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주님의 기도 (마태 6,7-15)

2016. 6. 16. 오전 5:07:16

글자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주님의 기도 (마태 6,7-15)



집회서의 저자는 엘리야 예언자를 칭송하며, 그의 영으로 가득 찬 제자 엘리야도 살아생전에 기적들을 일으켰고 죽어서도 업적이 놀라웠다고 기술한다. (집회 48,1-14)
1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섰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
2 엘리야는 그들에게 굶주림을 불러들였고, 자신의 열정으로 그들의 수를 감소시켰다. 3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는 하늘을 닫아 버리고, 세 번씩이나 불을 내려보냈다.
4 엘리야여, 당신은 놀라운 일들로 얼마나 큰 영광을 받았습니까? 누가 당신처럼 자랑스러울 수 있겠습니까?
5 당신은 죽은 자를 죽음에서 일으키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말씀에 따라 그를 저승에서 건져 냈습니다. 6 당신은 여러 임금들을 멸망으로 몰아넣고, 명사들도 침상에서 멸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7 당신은 시나이 산에서 꾸지람을 듣고, 호렙 산에서 징벌의 판결을 들었습니다. 8 당신은 임금들에게 기름을 부어 복수하게 하고, 예언자들에게도 기름을 부어 당신의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9 당신은 불 소용돌이 속에서 불 마차에 태워 들어 올려졌습니다. 10 당신은 정해진 때를 대비하여,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1 당신을 본 사람들과 사랑 안에서 잠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우리도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12 엘리야가 소용돌이에 휩싸일 때,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엘리사는 일생 동안 어떤 통치자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하였다.
13 그에게는 어떤 일도 어렵지 않았으며, 잠든 후에도 그의 주검은 예언을 하였다.
14 살아생전에 엘리사는 기적들을 일으켰고, 죽어서도 그의 업적은 놀라웠다.


시편 97(96),1-2.3-4.5-6.7(◎ 12ㄱ)
◎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
○ 주님은 임금이시다. 땅은 즐거워하고 수많은 섬들도 기뻐하여라. 흰 구름 먹구름 그분을 둘러싸고, 정의와 공정은 그분 어좌의 바탕이라네. ◎
○ 불길이 그분을 앞서 가며, 둘레의 적들을 사르는구나. 그분의 번개 누리를 비추니, 땅이 보고 무서워 떠는구나. ◎
○ 주님 앞에서 산들이 밀초처럼 녹아내리네. 주님 앞에서 온 땅이 녹아내리네. 하늘은 그분 의로움을 널리 알리고, 만백성 그분 영광을 우러러보네. ◎
○ 우상을 섬기는 자들, 헛것으로 으쓱대는 자들 모두 부끄러워하리라. 모든 신들이 그분께 경배드리네.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할 때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라고 하시며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다. ( 마태오 6,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제1독서 (집회48,1-14)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서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 엘리야는 그들에게 굶주림을 불러들였고, 자신의 열정으로 그들의 수를 감소시켰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는 하늘을 닫아 버리고, 세 번씩이나 불을 내려보냈다. ~~ 당신은 불소용돌이 속에서 불마차에 태워 들어 올려졌습니다. 당신은 정해진 때를 대비하여,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잇습니다."(1~3. 9~10)  

 집회서유다 지혜 문학의 총결산이라 한다. 이 책의 원문은 히브리어로 쓰였는데(BC180년경), 원 저자의 손자가 이를 그리스어로 옮겼고(BC130년경), 이 그리스어 본문이 현존하고 있다.

그리스어 본문의 필사본들은 대부분 이 책의 제목을 '시라의 아들 예수의 지혜' 한다.

불가타(Vulgata: 라틴어성경)에서는 '에클레시아스티쿠스'(Ecclesiasticus)라고 하였고,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에서는 '리베르 에클레시아스티쿠스'(Liber Eccle siasticus; 교회의 책)라고 불렀다. 

