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0주간 금요일] 간음 죄 (마태 5,27-32)

2016. 6. 10. 오전 5: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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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0주간 금요일] 간음 죄 (마태 5,27-32)


엘리야는 하느님의 산 호렙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다. 주님께서는 다마스쿠스 광야로 가서 기름을 부어 아람 임금과 이스라엘 임금을 세우고 엘리야의 뒤를 이을 엘리사를 세우라고 하신다.(열왕상 19,9ㄱ.11-16)
그 무렵 엘리야가 하느님의 산 호렙에 9 있는 동굴에 이르러 그곳에서 밤을 지내는데,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내렸다.
주님께서 11 말씀하셨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바로 그때에 주님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주님 앞에 있는 바위를 부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람 가운데에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12 지진이 지나간 뒤에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불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13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 겉옷 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동굴 어귀로 나와 섰다. 그러자 그에게 한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야야,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14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저는 주 만군의 하느님을 위하여 열정을 다해 일해 왔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당신의 계약을 저버리고 당신의 제단들을 헐었을 뿐 아니라, 당신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이제 저 혼자 남았는데, 저들은 제 목숨마저 없애려고 저를 찾고 있습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길을 돌려 다마스쿠스 광야로 가거라. 거기에 들어가거든 하자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임금으로 세우고, 16 님시의 손자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워라. 그리고 아벨 므홀라 출신 사팟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네 뒤를 이을 예언자로 세워라.”


시편 27(26),7-8ㄱㄴ.8ㄷ-9.13-14(◎ 8ㄷ 참조)
◎ 주님, 제가 당신 얼굴을 찾고 있나이다.
○ 주님, 부르짖는 제 소리 들어 주소서. 자비를 베푸시어 응답하소서. “내 얼굴을 찾아라.” 하신 주님, 당신을 생각하나이다. ◎
○ 제가 당신 얼굴을 찾고 있나이다. 당신 얼굴 제게서 감추지 마시고, 분노하며 당신 종을 물리치지 마소서. 당신은 저를 돕는 분이시옵니다. 제 구원의 하느님, 저를 내쫓지 마소서, 버리지 마소서. ◎
○ 저는 산 이들의 땅에서, 주님의 어지심을 보리라 믿나이다. 주님께 바라라. 힘내어 마음을 굳게 가져라. 주님께 바라라. ◎


예수님께서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이미 마음으로 간음한 것이라고 하신다. (마태 5,27-3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29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0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1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3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제1독서 (1열왕19,9ㄱ.11-16)

주님께서 말씀하셨다."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바로 그때에 주님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주님 앞에 있는 바위를 부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람 가운데에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간 뒤에 불이 일어났다. 주님께서는 불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11~12) 

열왕기 상권 19장 9~10절은 아합의 처 이제벨의 위협을 피해 호렙산 동굴에 숨어 있던 엘리야에게 하느님께서 현현하신 사실을 기록했고, 이어지는 열왕기 상권 19장 11~14절하느님께서 엘리야를 향해 '조용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하신 사실을 기록한다. 

하느님께서는 먼저 엘리야에게 밖으로 나가서 '주님 앞에 산위에 서라'고 명령하신다. 여기서 '서라'에 해당하는 '웨아마드타'(weamadtha)'서다'(신명4,10)라는 뜻을 지닌 동사 '아마드'(amad)의 기본형 완료 2인칭 남성 단수형에  접속사 '와우'(wau)가 결합된 형태로 '그리고 너는 서라'라는 뜻이다. 

그리고 '앞에'에 해당하는 '리프네'(lipne)'얼굴'을 뜻하는 '파님'(panim)연계형에 전치사 '레'(le)가 결합된 형태로 '~면전에' '~앞에'라는 뜻을 가진다. 

그런데 여기서 동사 '아마드'(amad)가 '주님 앞에 서다'라는 표현으로 사용될 때에는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로, 창세기 18장 22절신명기 4장 10절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우선 중재 기도의 자세를 나타낼 때 사용된다. 

두번째로, 신명기 19장 17절'주님 앞에 서야 한다'는 표현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소송 당사자들이 주님 앞에 나아가 당시 사제들과 판관들 앞에 서는 것인데, 이것은 재판을 받기 위한 것이다. 

