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간 월요일] 왕실관리 아들이 살아났다 (요한4,43-54)

2026. 3. 11. 오후 1:15:24

글자

20260316일 월요일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왕실관리 아들이 살아났다 (요한4,43-54)


뷰어 이미지


1독서<다시는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리라.>(이사65,17-21)

17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

18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대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움으로, 그 백성을 기쁨으로 창조하리라.

19 나는 예루살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나의 백성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 그 안에서 다시는 우는 소리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리라.

20 거기에는 며칠 살지 못하고 죽는 아기도 없고 제 수명을 채우지 못하는 노인도 없으리라. 백 살에 죽는 자를 젊었다 하고 백 살에 못 미친 자를 저주받았다 하리라.

21 그들은 집을 지어 그 안에서 살고 포도밭을 가꾸어 그 열매를 먹으리라.”

 

<화답송>시편30,24.5-6.11-1213(2ㄱㄴ) 주님, 저를 구하셨으니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

주님,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 당신은 저를 구하시어, 원수들이 저를 보고 기뻐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주님, 당신이 제 목숨 저승에서 건지시고, 구렁에 떨어지지 않게 살리셨나이다.

주님께 충실한 이들아, 주님께 찬미 노래 불러라. 거룩하신 그 이름 찬송하여라. 그분의 진노는 잠시뿐이나, 그분의 호의는 한평생이니, 울음으로 한밤을 지새워도, 기쁨으로 아침을 맞이하리라.

들으소서,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저의 구원자 되어 주소서.” 당신은 저의 비탄을 춤으로 바꾸시니, 주 하느님, 영원히 당신을 찬송하오리다.

 

복음<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요한4,43-54)

43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를 떠나 갈릴래아로 가셨다.

44 예수님께서는 친히,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증언하신 적이 있다.

45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가시자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분을 맞아들였다. 그들도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님께서 축제 때에 그곳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이다.

46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적이 있는 갈릴래아 카나로 다시 가셨다. 거기에 왕실 관리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카파르나움에서 앓아 누워 있었다.

47 그는 예수님께서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 아들이 죽게 되었으니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시어 아들을 고쳐 주십사고 청하였다.

48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49 그래도 그 왕실 관리는 예수님께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51 그가 내려가는 도중에 그의 종들이 마주 와서 아이가 살아났다고 말하였다.

52 그래서 그가 종들에게 아이가 나아지기 시작한 시간을 묻자, “어제 오후 한 시에 열이 떨어졌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53 그 아버지는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

5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로 가시어 두 번째 표징을 일으키셨다.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제1독서(이사65,17~21)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  (17)

 

이사야서 65장 17~25절까지는 주님께서 장차 창조하실 '새 하늘과 새 땅' ('샤마임 하다쉼 와아레츠 하다샤'; shamaim hadashim waarets hadasha; new heavens and a new earth)에 실현될 종말론적 축복에 대한 예언을 다룬다.

이와같은 예언은 이미 메시야 왕국과 관련해서 이사야서 11장 6~9절, 25장 6~8절, 26장 19절, 35장 등에서 분명하게 혹은 어렴풋이 예언되었다.

 

또한 이것은 요한 묵시록 21장의 주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새 하늘과 새 땅의 예언이 남은 자의 보존과 악인의 심판을 예언한 이사야서 65장 8~16절의 단락 다음에 제시된다는 것은, 이 새로운 왕국이 주 하느님의 신실한 종들만 누릴 수 있는 의로운 왕국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곳은 어린양의 피로 구속을 받은 거룩한 자들만 머무를 수 있으며(묵시21,8.2),다시는 죽음이나 눈물이 없고(묵시25,8; 21,4참조), 주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할 것이므로(묵시11,9) 주님께서 그 왕국에 머무는 자들의 모든 소원을 다 알고, 그 소원대로 축복을 주시는 곳이다(이사65,24).

이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에 대한 예언 궁극적으로 영원한 천국의 모습 (루카16,23; 요한14,2; 필리3,20; 1테살4,17; 묵시7,15~17; 22,1~5)을 연상케하는 예언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바빌론에서 풀려나는 것이나 그리스도의 육화 (강생)로 이루어진 지상 교회의 아름다움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으로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본 단락의 예언을 종말과 직접 관련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왜냐하면, 본 단락에 열거된 내용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바빌론 포로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회복된 사건이나 죄악의 권세에 억눌린 자들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로 구원받아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축복을 훨씬 뛰어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본 단락에 제시된 축복들의 밑바닥에는 영원성과 완전성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세에서 이루어질 축복과 관련된 바빌론 포로 귀환이나 그리스도의 대속에 근거한 성도들의 구원 사건에 직접 대입시키기 어려운 내용이라고 보인다.