이 이름은 치프리아누스 시대 이후 서방 그리스도교에서 새로 입교할 사람들을 교육할 때에, 이 책의 가르침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우리말 '집회서(集會書)'도 이 불가타와 서방 교회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오늘 독서 말씀은 하느님의 영광과 조상들의 올바른 삶을 기리는 내용중에 일부이다. 저자는 집회서 44~50장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 인물들 하나하나 나열한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임금, 현인, 예언자, 사제들이다. 

집회서 저자는 사제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특히 아론과  대사제 오니아스의 아들 시몬에 관하여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역사의 인물들에 대한 평은 찬미와 권고와 기도로 마무리한다.(50,22~24).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섰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48,1) 

'엘리야'란 이름은 '하느님은 나의 힘이시다'는 뜻이다. '불','횃불' 표상은 여기서는 '사랑' '열정' 혹은 '심판'의 의미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해석한다. 

'엘리야는 그들에게 굶주림을 불러 들였고'(48,27)란 말씀은 48장 3절의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는 하늘을 닫아 버리고'와 연결이 되어 있다. 가뭄 예언과 관련된 말씀 (1열왕17,1; 18,1~3; 1열왕 18,45참조)이다.

 하늘 문을 닫고 여는 하늘의 신, 풍요다산의 신인 바알을 숭배하던 아합왕과 이스라엘의 변절된 신앙에 대한 질타로 가뭄이 예언되고, 그 결과로 기근(굶주림)을 체험하는 것이다. 

즉 가뭄을 통해 계시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진짜 하늘(햇빛과 비)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또한 집회서 48장 2절(ㄴ)의 '자신의 열정으로 그들의 수를 감소시켰다'는 것은 카르멜산의 대결에서 승리한 후, 키손천에서 바알의 예언자 450명을 사로잡아 죽인 사건을 가리킨다(1열왕18,40).

그리고 집회서 48장 3절에 '세번씩이나 불을 내려보냈다'는 말씀이 나온다. 이것은 열왕기 하권 1장에 아하즈야왕이 자기 옥상 방의 격자 난간에서 떨어져 다친 후, 하느님을 찾지 않고 사자들을 보내어 에크론의 신 바알 즈붑에게 가서 병의 회복에 관한 문의를 하라고 명령한 것에 대한 벌(심판)의 이야기이다.  

두 차례나 엘리야가 예언한대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오십인 대장과 부하 쉰 명을 삼켜버린 사건을 말한다(2열왕1,10ㄷ.12ㄷ).  이 두 번과 450명 바알 예언자들과의 카르멜산 대결에서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번제물과 장작과 돌과 먼지를 삼켜버리고  도랑에 있던 물도 핥아 버린 사건을 말한다(1열왕18,38).

그리고 집회서 48장 9절의 '당신은 불 소용돌이 속에서 불 마차에 태워 들어 올려졌습니다'라는 말씀은 엘리야와 엘리야 영의 두 몫을 청하는 엘리사의 이별이야기에 나온다.  갑자기 불 병거와 불 말이 나타나 두 사람을 갈라 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에 실려 올라간 사건을 말한다(2열왕2,11).

'당신은 정해진 때를 대비하여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48,10)

이 구절은 말라기 3장 1절과 23절에 있는대로, 죽지 않고 산 채로 불수레를 타고 승천한 예언자가  하느님이 세상을 심판하기 직전에 다시 와서 이스라엘 백성을 회개시키고 열두 부족을 재건할 거라는 말씀이다. 

