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그리스도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 5:17-20)
교인들 가운데는 율법을 엄격하게 준수하는 것이 좋은 신앙인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자는 ‘나는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는 예수님 말씀을 인용해서 율법이 폐지되지 않았기 때문에 율법의 조목조목을 다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의 파격적인 가르침과 행동은 구약을 폐하러 오셨는가 싶을 정도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오해를 풀어주시면서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십니다. 신약에서 ‘율법이나 선지자’는 구약성경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모든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율법과 선지자 곧 구약을 완전하게 하려고 오셨다는 말씀은 구약의 모든 말씀을 실행하려고 오셨다는 뜻입니다. 진실로 구약의 모든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제도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구약의 모든 약속을 예수님이 이루셨습니다.
가령, 율법에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라고 했고, 예수님도 안식일을 지키셨고, 초대교회도 안식일을 지켰으니까 오늘날도 안식일을 지켜야만 한다고 주장합니다. 안식교에서 이런 주장을 합니다. 그럴 듯 하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보고 율법을 안 지킨다고 비난했습니다. 당시 안식일 법만해도 1261개 조항을 만들어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는 것 중에 율법을 폐하는 것처럼 보였던 겁니다.
시장한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면서 이삭을 잘라먹은 것이나,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을 비난했습니다. 이러한 비난을 염두에 두시고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 예수님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우선 여기 ‘율법과 선지자’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율법’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모세 오경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선지자’는 선지자들의 예언서, 즉 이사야, 예레미아, 에스겔, 다니엘 등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율법과 선지자’란 구약성경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오시므로 구약성경은 폐지 된 것이냐.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폐지됐습니다.율법을 무력화 내지는 효력을 살실 시키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율법도 쉽게 없어질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예수님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고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의한다면 율법이 완전하지 못하고 불완전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불완전한 율법을 완성시켜 완전케 하려고 예수님이 오셨다는 겁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을 바로 알아야합니다.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은 인간이 악하고 죄가 많으니까 이 율법을 잘 지켜서 착한 사람이 되어 구원받으라고 주셨겠지.’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이 맞습니까? 그게 아닙니다. 율법은 ‘우리가 지켜서 의롭게 되어 구원 받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나는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인이요, 연약한 인간이구나.’라고 깨달으라고 주신 겁니다.
율법은 우리를 의(義)에 도달하라고 준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를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라고 주신 겁니다. 결국 율법은 우리를 생명에 이르게 하는 법이 아니라 사망에 이르게 하는 법입니다. 우리가 다 지킬 수 없으니까요. (롬 7: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하나님께서도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럼에도 율법을 주신 것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려고 주신 겁니다.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은 ‘거울’로 주신 겁니다. 흙장난을 즐기는 아들에게 작은 손거울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왜요? 거울로 자기 더러운 얼굴을 보고 물로 씻으라고요. 못 보면 안 씻으니까요. 그렇다고 거울이 죄를 씻어주지는 못합니다. 율법도 우리의 죄를 보여줄 뿐 죄 사함의 길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율법 아래 있는 인간은 저주아래 있을 뿐입니다. (갈 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자! 이쯤 되면 예수님이 ‘율법을 완전케 하러 오셨다.’라는 말씀이 이해가 되지요. 예수님은 죄는 보여주지만 죄를 어찌할 수 없는 불완전한 율법을 완성시키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습니다. 율법의 요구는 율법과 계명을 다 지키라는 겁니다. 그러나 인간은 연약해서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면 범법을 했으니 벌을 받으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벌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받으시고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신 겁니다. (요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실상은 ‘율법과 선지자’는 예수님의 오심을 예표하는 겁니다.
구약메시지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시므로 율법이 완성되고 마침이 된 겁니다. (롬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율법은 그림자요, 예수는 실상이며, 실체입니다(히 10:1). 율법은 결혼할 신랑사진과 같습니다. 신부가 신랑이 오기까지는 사진을 보겠으나 신랑이 와서 결혼하여 함께 사는데도 사진에 집착한다면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유대인들은 신랑 예수가 왔는데도 알아보지 못하고 사진인 율법만 붙잡고 있는 겁니다.
