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3월 19일 목요일
[성 요셉 축일] 요셉은 의로운 사람 (마태1,16.18-21.24ㄱ)
제1독서<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2사무7,4-5ㄴ.12-14ㄱ.16)
4 주님의 말씀이 나탄에게 내렸다.
5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12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3 그는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고,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화답송>시편89,2-3.4-5.27과 29(◎37ㄱ) ◎ 그의 후손들은 영원히 이어지리라.
○ 주님의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제 입은 당신의 진실을 대대로 전하오리다. 제가 아뢰나이다. “주님은 자애를 영원히 세우시고, 진실을 하늘에 굳히셨나이다.” ◎
○ 나는 내가 뽑은 이와 계약을 맺고, 나의 종 다윗에게 맹세하였노라. “영원토록 네 후손을 굳건히 하고, 대대로 이어 갈 네 왕좌를 세우노라.” ◎
○ 그는 나를 부르리라. “당신은 저의 아버지, 저의 하느님, 제 구원의 바위.” 영원토록 그에게 내 자애를 베풀리니, 그와 맺은 내 계약 변함이 없으리라. ◎
제2독서<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였습니다.>(로마4,13.16-18.22)
13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은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은 의로움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16 그러한 까닭에 약속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은총으로 주어집니다. 이는 약속이 모든 후손에게, 곧 율법에 따라 사는 이들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보여 준 믿음에 따라 사는 이들에게도 보장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17 그것은 성경에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만들었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믿는 분, 곧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8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너의 후손들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에 따라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22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복음<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마태1,16.18-21.24ㄱ)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성 요셉 대축일 제1독서 (2사무7,4-5ㄴ.12-14ㄱ.16)
그가 이튿날 다시 나가서 보니, 히브리 사람 둘이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잘못한 사람에게 "당신은 왜 동족을 때리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자는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판관으로 세우기라도 했소? (2,13-14ㄱ)
'잘못한 사람'에 해당하는 '라샤'(rasha)는 '죄인', '악인'(창세18,23), '살인자'(민수35,31), '악인', '악을 행하는 자'(시편75,5; 잠언24,19)로도 번역된다.
이것은 단순히 판단을 잘못하여 실수를 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사악한 행동을 한 '악인'을 일컫는 말이다.
'당신은 왜 동족을 때리시오?'
'동족'에 해당하는 '레아'(rea)는 '친구'(창세38,12; 신명13,6), '여인', '연인'(예레3,1.20; 호세3,1)으로도 번역되는 단어로서 '매우 친밀한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모세가 서로 싸우고 있던 두 히브리인들에게 '본토인'(레위18,26)이라는 뜻의 '에즈라'(ezra)라는 말 대신에 특별히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같은 동포, 동족간의 관계가 '친구'와 '연인'처럼 친밀한 관계이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모세는 지금까지 왕궁에서 성장해 왔기 때문에 히브리인들이 당하는 것과 같은 고통을 체험하지는 못했지만, 히브리인들에게 뜨거운 민족애를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탈출기 2장 9절에 나오는대로, 모세의 어머니 요케벳(민수26,59;남편은 아므람:1역대6,3; 23,13)이 단순히 수유만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유아 교육까지도 맡게 되었고, 모세가 '주님 신앙'을 갖게 되고 40년에 가까운 궁중생활에서도 히브리인으로서의 민족 의식을 잃지 않았던 것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요케벳을 통한 히브리식 교육의 덕택이라고 본다.
히브리인들은 보통 3살 정도에서 젖을 떼었으므로(창세21,8; 1사무1,22-24; 2역대31,16) 탈출기 2장 10절에서 아이가 자랐다는 말은 젖을 먹지 않아도 될 만한 나이인 서너 살이 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모세가 어머니의 품을 떠나 이집트의 궁전으로 들어간 때는 그의 나이가 3,4세 정도로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3~4년을 어머니의 젖을 먹고 양육되었으니, 모세의 피속엔 히브리인의 피가 흐르는 것이고, 적어도 어머니의 무릎팍에서 전수된 성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앙과 선민의식과 민족애는 40년간의 이집트 궁중에서의 고등 교육에서도 지워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이집트 궁중에서 왕자 교육을 받으면서 더욱 더 자신의 민족에 대한 의식과 사랑이 확고부동하게 성장했을 것이다.