엘리야는 종말 심판자이신 하느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하느님의 심부름꾼, 메시아의 선구자(선주자)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세례자 요한에 이어 예수님이 활약하셨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요한 세례자(=엘리야)가 예수(=메시아)의 선구자(선주자)라는 입장을 취했다.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말라3,1)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려치지 않으리라.'(말라3,23)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복음 (마태6,7-15)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7~8)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에 해당하는 '메 밧탈로게세테'(me battalogesete; do not keep on babbling; do not use vain repetitions)에서 '빈말을 되풀이하다'로 번역된 '밧탈로게세테'(battalogesete)원형 '밧톨로게오'(battologeo)'말을 많이 하다', '생각없이 말하다', '쓸데없이 말하다' 등의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기도는 카르멜 산에서 바알의 예언자들이 했던 기도나(1열왕18,26), 에페소에서 거의 두 시간 동안이나 외쳐댔던 아르테미스 숭배자의 예에서 찾아볼 수 있다(사도19,34). 

또한 하느님을 대상으로 기도한다고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기도를 반복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믿는 이들 가운데서도 은총의 지위를 상실하고 죄중에 기도하거나, 하느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기도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이들이 때로는 눈물로 애원하고, 때로는 논리적으로 하느님을 설득하는 조로 미사여구를 늘어 놓으며 장황하게 기도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하느님 앞에 아무 의미없는 말들을 많이 쏟아내는 것에 불과하며, 이런 기도는 하느님 대전에 올라갈 수가 없다.

마태오 복음 6장 8절'알고 계신다'에 해당하는 '오이덴'(oiden; knows)은  완료형이다.

희랍어에서 완료형은 말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이미 동작은 끝났지만,동작의 결과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여기서도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이미 기도하는 이의 형편을 과거로부터 알고 계셨음을 보여 준다. 

우주의 삼라만상과 인류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께서 모르시는 것이 있을 수 없다. 당신께서 직접 창조하신 피조물이며, 당신께서 선택한 자녀의 청원 내용을 모르실 리가 없다. 따라서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적인 기도가 아니고,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진실한 기도라면 반드시 하느님께서 들어주신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라고 하더라도, 그 기도의 응답이 늦어질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때와 사람의 때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방법으로 가장 적절하게 응답해 주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 조재형 신부

