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간 토요일]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요한7,40-53)

2026. 3. 18. 오후 1:3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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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1일 토요일

[사순 제4주간 토요일]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요한7,4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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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저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 같았습니다.>(예레11,18-20)

18 주님께서 저에게 알려 주시어 제가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그들의 악행을 보여 주셨습니다.

19 그런데도 저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 같았습니다. 저는 그들이 저를 없애려고 음모를 꾸미는 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저 나무를 열매째 베어 버리자. 그를 산 이들의 땅에서 없애 버려 아무도 그의 이름을 다시는 기억하지 못하게 하자.”

20 그러나 정의롭게 판단하시고 마음과 속을 떠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화답송>시편7,2-3.9ㄴㄷ-10.11-12(2) 주 하느님, 당신께 피신하나이다.

주 하느님, 당신께 피신하오니, 뒤쫓는 모든 자에게서 저를 구하소서, 저를 구해 주소서. 사자처럼 이 몸 물어 가지 못하게 하소서. 아무도 구해 주는 이 없나이다.

주님, 제 의로움, 제 결백을 보시고, 제 권리를 찾아 주소서. 이제 악인들의 죄악은 끝내시고, 의인들은 굳세게 하소서.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분, 하느님은 의로우시다.

하느님은 나의 방패, 마음 바른 이들을 구하시는 분. 하느님은 의로우신 심판자, 하느님은 언제든 진노하시는 분.

 

복음<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요한7,40-53)

예수님의 40 말씀을 들은 군중 가운데 어떤 이들은, “저분은 참으로 그 예언자시다.” 하고,

41 어떤 이들은 저분은 메시아시다.”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42 성경에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그리고 다윗이 살았던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43 이렇게 군중 가운데에서 예수님 때문에 논란이 일어났다.

44 그들 가운데 몇몇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45 성전 경비병들이 돌아오자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왜 그 사람을 끌고 오지 않았느냐?” 하고 그들에게 물었다.

46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고 성전 경비병들이 대답하자,

47 바리사이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도 속은 것이 아니냐?

48 최고 의회 의원들이나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그를 믿더냐?

49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50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51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52 그러자 그들이 니코데모에게 대답하였다.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53 그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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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 제4주간 토요일 제1독서(예레11,18~20)

 

그런데도 저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 같았습니다. 저는 그들이 저를 없애려고 음모를 꾸미는 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저 나무를 열매째 베어 버리자. 그를 산 이들의 땅에서 없애 버려  아무도 그의 이름을 다시는 기억하지 못하게 하자." (19)

 

예레미야서 11장 19절에서 예레메야는 자신을 '순한 어린양'으로 비유한다. 11장 19절의 '저는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에 해당하는 '로 야다으티'(lo yadahthi)를 통해 '순한 어린양'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해 준다.

예레미야서 11장 18절에서 밝힌 것처럼 주님의 계시가 아니고서는 예레미야가 자신에 대한 살해 음모를 알 수 없었다는 사실을 '순한 어린양'의 비유와 '저는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라는 직접적인 고백을 통해 밝히고 있는 것이다.

 

'순한 어린양'에 해당하는 '케베스 알루프'(kebes alluph) '길들여짐', '고분고분함' 이라는 의미의 명사 '알루프'(alluph)와 '어린양'(레위14,5; '어린 숫양')이라는 의미의 명사 '케베스'(kebes)로 이루어졌다. 

아마 사무엘 하권 12장 3절 나탄의 비유에서 나오는 것처럼 '케베스 알루프'는 집안에서 키우는 길들여진 어린양(작은 암양)을 가리킬 수도 있다.

또한 본절에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 이라는 표현이 보여주는 것과 같이 자신이 도살당한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 순순히 도살장으로 끌려갈 만큼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한편 이처럼 예레미야는 현실에 어두운 반면에 예레미야를 죽이려는 자들은 아주 용이주도 하였다. 이것은 '없애려고' '음모를 꾸미는 줄'이란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먼저 '없애려고'에 해당하는 '하셰부'(hashebu)는 '계산하다', '세어보다'(창세15,5), '짜다', '꼬다'(탈출28,15), '궁리하다', '고안하다' (탈출35,32)라는 의미의 동사 '하샤브'(hashab) 완료형이다.

 

이 동사는 바로 이 '하샤브'(hashab)동사에서 유래한 '마하샤보트'(mahashaboth) 목적어로 취하고 있다. 