 

그러므로 본 단락의 예언의 궁극적 성취는 요한 묵시록 21장의 내용과 더불어 그리스도 재림 이후 종말의 날, 모든 세대의 성도들이 영원히 누릴 궁극적 축복인 새 하늘과 새 땅의 환시와 관련된 축복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한편, 원문에는 이사야서 65장 17절이 이유 접속사 '키'(ki; for)로 시작된다. 이것을 고려하면, 본문은 앞절 후반절에서 제시된 내용, 즉 하느님의 백성들이 과거에 당하던 환난을 모두 잊고 고통을 완전히 벗어버릴 수 있게 되는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느님께서 이루실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에 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아담의 타락 이후 죄가 들어와서 오염된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상이 될 것이다. 

이것은 '창조하리라'에 해당하는 '보레'(bore; I will create)의 원형 '빠라'(bara)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신 주님의 창조 사업을 묘사한 단어 (창세1,1)와 동일한 동사라는 사실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여기서 예언되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은 현재의 것을 바탕으로 새롭게 개조하는 것이 아닌, 본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 세계에는 지금 이 세상에서 범람하는 죄와 고통, 또는 저주나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도 옛 세계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후의 새 하늘과 새 땅이 올 것이라고 예언하였다(2베드3,12~13).

한편 본문에서는 '빠라'(bara) 동사가 임박한 미래를 나타내는 분사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이처럼 새로운 창조가 임박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사야가 본 단락을 예언하고 있는 시점은 대외적으로 북부 이스라엘이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하고, 남부 유다 역시 아시리아에 의해 수많은 성읍들이 유린을 당하였고, 또 장차 바빌론 침공, 즉 남부 유다의 파멸의 그림자가 먼 발치에서 다가오고 있는 시점이었다. 

 

아울러 이 시기에 남부 유다는 내적으로 불의와 부정, 폭력과 우상 숭배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으며, 권력자들, 기득권자들이 저지르는 여러 가지 죄악과 폭력으로 말미암아 소외된 자들의 눈물과 고통과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한 급박한 위기 상황, 답답한 현실 상황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장차 하느님께서 창조하실 새 하늘과 새 땅을 예언하면서 창세기 1장 1절에서 사용된 '빠라'(bara) 동사를 분사형으로 표현함으로써, 이 놀라운 일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헀다.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 

본문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에 따른 결과 가운데 하나의 대표적 현상을 말해준다.  여기에는 강한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는 부정어 '로'(lo)가 두 번이나 사용되어 결코 기억되지도 않고 결코 생각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예전의 것들'에 해당하는 '하리쇼노트'(harishonoth; the former)는 복수형 단어로서 직역하면 '이전 것들'(the former things)이 된다. 

 

이것은 이사야서 65장 16절에 예언된 '이전의 환난들'을 포함하여 옛 세상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고난들과 죄악들을 다 포함한다. 

그리고 '마음에 떠오르다'는 의미로 사용된 '타알레나 알 레브'(thaallena al leb; come into mind)는 문자적으로 '마음의 표면 위로 떠오르다' (ascend on the heart)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전혀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의 표면 위로 떠오르지도 않는다는 표현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를 다시금 힘주어 강조한 것이다.  즉 하느님께서 이루신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는 이전의 것과는 전혀 새로운 것이 될 것임을 나타낸 것이다. 

아울러 이것은 하느님의 백성들인 의인들에게 심령의 완전한 치유가 이루어질  것임을 나타낸 것이다.

 

환난에서 해방을 받았어도 과거의 그 생각이 자꾸 머리속에 떠오르면, 현재 축복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더 이상 그것을 축복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고난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고난 차원에서 해방될 뿐 아니라, 그 고난을 당했던 기억 자체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사순 제4주간 월요일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가거라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극심한 슬픔 가운데 하나는 자녀의 죽음입니다.

그러한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라고 누군가 말하여 준다면 이보다 기쁜 소식이 있을까요?

오늘 복음과 독서는 죽음에서 부활로 이어지는 구원을 선포합니다.

보라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

새로운 생명의 창조가 약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위하여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중병에 걸린 아들 때문에 상심한 어느 왕실 관리가 예수님을 찾아와 아들을 고쳐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믿음을 강조하고자,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경고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아니라 표징과 기적을 믿는 우리의 잘못된 태도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결국 관리는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납니다.