바로 그러한 시각으로 자신의 동족(동포)들을 바라보는데, 같은 혈통을 가지고 동일하게 이집트인으로부터 극심한 고통을 당하며, 주님 신앙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이해하며 사랑하기는 커녕 서로 때리고 하는 모습을 보자 모세는 그들에 대한 분노가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판관으로 세우기라도 했소?'
여기서 '지도자'로 번역된 '사르'(sar)는 '다스리다', '주관하다'(에스텔1,22;잠언8,16)라는 뜻을 지닌 '사라르'(sarar)에서 유래한 단어로, '우두머리', '주관자'(잠언28,2), '관리', '사람'(1열왕5,16)이라는 뜻인데, 탈출기 1장 11절에 나오는 '감독'과 동일한 단어이다.
그 히브리 사람은 자신들에게 고역을 부과하기 위해서 이집트인들이 세운 관리 제도를 기준으로 해서 모세가 자신들의 일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도무지 없음을 말했던 것이다.
어쩌면 이집트 왕자의 신분이었던 모세는 히브리인들의 눈에 동포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자기 혼자 궁중에서 호의호식하는 민족 배반자로 비쳐졌을 수도 있다.
결국 히브리인의 이러한 반감어린 말로 인해, 같은 동족으로서 동족의 문제에 과감히 끼어든 모세의 동포애는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그리고 '판관'으로 번역된 '쇼페트'(shophet)는 '판가름하다', '판결하다' (민수35,24) 뿐만 아니라 '징벌하다', '심판하다'(2역대20,12)는 의미도 있는 '샤파트'(shaphat)의 분사형이다.
따라서 이것은 단순히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재판장', '판관'(신명1,16)이란 뜻만이 아니라 상벌을 시행하는 '관원', '통치자'(시편2,10), '방백', '판관'(1사무7,16)의 뜻도 있다.
이 구절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때와 방법이 아닌 모세 자신의 방법과 자기식의 의(義)로 스스로 자기 힘으로 동족 이스라엘을 구하고 싶다는 표현을 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것이 바로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판관으로 세웠다는 말이요?'의 내면적 뜻이다.
성 요셉 대축일 제1독서 (2사무7,4-5ㄴ.12-14ㄱ.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16)
다윗 왕조와 그 나라가 영원히 보전되며 그 왕좌가 영원히 견고하게 되리라는 사무엘 2권 7장 16절의 선언은 다윗 언약(약속)의 절정이다.
여기서 '굳건해지고'로 번역된 '네으만'(nehman)은 '신실하다', '지탱하다'라는 뜻의 '아만'(aman)동사의 수동형으로서 '진실되다', '지속되다', '확립되다'라는 뜻을 가진다.
이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는 '진리'라는 뜻의 '에멘'(emen)이 있는데, 이것은 '참으로', '진실로'라는 뜻으로 기도나 찬양 뒤에 쓰이는 '아멘'(amen)이라는 형용사의 어원이기도 하다.
이것을 볼 때 하느님의 언약(약속)안에 있는 왕조와 나라는 하느님의 신실하심에 그 기초를 두고 세워져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너의 집안과 나라'로 번역된 '뻬테카 우마믈라크테카' (betheka umamllaktheka; your house and your kingdom)는 중언법(重言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다시 번역하면 '너의 나라의 집(왕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네 앞에서 영원히'로 번역된 '아드 올람 레파네카'(ad ollam lephaneka; forever before you)는 직역하면 '네 얼굴 앞에서 오랜 시간까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네 얼굴 앞에서'라는 말은 다윗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이후에 이어질 다윗의 후손들을 암시하며, '오랜 시간까지'라는 말은 궁극적인 임금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실 그 때까지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 안에 영원성을 소유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이어진 긴 시간은 결국 영원으로 이어지는 시간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이러한 일이 미래에 일어날 일임에도 불구하고, '굳건해지고'에 해당하는 동사 '네으만'(nehman)이 미완료형이 아니고 완료형이다. 이것은 '확신의 완료형'으로서 그 일이 확실하게 성취될 것을 강조한다.
