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11.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선교 (마태 10,7-13)

2016. 6. 11. 오전 5: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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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11.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선교 (마태 10,7-13)


바르나바 성인은 키프로스 태생이고, 레위 지파 출신이다. ‘바르나바’라는 이름은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본이름은 요셉이며(사도 4,36 참조) 마르코 성인의 사촌(콜로 4,10 참조)이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사도 11,24)으로 칭송받는 바르나바 사도는 유다교에서 개종한 뒤 자신의 재산을 팔아 초대 교회 공동체에 바치고 다른 사도들과 함께 열성적으로 선교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성인은 60년 무렵 키프로스의 살라미스에서 순교하였다.


바르나바는 안티오키아에서 사울과 함께 사람들을 가르치는데, 그곳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된다. (행전 11,21ㄴ-26; 13,1-3)
그 무렵 21 많은 수의 사람이 믿고 주님께 돌아섰다. 22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로 가라고 보냈다. 23 그곳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 24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25 그 뒤에 바르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타르수스로 가서, 26 그를 만나 안티오키아로 데려왔다. 그들은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3,1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르나바, 니게르라고 하는 시메온, 키레네 사람 루키오스, 헤로데 영주의 어린 시절 친구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었다.
2 그들이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단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이르셨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 3 그래서 그들은 단식하며 기도한 뒤 그 두 사람에게 안수하고 나서 떠나보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라고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고, 전대도 여행 보따리도 지니지 말라고 하신다. (마태오 10,7-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위로의 아들 바르나바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제1독서 (사도11,21ㄴ-26; 13,1-3)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로 가라고 보냈다.

 그곳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22~24)

  

사도행전 11장 22절의 '그들에 대한 소문'안티오키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방인 회심사건을 말한다.

 

예루살렘은 안티오키아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져

이방인이 주님께 돌아온 사안이기에 예루살렘 교회는 그 소식에 관심을 갖고

들었던 것이다.

 

'교회는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에 해당하는 원문을 직역하면,

'교회의 귀들에 소문(말)이 들렸다'이다.

 

원문에서는 '귀들'(the ears)에 해당하는 '타 오타'(ta ota)를 써서 예루살렘 교회보다는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 개개인들이 안티오키아 교회에 대한 소문에 큰 관심을 갖고

들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듣고'에 해당하는 '에쿠스테'(ekusthe)'아쿠오'(akuo)의 수동태로서

어떤 소문이 외부에서 들려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 소문의 내용은 안티오키아에서 복음 선포자를 통하여 복음이 수많은 이방인에게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안티오키아의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소식은

예루살렘 교회로 하여금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게 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는 안티오키아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관심사에 대하여

점검하기 위하여 교회 지도자를 파견한 것이다.

 

이것은 사도들이 중심이 된 모교회로서 다른 교회를 보살피려는 사랑과

관심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사도8,14).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는 이미 사도 베드로를 통한 경험으로 이방인에 대한 편협한

편견을 버렸기에 바르나바를 멀리 떨어져 있는 안티오키아에까지 보낼 수 있었다.

 

여기서 '보냈다'에 해당하는 '엑사페스테일란'(eksapesteilan)의 원형

'엑사포스텔로'(eksapostello)어떤 사람에게 임무를 맡기어 어떤 장소로

보낸다는 의미로 '파견하다', '파송하다'라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그들이 바르나바를 선택하여 파견한 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 선교를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롭게 개종한 자에 대한 관심과 염려와 더불어 안티오키아에 있는

믿는 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싶었다.

 

그래서 믿음 안에서 형제들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서

예루살렘 교회의 주요 인물 가운데 하나인 바르나바를 보냈던 것이다.

 

'바르나바'(Barnabas)'휘오스 파라클레세오스'(hyos parakleseos),

'위로의 아들', '권면의 아들'이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권면과

위로의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었기 때문에(사도4,36) 안티오키아 교회 파견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는 키프로스 태생 레위인으로서 출중한 교사였고 선교사였으며,

사도 바오로의 협력자로서 초대 교회 복음 전파의 중심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사도9,27; 11,30; 12,25; 13~15장; 1코린9,6; 갈라2,1.9.13; 콜로4,10).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파견된 바르나바는 안티오키아에 도착해서 그곳의 회심한

이방인들과 몇몇 복음 전파자들을 함께 만나 보고, 그곳에 하느님의 은총,

성령께서 임재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기뻐한다.

