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마태 5,38-42)

2016. 6. 13. 오전 5: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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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마태 5,38-42)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안토니오 성인은 1195년 포르투갈 리스본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우구스티노 수도회를 거쳐 성 십자가 수도회에서 생활하다가 사제가 되었다. 성인은 모로코에서 최초로 순교한 다섯 명의 작은 형제회 수사들의 유해가 포르투갈에 도착했을 때 깊은 감명을 받아 아프리카 선교의 꿈을 안고 수도회를 작은 형제회로 옮겼다. 선교사로 모로코에 파견되었다가 이탈리아로 돌아온 그는 탁월한 설교로 파도바의 많은 이를 주님께 이끌었다. 그러나 1231년 열병으로 36세의 젊은 나이에 선종하였다. 안토니오 성인은 이례적으로 선종한 이듬해 그레고리오 9세 교황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들었다.      


아합 임금과 그의 아내 이제벨은 간계를 꾸며 이즈르엘 사람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밭을 차지한다.(열왕상21,1ㄴ-16)
그때에 1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이즈르엘에 포도밭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포도밭은 사마리아 임금 아합의 궁 곁에 있었다.
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포도밭을 나에게 넘겨주게. 그 포도밭이 나의 궁전 곁에 있으니, 그것을 내 정원으로 삼았으면 하네. 그 대신 그대에게는 더 좋은 포도밭을 주지. 그대가 원한다면 그 값을 돈으로 셈하여 줄 수도 있네.”
3 그러자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제가 제 조상들에게서 받은 상속 재산을 임금님께 넘겨 드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4 아합은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자기에게, “제 조상님들의 상속 재산을 넘겨 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한 말에 속이 상하고 화가 나서 궁전으로 돌아갔다. 아합은 자리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음식을 들려고도 하지 않았다.
5 그의 아내 이제벨이 들어와서 물었다. “무슨 일로 그렇게 속이 상하시어 음식조차 들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6 임금이 아내에게 말하였다. “실은 내가 이즈르엘 사람 나봇에게 ‘그대의 포도밭을 돈을 받고 주게. 원한다면 그 포도밭 대신 다른 포도밭을 줄 수도 있네.’ 하였소. 그런데 그자가 ‘저는 포도밭을 임금님께 넘겨 드릴 수 없습니다.’ 하고 거절하는 것이오.”
7 그러자 그의 아내 이제벨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에 왕권을 행사하시는 분은 바로 당신이십니다. 일어나 음식을 드시고 마음을 편히 가지십시오. 제가 이즈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밭을 당신께 넘겨 드리겠습니다.”
8 그 여자는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그의 인장으로 봉인하고, 그 편지를 나봇이 사는 성읍의 원로들과 귀족들에게 보냈다.
9 이제벨은 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단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의 첫자리에 앉히시오. 10 그런 다음, 불량배 두 사람을 그 맞은쪽에 앉히고 나봇에게, ‘너는 하느님과 임금님을 저주하였다.’ 하며 그를 고발하게 하시오. 그러고 나서 그를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이시오.”
11 그 성읍 사람들, 곧 나봇이 사는 성읍의 원로들과 귀족들은 이제벨이 보낸 전갈 그대로, 그 여자가 편지에 써 보낸 그대로 하였다.
12 그들이 단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의 첫자리에 앉히자, 13 불량배 두 사람이 들어와서 그 맞은쪽에 앉았다.
불량배들은 나봇을 두고 백성에게, “나봇은 하느님과 임금님을 저주하였습니다.” 하고 말하며 그를 고발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나봇을 성 밖으로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인 다음, 14 이제벨에게 사람을 보내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하고 전하였다.
15 이제벨은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합 임금에게 말하였다. “일어나셔서,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돈을 받고 넘겨주기를 거절하던 그 포도밭을 차지하십시오. 나봇은 살아 있지 않습니다. 죽었습니다.”
16 나봇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아합은 일어나, 이즈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그곳으로 내려갔다.