아들을 고쳐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떠나는 모습은 참된 신앙인의 모범을 보여 줍니다.

이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결과로 받아들이겠다는 절대적 순명의 자세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역경의 순간을 건너게 하는 것은 말씀과 그에 대한 믿음입니다.

무엇보다도 그 말씀이 살아 있고 구체적으로 활동하는 실재임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곧 단순한 말씀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말씀임을 믿는 것그것이 부활에 이르는 길입니다.

이를 모범적으로 보여 준 왕실 관리는 구원을 체험하였고 그와 온 집안이 믿게” 되었습니다.

존엄한 믿음이 존엄한 구원을 가져온 것입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주님의 눈으로 하루를 바라본다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손길이요 섭리며 기적이다.

 

(요한4,43-54)

​43 *이틀 뒤에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를 떠나 갈릴래아로 가셨다.

= 이틀(듀오-짝) 뒤에, 곧 사마리아에서 있었던 일의 짝으로 그와 같은 일을 하러 가셨다는 의미이다..

 

(요한4,13-14) 13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 사람의 물(말, 법)이 아닌, 예수님의 물(말씀, 진리)로 죄의 용서, 하늘의 생명을 주신다는 것이다. 곧 어제 독서에서 묵상 했듯이 우리가 한 의로운 일로 받는 구원이 아닌 것이다.

 

(에페2,5-6.9) 5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 6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9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오늘독서(이사65,17) 17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

= 옛 사람의 죄악을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없애심으로, 하느님께서 새 사람으로 재창조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용서(구원), 곧 새 생명의 말씀을 주시러 가시는 길이시다.

 

44 예수님께서는 친히,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증언하신 적이 있다. 45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가시자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분을 맞아들였다. 그들도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님께서 축제 때에 그곳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이다. 46ㄱ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적이 있는 *갈릴래아 카나로 다시 가셨다.

=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을 직역하면 ‘물 포도주’ 포도주가 아닌 물에 강점이 있다는 것이다.

 

(요한2,9) 9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러

=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았다. 곧 ‘피의 새 계약’인 말씀인 것이다. 포도주(피)로 먹으면 재앙이다. 물(말씀)로 먹어야 산다. 피는 구약의 제사를, 그리고 신약에서 그 피의 제사를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새 계약, 그 구원의 복음 말씀(물)이다.

그 말씀(물)이 예수님께서 “내가주는 물(말씀)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말씀)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요한4,14) 하신 것이다.

용서, 생명, 의로움, 구원, 모두 그 십자가의 새 계약, 그 말씀(물)으로 얻는다. 그래서 이집트의 첫 재앙으로 나일강 물이 피로 변하게 하셨던 것이다.(탈출7,14~참조)

 

46ㄴ거기에 왕실 관리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카파르나움에서 앓아누워 있었다.

= 카파르나움의 자신의 안식을 위해 자기 열심, 능력으로 지은 집, 성전이다. 그 곳이 용서, 참 안식이 없는 병든 곳이라는 것이다. (루가10,15참조)

 

47 그는 예수님께서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 아들이 죽게 되었으니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시어 아들을 고쳐 주십사고 청하였다.

= 그가, 포도주가 된 물, 곧 피의 새 계약, 그 말씀(물)을 들은 것이다. 그래서 아들의 고쳐주심을 請하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 복음 환호송에 ‘찾아라’. 하신 것이다.

 

(아모5,14) 14 너희는 악이 아니라 *선을 찾아라. 그래야 *살리라. 그래야 너희 말대로 주 만군의 하느님이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 십자가의 代贖, 그 하늘의 의로움을 찾는 것이 善이요, 땅(사람)의 의로움으로 찾는 것이 惡인 것이다. 인간의 의로움으로 이룰 수 있다고 한다면 하느님의 뜻을 敵對하는 것이 되어 結局은 땅(지옥)에 갇히게 될 뿐이기에 不義(惡)인 것이다. 그렇다고 의롭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신앙의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48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49 *그래도 그 왕실 관리는 예수님께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 오로지 주님 만을 의지하고 믿겠다는 것이다.

 

입당송(시편 31,7-8) 저는 *오로지 주님만 믿나이다. 가련한 저를 굽어보시니, 당신 *자애로 저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 가파르나움, 그 자신의 뜻, 생각, 방법을 否認하고, 주님의 뜻, 방법이 참 眞理임을, 말씀을 믿고 떠나간 대단한 믿음인 것이다.