한편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스라엘 왕조는 점차 다윗에 대한 언약(약속)에서 멀어져 갔던 것을 볼 수 있다. 외형적으로 보면 이 언약의 말씀은 성취를 향해 이어져 가기보다는 오히려 상실될 위기를 맞았던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결국 다윗 왕조는 남부 유다의 제20대 임금인 치드키야 시대에 바빌론에 의해 B.C.586년 종말을 고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무엘 2권 7장 16절의 예언은 이루어지지 않았단 말인가?
남부 유다는 비록 사람의 매와 인간의 채찍이라고(2사무7,14) 할 수 있는 바빌론에 의해 멸망했지만, 포로 귀환으로 회복되었을(즈카1,1~4) 뿐만 아니라 최종적으로 다윗의 후손 가운데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메시아 왕국의 영원한 임금이 되셨다.
따라서 다르게 생각하면, 이처럼 남부 유다의 임금들에게서 희망이 사라지는 것은 오히려 궁극적인 임금이신 그리스도를 더 기대하는 기초가 되어졌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약속의 말씀은 남부 유다 임금들의 실패 가운데서 더 굳건하게 세워졌으며, 결국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성취된 것이다.
오늘 성 요셉 대축일에 사무엘 2권 7장 4~16절 사이의 말씀을 봉독하고 묵상하는 것은, 영원으로부터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이신 천주 성자께서 메시아로 탄생하시기 위한 터전이며 인류 구원사업의 기초를 놓으실 분이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바로 다윗의 자손이신 요셉이 사무엘 2권 7장 4~16절의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기 위한 통로요 도구로서 간택되었기 때문이다(마태1,20; 루카1,27; 2,4참조).
[성 요셉 대축일] (한창현 모세 신부)
히브리인들의 문화에서 약혼은 혼인에 포함된 중요한 과정입니다.
일단 약혼하면 남편과 아내로 불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식으로 혼인할 때까지, 적어도 일 년은 남녀가 각자 자신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자기와 함께 살지 않았던 마리아가 잉태하였다는 것은, 요셉의 처지에서는 마리아가 율법에서 금하는 행동을 하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은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전합니다. 히브리인에게 ‘의롭다’는 말은 곧 율법을 곧이곧대로 지키는 것을 뜻합니다.
율법에 따르면 요셉은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에 실제로 마리아에게 죄가 있는지 따져 보았어야 합니다(신명 22,23-27 참조).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음에도 율법에 따라 마리아의 죄를 따져 묻는 대신,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기로 합니다.
어쩌면 요셉은 마리아의 잉태 과정에 율법에서 금하는 죄가 있으면 어쩌나 걱정하였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의 천사는 이러한 요셉이 하느님 구원의 신비를 꿈에서 마주하고, 이미 자신이 하느님 구원의 역사 안에 있다고 깨달을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영적 여정에서도 자신의 상황을 마주하지 못하고 요셉처럼 외면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차마 용기가 없어 외면하고 있는 우리의 외적인 상황과 내적인 상태를 바라볼 기회가 온다면, 요셉 성인처럼 그 안에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에 겸손하게 머물 수 있는 은총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한창현 모세 신부)
[성 요셉 대축일]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2독서(로마4,13-5,1)
13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은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은 *의로움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 하늘의 대속, 그 의로움이다.
(마태6,33)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로마3,24)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14 율법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상속자라면, 믿음은 의미가 없어지고 약속은 무효가 됩니다.
= 율법(제사와 윤리)의 그 자기 의로움은 하느님의 약속, 그 믿음과 상관이 없는 것이다.
15 율법은 진노를 자아내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습니다.
= 인간은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차별이 없는 영원한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으로는 죄만 알뿐인 것이다.(로마3,20)
(로마8,3-4)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4 이는 육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채워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6 그러한 까닭에 *약속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은총(은혜)으로 주어집니다. 이는 약속이 모든 후손에게, 곧 율법에 따라 사는 이들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보여 준 믿음에 따라 사는 이들에게도 보장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 하느님께서 믿음이 없던 아브라함을 믿음의 아브라함으로 이끌어 가신 것이다.
