 수 있는 바다로 고침을 받았다는 의미로 번역되어야 한다.
'라파'(rapha)의 이런 의미를 살려 본문을 의역하면, '그러자 그 물이 고침을 받아 생물이 살게 되었다'가 된다.
주님의 집(성소)으로 부터 나온 물이 염분이 많아 생물이 도저히 살 수 없었던 죽음의 바다를 고쳐서 생물이 살 수 있는 생명의 바다로 변화 시킨 것이다.
여기서 요한 복음 4장 13~14절의 말씀이 떠오른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사순 제4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오늘의 독서와 복음은 ‘생명의 물’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사막 지역인 이스라엘 풍토에서 예로부터 물은 중요한 생명의 원천이었습니다.
에제키엘서 본문은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로 주변 모든 것이 되살아남을 묘사합니다.
성전의 물이 “흘러들어 가면” 그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생명이 넘칩니다.
복음에서는 이 ‘생명의 물’이 곧 ‘예수 그리스도’임을 선언합니다.
벳자타 못 근처에 서른여덟 해 동안 병들어 있던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 그에게 다가가십니다.
생명의 물이신 분께서 그에게로 흘러들어 가시어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물으시는데 그는 대답 대신 원망 섞인 한탄을 늘어놓습니다.
물이 출렁거릴 때 아무도 자신을 데려가지 않아 이 지경으로 오래 있었다는 푸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불평을 타박하지 않으시고, 그가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나을 수 있는 드넓은 전망을 제공하여 주십니다.
‘생명의 물’은 ‘벳자타의 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임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너도 낫기를 원하느냐?’
이 질문과 함께 생명의 물이신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곁으로 흘러 들어오십니다.
의미 없는 신세 한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의 물이 내 안에 흘러 들어오도록 지나가시는 주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고통을 상징하는 ‘들것’을 들고 걸어가는 일입니다.
그럴 때 우리 주변에서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게 될 것입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사순 제4주간 화요일]
하느님나라는 인간들 생각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요한5,1-16)
1 유다인들의 축제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 오늘은 어제 묵상했던 첫 번째와 두 번째 표징 모두 피의 새 계약, 그 하느님의 약속, 말씀(물)으로 받는 구원임을 모르는 병자를 만나신다.
2 예루살렘의 ‘양 문’곁에는 히브리 말로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이 있었다. 그 못에는 주랑이 다섯 채 딸렸는데,
= 벳자타 - 자비의 집, 그러나 로마의 잡신, 건강신을 섬기던 장소가 되었던 것이다.
3 그 안에는 눈먼 이, 다리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 있었다. (4)·5 거기에는 *서른여덟(38) 해나 앓는 사람도 있었다.
= 서른여덟 - 광야의 삶이다. 광야 사십(40)년 끝에 들어갈 약속의 땅, 가나안에 아직 들어가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신명2,14) 14 우리가 카데스 바르네아를 떠나 제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걸린 기간은 삼십팔(38)년인데, 그동안에 주님께서 맹세하신 대로 군사들의 한 *세대가 모두 진영에서 사라졌다.
= 38년 동안 이집트의 종교, 정신, 사상을 가진 世代를 다 치우셨다는 것이다. 오늘 38년 된 그 이방신의 풍습에 젖어있는 병자의 잘못된 그 죄의 풍습을 치워 버리시겠다는 것이다.
6 예수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는,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그에게 물으셨다.
= 그의 상태를 보시고, 아시고 주시는 치유, 救援인 것이다.
7 그 병자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 물이 출렁거릴 때 제일 먼저 들어가면 치유 받는 그 이방신의 풍습을 더 믿는 죄인이다. 하느님의 힘, 그분의 말씀보다 이방신의 풍습을 더 의지하는 病者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 삶의 들것, 곧 우리의 十字架다. 그 우리의 십자가를 예수님께서 대신 지시게 되는 것이다.
9 그러자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 그날은 *안식일이었다.
= 병자의 회개도 믿음을 고백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치유를 받았을까?
(마르3,4) 4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 우리가 기도한 적도 없었던 어려운 일이 쉽게 해결된 경험들이 있다.(처음에는~) 곧 구원은 거저 받는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물론 십자가의 대속이 있었기에 거저 받는 용서(容恕)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회당에 계셔야 할 시간에 죄인들을 찾아가셔서 이방 잡신의 장소에 있었던 그 죄인을 품으신 것이다. 곧 율법(제사와 윤리)의 회당은 용서, 구원, 못 준다는 것을 오늘 알아 들어라고 하심이다.