저주의 율법 아래 있던 여러분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대속으로 구원하여 주셨음을 믿으십시오. 이게 복음(福音)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을 믿으므로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겁니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십자가로 율법을 완성시키고 복음을 믿는 여러분을 의롭게 하신 주님을 찬양하기를 바랍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작은 계명이라도 성실하게 지키며 가르쳐야합니다.
(마 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이것은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잘못된 태도를 지적하신 겁니다.
그들은 율법의 형식에 머물렀고 중심이 없었기 때문에 말씀을 성실하게 행하지 아니했습니다. 이들에 대해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마 23: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우리는 바리새인들처럼 계명을 가벼이 하면 안됩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판단해서 어떤 것은 지키고, 어떤 것을 버리고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하도록 애쓰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을 자기 기준에 맞도록 떨어뜨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말씀은 그대로 믿기 어려우니까 자기 머리로 이해되는 만큼 어떤 부분은 떼어버립니다. 또 그렇게 가르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큰 잘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의지하고 신뢰합니다. 말씀 하나라도 가벼이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작은 계명이라도 사랑하는 주님이 주신 계명이기에 소중히 여깁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듣다가, 읽다가, 묵상하다가 작은 음성이라도 마음에 들려오면 놓치지 마시고 꼭 붙잡고 순종하기 바랍니다. 육신의 자녀라도 정말 부모를 사랑하는 자녀는 부모가 작은 말씀도 마음에 담고 순종합니다.
그러나 부모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체면 때문에 부모를 대하는 자식은 부모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부모가 배가 잡숫고 싶다고 했는데 건성으로 듣고 신 사과를 사다줍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이렇게 대하면 안되지요. 성경을 한 곳을 읽겠습니다. (약 1: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여기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란 말이 나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완성시킨 율법이요,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율법은 많은 말씀으로 가르쳤지만 예수님은 간단하게 두 가지로 복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본래 율법은 613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하라’는 계명이 248개이고 ‘하지 말라’는 계명이 365개입니다. 이제 이것은 몰라도 됩니다. 딱 두 가지 복음만 마음에 새기십시오.
그게 뭡니까? (마 22: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 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 22: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 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여기에 613가지 율법 조항이 다 들어 있습니다. 이제부터 율법의 형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율법의 정신을 지키는 겁니다. 예수님도 율법이라는 형식에 복음이라는 내용을 채우러 오셨습니다. 가령,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들은 주일을 거룩히 지키고 성경을 항상 읽고 찬송도 열심히 부르고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헌금생활과 봉사하는 일에도 게으르지 말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는 일에도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딱 한 마디로 말하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자동적으로 말씀을 묵상하게 되고, 자동적으로 찬송이 나오고, 자동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이 즐겁고 소중하고, 말 안 해도 십일조 생활하고 봉사하고 충성하고 전도하는 겁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하고 부모님 공경하고, 형제들끼리 화목하고, 교우들끼리 서로 섬기고,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여러 말을 딱 한 마디로 말할 수 있습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그러면 자동적으로 부모님을 공경하고, 형제와 화목하고 서로 섬기고, 세상에서 선을 행하며 살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말씀 하신 겁니다(마 22:40). 우리는 주의 계명 중의 하나님께 대한 큰 계명도 지키고 사람에게 대한 작은 계명 하나라도 버리지 말아야합니다. 그래야 그러므로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우리의 의가 바리새인의 의보다 나아야 천국에 들어갑니다.
(마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니까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입니까? 못 들어간다는 말입니까? 못 들어간다는 말이지요. 아마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펄펄 뛰었을 겁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놀랬을 겁니다. ‘당대 최고의 율법사 바리새인도 못 들어가다니. 어찌 우리 의가 바리새인의 의보다 나을 수가 있을까?’