 

병행복음을 보면~

(마태8,8.10) 8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1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 제 지붕, 곧 카파르나움의 지붕은 자격이 없음을 알고 ‘한 말씀’만을 청한 것이다. 自己否認으로 말씀을 請하는 것, 주님께서 감동하시는 믿음이다.

 

51 그가 내려가는 도중에 그의 종들이 마주 와서 아이가 살아났다고 말하였다. 52 그래서 그가 종들에게 아이가 나아지기 시작한 시간을 묻자, “*어제 오후 한 시에 열이 떨어졌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53 그 아버지는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

= 말씀은 선포와 동시에 이루어진다. 믿음이 없기에 깨닫지 못할 뿐이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희로애락, 그 모든 것을 통해 구원(善)을 이루신다(로마8,28참조) 감각적으로 좋은 일 뿐 아니라 시련, 고통도 하느님께서 쓰신다는 것이다.

 

(필립1,29) 29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하는 특권을, 곧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하여 *고난까지 겪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 말씀은 살아 계셔서 성경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믿었을 때~

(1데살2,13) 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필립2,13) 13 하느님은 당신 호의에 따라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에페1,19-20) 19 또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20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5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로 가시어 *두 번째 표징을 일으키셨다.

= 첫 번째와 같이 두 번째도 피의 새 계약, 그 말씀(물)으로 받는 구원인 것이다. 그렇듯 성경 전체는 十字架의 代贖, 그 진리 한가지만을 말씀하신다.

 

(요한7,21)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한 가지 일을 하였을 뿐인데 너희는 모두 놀라워한다.

 

(루가22,20) 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히브10,10)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대속)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감사합니다.~~아멘!!!

 

  


  

  사순 제4주간 월요일 복음(요한4,43~54)

 

그래서 그가 종들에게 아이가 나아지기 시작한 시간을 묻자, "어제 오후 한 시에 열이 떨어졌습니다."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 아버지는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온 집안은 믿게 되었다.(52~53)

 

왕실 관리가 자기 종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서 먼저 차도가 보이기 시작한 시간을 마치 수사관이 심문하듯 세밀하게 물었다.  이렇게 그가 자기 아들이 차도를 보이기 시작한 시점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 일이 우연인지, 아니면 인술에 의한 것인지예수님의 능력에 의한 것인지 확인하고자 하기 위해서 였다.

이러한 세밀한 확인을 통해서 그는 의심할 것 없이 예수님의 신적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확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결국 자연스럽게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53절)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리고 왕실 관리가 종을 통해 아들의 병이 낳은 시점으로 확인한 시간은 '어제 오후 한시'라고 나오는데, 유대인들의 시간으로는 '어제 제 칠시'이며, 여기서 '어제'라고 표현한 것은 일몰 시간을 기준으로 하루를 계산하는 유대인의 관습 때문이며, 그래서 카나에서 멀리 떨어진 카파르나눔으로 돌아가고 있던 왕실 관리가 종과 만난 시간은 오후 한시로부터 5시간 이상 지난 시간으로 보는 것이 전혀 무리가 없다.

 

요한 복음 4장 53절의 '알았다'에 해당하는 '에그노'(egno; knew)는 '기노스코'(ginosko)의 부정 과거 시제인데, 이 단어는 주로 관찰과 경험에 의해 아는 것을 나타낸다. 

이 왕실 관리와 그의 온 집안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라 그분이 행하신 기적을 체험하고서야 비로소 믿게 되었음을 시사해 준다. 

 

관찰과 경험에 바탕을 둔 지식이 확실하기는 하지만, 주님의 말씀보다 표징과 이적에 더 관심을 두는 것은 적절한 믿음의 태도라고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 사건이 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것은 체험적인 신앙이 인간을 견고하게 세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믿게 되었다'에 해당하는 '에피스튜센'(episteusen; believed)은 '피스튜오' (pisteuo)의 부정 과거 시제로 사경을 헤매던 아들의 다시 살아남이 그 집안에 미친 결과를 나타낸다. 이처럼 이러한 이적을 체험한 결과로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당시 상류층 사람들이 예수님을 적대시한 경우가 많았던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왕실 관리의 위치에서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을 그가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의 온 집안이'에 해당하는 '헤 오아키아 아우투 홀레'(he oikia autou hole; all his household)를 가리키는데, '오이키아'(oikia) 건물로서의 집의 의미보다는 훨씬 많은 용례에서 '가족'(household)나 '식구'(family)를 나타낸다.