오늘독서(에제47,7-9.12) 7 그(천사)가 나를 데리고 돌아갈 때에 보니, 강가 이쪽저쪽으로 수많은 나무가 있었다. 8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나가,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 폭풍과 두려움의 죽음의 바다에서 그 모든 것을 없애는 물이라는 것이다.
9 그래서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12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
= 성전이신 예수에게서 나오는 물, 말씀이 구원의 양식, 약이라는 것이다. 그것의 모형이 에덴(동산-성전)의 강에서 온 땅(세상-바다)으로 흘러내리는 물이다.
(창세2,10) 10 강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그곳에서 갈라져 *네 줄기를 이루었다.
= 하나(하늘)가 넷(땅)을 살리시는 물이다. *첫째강, 파손- 풍성하다. *둘째강- 기혼- 터져나가다. *셋째강, 티그리스- 화살처럼 빠르다. *넷째강- 유프라테스- 달콤하다. 예수님께서 풍성하고 달콤한 생명의 물, 말씀이 화살처럼 빠르게 터져나가 죽을 죄인을 살리신다.
10 그래서 유다인들이 병이 나은 그 사람에게, “오늘은 안식일이오. 들것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 하고 말하였다. 11 그가 “나를 건강하게 해 주신 그분께서 나에게,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 예수님의 말씀이 병폐가 되신다. 우리를 적대하는 이들에게서 보호하신다.
12 그들이 물었다. “당신에게 ‘그것을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요?” 13 그러나 병이 나은 이는 그분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였다. 그곳에 군중이 몰려 있어 예수님께서 몰래 자리를 뜨셨기 때문이다. 14 그 뒤에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성전에서 만나시자 그에게 이르셨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 ‘다시는 하느님의 길을 벗어나지 마라’ 하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 자주 하느님의 뜻, 길을 저버리게 된다. 그래서 힘들 때, 어려울 때, 죽을 것 같을 때, 다시 세상(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처음에 만났던 하느님의 길인 예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시는 것이다.
두 번째부터는 앎을,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이다.(루가12,45참조) 우리들의 들것, 십자가로 힘들 때, 예수님의 대속, 그분의 십자가로 오라고 하시는 것이다.
15 그 사람은 물러가서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라고 유다인들에게 알렸다. 16 그리하여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하셨다고 하여, 그분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 하늘의 용서, 생명을 받는다는 것은- 세상의 박해를 받는 길이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에 가는 길이 좁다’는 것이다.
(마태7,13) 13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 사랑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멘!!!
사순 제4주간 화요일 복음 (요한5,1-16)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14ㄴ)
병의 치유를 받은 사람이 성전에 들어간 것은 하느님께 기도하며 감사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요한 복음 5장 14절의 '만나시자'에 해당하는 '휴리스케이'(heuriskei; found)는 3인칭 현재 능동태인데, 이 동사의 주체인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그 사람을 찾아가 만났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만나신 이유는 주님께서 그에게 자신을 비로소 나타내시고, 그 사람에게 다시 죄를 짓지 말도록 경고하시기 위해서 일 것이다.
이것은 그 사람이 38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병으로 고생하게 된 근본 원인이 바로 죄였음을 알게 한다.
'다시는 ~마라'에 해당하는 '메케티'(meketi; no more)는 '이제는~아니'(no longer), '이제부터는~아니'(not from now on) 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명령법과 함께 쓰여 금지를 나타낸다.
또한 '죄를 짓지'로 번역된 '하마르타네'(hamartane; sin)는 '하마르타노'(hamartano)의 현재 명령형이며, 희랍어에서 현재형은 동작의 반복이나 계속을 나타낸다. 말하자면, 이제부터는 죄를 짓는 일을 계속하거나 반복하지 말라는 뜻이다.
원래 '하마르타노'(hamartano)동사의 기본 뜻은 '과녁을 맞히지 못하다'인데, 하느님께서 정하신 기준을 어긴 것을 가리키는데 쓰인다.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하타'(hata)인데, '하마르타노'(hamartano)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행위에 있어서 하느님께서 제시하신 목적 혹은 표준을 놓쳐버리는 것을 말한다.