즉 '음모를 꾸미는 줄'에 해당하는  '마하샤보트'(mahashaboth)는 '꾀', '계획'(잠언15,16), '모략', '계략'(다니엘11,25), 모해', '흉계'(애가3,61), '계획'(잠언19,21), '생각'(이사55,7)이라는 명사 '마하샤바'(mahashaba) 복수형이다.

 

즉 본문에서는 실을 가지고 천을 짜듯이 매우 정교하고 철저하게 궁리하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  이 동사의 명사형 북수형을 목적으로 취하여 아나톳 사람들이 일시와 장소 그리고 전개 과정 등에서 철두철미한 살해 계획을 모의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님의 말씀 선포라는 예언직을 수행한 것에 대한 백성들의 응답이 이처럼 그 예언자를 죽이겠다는 치밀하고도 의도적인 살해 계획이라는 사실 주님의 계시를 통해 알게 되었을 때, 예레미야는 너무나 큰 절망과 낙심에 빠졌을 것이다.

 

한편 예레미야서 11장 19절 후반부의 아나톳 사람들이 멸망시켜 버리겠다고 하는 열매와 나무는 무엇인가?

겉으로 보면, '나무'는 분명 '예레미야'를 가리키기에 그의 '열매' 예레미야의 자녀가 된다. 그러나 예레미야서 17장 1절과 2절에 의하면, 예레미야는 독신 생활을 명받았고 그로 인해 자녀를 둘 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

 

그후의 기록을 보아도 예레미야의 결혼나 자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므로 본문의 '열매'라는 표현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본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을 예레미야의 입에서 증거되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본다. 

즉 당시 아나톳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거부하고 박해할 때 다른 이유 때문에서가 아니라 그가 전하는 하느님 말씀 때문에 그를 거부하고 그 모든 것을 없애 버리려 했던 것이다

 


 

 

[사순 제4주간 토요일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예수님 때문에 논란이 일어났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에 대한 논란을 점진적 구조로 펼쳐 나갑니다.

전반부에서는 군중 사이후반부에서는 권력가들 사이의 논쟁이 나옵니다.

사회의 하층부부터 상층부까지 예수님에 대한 논란이 점차 고조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범한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예언자 또는 메시아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고 권력층의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그분을 위험한 인물로 여깁니다.

결국 위험인물’ 예수를 잡으려고 성전 경비병들까지 보내지만 그분을 체포하지는 못합니다.

경비병들조차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고 감탄하며 연행을 주저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지도층은 율법을 근거로 그들을 비난합니다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그러나 신망받는 율법 학자였던 니코데모가 우리 율법에는이라는 전제를 달며율법에 근거하여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심판할 수 있다고 상기시켜 줍니다.

결국 이에 반박을 할 수 없었던 그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갑니다.

어수선한 불안과 부당한 적대감 속에서도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의 논쟁과 격분과 폭력에 침묵하실 뿐입니다.

독서에 나오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처럼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리는 자세로 계십니다.

사람들은 논쟁하고 술렁이며 요동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어느 때보다 견고한 침묵으로 마지막 때를 기다리십니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존엄전전긍긍하지 않는 태도로 아버지의 뜻을 향하여 걸어가시는 그 거리만큼 구원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요즘입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사순 제4주간 토요일]

 

예수님이 물이시다. 

 

(요한7,37-53)

37 축제의 가장 중요한 날인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는 일어서시어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38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주는 물이다.(앞4장 참조)

 

39 이는 당신을 믿는 이들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 성령께서 아직 와 계시지 않았던 것이다. 40 *이말씀을 들은 군중 가운데 어떤 이들은, “저분은 참으로 그 예언자시다.” 하고, 41 어떤 이들은 “저분은 메시아시다.”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42 *성경에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그리고 다윗이 살았던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미카5,1) 43 이렇게 군중 가운데에서 예수님 때문에 논란이 일어났다.

=논란은 성경의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미카의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루가2,10-12.15-16) 10 그러자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11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12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15 천사들이 하늘로 떠나가자 목자들은 서로 말하였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그 일,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봅시다.” 16 그리고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 전에 묵상 했듯이 성경의 의문의 답은 성경에 있다는 것이다. 성경 대신 사람들의 얘기로 주장하기에 논란이 있는 것이다.

여기 GoodNews에도 ‘내 생각에는’ 이라며 자기 생각을 말하기도 한다.