17 그것은 성경에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만들었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믿는 분, 곧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 흙으로 사람을 창조 하셨듯이, 그 없음(無)의 존재를 있음의 하늘 존재로 재창조 하실 것을 믿는 것이다.
18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너의 후손들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에 따라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21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 자신에게는 희밍(믿음)이 없지만 하느님에 대한 믿음(희망)을 믿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 이사악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이고, 그것은 곧 자신을 바치는 것이었다.
22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신”것입니다. 23 하느님께서 인정해 주셨다는 기록은 아브라함만이 아니라, 24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을 믿는 우리도 그렇게 인정받을 것입니다.
= 그것이 하느님 나라의 原理다. 예수님은 우리가 자신에게서 나오는 모든 나쁜 것은 죄 뿐임을, 곧 자기를 위한 사랑, 자비, 의로움으로 모두 개짐(똥걸레)일 뿐임을 인정하는, 그래서 나 자신은 믿을 존재가 아님을 인정하는 그 자기부인(죽음)이 된 이들을 다시 하늘백성으로 살리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의 반대, 박해를 받는다.
(루가2,34)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 하느님의 뜻인 예수님의 대속, 그 하늘의 의로움이 아닌 인간, 자신의 욕망을 위한 그 스스로의 힘(의로움)을 고집하는 이들을 쓰러지게 하시고, 당신의 대속, 그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다시 일으키신다.
25 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습니다.
= 우리의 죄로 저주가 되시어 죽으신 그 십자가의 예수님만을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더러웠던 죄의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부활하셨다는, 거기까지 믿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주인, 주님이심을 믿는 것이다.
(로마14,9) 9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바로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기억하고 되새겨야할 하느님의 약속~
(이사45,8) 8 하늘아, 위에서 이슬을 내려라. 구름아, 의로움을 뿌려라. 땅은 열려 구원이 피어나게, 의로움도 함께 싹트게 하여라. 나 주님(야훼)이 이것을 *창조하였다.
(이사46,12-13) 12 내 말을 들어라, 마음이 굳은 자들아 의로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아. 13 나는 내 의로움을 가까이 가져왔다. 그것은 멀리 있지 않다. 나의 구원은 지체하지 않는다.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는 시온에 *구원을 베푼다.
(이사61,10) 10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
5,1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 그래서 어떤 처지에서든 그 하느님의 약속으로 희망, 믿음을 갖고, 하느님께 감사의 영광을 드리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우리의 평화다.
(이사43,6-7.11-13) 6 “내가 북녘에 이르리라. ‘내놓아라.’ 남녘에도 이르리라. ‘잡아 두지 마라. 나의 아들들을 먼 곳에서, 나의 딸들을 땅 끝에서 데려오너라. 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 7 나의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창조한 이들, 내가 빚어 만든 이들을 모두 데려오너라.’” 11 내가, 바로 내가 *주님이다. 나 말고는 *구원해 주는 이가 없다. 12 미리 알려서 구원하고 이를 들려준 것은 나지 너희 가운데에 있는 어떤 낯선 신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이다. 너희는 *나의 증인이고 나는 하느님이다. 13 앞으로도 나는 그러하리니 내 손에 든 것을 빼내 갈 자 없으리라. 내가 하는 일을 누가 돌이킬 수 있겠느냐?
= 아브라함처럼 의인, 믿음의 존재로 만들어 구원하시겠다는 말씀이시다.
*미리 알려주신 그 말씀, 소리를 알아듣는가?~~~
(요한10,27-29)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사랑이신 천주의 성령님! 오늘 미리주신 말씀을 믿음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지켜주소서.~아멘♡♡♡
성 요셉 대축일 복음(마태1,16.18~21.24ㄱ)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19)
마태오 복음 1장 19절의 '의로운 사람'으로 번역된 '디카이오스'(dikaios; a righteous man; a just man)는 '의로운', '정직한, '하느님과 인간의 법률을 준수하는' 등의 뜻을 지닌 형용사이다.