 

예수님을 알지 못했던 그 왕실 관리가 소문으로 들었거나 한 두 번 본 일이 있는 예수님께로 자신의 절박한 문제를 가지고 감으로써, 그와 그의 온 집안에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축복이 찾아오게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께 관한 지식을 널리 알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한다.

 

 

 

 

  20260316일 월요일

[사순 제4주간 월요일] (김재형 베드로 신부)

 

지난해 3월 유례없는 산불로 안동교구의 여러 지역이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아름답던 자연과 삶의 자리를 집어삼킨 화마는 쉽게 치유될 수 없는 흉터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바라보면 절망스럽기만 한 검게 타 버린 숲이 한 걸음씩 다가갈수록 뜻밖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푸른 희망입니다.

숯처럼 그을린 숲 바닥 사이로 새싹이 조용히 고개를 들고, 죽어 버린 듯한 숲은 생명의 숨을 들이켜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복구하기보다 자연의 회복력을 믿고 기다릴 때, 숲은 스스로 되살아날 뿐만 아니라 생명 또한 더욱 다양해진다고 합니다.

자연스러움이란 결국 하느님을 믿고 그분께 우리 자신을 내맡기는 것입니다. 우리와 하느님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때로 우리에게 단호히 경고하시지만, 그 엄중함 뒤로 오늘 복음의 왕실 관리처럼, 당신을 향한 믿음으로 내맡기는 이들에게 새로운 회복을 위한 희망과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마음을 돌려 그분께 돌아갈 때, 하느님께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펼쳐 주십니다.

상처로 얼룩진 자리 위에 새 생명을 일으키시고, 고통 속에서 울부짖던 이들에게 잔잔한 기쁨을 선물처럼 내려 주십니다. 이는 심판이 목적이 아니라, 결국 우리를 살리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깊은 마음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우리 일상에도 마음이 재처럼 타들어 가는 때가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터널 속에서 견뎌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자연스럽게 하느님께 내맡겨야 할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신 그분께서 우리가 변할 수 있도록,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든든히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김재형 베드로 신부)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종말이 창조를 앞선다.

 

1독서(이사65,16-19)

16 땅에서 자신을 위하여 복을 비는 자는 신실하신 하느님께 복을 빌고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신실하신 하느님을 두고 맹세하여라지난날의 곤경들은 잊혀지고 내 눈에서 사라지리라.

= 땅의 복이 아니라 하늘의 복을 청하고 맹세해야 땅의 모진 풍파, 곤경, 시련이 사라진다는 말씀이다.  복 “바라크”는 창조 “바라”에서 파생된 말로 ‘하늘의 생명력’을 뜻한다. (하늘의 생명만이 영원한 빛이기 때문이다)

 

(잠언14,27) 27 주님(야훼)을 경외함은 생명의 샘이니 죽음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 야훼 - '있는 나' - 스스로 존재하심.

 

(시편42,3) 3 제 영혼이 하느님을제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합니다그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올 수 있겠습니까?

 

17 “보라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 18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대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보라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움으로그 백성을 기쁨으로 창조하리라.

= 이미 이루신 첫 창조를 재 창조, ‘새 창조로 이루실 그 새 예루살렘(도성, 성전)과 새 백성’으로다.

 

19 나는 예루살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나의 백성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그 안에서 다시는 우는 소리가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리라.

= 그런데 하느님은 당신께 죽기까지 순종하신 흠도 티도 없는 맏아들 예수 그리스도만 받으신다.(탈출22,29 참조) 하느님은 당신 아드님으로만 즐거워하시며 기뻐하신 다는 것이다.

그래서 땅의 것을 추구하며 살았던 나를 부인(否認)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들어가 그분의 지체가 되었을 때 하느님은 그 깨끗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보시기에 우리가 하느님의 즐거움, 기쁨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설명한 것이 창조다. 공부해 보자~앞서 확인했듯이 첫 창조는 새 창조를 위한 것이다.

 

첫 창조~

(창세1,1-3) 1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2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3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새 창조~

(묵시21,1.-4.22-23) 1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2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3 그때에 나는 어좌에서 울려오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보라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22 나는 그곳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전능하신 주 하느님과 어린양이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23 그 도성은 해도 달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하느님의 영광이 그곳에 빛이 되어 주시고 어린양이 그곳의 등불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 아담이 첫 창조물인 에덴에서 하느님의 말씀, 뜻을 거스리고 자신의 뜻, 욕망(慾望)대로 살고 싶어 뱀의 유혹을 먹었다.