한편,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38년동안 앓아오던 병을 치유받은 사람에게 하신 것은 과거의 죄는 용서받았으니, 앞으로 죄를 짓지 말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그가 만일 죄짓는 일을 반복한다면, 더 나쁜 일이 생길 수 있음을 경고받았다. 여기서 '더 나쁜 일'로 번역된 '케이론~티'(cheiron~ti)는 '더 나쁜 어떤 것', '더 못한 어떤 것'을 가리킨다.
즉 38년동안 그를 지배하던 질병보다 더한 질병이나 어떤 더 나쁜 상태가 될 수 있음에 대한 경고이다.
2026년 03월 17일 화요일
[사순 제4주간 화요일] (김재형 베드로 신부)
‘물’은 우리의 일상에서 생명을 지탱하는 필수 요소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차원에서도 깊은 상징을 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성전에 들어설 때마다 성수를 찍고 십자 성호를 그으며, 두 양식의 성수 기도 가운데 하나를 바칩니다. “주님, 이 성수로 저의 죄를 씻어 주시고, 마귀를 몰아내시며 악의 유혹을 물리쳐 주소서.”
“주님, 이 성수로 세례의 은총을 새롭게 하시고, 모든 악에서 보호하시어,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게 하소서.”
이 기도는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세례 때 받은 은총을 기억하며 마음을 깨끗이 하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밖에도 여러 전례 안에서 정화와 축복의 의미로 성수 예식을 거행합니다.
에제키엘서의 말씀을 바탕으로 하는 부활 시기 성수 예식 때 부르는 성가 ‘성전 오른편에서’는 물이 닿는 곳마다 모든 이가 구원을 받고 하느님을 찬미하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물에 관한 가장 중요한 상징은 특별히 세례 때 우리에게 부어지는 물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새로운 탄생의 문을 열어 줍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 여정은 늘 생명의 물 가까이에서 이루어집니다.
조용하지만 쉼 없이 흐름으로써 생명을 전달하는 물처럼 우리도 하느님의 은총이 흐르는 자리에서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생명을 건네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온 벳자타 못 주변에 앉아 있던 많은 병자처럼 우리 주변에 있는 생명을 간절히 바라는 이들에게 우리가 먼저 생명을 전할 수 있는 용기를 하느님께 청해 봅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셨음을 기억합시다.
우리도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의 흐름 안에서 서로를 일으켜 세우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멈추어 서 있던 이들이 삶에서 다시 일어설 힘을 건네는 신앙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김재형 베드로 신부)
[사순 제4주간 화요일]
구약과 신약, 그리고 묵시의 물이 모두 生命水
독서<하느님의 집,성전>(에제47,1-9.12)
1 천사가 나를 데리고 주님의 집 어귀로 돌아갔다. 이 주님의 집 정면은 동쪽으로 나 있었는데, 주님의 집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 물은 주님의 집 오른쪽 밑에서,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려 갔다. 2 그는 또 나를 데리고 북쪽 대문으로 나가서, 밖을 돌아 동쪽 대문 밖으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보니 물이 오른쪽에서 나오고 있었다. 3 그 사람이 동쪽으로 나가는데, 그의 손에는 줄자가 들려 있었다. 그가 천 암마를 재고서는 나에게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발목까지 찼다. 4 그가 또 천 암마를 재고서는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무릎까지 찼다. 그가 다시 천 암마를 재고서는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허리까지 찼다. 5 그가 또 천 암마를 재었는데, 그곳은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어 있었다. 물이 불어서, 헤엄을 치기 전에는 건널 수 없었다.
= 수영을 해야만 건널 수 있다. 수영을 못하면 빠져 죽는다. 수영하는 법을 배우라는 말씀이다. 곧 하느님의 물, 말씀은 인간의 힘, 지혜로는 알 수가 없기에 약속하신 성령을 청(請)하고 구(求)하면 받을 것이고,(루가11,13) 그 성령께서 말씀을 생명수로, 구원의 진리로 증언하시며 깨닫고 먹고 마시게 하심으로 살리신다는 것이다.(1코린2,10)
6 그는 나에게 “사람의 아들아, 잘 보았느냐?” 하고서는, 나를 데리고 강가로 돌아갔다. 7 그가 나를 데리고 돌아갈 때에 보니, 강가 이쪽저쪽으로 수많은 나무가 있었다. 8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나가,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9 그래서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12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
= 성전에서 나오는 물, 곧 주님의 물, 말씀이기 때문이다.