 

44 그들 가운데 몇몇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45 성전 경비병들이 돌아오자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왜 그 사람을 끌고 오지 않았느냐?” 하고 그들에게 물었다. 46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고 성전 경비병들이 대답하자,

= 지금까지 사람의 말(물)만 들었다는 것이다.

 

(요한4,13-14) 13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 사람의 물(말)은 다시 갈증만 줄 뿐이다.

 

47 바리사이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도 속은 것이 아니냐? 48 최고 의회 의원들이나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그를 믿더냐? 49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 신약의 새 계약으로 파스카 하지 못한, 곧 구원의 율법(제사와 윤리)에 멈추어 있는 이들이 저주 받은 자들이다.(로마3,20) 

지금은 제사와 윤리를 지킨 그 의로움이 아닌 새 계약인 십자가의 대속, 그 의로움을 진리로 믿어 하늘의 용서, 생명, 구원을 받는 것이고 그것을 성령께서 증언하신다.(로마8,1-4참조)

 

50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51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52 그러자 그들이 니코데모에게 대답하였다.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 예수님을 밤에 찾아와 말씀을 듣고도 말하지 못하는 니코데모다.

 

니코데모가 받은 말씀~

(요한3,5-7.14-15-17) 5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6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7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하였다고 놀라지 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우리도 이 말씀을 받았다. 이 생명수의 말씀을 얼마나 먹고 말하는지요.

 

53 그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갔다.

= *저마다(헤가토스-모두) *집(보이코스-우상의 집, 신전)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한, 곧 저마다의 뜻을 위한 집, 성전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 하느님의 뜻, 나라가 아닌, 우리의 뜻을 위한 신앙으로 돌아가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라 하신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미사와 기도를 우리의 뜻을 이루려 하고, 받아주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곧 율법신앙인 것이다. 

오늘 벧(집)을레헴(빵), 곧 하느님의 성전,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구유(짐승의 먹이통)에 누우신 아기께서, 곧 예수님께서 우리 죄인들의 양식으로 오셨음을 깨닫고 그분의 말씀을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먹어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주신 하늘의 존재가 되는 위로부터 태어남의 길이다.

 

☨생명의 물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가 진리이신 당신께 피신 하나이다. ~아멘!!!

 

 

 


 사순 제4주간 토요일 복음(요한7,40~53)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 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들이 니코데모에게 대답하였다.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요?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49~52)

 

예수님께 대해 약간의 호의적인 반응이라도 보이는 사람에 대해서 질책하던(요한7,47) 바리사이들은 이제 그들을 율법도 모르는 자로 매도하며 저주까지 퍼붓고 있다. 

여기서 '저 군중'에 해당하는 '호 오클로스 후토스'(ho ochlos houtos; this people)는 랍비 문학에 나오는 '암 하아레츠'(am haarets), 곧 '땅의 백성'과 동일한 뜻이다.

 

랍비들의 규범은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들과 관련하여 6가지 사실을 규정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증거를 위임하거나 취하지 말 것, 그들에게 비밀을 말하지 말 것, 그들을 고아의 보호자로 삼지 말 것, 그들에게 자선비의 관리를 맡기지 말 것, 일체의 매매 행위와 친교를 하지 말 것을 규정한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신봉하는 율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저주받은 무리로 여겼다. 이것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독선적인 우월감과 아집을 보여 주는 것이다.

 

요한 복음 7장 50절의 '니코데모가 그들에게 말하였다'에서 '말하였다'로 번역된 '레게이'(legei; asked) '레고'(lego)의 3인칭 단수 현재 시제로서 그의 등장이 극적이었음을 나타낸다. 

그 이유는 요한 복음 7장 45절의 '돌아오자', '물었다' 그리고 7장 46절의 '대답하자'가 모두 부정 과거형으로 나오는 반면에, 여기 '말하였다'만 현재형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이것은 니코데모의 말이 당국자들로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으며, 그 어조가 매우 적극적이고 반복적이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레고'(lego)라는 단어는 독자들로 하여금 니코데모가 말했다는 사실보다는 그 말의 내용에 관심을 집중하게 한다. 

'그들'에 해당하는 '아우투스'(autous; them)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여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루카18,9)을 가리킨다.

 

니코데모는 무조건 예수님께 대해 적대적으로 대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태도가 옳지 못하다고 판단했기에, 용기를 내어 그 부당성을 지적했다.  

니코데모는 불의를 보고서도 자신에게 돌아올 이해 득실을 따져서 가만히 침묵하는 그런 자는 아니었다.