바리새인의 의가 어떤 의입니까? 바리새인의 의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사람을 의식하는 의입니다. 이것을 ‘외식’이라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다 외식의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 안 보이며 쓰레기 투기하고요. 나중에 몰래 카메라에 다 잡혀 망신 당합니다. 이 외식을 잘 표현하는 말이 ‘회칠한 무덤’ 같다는 말입니다. 겉은 잘 꾸며져 있는데 속은 썩어 냄새나는 회칠한 무덤을 가리킵니다. 바리새인의 의가 이런 겁니다. (마 23:25)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이 보는 데서는 의롭고 거룩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완전히 겉과 속이 다릅니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 제일 싫어하십니다. 이런 사람 못하는 것, 한 가지 있습니다. 회개를 못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이러면 됩니까? 여러분 중에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삶을 살고자 하지 않고 사람에게 의롭게 보이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엄격히 말하면 하나님 안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은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또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란 사람과 비교하는 의입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 낫다.’ ‘나는 저 사람처럼 죄를 짓지 않는다.’라고 하는 의입니다. 그러니 기껏 해보았자 누구 수준입니까? 사람 수준의 의 밖에 안됩니다. 그래 봤자 사람은 다 죄인입니다. 그러니 그 의로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사람과 비교하는 사람은 자기를 자랑합니다.
유명한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알지요. 바리새인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눅 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눅 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자기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이게 무슨 자랑거리가 됩니까? 당연한 일 가지고 말입니다. 사람들하고 비교하니까 자랑이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세리는 어떻게 기도한 줄 아시지요. (눅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오로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의 모습을 보는 겁니다. 누가 주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까? (눅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얼마든지 의롭게 보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사람은 잠시 속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한 남자가 닭을 사러 상점에 갔습니다. 부주의로 그 상점의 지배인은 그에게 닭이 담긴 상자 대신에 무심코 그 날의 수입이 담긴 상자를 내 주었습니다. 남자는 상자를 들고 차로 돌아와 차를 몰고 가버렸습니다. 그가 공원에 닿아 그 상자를 열어 보았을 때, 돈이 가득 들어있는 상자를 발견하였습니다. 이 때가 보통 사람들을 몹시 약하게 만드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그는 곧장 차로 돌아와서 닭 집으로 돌아와 그 돈을 지배인에게 주었습니다. 낙심에 가득 차 있던 그 지배인이 얼마나 좋아하던 지요. 그는 너무나 기뻐서 그 남자에게 말했습니다 ‘여기에 가만히 계십시오. 제가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서 신문에 손님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나게 하겠습니다. 손님은 가장 의롭고 정직한 분이십니다.’ 그랬더니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왜 그러십니까?’ ‘솔직히 저는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와 함께 사는 여자는 제 아내가 아닙니다.’
인간의 의라는 것이 이런 겁니다. 우리는 이런 인간적인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義)를 힘입기를 원합니다. 그래야 천국에 들어갑니다. 주님 앞에 죄인임을 자백하고 그리스도의 의를 구하십시오. 그 의는 완전한 義입니다. 이 義는 바리새인의 행위의 의보다 훨씬 나은 믿음의 義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루어 놓은 義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습니다.그러니까 천국에 들어갑니다.그것이 길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의를 입은 우리의 신앙생활이 바리새인만 못해서 안됩니다. 인간을 의식하며 하는 바리새인의 신앙생활보다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더 잘 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바리새인만 못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말씀을 지키면 상주신다고 하셨으니 이왕 살아가는 것중에 상받으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스스로 지켜 구원에 이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안되니까 외식을 한 겁니다. 가면 쓰고 거짓말 한 거지요.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지켜지겠습니까? 건성으로 재단을 하는 거지요. 우리는 외식의 가면 벗어 던지고 진실 되게 죄인임을 고백합시다. 그리고 십자가만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義만을 구합시다. 그리스도의 義를 입고 나니 말씀도 지켜지고 천국의 소망도 갖게 됐습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개신교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