이것은 요셉이 구약에 나타난 하느님의 율법을 쫓아 경건하게 살아가는 사람 이라는 것과 부정한 것은 용납하지 않는, 곧은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래서 그는 마리아의 잉태 소식을 접하고는 혼외관계로 인해서 잉태한 것으로 인식하고, 그녀와의 정혼 관계를 끊으려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율법대로 마리아를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며 처벌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는 아마도 마리아를 향한 그의 사랑이 깊었기 때문이며, 그의 성품 자체가 온유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메'(me; not)는 부정을 나타내는 부정 부사이며, '텔론'(thelon; willing)은 '자발적으로 ~할 의향을 갖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 '텔로'(thelo)의 능동태 현재 분사형이다.
따라서 '싶지 않았으므로'로 번역된 '메 텔론'(me thelon)은 마리아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고, 요셉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 그녀의 임신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기로 결심한 사실을 보여 준다.
또한 '마리아의 일을'로 번역된 '아우텐'(auten)은 남성 3인칭 단수 대명사 '아우토스'(autos)의 여성형 목적격 단수이므로 '그녀를'(her)이라는 뜻이다.
즉 원문으로 볼 때, 요셉은 혼외 임신이라는 잘못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엄청난 일을 범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리아에 관심을 두었음이 잘 드러나고 있다.
한편, '드러내고'라는 의미로 번역된 '데이그마티사이'(deigmatisai; to make a public example)는 원형 '데이그마티죠'(deigmatizo)의 부정사형인데, '데이그마티조'(deigmatizo)는 '본보기'(an example), 특히 '경고의 의미에서의 본보기'를 보여 주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로서 '본보기를 만들어 앞에 내놓다', 또는 '공적으로 불명예를 주기 위해 폭로하다'는 의미이다.
본문은 요셉이 하느님의 율법대로 경건하게 살아가는 의로운 사람임을 소개하며, 자기가 정혼한 마리아의 임신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을 그가 마리아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러한 초자연적인 일을 경험한 일이 없음으로 인해 마리아의 임신을 혼외 관계로 여길 수밖에 없었던 그가 얼마나 상심하며 고민했을지를 엿보게 한다.
결국 고민끝에 요셉은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지만, 마리아를 깊이 아끼고 사랑한 까닭에, 당시 그런 죄목이라면 마리아의 부정을 공개적으로 폭로하여 모욕을 주고 돌에 맞아 죽게 하는 것이 관례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강한 결심을 했던 것이다.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여기서 '마리아와'로 번역된 '아우텐'(auten)은 '그녀를'이라는 목적격 인칭 대명사이다. 그리고 '남모르게'로 번역된 '라트라'(lathra; privily; quietly)는 '비밀히'(secretly)라는 의미를 지닌 부사로서,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마리아와의 관계를 처리하기로 한 요셉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한편 '파혼하기로'로 번역된 '에불레테 ~ 아폴뤼사이'(ebulethe ~apolysai; had in mind to divorce)에서 '에불레테'(ebulethe)는 소원하고 바라는 것, 즉 의도적으로 어떤 일을 수행하고자 하는 주어의 단호한 의지를 나타내는 동사 '불로마이'(bulomai)의 직설법 부정 과거 수동태이다.
여기서는 '불로마이'(bulomai)가 수동이 아닌 능동의 의미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아폴뤼사이'(apolysai)는 원형 '아폴뤼오'(apolyo)의 부정사 부정 과거 능동태형인데, '아폴뤼오'(apolyo)의 기본적인 의미는 노예, 죄인 등 구속된 사람을 자유롭게 놓아 보내는 것을 나타낸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 대부분 이런 의미로 쓰였으며, 그 외 모임을 해산하거나, 선교사를 파견하거나, 사람을 떠나 보내거나, 아내를 버리는 것, 즉 이혼하는 것 등의 의미로 쓰였다. 여기서는 이혼, 즉 정혼 상태를 깨뜨리는 것을 의미하므로, '에불레테 ~ 아폴뤼사이'는 '파혼하여 떠나 보낼 것을 결심했다'는 뜻이다.