 

한편 요한 복음 7장 51절에서 니코데모는 율법이 사람을 판결하는 원칙을 당국자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니코데모가 여기서 변호하고 있는 대상인 '그 사람'에 해당하는 '톤 안트로폰' (ton anthropon; the man)은 'a man'이나 'the man'으로 영역된다. 

'a man'은 예수님이 아닌 다른 사람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는 반면에, 'the man'은 그 대상이 예수님께 국한된다는 차이가 있다.

 

여기서 니코데모는 산헤드린 최고 의회가 이미 논의를 마친, 예수님을 제거하는 문제에 대해 항의의 뜻을 전달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the man'이 옳은 것 같다.

또한 '심판하게'에 해당하는 '크리네이'(krinei; judge; condemn)는 '판결하다', '단죄하다', '언도하다', '처벌하다' 등의 포괄적 의미를 지니는 법적 술어로 쓰였다.

 

니코데모는 여기서 율법이 판결하는 두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데, 하나는 말을 들어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행위(하는 일)을 알아보는 것이다. 

'본인의 말을 들어보고'는 먼저 당사자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며, '하는 일을 알아보고'는 그가 무엇을 행하였는지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알아'로 번역된 '그노'(gno; know)는 '기노스코'(ginosko)의 부정 과거 가정법인데, 이 동사는 관찰과 경험에 의해서 아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어떤 사람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관찰이라는 확인 절차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니코데모가 지적한 것이다.

율법에 정통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도 당연히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겠지만, 이미 편견과 선입견 속에 사로잡혀 판단력을 상실한 그들에게 그의 제안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끝으로, 요한 복음 7장 52절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라는 질문은 이미 니코데모가 갈릴래아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지만, 동시에 니코데모를 예수님을 지지하는 무리와 동등하게 취급하여 비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들은 진실을 말했던 니코데모를 무시해 버리고, 예수님을 변호하려는 그의 입을 막아 버리고 있다.

 

여기서 '예언자'를 나타내는 '프로페테스'(prophetes; prophet)에는 정관사 '호'(ho; the)가 붙어 있지 않다. 

이것은 메시야와 동일시되는 신명기 18장 15절에 나오는 '나와(모세와) 같은 예언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의 예언자를 모두 통칭하는 것이다.

즉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메시야를 포함하여 그 어떤 예언자도 갈릴래아에서 나올 수 없다고 단정한 것이다.

 

하지만 예언자 요나, 호세아, 나훔이 갈릴래아 출신이고, 아모스와 엘리야 및 엘리사도 갈릴래아 출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2열왕14,25참조). 

그러나 당시 바리사이들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마저 왜곡할 정도로 지독한 지역적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 잡혀 있었기에, 진리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20260321일 토요일

[사순 제4주간 토요일] (김재형 베드로 신부)

 

예레미야는 자기 민족을 뜨겁게 사랑하면서도 그들에게 다가올 불행을 선포해야 하는 숙명을 짊어진 예언자였습니다.

오늘 독서에는 그가 마주한 가장 쓰라린 장면이 펼쳐집니다.

잠시 머물던 고향집에서 누구보다 자신을 지켜 줄 것이라 믿었던 주변 사람들이 오히려 그를 죽이려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알려 주신 덕분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예레미야는 충격과 배신감 속에서, 자신을 아무것도 모른 채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에 비유합니다.

그러나 그는 폭력 앞에서 폭력으로 맞서지 않았습니다.

예언자의 길을 걷는 사람답게 그는 순순히 주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며 걸어갑니다.

예레미야는 하느님께 복수를 청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 분노에서 비롯된 복수가 아니라, 정의로우신 만군의 주님께서 당신 기준으로 판단하시고 이루시는 의로운 복수였습니다.

억울함을 폭력으로 갚아 주는 방식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느님의 정의에 내맡기는 신앙인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신앙인은 이 시대의 예언자입니다.

자기 민족에게 닥치는 불행이라 할지라도 진실을 침묵 속에 묻어 버리지 않고 기꺼이 외쳤던 예레미야처럼 우리도 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주님께 고백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기도로 우리 마음을 드러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억울함과 상처가 우리를 흔들어도 그 감정을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주님의 정의에 자신을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에게 저마다 맡겨진 예언자적 삶에 성실히 응답할 수 있기를 다짐합시다.