세번째로, 사제들(에제44,15)이나 엘리야(1열왕18,15), 엘리사(2열왕3,14)와 같이 이스라엘의 몰락과 배교의 시기 동안 활동했던 주님의 종에 대해 이같은 표현이 사용될 때에는 충성과 복종과 헌신의 의미를 나타낸다. 오늘 독서의 본문은 이 중에 세번째의 의미가 강하게 드러난다.

엘리야는 이미 자신이 주님 앞에 서서 주님을 섬기는 종임을 천명했다(1열왕17,1). 그러나 이제 지칠대로 지쳐있는 엘리야에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으로서 다시 일어나 당신을 향한 충성과 헌신의 자세를 보이게끔 하기 위해, 다시 당신 앞에 세우시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주목할 것은 엘리야가 서 있을 곳을 분명히 제시했다는 점이다. '산 위'에 해당하는 '바하르'(bahar)'산'을 뜻하는 '하르'(har)전치사 '뻬(be)와 정관사 '하'(ha)가 결합된 형태로 '그 산에'라는 뜻이다. '그 산'은 그 옛날 모세를 만나 그를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시고(탈출3장) 그에게 그 위엄을 보이셨던(탈출19,16-25) 바로 '그 산에' 하느님께서는 엘리야를 세우시는 것이다. '그 산'은 바로 하느님의 산 '호렙'을 가리킨다. 

'주님께서 지나가시는데' 

'지나가시는데'에 해당하는 '오베르'(ober)'지나가다'(창세15,17), '건너가다'(민수32,21) 라는 뜻을 지닌 '아바르'(abar)의 분사형이다. 여기서 분사형이 사용된 것은 주님께서 지나가시는 행위가 순간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되는 지속적인 행위였음을 나타낸다. 

'크고 강한 바람''지진' '불''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의 발생이 모두 주님께서 지나가시는 동안 발생했음을 말해 주고 있다. 

탈출기 34장 19~23절에도 나오지만, 주 하느님의 얼굴을 뵙는 자는 그 누구라도 생명을 부지할 수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여기에서처럼 단지 그 지나가시는 흔적만을 보이실 뿐인 것이다. 또한, 탈출기 19장 16~20절에 나오는 데로, '크고 강한 바람'이나 '지진' 그리고 '불'주님께서 현현하실 때에 일반적으로 수반되는 현상들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외적 현상들 가운데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현상들은 하느님의 현현을 알리는 표징들이지만, 동시에 인간 편에서 보면 인간들을 멸할수도 있는 두려운 현상들이다(탈출19,21.22).  

그런데 주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이적적 현상을 통해 찾아오시지 않고,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 가운데서 찾아오신다. 이것은 절망에 빠져 있는 엘리야 예언자로 하여금 자신의 과거를 조용히  돌아보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이적을 통해 하느님의 능력을 나타냈던 엘리야는  오히려 지금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이제벨을 피해 피난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러한 엘리야에게 주님께서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 가운데에 말씀하심으로써 외적인 이적을 넘어서는 '말씀'의 중요성을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주일복음(가해) 14-11-02] - 위령의 날(욥기 19,1.23 – 27ㄴ / 로마 5,5 – 11 / 마태 5,1 – 12ㄴ)


<극기하여라.>송영진 모세 신부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마태 5,29-30).”


이 말씀은 죄를 짓게 만드는 욕망을 철저하게 극복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사실 눈과 손이 죄를 짓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잘라 버려야 할 것은 눈과 손이 아니라 마음속의 욕망입니다.