2026년 03월 19일 목요일
[성 요셉 축일] (김재형 베드로 신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충실하고 지혜로운 종, 성가정의 가장, 예수의 양부, 요셉 성인을 설명하는 수식어는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그분에 대한 구체적 기록은 놀라울 만큼 적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그 감추어진 자리에서 풍겨 나오는 요셉 성인의 겸손한 존재감이 우리의 마음을 깊이 울립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전하며 마리아보다 요셉에게 더 큰 비중을 둡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으로 드러납니다. 성경이 말하는 의로움의 기준은, 하느님의 법과 계명을 지키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마리아를 대하는 태도는 계명이 제시하는 의로움을 넘어섭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는 법을 지키는 일보다, 계명을 완수하는 일보다도 ‘마리아를 지키는 일’을 선택합니다.
마리아의 사정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자 조용히 물러나려 하고, 꿈속에서 들은 천사의 말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입니다.
흔들릴 수밖에 없는 순간, 마음이 무너질 수도 있는 자리에서 요셉은 담대하고 고요합니다.
그저 주님께서 천사를 통하여 들려주신 말씀을 따라 걸어갈 뿐입니다.
마리아가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고백하였다면, 요셉은 그 고백을 침묵 속에 행동으로 보여 준 사람입니다.
우리도 요셉 성인의 겸손을, 사람을 먼저 살리는 참된 의로움을, 성인의 담대함과 고요함을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성가정의 가장이자 보편 교회의 수호자인 요셉 성인의 전구로 모든 가정과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 안에 요셉을 닮은 이들이 넘쳐 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김재형 베드로 신부)
[성 요셉 축일]
인간은 말씀(계명)을 다 지킬 수가 없어서 제사(대속)와 함께 주신 것이 율법이다.
제2독서(로마4,13-18)
13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은 율법(제사와 윤리)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은 의로움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 율법(律法)을 열심히 지킨 행위가 아니라 율법을 지키지 못한 그 죄(罪)를 ‘한 조목(條目)이라도 어기면 율법을 다 어긴 것이 되기에(야고2,10), 제사(祭祀)의 속죄(贖罪) 제물인 하느님의 어린양(예수)의 죽음으로 용서(容恕) 받았음을 믿는, 그 믿음으로 얻는 의로움이며 구원이다.
(로마3,24)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 그래서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사랑, 은총(恩寵), 진리(眞理)이신 것이다.
(요한1,17)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14 율법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상속자라면, 믿음은 의미가 없어지고 약속은 무효가 됩니다. 15 율법은 진노를 자아내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습니다.
= 율법(제사와 윤리)을 다 완성(完成)하시고 거저 전가(傳家)시켜 주신 의로움이기에 믿는 이에게는 율법(律法)이 완성된 것이다.
(로마8,3-4)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4 이는 육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채워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히브7,19) 19 사실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더 나은 희망이 주어져, 우리는 그것을 통하여 하느님께 다가갑니다.
= 구원(救援)의 희망(希望)이신 예수 그리스도시다.(1티모1,1)
(갈라3,13.19.23-24) 13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저주받은 몸이 되시어,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19 그렇다면 율법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약속을 받은 그 후손(예수)이 오실 때까지, 사람들의 범법 때문에 덧붙여진 것입니다. 율법은 천사들을 통하여 중개자의 손을 거쳐 공포되었습니다. 23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 갇혀, 믿음이 계시될 때까지 율법의 감시를 받아 왔습니다. 24 그리하여 율법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도록,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감시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 죄(罪)를 깨닫고 대속(代贖)으로 죽으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 가라고, 그래서 하늘의 용서(容恕), 의(義), 생명(生命), 구원(救援)을 받으라고, 감사(感謝)한 것이다.
16 그러한 까닭에 약속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은총으로 주어집니다. 이는 약속이 모든 후손에게, 곧 율법에 따라 사는 이들뿐만 아니라(온전히 다 지킬 수 있으면) 아브라함이 보여 준 믿음에 따라 사는 이들에게도 보장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갈라3,12) 12 율법은 믿음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 규정들을 실천하는 이는 그것들로 살” 따름입니다.
(히브10,1) 1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뿐 바로 그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같은 제물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17 그것은 성경에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만들었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믿는 분, 곧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8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너의 후손들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에 따라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 그래서 아들 이사악을 하느님께 바칠 수 있었다.