<주님의 기도>송영진 모세 신부


‘주님의 기도’ 라는 명칭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라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내용을 보면, ‘주님께서 바치신 기도’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모두 구원받기를 바라십니다.
따라서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우리를 위해서 바치는 기도이고,
동시에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바치시는 기도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과 우리가 함께 바치는 기도가 되는 셈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마태 6,9ㄷ)”는,
온 세상 사람들이 아버지 하느님을 믿게 되기를 청하는 기도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바라는 일이고,
동시에 아버지께서도 또 예수님께서도 바라시는 일입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마태 6,10ㄱ)”는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서 완성되기를 청하는 기도이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마태 6,10ㄴㄷ).”는
인간 구원 사업이 마무리되기를 청하는 기도입니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라는 말은,
이미 구원을 받아서 하늘에 있는 사람들처럼
땅에 있는 인간들도 구원받게 해달라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는 표현은 다르지만 뜻은 모두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게 되는 것, 아버지의 나라가 완성되는 것,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은 모두
우리는 기도만 하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우리 쪽에서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느님(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가 도와드리는 일입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마태 6,11)”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양식을 청하는 기도입니다.
잠언에 이런 기도문이 있습니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 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잠언 30,8-9).”
너무 부유하면 교만한 불신자가 되기가 쉽고,
너무 가난하면 믿음을 잃은 범죄자가 되기가 쉽습니다.
(너무 부유한 것도 너무 가난한 것도 모두 구원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
따라서 ‘일용할 양식’은 구원을 향한 여정에서 꼭 필요한 양식,
즉 너무 많지도 않고 너무 적지도 않은 양식입니다.
‘오늘’이라는 말에도 그런 뜻이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저희’ 라는 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나의 양식’이 아니라, ‘우리의 양식’을 청하는 기도입니다.
(‘우리’ 라는 말은 ‘모든 사람’을 뜻합니다.)
만일에 ‘일용할 양식’을 청하는 기도가 신앙인들만을 위한 기도라면,
그래서 신앙인들만 배불리 먹고, 안 믿는 사람들은 굶주리는 일이 생긴다면,
바로 앞에 있는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뜻’과 모순이 됩니다.
마태오복음 12장을 보면,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마태 12,1).
또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 뒤에는
제자들이 빵이 없다고 걱정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마태 16,7).
예수님께서는 배고픈 제자들을 위해서는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 이상의 군중을 먹이셨을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똑같이 배불리 먹었습니다(마태 14,20).
아주 적은 양의 음식으로 대단히 많은 사람들을 먹이신 일도 기적이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배불리 먹었다는 사실 자체도 중요한 기적입니다.
(이것은 공산주의 이념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행복입니다.)
우리는 온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해서 ‘일용할 양식’을 청해야 하고,
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양식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일입니다(루카 14,12-14).
(실천 없는 기도는 ‘빈 말’입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마태 6,12ㄱ)”는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라는 예수님의 계명과 연결됩니다.
‘용서’는 곧 ‘사랑’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하고,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서로’ 라는 말은 예수님 쪽에서 사용하신 표현이고,
우리 입장에서는 ‘내가 먼저’로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사랑과 용서를 실천해야 합니다.
‘남 탓’ 하지도 말고,
다른 사람이 먼저 하면 그때 가서 하겠다고 미루지도 말고...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마태 6,12ㄴ)”는
사랑과 용서와 회개를 실천한 다음에(또는 실천하면서) 바쳐야 하는 기도입니다.
물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든지 간에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분이지만,
우리 쪽에서는 용서를 청하려면 그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만일에 사랑과 용서와 회개를 실천하지도 않으면서 용서해 달라고 청한다면,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강요’입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마태 6,13).”는
유혹과 악을 극복하고 물리칠 수 있도록,
그래서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런 것들을 아예 없애 달라고 청하는 기도가 아니라.)
이 말은, 유혹과 악을 물리치기 위한 싸움은 우리 스스로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도만 하고 싸우지 않는다면, 그것도 역시 ‘빈 말’입니다.


사실 유혹도 악도 사람의 힘만으로는 물리치기가 어렵습니다.
그것들의 힘은 사탄에게서 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것들을 물리치기를 바라시는 분이기 때문에
항상 우리를 도와주시는데,
그러나 그 도움은 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만,
즉 스스로 싸우면서 기도하는 사람만 받을 수 있습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연중 제11주간 토요일]걱정하지 마라 (마태 6,24-34)16.06.18조회 53[연중 제11주간 금요일]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마태 6,19-23)16.06.17조회 243[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주님의 기도 (마태 6,7-15)16.06.16조회 63[연중 제11주간 수요일]올바른 자선 (마태 6,1-6.16-18)16.06.15조회 135[연중 제11주간 화요일]원수 사랑 (마태 5,43-48)16.06.14조회 54[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마태 5,38-42)16.06.13조회 120[6. 11.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선교 (마태 10,7-13)16.06.11조회 147[연중 제10주간 금요일] 간음 죄 (마태 5,27-32)16.06.10조회 49[연중 제10주간 목요일]화해하여라 (마태5,20ㄴ-26)16.06.09조회 93[연중 제10주간 수요일] 율법의 완성 (마태 5,17-19)16.06.08조회 146[연중 제10주간 화요일] 세상의 소금과 빛 (마태 5,13-16)16.06.07조회 93[연중 제10주간 월요일] 참 행복 (마태 5,1-12)16.06.05조회 247[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루카 2,41-51)16.06.04조회 476.3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 (루카 15,3-7)16.06.04조회 48[연중9주 수요일] 6월 1일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마르12,18-27)16.06.01조회 201[연중 제9주간 화요일] 5. 31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루카1,39-56)16.05.31조회 164연중 제9주간 월요일]포도원소작인의 비유 (마르 12,1-12)16.05.29조회 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