 

그리고는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한다.

 

여기서 '격려하였다'고 하는 '파레칼레이'(parekalei)는 여러 가지  말로써

'권면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파라칼레오'(parakaleo)의 미완료 과거 시제이다.

 

희랍어에서 미완료 과거 시제는 반복과 계속을 나타내므로, 이러한 표현은

바르나바의 권고가 그들에게 계속되고 반복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르나바의 따뜻하고 세심한 기질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는 뜻은 '마음에 분명한 목적과

뜻을 가지고 주님께 확고부동하게 늘 헌신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바르나바가 이렇게 권면하는 이유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인이 된 이방인들에게 많은 박해와 시련들이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르나바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보다도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주님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신앙에 있어서 지속성을 갖는다는 것은 받은 축복과 은혜를 상실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한다는 의미이며, 제자로서의 기본 자세이기도 한 것이다.

 

한편 사도행전 11장 24절의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실한 사람'이라고 나온다.

 

여기서 '사실'로 번역된 '호티'(hoti)'왜냐하면', '~때문에', '~이므로'라는

뜻을 지닌 접속사이다.

 

이 단어는 바르나바가 안티오키아 교우들에게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주님과 함께

계속 머물러 있으라'고 권면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가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착한'에 해당되는 단어 '아가토스'(agathos)'놀리다', '경탄하다',

'높이 평가하다''아가마이'(agamai)'감탄할 만한', '훌륭한'

'아가스토스'(agasthos)같은 계열의 단어로서, 주위 사람들이 경탄하고

높이 평가할 정도로 바르나바의 성품이 훌륭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바르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원문은 '플레레스 프뉴마토스 하기우 카이 피스테오스'(pleres pneumatos hagiu

kai pisteos)인데, 여기서 '플레레스'(pleres)물이 가득 차서 넘치는 정도까지

이르렀음을 나타내는 형용사이다.

 

이 단어는 바르나바에게 있는 성령과 믿음이 그의 언어, 표정, 사고, 삶을 통해

외적으로 넘치도록 표현이 되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바르나바는 영적으로 풍부한 은혜를 소유한 사람으로서 그의 삶 가운데서

이러한 사실이 입증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로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여기서  '인도되었다''프로세테테'(prosethete)의 원형은 '프로스티테미'

(prostithemi)로서 수효를 '더하다', '가입시키다', 부과하다'는 뜻이다.

 

루가에게 있어서 이 단어는 교회 성장을 의미하는 전문 용어로 쓰였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르나바로 말미암아 안티오키아 교회가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모든 것을 이루신 주체가

하느님이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프로세테테'(prosetethe)가 수동형이라는 사실이 증명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성장했다고 해서 지도자들이 자신을 지나치게 과신하여

그 배후에서 역사(役事)하시는 하느님을 망각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복음 (마태10,7-13)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9~10)


마태오 복음 10장 9절은 앞선 마태오 복음 10장 8절과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복음을 전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어떤 대가를 바라거나 받아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자칫 잘못하면, 한글 새성경 번역은 복음 선포자가 아무것도 미리 준비해서는 안된다는

명령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병행구절인 마르코 복음 6장 8절에는 '전대에 돈도'라고 되어 있고, 루카 복음 9장

3절에는 '돈도'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마태오 복음에는 '금'에 해당하는 '크리소스'

(chrysos), '은'에 해당하는 '아르귀로스'(argyros), '구리'(동)에 해당하는

'칼코스'(chalkos)세분하여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다른 복음서들에 비해서 마태오가 복음 선포자가 가져야 할 청렴성과

신앙의 강직성에 대해 더욱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전직 세리로서

금전 계산에 빨랐던 마태오 복음사가가 돈의 종류를 일일히 나열한 것으로도

보인다.


한편, 마태오 복음 10장 10절에서 '여행 보따리'에 해당하는 '페라'(pera; scrip;

bag)는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넣는 도구이며, '옷'에 해당하는 '키톤'(chiton;

coat; tunic)은 일교차가 심해 특히 밤에 급격히 기온이 내려가는 광야의 추운 밤에 

이불 역할을 하는 필수품이고, '신발'에 해당하는 '휘포데마'(hypodema; shoes; 

sandal) 역시 먼 거리를 걸어서 여행하는 자가 반드시 준비해야 할 필수품이며, 

'지팡이'에 해당하는 '라브도스'(rabdos; staff)는 광야에서 짐승들을 만났을 경우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다.