복음(루가2,41-51)
41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42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 열둘은 완성된 하늘백성의 숫자, 곧 예수님께서 열두살이 되었다는 것은 파스카를 완성하신 실체이심을 보여주심이다.
(탈출12,7.13) 7 그 어린양의 피는 받아서, 짐승을 먹을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라. 13 너희가 있는 집에 발린 피는 너희를 위한 표지가 될 것이다. 내가 이집트를 칠 때, 그 피를 보고 너희만은 거르고 지나가겠다. 그러면 어떤 재앙도 너희를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어린양의 실체(實體)이신 예수님께서~
(루가22,20) 20 (성찬례)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히브10,17.22) 17 그 새 계약으로~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 졌습니다.
=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열둘(완성)이 되셨는데도 관습(慣習)에 따른 파스카 축제는 잘못된 것임을 성경(聖經)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곧 그것이 파스카 축제(祝祭)의 실체, 주인(主人)인 어린양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이다.
43 그래서,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 예수님은 그대로 남아 계셨다. 파스카 축제(祝祭)의 실체(實體)이심을 보여주신 것이다.
44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 사람의 길, 방법(方法)으로는 찾지 못한다. 만나지 못한다.
45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46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47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48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49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 아버지의 집, 곧 성전(聖殿)이신 예수님이시다. 그러나 부서지실(죽음) 성전이시다. 그러나 다시 세워지실(부활) 성전이시다.(요한2,20-21 참조)
50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 예수님을 찾긴 했는데, 만났는데 그분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다. 관습(慣習)에 따른 파스카 축제(祝祭)를 지내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곧 성경(聖經)을 사람의 뜻을 위한 사람의 말로 들으면 하느님의 은총(恩寵), 진리(眞理)를 깨닫지 못한다는 말이다.
51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 성자(聖子)하느님이 피조물(被造物)인 사람에게 순종(順從)하셨다. 성부(聖父)하느님의 뜻에 따른 절대 순종(順從)이다. “아버지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심이다. 십자가(十字架)에 죽기까지 사랑하심이다. ”
(마태20,28)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그래서~ (빛의신비) 1. 죽음의 세례를 받으셨고, 2. 물 포도주로 혼인잔치를 완성하셨고, 3. 하느님 나라(성전정화)를 선포하셨고, 4. 거룩한 변모로 구원의 일을 보여 주셨고, 5. 새 계약의 성채성사를 세우셨다.
그리고~ (고통의 신비) 1.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기전 피땀을 흘리셨고, 2. 우리의 죄로 매 맞으셨고, 3. 우리의 죄로 가시관을 쓰셨고, 4. 우리의 죄로 십자가를 지셨고, 5.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졌다”하시고 죽으셨다.
그리고~ (영광의 신비) 1.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 부활하셨고, 2. 승천 후 진리의 자리에 앉으셨고(하느님의 우편-사도7,55) 3. 다른 보호자 성령으로 오셔서(요한14,16.16 15,326 16,7) 우리와 함께 하느님의 집, 성전을 완성하셨고 우리의 생명이 되어 주셨다.(로마8,9-10) 곧 오늘 복음 본문49절의 보이는 성전께서 부서지시고, 보이지 않는 영(靈)의 성전으로 죄인(罪人)들과 함께 세워지심, 완성하심이다.(1코린6,9-20) 그래서 예수님께서 4. 마리아(우리)를 하늘로 불러 올리셨고, 5. 마리아(우리)에게 천상모후의 관을 씌워 주셨다.
(이사62,3) 3 너는 주님의 손에 들려 있는 화려한 면류관이 되고 너의 하느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이 되리라.
(아가4,1) 1 (남자-솔로몬-예수) 정녕 그대는 아름답구려, 나의 애인이여. 정녕 그대는 아름답구려. 너울 뒤로 얼보이는 그대의 두 눈은 비둘기라오.
*성경(聖經)을 사람의 뜻을 위한 말(도덕과 윤리)로 들으면 절대로 깨닫지 못할, 믿지 못할 신비(神秘)다.
☨영원한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늘 함께 하시며 깨닫고 믿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믿음이 자랄 수 있도록 말씀안에 늘 머무는 삶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