 

(김재형 베드로 신부)


 


 사순 제4주간 토요일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요한7,37-49)

37 축제의 가장 중요한 날인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는 일어서시어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 예수님의 물(말씀)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도록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요한4,14) 하신 물입니다.

 

38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

= 그 사람 속에서(코일리아-자궁) 사람, 그 안에서 생명을 살리는 물이 흘러나오는데~ 성령입니다.

 

39 이는 당신을 믿는 이들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 성령께서 아직 와 계시지 않았던 것이다.

= 성령이 내 안에 계셔야 인간의 지혜와 다른 하느님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늘의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로마8,8-9ㄱ) 8 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 인간의 지혜, 인간의 계명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9ㄱ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 성령이 계시면 ~ 죄의 대속으로 얻는 용서 그 십자가의 길이 구원의 진리임(요한14,6)을 가르치시고 기억하게 하십니다.(요한14,26) 그러면 그 진리가 모든 죄에서 자유롭게 하십니다.(요한8,32)

그러나~

(로마8,9ㄴ10) 9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 내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의 죽음, 그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로마8,1-2)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분리가 일어납니다.

 

40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군중 가운데 어떤 이들은, “저분은 참으로 그 예언자시다.” 하고, 41 어떤 이들은 “저분은 메시아시다.”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 분별을 못하는 모습입니다. 인간의 지혜로 받아 들이자니 어렵습니다.

 

(1코린1,19) 사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부수어 버리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를 치워 버리리라.”

 

42 성경에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그리고 다윗이 살았던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 말씀을 이루시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고 나자렛에서 자라셨습니다.

 

43 이렇게 군중 가운데에서 예수님 때문에 논란이 일어났다. 44 그들 가운데 몇몇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45 성전 경비병들이 돌아오자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왜 그 사람을 끌고 오지 않았느냐?” 하고 그들에게 물었다. 46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고 성전 경비병들이 대답하자,

= 예수님은 사람의 뜻을 만족 시키는 말씀이 아닌 하느님의 뜻, 구원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47 바리사이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도 속은 것이 아니냐? 48 최고 의회 의원들이나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그를 믿더냐? 49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 율법이 대속의 진리를 품고 있음을 우리는 계속 묵상 해 왔습니다. 그러나 뱀의 유혹으로 그 진리가 가리워져 속고 있는 것입니다. 속고 있는 자가 속고 있음을 모릅니다.

 

(1코린1,18)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1코린10,12)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1데살3,8) 여러분이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다고 하니 우리는 이제 살았습니다.

= 현세의 욕망, 그리고 하늘로의 구원까지 사람의 길, 규정과 교리의 그 열심한 행위의 신앙으로 잘가고 있다고, 서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아니면,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길, 대속의 십자가를 진리로 깨닫기 위한 그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서 있는지~

바빴던 내 밖의 종교 행위를 멈추고 깨달음을 위해 말씀 안에 머무르게 합시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아멘

 

 

 


[사순 제4주간 토요일(안동훈 안드레아 신부)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끌고 와야 하는 죄인으로 여기는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는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백성을 율법에 따라 돌보아야 할 책무를 지닌 이들입니다.

그러나 권력의 맛을 본 그들은 주님의 길을 곧게 내는 준비보다는 자신을 위한 길을 탄탄히 하는 데 힘을 쏟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예언자라고 말하며 메시아로 고백하는 이들자신들과 생각을 달리하는 이들이 율법을 모른다고 매도하며 저주받은 자들이라고 낙인을 찍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들만큼 율법을 잘 아는 니코데모가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요한 7,51) 하고 말하자그에게 성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비아냥거립니다.

어떠한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 완고한 마음이 그들을 양들에게 관심이 없는 삯꾼이 되게 합니다.

그래서 정치권력과 율법의 권위를 이용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습니다”(마태 23,13).

그렇지만 그들이 아무리 애쓴들 예수님의 말씀을 결코 막을 수 없습니다.

성전에서 가르쳤던 그 어떠한 사제들이나 율법 학자들과 달리예수님을 잡으라는 명령을 받은 성전 경비병들은 그분의 말씀을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마르 1,27)으로 받아들입니다.