시편 5,2-3.5-6ㄱㄴ.6ㄷ-7(◎ 2ㄴ)
◎ 주님, 제 탄식을 들어 주소서.
○ 주님, 제 말씀에 귀를 기울이소서. 제 탄식을 들어 주소서. 저의 임금님, 저의 하느님, 제 외침 소리 귀여겨들으소서. 당신께 기도하나이다. ◎
○ 당신은 죄악을 좋아하는 하느님이 아니시기에, 악인은 당신 앞에 머물지 못하고, 거만한 자들은 당신 눈앞에 나서지 못하나이다. ◎
○ 당신은 나쁜 짓 하는 자 모두 미워하시고, 거짓을 말하는 자를 없애시나이다. 피에 주린 자와 사기 치는 자를 주님은 역겨워하시나이다. ◎


예수님께서는 악인에게 맞서지 말고,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고,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며,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말라고 하신다.(마태 5,38-4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제1독서 (1열왕21,1ㄴ-16)

그때에 이즈라엘 사람 나봇이 이즈르엘에 포도밭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포도밭은 사마리아 임금 아합의 궁 곁에 있었다.(1)

 

열왕기 상권 20장에서는 아람 임금 벤 하닷 이끌고 온 대군을 맞이하여

북부 이스라엘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두 번이나 놀라운 승리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북부 이스라엘 왕 아합이 하느님의 말씀을 거슬러 벤 하닷을 자기 마음대로 살려 주었음과,

그로 말미암아 아합이 익명의 한 예언자로부터 하느님의 심판 신탁을 듣게 되었음을 기술하였다.

 

외국과의 전쟁이라는 대외적 행적에 있어서 아합의 불신앙적 면모 드러낸 것이다.

 

이어지는 21장에서는 20장과 대조적으로 대내적 통치에 있어서,

아합 왕의 불순종에 초점을 맞추어 아합 왕의 악정과 그로 인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보여 주는 일례로, 아합의

나봇 포도밭 탈취사건을 중심으로 일련의 기사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열왕기 상권 21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전반부 1~16절은 아합이 이제벨의 악한 계교를 따라

나봇의 포도밭을 탈취한 사건 기록이며,

후반부 17~29절 이러한 악행을 저지른 아합과 이제벨을 향해

엘리야 예언자의 심판 경고 주어지고,

이에 아합 왕이 회개하여 겸손한 모습을 보인 사실을 보도한다.

  

'그 때에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이즈르엘에 포도밭을 가지고 있었는데'

 

매일 미사 책은 '그 때에'로 말씀이 시작되지만,

새 성경은 '그 뒤에 일어난 일이다' 라고 시작한다.

 

'그 뒤에 일어난 일이다'에 해당하는 원문은 '아하르'(ahar; after) 이다.

본문의 '그 뒤에'(그 후에)는 앞선 20장에 기록된 내용,

'벤 하닷과의 두 번에 걸친 전쟁에서 승리를 체험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뜻에서 벗어나 벤 하닷을 살려줌으로써

심판 신탁을 들은 뒤에(후에)'라는 의미이다.

 

이러현 표현은 열왕기 상권 21장의 기사를 20장의 후반부와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면서 아합의 죄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합 왕은 하느님의 놀라우신 주권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또한 하느님의 심판 신탁을 들음으로써 자신의 모든 행위를

하느님께서 낱낱이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같은 일들을 체험했던 아합은 마땅히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느님의

율법에 따라 이스라엘을 다스려 나가는 반응을 보였어야 했다.

 

그러나 아합은 하느님의 율법과는 애당초부터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끝까지 그러했다.

 

아합은 이전에 아람과의 전쟁에서도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성전(聖戰)에서의 승리를

자기 승리로 착각하고 임의로 행동한 것처럼, 열왕기 상권 21장에서도 하느님의 율법에

절대적으로 양도나 매도, 착취가 불가능한 것으로 규정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상속

(기업)으로 허락된 땅에 대한 규례(레위25,23)를 어기고 죄악된 방법으로 이를 취하고 만다.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내 곁에 머무르는 이방인이고 거류민일 따름이다."(레위25,23)

 

아합의 행동은 신정(神政)왕국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자이신 하느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것일뿐 아니라 고대 근동의 이방 군주들처럼 왕의 사유지 증대를 통하여

왕의 힘을 강화시켜 전제주의적 왕권을 지향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행해진 사악한 범죄였다.

 

그리고 이러한 야심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아합은 결국 거짓 증인을 내세워

나봇을 죄인으로 몰아 죽이는 파렴치하고 흉악한 죄악을 저지른다.