 

(창세3,17-19) 17 그리고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으니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18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 19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 아담은 영원한 죽음에 갇히게 된 것이다. 아담처럼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한 신앙을 사는 사람이 오늘 복음에 나오는 ‘카파르나움의 병자’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인 그 아비의 믿음으로 살아난 아들이 새 창조의 새 사람이다. (카파르나움- 나를 위한 고을, 집, 성전)

“종말은 한 처음 완성이다.”  “종말이 창조를 앞선다.”라는 말이 있다. 하느님은 ‘한 처음(太初)’이 목적이 아니셨다. 살리시기 위한 묵시록 22장의 새 하늘과 새 땅이었다. 하느님은 그 불가능하고 패역한 인간(아담)들을 당신의 속성(사랑)이 하나도 손상됨 없이 어떻게 거룩한 하늘 백성들로 재 창조, 새 창조를 해 나가시는가를 설명한 것이 성경이다.

 

(로마1,20) 20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에페1,4)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사랑으로

=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새 창조를 이루시겠다.’는 것이다. 첫 창조는 첫 계약을 뜻하며 새 창조를 이루는 두 번째 계약인 새 계약이다.

 

(히브10,9-10)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에 따라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옛것은 지나갔습니다보십시오새것이 되었습니다.

 

(갈라6,14-15) 14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15 사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1코린15,20-22)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21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짚어보자) 창조주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 창조론을 믿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닷새동안 모든 만물을 창조해 놓으시고 여섯째 날에 사람을 지으셨고 바로 안식(7), 복을 주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 창조론이다.(창세2,2-3)

그냥 하느님과 함께 그 안식을 누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담은 스스로 안식을 이루려고, 곧 진화하려고 했던 것이다. 사람이 스스로를 갈고 닦아 경지(안식)에 이르려 하는 것이 진화다. 그러나 땅의 경지로는 절대 하늘의 안식을 누릴 수 없다.

뱀의 유혹으로 아담(사람)들의 상식이 된 것이 진화론이다. (창세3,5 참조) 그러니 세상 사람들은 진화론이 맞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창조주 하느님을 아는 것, 믿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이렇게 하느님의 고급하고 멎진 계획속에 들어있는 것이 우리(聖徒)의 인생이다.

그런데 땅의 것을 소망하며 산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땅의 것으로 절망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하느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이 땅에서 저 땅, 곧 새 하늘과 새 땅을 준비하며 사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인생이다. 하느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로만 설 수 있음‘이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옛것은 지나갔습니다보십시오새것이 되었습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가 하느님의 즐거움기쁨이 될 수 있음을그 길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믿음이 되게 하소서자라게 하소서저희가 하느님으로 즐거워하며 기뻐 할 수 있도록 저희 모두의 마음에 불을 놓으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사순 제4주간 수요일] 지금이 바로 그때 (요한5,17-30)26.03.13조회 16[사순 제4주간 화요일] 벳자타 병자 치유 (요한5,1-16)26.03.13조회 14[사순 제4주간 월요일] 왕실관리 아들이 살아났다 (요한4,43-54)26.03.11조회 14[사순 제3주간 토요일] 세리의 기도 (루카18,9-14)26.03.09조회 9[사순 제3주간 금요일] 첫째 가는 계명은 사랑 (마르12,28ㄱㄷ-34)26.03.08조회 13[사순 제3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손가락 (루카11,14-23)26.03.07조회 19[사순 제3주간 수요일] 율법의 완성 (마태.5,17-19)26.03.05조회 12[사순 제3주간 화요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마태18,21-35)26.03.04조회 19[사순 제3주간 월요일] 예수님의 고향방문 (루카4,24ㄴ-30)26.03.03조회 11[사순 제2주간 토요일] 두 아들의 비유 (루카15,1-3.11ㄴ-32)26.03.03조회 12[사순 제2주간 금요일] 모퉁이의 머릿돌 (마태21,33-43.45-46)26.03.02조회 12[사순 제2주간 목요일] 부자와 라자로 (루카16,19-31)26.03.02조회 13[사순 제2주간 수요일] 섬기는 사람 (마태20,17-28)26.03.02조회 10[사순 제2주간 화요일] 실행(實行)하여라 (마태23,1-12)26.03.01조회 11[사순 제2주간 월요일] 용서하여라.(루카6,36-38)26.02.28조회 13[사순 제1주간 토요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마태5,43-48)26.02.24조회 17[사순 제1주간 금요일] ‘바보! 멍청이!’ (마태5,20ㄴ-26)26.02.24조회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