성전 경비병들처럼 우리도 완고한 마음에서 벗어나 그분의 말씀을 듣고 회개한다면우리 안에서 하느님께서 일으키실 놀라운 일들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안동훈 안드레아 신부)

 

 

 

  [사순 제4주간 토요일]

 

초막절(草幕節)은 하느님 나라를 모형(模型)

 

복음(요한7,40-49)

40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군중 가운데 어떤 이들은, “저분은 참으로 그 예언자시다.” 하고, 41 어떤 이들은 저분은 메시아시다.” 하였다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42 *성경에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그리고 다윗이 살았던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예언(미카5,1~)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죄인들을 구원할 목자(牧者), 우리의 평화로 오셨다. 죄인(아담)들을 구원(救援)할 여인의 후손(창세3,15), 첫아들로 오셨다.(루가2,4-7)

 

43 이렇게 군중 가운데에서 예수님 때문에 논란이 일어났다. 44 그들 가운데 몇몇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45 성전 경비병들이 돌아오자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왜 그 사람을 끌고 오지 않았느냐?” 하고 그들에게 물었다. 46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고 성전 경비병들이 대답하자,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보자~

(요한7,37-39) 37 (*초막절축제의 가장 중요한 날인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는 일어서시어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38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 39 이는 당신을 믿는 이들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성령께서 아직 와 계시지 않았던 것이다.

= *그 속에서(코일리아-자궁, 성전, 집- 속 마음) 초막절(草幕節)의 가장 중요한 날인 마지막 날에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이 초막절의 ‘실체(實體)’ 시라는 말씀이다. 하늘이 죄인(罪人)들의 죄(罪)를 덮어 살리시는 초막(수캇-덮다)이신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성경) 안에 머무르면(먹으면) 그 말씀이 그 속, 내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물(진리)의 영이신 성령(聖靈)께서 흘러나와 나와 이웃이 새 생명(生命)을 살게 된다는 말씀이다.(1요한5,6 로마8,10 참조) 

곧 하느님 나라의 완성이다. 또한 재앙(災殃)을 막는 초막절의 진의, 진실이다.(즈카4,16-17참조)

그러나 그 진실(眞實), 의미(意味)는 깨닫지 못하고 법(法), 교리(敎理), 전례행위(典禮行爲)로 하는 신앙(信仰)은 믿지 못한다.

 

47 바리사이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도 속은 것이 아니냐? 48 최고 의회 의원들이나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그를 믿더냐? 49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 율법(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이 가리키는 새 계약인 십자가(十字架)로 가지 못하는 것이 저주(詛呪)다.(갈라3,22-26 참조)

예전에 어느 사제(담당 지도자)께서 ‘아프리카 오지(奧地)에 가도 제사(祭祀)가 있는데, 개신교(改新敎)에는 제사(祭祀)가 없어서 불행(不幸)하다’고 하신 예기를 듣고 당황한 적이 있었는데, 제사(祭祀)가 ‘십자가(十字架)에서 다 이루어졌음’을 모르고 계속 제사(祭祀)를 드리는 것이 불행(不幸)인 것이다.

왜? 이미 이루어진 ‘십자가(十字架)의 제사(祭祀)의 완성’으로 거저 얻는 하늘의 거룩, 의로움으로 가지(믿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로마3,20-25 참조) ‘피의 새 계약인 십자가 복음’에서 흘러나오는 말씀(물-진리)을 먹지 못하게 기 때문이다.

온갖 재앙(災殃)을 피할 수 있는 초막(草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덮으심, 보호하심을 받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히브10,11-14.18) 11 모든 사제는 날마다 서서 같은 제물을 거듭 바치며 직무를 수행하지만그러한 것들은 결코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1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13 이제 그분께서는 당신의 원수들이 당신의 발판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14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아멘!!!)

= 사제(司祭)께서  ‘우리 안에 진실(眞實)한 나를 찾을 때 겸손(謙遜)해 질 수 있고, 참된 실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럴 때 진정 주님은 우리의 구원자가 되십니다.’하셨는데 우리가 얼마나 진실(眞實)할 수 있을까?

초막(草幕), 천막(天幕)으로 덮고 계신 진실하신 그리스도를 찾을 때, 겸손해 질 수 있고, 참된 실상을 바라볼 수 있고, 그럴 때 주님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다.

 

(요한1,14)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 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 사셨다(스케노- 천막, 텐트로 덮다)

 

(1요한2,27) 27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성령)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아멘)

 

진리이신 천주의 성령님!

오늘 깨닫게 하신 모든 말씀이 우리 안에서 흘러넘치게 하소서모두가 말씀으로 하늘 성전이 되었음을 믿게 하소서저희 모두에게 성령의 불을 놓으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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