 

열왕기 상권 21장 1절에서 '포도밭' 해당하는 '케렘'(kerem)

상징적으로 이스라엘을 나타낼 정도로(이사5,7; 예레12,10)

팔레스티나에 정착한 이스라엘의 전통적이고도 주요한 산업 기반이었다.

 

이와 관련해 신명기 20장 6절에서는 포도밭을 만들고서도 그 첫 수확을

보지 못한 자들에게는 병역의 의무를 면제하라는 규정이 기술되어 있는데,

이것은 수고한 댓가를 단 한번도 누리지 못하고 죽는 불행을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팔레스티나에서 포도밭이 갖는 경제적 비중과 그 대표성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본문에서 포도밭의 소유주로 소개되는 '나봇'(Naboth)이라는 사람의 이름은

'열매들'이라는 의미로 '싹트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하였다.

포도를 기르는 것을 업으로 하는 농부에게 매우 잘 어울리는 이러한 이름은

아마도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생업에 충실하였던 그의 아버지가

많은 수확을 기대하며 붙여준 이름이었을 것이다.

 

또한 본문에는 '이즈르엘'(yzreel)이라는 지명이 두 번이나 사용되고 있다.

한 번은 포도밭의 소유자나봇의 출신지를 밝히기 위해서이며,

다른 한 번은 포도밭의 소재를 밝히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결국 나봇이 자신이 거주하는 그 곳에 자신의 포도밭을 가지고 있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한편으로는 나봇이 그의 조상의 대를 이어 이 포도밭을

경작하고 있음을 밝히는 것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나봇이 조상으로부터

이 포도밭을 물려받은 정당한 소유자임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즈르엘''하느님이 뿌리시다' 라는 의미로서

부근에는 수량이 풍부한 샘이 었었고

그 이름이 암시하는 것처럼 비옥한 땅이었다.

 

이처럼 본문에서 소개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생업의 기반이요 상징인

'포도밭', 소박하면서도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기업에 충성스럽다는 것과 연결된

'나봇' 이라는 의미,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을 암시하는 '이즈르엘'과 같은 소재들은

하나같이 목가적 이미지와 연결되어 하느님의 축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평안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로움은 열왕기 상권 21장에 기술된 아합과 이제벨 부부의

과도한 욕심과 비열한 음모, 협작에 의해서 산산조각 나고 만다.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복음 (마태5,38-42)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38~41)


마태오 복음 5장 38절에서 구약의 형법 규정(탈출21,24; 신명19,21; 레위24,20)과

고대 형법의 근간을 이루었던 '동태복수법'(lex talionis)의 내용이 소개된다.


하느님께서 주신 절대 불변의 율법이며, 고대 세계에 널리 통용되던 정의 구현의

보루라고 생각되었던, 악(惡)을 행한 자에 대하여 동일하게 보복을 가하여 징계하는

'동태복수법'을 예수님께서는 새롭게 해석해 주신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에서 '맞서지'로 번역한 '안티스테나이'(antistenai;

resist)의 원형 '안티스테미'(anthistemi)'반대하다', '대신하다'는 뜻이 있는

전치사 '안티'(anti)'두다', '세우다' 등의 뜻이 있는 '히스테미'(histemi)의

합성어로서 '~에 대항하여 일어서다'는 뜻을 지닌다.


여기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행해지는 복수와 더불어 법정에서의 공방까지 가리킨다.


그리고 '악인'으로 번역된 '포네로'(ponero; evil person)원형 '포네로스'

(poneros)마태오 복음 5장 37절에서 '악'으로 번역된 단어와 같은 단어로서

'악을 행하는 자', '비열한 자'라는 뜻이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자신에 대해 위해를 가하는 비열한 상태에 대해 

그 어떠한 복수도 삼가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피해자가 마땅히 주장할 수 있는 피해 보상의 권리를 포기하라는

교훈으로서 '동태복수법'을 절대 진리로 알고 있었던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5장 29절에서 '치다'로 번역된 '라피조'(rapizo;

strike; smite)는 막대기로 '때리다'(마태26,67)는 뜻이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비록 손으로 때리는 것이지만, 큰 고통을 줄 만큼

매우 세게 쳤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손으로 뺨을 때리는 것은 매우 모욕적인 일이었다.