우리는 욕망을 보통 다섯 가지로 분류합니다.
명예욕, 재물욕(소유욕), 식욕, 수면욕, 성욕.
이런 욕망 자체가 죄는 아닌데, 죄를 짓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명예욕이 지나치면 위선자가 될 것입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마태 6,2).”
칭찬을 받는 것, 존경과 인기를 얻는 것, 그것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욕심내서 위선자가 된다면 그것은 죄를 짓는 일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시기 질투해서 죽이려고 한 것도 명예욕 때문이었습니다.
“여인들은 흥겹게 노래를 주고받았다.
‘사울은 수천을 치시고 다윗은 수만을 치셨다네!’
사울은 이 말에 몹시 화가 나고 속이 상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 명을 돌리니,
이제 왕권 말고는 더 돌아갈 것이 없겠구나.’
그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게 되었다(1사무 18,7-9).”
사울의 명예욕은 그 자신의 인생과 왕국을 모두 망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하나니아스와 사피라는
재물욕과 명예욕 때문에 망한 사람들입니다.
그 부부는 땅을 판 값을 봉헌할 때, 일부를 떼어놓고서
전부를 봉헌하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사도 5,1-4).
돈의 일부를 떼어놓은 것은 재물욕 때문이고,
전부를 봉헌하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은 명예욕 때문입니다.
(그들은 봉헌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다윗은 성욕 때문에 큰 죄를 지었습니다(2사무 11장).
그는 간음죄를 지었고, 그 죄를 감추려고 살인죄를 지었습니다.
다윗 자신은 회개하고 용서를 받았지만,
그 일이 이스라엘 왕국 분열과 멸망의 불씨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유혹할 때, 처음에는 ‘식욕’을 이용해서 유혹했고,
그 다음에는 하느님을 시험해 보라고 유혹했고,
세 번째는 ‘명예욕’을 이용해서 유혹했습니다(마태 4,1-10).
(하느님을 시험해 보고 싶은 욕망도 명예욕에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사탄과 토론이나 논쟁을 하시지 않았고,
짧고 간단한 말씀으로, 단호하게 사탄을 물리치셨습니다.
유혹은 예수님처럼 그렇게 단호하게 물리쳐야 하는데,
자기 마음속의 욕망을 억제하는 일도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수면욕’은 ‘편안해지고 싶은 욕망’으로도 풀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는 더 넓은 뜻으로 생각해서,
‘안락한 생활을 바라는 욕망’으로 풀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십자가의 길을 가시려는 예수님을 말린 일은(마태 16,22),
아마도 편안하게 살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고...)


그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3)”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셨다고 생각할 수는 없으니,
이 말씀은 흔들리는 베드로 사도를 붙잡아 주기 위한 말씀으로 생각됩니다.
여기서 ‘사람의 일’이라는 말은,
베드로 사도의 ‘편안해지고 싶은 욕망’을 가리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따르려고 하는
베드로 사도를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최측근 제자였고,
예수님께서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신 제자였으니(마태 16,18),
예수님의 오른팔과 같은 인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라고 그를 꾸짖으신 일은
오른팔을 잘라버리는 것처럼 아픈 일이었을 것입니다.


(“내게서 물러가라.” 라는 말씀의 원문을 보면,
“내게서 떠나라.”가 아니라, “내 뒤로 가라.”입니다.
이 말은 “제자의 본분을 지켜라.” 라는 뜻입니다.
제자는 스승이 가시는 길을 그대로 뒤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의 교리에서는 ‘욕망’과 ‘사탄의 유혹’을 다른 것으로 구분하는데,
실제로는 그게 잘 구분되지 않고,
또 사탄은 사람의 욕망을 통해서 유혹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욕망을 억제하고 다스리는 방법은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는 방법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마귀를 쫓아내는 방법을 물었을 때,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마르 9,29).”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자기 마음속의 욕망을 극복하는 방법도 역시 ‘기도’입니다.
우리는 욕망을 누르고 다스리는 일이
사람의 힘으로는 정말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매일미사(가해) 14-01-24] - 연중 제2주간 금요일(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오늘날 우리는 매스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삽니다. 미디어란 말 그대로 무엇인가를 전달해 주는 매개체를 뜻합니다.

인간은 관계의 존재이기 때문에 가시적인 매개체를 통해 마음을 전하고, 생각을 나눕니다. 우리는 과거와는 달리 디지털로 정보화된 세상에 살면서, 디지털 미디어 매체들을 통해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소통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문명이 과학적 진보를 통해 삶의 가치와 질을 높여 왔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과학적 진보가 언제나 순기능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정보의 홍수 시대에 우리는 불필요한 정보와 미디어 매체들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 영혼을 혼탁하게 하는 매체들도 적지 않습니다. 오감을 통해서 수용한 정보들 가운데 영상과 이미지를 통한 시각적 정보들은 뇌의 잔상에 오래 남고,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움직입니다.

음란한 영상물들이나 자극적 이미지들이 인성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 비단 청소년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행동으로 저지르는 잘못된 행위 외에도, 우리의 마음이 저지르는 죄까지 경계하라고 가르치십니다.

몸은 감각적 자극에 익숙하기 때문에 쉽게 병들지만, 우리의 마음이 순결할 때 몸을 지키려는 의지도 강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죄에 빠졌을 때 용서하시고 치유하시지만, 엘리야에게 하신 것처럼 조용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우리 영혼의 힘을 키워 주십니다.

나의 감각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그러면 내 영혼의 상태가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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