<신약(新約)>
(요한4,13-14) 13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여자, 땅의 쓴물이다)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 하느님의 규정과 법규, 계명인(탈출5,22-26) 쓴물(죽음의 물)에 나무하나(십자나무- 예수)가 빠져 죽어 단물(생명의 물)이 되게 하심으로 사람을 살리는 그 하느님의 말씀인 물이다.
그 완성이 묵시의 모습이다.~
(묵시22,1-4) 1 그 천사는 또 수정처럼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나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에서 나와,
= 어좌, 하느님의 집, 성전이다.
2 도성의 거리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었습니다. 강 이쪽저쪽에는 열두 번 열매를 맺는 생명 나무가 있어서 다달이 열매를 내놓습니다. 그리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에 쓰입니다. 3 그곳에는 더 이상 하느님의 저주를 받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도성 안에는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가 있어, 그분의 종들이 그분을 섬기며 4 그분의 얼굴을 뵐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마에는 그분의 이름이 적혀 있을 것입니다.
= 하느님의 저주가 십자나무의 대속, 그 새 계약으로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없애셨기 때문이다.
(에페2,16) 16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이름을 받았다. 곧 하느님의 신부, 아들, 자녀가 된 것이다.
(묵시22,5) 5 (그들에게) 다시는 밤이 없고 등불도 햇빛도 필요 없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들의 빛이 되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다스릴 것입니다.
= 빛의 나라에서 영원(永遠)을 사는 것이다. 사람의 뜻을 위한 물, 말로 먹고 마시면, 곧 사람의 규정, 계명으로 받으면 영원한 어둠에 갇히게 된다.(티토1,14 2베드1,21 콜로2,20-23 참조) 에제키엘의 성전이나 묵시의 성전이나 모두 에덴의 모습이 완성된 것이다. (그래서 종말이 창조를 앞선다고 한 것이다.)
<에덴동산>
(창세2,9-10) 9 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10 강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그곳에서 갈라져 *네 줄기를 이루었다.
= 네 줄기- 마태. 마르코, 루가, 요한.- 사(4)복음을 뜻한다.
(창세2,11-12) 11 첫째 강의 이름은 피손인데, 금이 나는 하윌라 온 땅을 돌아 흘렀다. 12 그 땅의 금은 질이 좋았으며, 그 고장에는 브델리움 향료와 마노 보석도 있었다.
= 땅 속에 금, 은, 보석은 왕(그리스도-예수)을, 곧 창조 사흗날의 땅을 위한, 땅속에 씨의 죽음과 부활이신 그리스도다.(창세1,11)
(창세2,13-14)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터져 나가다)인데, 에티오피아 온 땅을 돌아 흘렀다. 14 셋째 강의 이름은 티그리스(활처럼 빠르다)인데, 아시리아 동쪽으로 흘렀다. 그리고 넷째 강은 유프라테스이다.
= 에덴의 말씀이 구원의 왕, 예수 그리스도로, 생명수로 빠르게 퍼져 나가 묵시를 이루신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아담은 에덴의 물, 말씀을 선악의 물, 곧 쓴물, 사람의 물, 말로 먹는 죄를 범해 영원한 어둠인 흙속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창세2,15-17) 15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 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 16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 성경의 모든 말씀을 선악으로 받으면,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 그러나 쓴 물(죄,악)에 예수님(善) 께서 빠져 죽고 악을 살리시는 그 구원의 복음 말씀, 진리로 받으면 반드시 다시 살아난다.
<되 새기자>
(로마4,25) 25 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습니다.
(로마7,4) 4 나의 형제 여러분, 여러분도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 덕분에 율법(죄의 법)과 관련해서는 죽음으로써, 다른 분 곧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분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을 위한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로마8,33-34)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가 수영하는 방법, 곧 주님의 물, 말씀을 생명수로 먹을 수 있도록, 가르치고 이끌어 주실 것과 영원한 보호자로 함께해 주실 것을 알기에 행복합니다. 감사하며 사랑합니다.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