 

특히 히브리인들은 오른손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오른뺨을 때렸다는 것은

정면에서 손등으로 치거나 뒤에서 손바닥으로 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유대 풍습에서 손등으로 때리는 것은 손바닥으로 때리는 것보다

두 배나 모욕을 주는 것이다.

 

또한 등 뒤에서 때린다는 것은 상대방이 모르게 불의의 공격을 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럴 경우 다른 뺨도 돌려 대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실제로 왼쪽 뺨까지 때리도록 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 어떤 경우에도

직접적으로 복수하지 말고 고통과 모욕을 견디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어떤 문제에 직접 대응함으로써 복수가 악순환되는 것을 막고,

오히려 상대방을 너그럽게 대하는 관용과 무저항으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5장 40절'너를 재판에 걸어'에서 '재판에 걸다',

'송사하다'로 번역되는 '크리노'(krino; sue at the law)'재판하다'

뜻도 있고, '비난하다', '헐뜯다'는 뜻도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을 반드시 재판을 염두에 둔 상황이라고 볼 필요가 없다.

 

이 구절은 재산상의 분쟁이나 강도를 당한 상황에서 속옷까지 가지려는

상대에 대하여 저항하지 말고 오히려 애덕을 베풀라는 뜻이다.


그 당시 속옷은 겉옷보다 가격이 싸고 보잘 것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다.

반면에 겉옷은 가격도 비싸고, 일교차가 심한 팔레스티나에서 밤에 덮고 자야 하는

필수품이기에 전당잡힐 수조차 없는 품목이었다(탈출22,26; 신명24,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옷을 달라는 자에게 더 비싸고, 없으면 당장 추위에

떨어야 하는 겉옷까지 아무 저항없이 양도하라는 것 무조건적인

자기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또한 마태오 복음 5장 41절에서 '억지로 ~가게 하거든', '가자고 강요하거든'

번역된 '앙가류세이'(anggareusei; force~to go; compel~ to go)

페르시아말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강제로 봉사하게 하다'는 뜻을 지닌다.


즉 페르시아 국왕이 조서를 전달할 때 사람들을 징발하여 짐을 지게 만들거나

문서를 전달하게 한 것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로마에서는 이러한 양민 징발 규정이 적용되었고, 로마의 식민지 유다에서도

시행되었다.

 

마태오 복음 27장 32절'시몬이라는 키레네 사람을 보고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이 구절은 '천 걸음'에 해당하는 '밀리온 헨'(milion hen; one mile),

'오리' 가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기꺼이 '오리'더 동행해 주는

너그러움을 가지라는 말씀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오늘 말씀은 상대방에게 호의를 보여야 할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그것을 묵살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6월 18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우리가 불행한 이유<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폭력을 포기하여라.>송영진 모세 신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마태 5,38-39).”


이 말씀은, 구약성경에 있는 ‘동태복수법’ 조항을 폐기하시는 말씀입니다.
원래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탈출 21,24)” 라는 율법은,
죄에 상응하는 벌을 주라는 율법이기도 했고,
과잉복수를 하면 안 된다는 율법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율법을 폐기하셨고, 복수 자체를 금지하셨습니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라는 말씀의 뜻은,
“악인의 악행을 악행으로 앙갚음하지 마라.”입니다.

(이 말씀은, “악에 맞서지 말고 참아라.”가 아닙니다.
우리는 악에 맞서야 하고, 악을 물리쳐야 합니다.
물론 그때에도 악한 방법을 사용하면 안 됩니다.
선으로 악을 물리쳐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악을 방관하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을,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라는 말씀의 뜻은,
“악행을 악행으로 앙갚음하지 말고,
선행으로(또는 사랑으로) 그것을 극복하여라.”입니다.
(실제로 다른 뺨을 돌려 대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 말씀을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해 줄 뜻을 품으십시오.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평화로이 지내십시오.
... 오히려 ‘그대의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거든 마실 것을 주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대가 숯불을 그의 머리에 놓는 셈입니다.’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로마 12,17-18.20-21).”
악인의 악행을 악행으로 앙갚음하는 것은 똑같은 악인이 되는 일입니다.
그것은 악에게 지는 일이고, 악에 굴복하는 일입니다.