이 모든 것들이 유다인들이 여행할 때 가지고 다니던 여행 필수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예수님께서 선교 활동의 임무를 부여받고 파견되어지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이런 기본적인 필수품조차 가지고 다니지 못하게 하셨을까?


이것은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할 자들이 먼저 솔선수범하여 그 복음의 내용을

실천하지 않으면 전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고, 오로지 이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시는 하느님만을 의지하여 살아야 함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일꾼이 자기가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은 복음 선포자가

자신의 생계를 위해 일하지 않으므로 일정한 수업이 없으니 다른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고, 복음 선포자에게 생계 걱정을 하지

말라는 뜻과 더불어 신도들에게는 복음 선포자의 생계를 책임지라는 뜻

지니고 있다.


여기서 '받는 것은 당연하다'에 해당하는 '악시오스'(aksios; is worthy of)

'합당한 가치를 지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교>송영진 모세 신부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마태 10,7-13).”


이 말씀은 열두 사도를 파견하실 때 하신 말씀인데,
사도들이 해야 할 일과 그 일을 할 때 지켜야 할 원칙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들이 첫 번째로 할 일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일’입니다.
즉 복음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예수님 부활 후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과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내용이 추가되었습니다.


그런데 복음 선포는 ‘말로만’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실제로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병자들을 고쳐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는 일도 복음 선포에 포함됩니다.
선교활동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 주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말로만 해서 될 일이 아니고, 실제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은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선교활동은 우리가 받은 사랑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입니다.
(신앙인은 모두 각자 자신이 있는 곳에서 한 사람의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거저 받았으니 사람들에게 거저 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아무것도 지니지 말고 가라는 말씀은 ‘실천 지침’입니다.
복음을 전해 주러 가는 것이니 복음만 가지고 가야 합니다.
‘빈 손’으로 가라는 이 지침은 ‘빈 마음’으로 가라는 지침이기도 합니다.
세속적으로는 ‘빈 마음’이지만 영적으로는 하느님으로 가득 찬 마음입니다.
하느님으로 가득 차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선교활동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에도 적용되는 지침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느님 나라를 향해서 가는 여행이니
그 나라에 들어가서 살 때에 필요한 것만 챙기면 됩니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들이 아닙니다.
세속의 명예나 권력 같은 것도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믿음, 희망, 사랑’입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은 ‘말로만’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삶’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곧 선교활동입니다.)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일꾼들을 당연히 먹이신다.” 라는 약속입니다.
‘빈 손’과 ‘빈 마음’으로 가도 하느님께서 먹여 주실 것입니다.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거기에 머물러라.”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마땅한 사람’을 보내 주실 것이다.” 라는 약속입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꾼들을 먹이시는 방법에 대한 설명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직접 올 수도 있고, 이웃을 통해서 올 때도 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에 이웃을 통해서 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웃 사랑’을 통해서 ‘하느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라는 말씀은,
더 나은 대접을 받으려고 옮겨 다니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니 주시는 대로 감사하게 받아야 합니다.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라는 말씀은,
사실상 “하느님 나라의 평화를 전해 주어라.” 라는 명령입니다.
복음 선포는 하느님 나라의 기쁨,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평화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평화를 어떻게 나누어 주나?”
평화를 비는 기도에 하느님께서 응답하셔서 평화를 내려 주실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선교사들이 전해 주는 복음, 기쁨,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 복음, 기쁨, 사랑을 통해서 평화를 체험하게(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평화를 내려 주신 일입니다.


(모든 신앙인은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평화를 전해 주는
‘평화의 선교사’가 되어야 하고,
또 그 평화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서 일하는 ‘평화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일부 종파의 경우 선교활동을 하면서 갈등과 분쟁만 일으키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증오심과 적대감만 심어 주는 경우가 있는데,
예수님의 복음을 그런 식으로 전하면 안 됩니다.
또 옛날에는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한다.” 같은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을 하면서 ‘정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한 집’은,
선교사들이 전해 주는 은총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뜻하고,
‘마땅하지 않은 집’은 거부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라는 말씀은,
어떤 사람이 평화를(은총을) 받기를 거부해서 평화가(은총이) 내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부한 그 사람 쪽의 책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결과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해 주지 않아서, 즉 선교활동을 안 해서,
사람들이 하느님의 은총을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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