선을 악으로 갚는 것과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악마의 일’입니다.
(악마의 지배를 받는 일이 됩니다.)
선을 선으로 갚는 것은 ‘인간의 일’입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은 ‘하느님의 일’입니다.
(하느님과 예수님을 본받는 일입니다.)


그런데 인간 세상의 현실을 보면 ‘역효과’가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악을 선으로 갚았을 때 악인이 뉘우치고 회개하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기고만장해서 더 심하게 악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특히 선한 사람들의 힘은 약하고 악한 자들의 힘은 강할 때...
그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서 필요한 것이 사법제도입니다.
경찰도 검찰도 법원도 교도소도 필요한 것이 인간 세상의 현실입니다.
사법제도는 개인의 사적인 복수를 막기 위해서 국가가 나서는 제도입니다.
(독재 정권 때처럼 사법제도마저 악의 편에 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선한 사람들이 힘을 합쳐야 하고, 교회가 나서야 하고...)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마태 5,40).”

이 말씀도 “악을 선으로 갚아라.” 라는 뜻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냥 참아야 한다는 뜻도 아니고,
악에 동조하라는 뜻도 아니고, 악을 조장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힘이 없어서 당하는 것과 힘이 있지만 참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우리는 힘이 약해서 당하기만 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도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어떻든 예수님 말씀의 뜻은, “선으로써 선을 실현하여라.”입니다.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은 ‘선의 실현’을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에서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마태 5,42).”

이 말씀은 앞의 말씀들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웃이 굶어죽지 않으려고 나의 양식을 훔쳤다면,
그가 그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 둔 나의 죄가 더 큽니다.
내가 사랑을 실천하지 않아서 죄가 생긴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지 않은 죄가 ‘생존을 위한’ 절도죄보다 더 큰 죄입니다.
그러니 그가 절도죄를 짓기 전에 먼저 나의 양식을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사랑으로 죄를 막는 일이 됩니다.


혹시 “이웃이 굶주리는 것이 왜 내 탓이냐?” 라고 항의할 사람도 있을 텐데,
굶주리는 사람이 곁에 있는데도, 또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 혼자서만 배불리 먹는 것 자체가 죄입니다.
루카복음에 있는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가 바로 그런 가르침입니다.
라자로가 병들고 가난한 것이 그 부자의 탓은 아닌데,
그런 사람을 곁에 두고 혼자서만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기 때문에(루카 16,19)
그 부자는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루카 16,23).


예수님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마태 25,45).”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양극화’ 현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인간 세상입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자들의 회개가 필요한 때입니다.
(양극화 상황의 끝에는 하느님의 지엄하신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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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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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1주간 수요일]올바른 자선 (마태 6,1-6.16-18)16.06.15조회 135[연중 제11주간 화요일]원수 사랑 (마태 5,43-48)16.06.14조회 54[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마태 5,38-42)16.06.13조회 120[6. 11.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선교 (마태 10,7-13)16.06.11조회 147[연중 제10주간 금요일] 간음 죄 (마태 5,27-32)16.06.10조회 49[연중 제10주간 목요일]화해하여라 (마태5,20ㄴ-26)16.06.09조회 93[연중 제10주간 수요일] 율법의 완성 (마태 5,17-19)16.06.08조회 146[연중 제10주간 화요일] 세상의 소금과 빛 (마태 5,13-16)16.06.07조회 93[연중 제10주간 월요일] 참 행복 (마태 5,1-12)16.06.05조회 247[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루카 2,41-51)16.06.04조회 476.3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 (루카 15,3-7)16.06.04조회 48[연중9주 수요일] 6월 1일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마르12,18-27)16.06.01조회 201[연중 제9주간 화요일] 5. 31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루카1,39-56)16.05.31조회 164연중 제9주간 월요일]포도원소작인의 비유 (마르 12,1-12)16.05.29조회 188[연중 제8주간 토요일] 권한 (마르 11,27-33)16.05.27조회 167[연중 제8주간 금요일] 무화가 나무 저주 (마르 11,11-25)16.05.27조회 51[연중 제8주간 목요일]예리코 눈먼 이 (마르 10,46ㄴ-52)16.05.26조회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