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의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2010. 2. 19. 오후 2:5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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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의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십자가에 매다는 것은 노예나 흉악범을 죽이던 로마의 처형법이다. 그것이 너무 수치스런 형벌이기에 예수님을 일개 선지자로 간구하는 모슬렘 신자들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사실을 믿기를 거절한다. 그 대신 단지 "예수는 그리스도와 흡사한 인물이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유대인에게 있어서도 십자가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 된다. 그들은 십자가에 달린 메시야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탈무드는 그리스도인을 "나무에 달린 자를 예배하는 사람들"이라고 조롱한다. 로마인들은 십자가를 "가장 잔인한 것". "최후의 것". 또는 "가장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생각한다. 4세기에 콘스탄틴 대제는 이 제도가 너무나 잔인하며 비인도적이기 때문에 폐지했다.  그러나 사도신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이러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고 선언가고 있다.

 실로 그리스도께서는 상상만하여도 전율을 일으키게 하는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성경대로"(고전 15:3) 죽으셨다.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는 죽음 사실 뿐 아니라 그 죽음의 방식까지도 구약 성경에 의해서, 또 주님 자신에 의해서 예언되었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시면서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자기를 정죄하고 이방인(로마인)들의 손에 넘겨주어 조롱당하게하고 채찍에 맞게하며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리라고 말했다. 그 전에, 그리스도는 자기를 따르려는 자는 반드시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했는데, 그 말 역시 자신이 어떻게 죽으실 것인가를 분명히 예언한 것이다(마태16:21, 24). 
시편 22:16도 이미 그의 손과 발이 못 박히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 18절에서 시편 기자는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라고 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사건이 없었다면 이 구절들은 엉뚱하고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비추어 볼 때, 비로소 시편 기록의 의미가 분명해지고, 그 구절들은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의 방식을 예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직접적인 기사 이외에도 구약은 여러 사건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예언하고 있는데, 이것은 주로 모형(type) 혹은 예표라고 불리운다. 모리아 산에서 자기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던 아브라함의 기사를 살펴보다. 그들이 제사 장소에 도달할 때까지 이삭은 자신이 죽는데 사용될 나뭇짐을 지고 갔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친히 못박히실 십자가를 지고 가심을 예시해 준다(창 세22:6).

 그리스도의 죽음은 출애굽 기사에서도 암시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기 전날 밤에 어린 양의 뼈를 꺾지 말고 제사드려야 한다는 명령이 주어졌라. 나중에 요한은 로마 군병이 예수님의 다리를 꺾지 않은 사실에서 그 예언이 이루어진 것을 발견했다(요한 19:36).  또 다른 모형은 놋뱀 사건에서도 보여진다. 불뱀이 나타나서 수 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물어 죽게 되자, 모세는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고 뱀에 물린 사람들에게 그것을 보도록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 놋뱀을 보고 낫게 되었다. 주님께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이 사건을 이렇게 언급하셨다.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그리스도의 죽음의 방식에 대한 이 언급은 아주 분명한 것이다(요한 3:14 참고, 민수 21:49).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고 비굴한 사형 방법이었던 십자가의 형벌은 그 희생자들에 대한 로마인의 경멸감을 나타내려는 의도가 있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죽음에는 최고의 고통과 최대의 모욕이 결합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기꺼이 죽으시려 선택했던 죽음의 방법-십자가의 죽음-이었다(빌립 2:8).

신명 21:23은 나무에 달린 모든 사람은 저주받은 사람들이라고 선언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메시야를 생각하기를 그토록 싫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저주가 바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핵심적인 이유이다. 그 저주야말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의미있게 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셨음이라"(갈 3:13). 그러므로 십자가가 신학적으로 깊은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그 방식은 우리 모두에게 몇 가지 분명한 교훈을 주고 있다. 첫째,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그리스도는 율법의 저주를 받으셨다(신 27:26;갈 3:10, 13). 둘째, 그는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신 것"(골로 2:14)이다. 셋째, 그는 죄에 대하여 승리하는 비결을 보여주셨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 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라 6:14). 
 십자가에서 얻을 수 있는 이 세 가지의 핵심적인 신학적 교훈 외에도, 그리스도의 죽음은 최소한 다른 두 가지의 교훈을 가르쳐준다.

 첫째, 주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의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즉 "내가 목마르다"하시면서도 하나님께서 부과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견뎌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그리스도가 당한 것보다 더 혹독한 고통을 당하며 죽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나 그리스도는 이를 하나의 부족함도 없이 잘 감당하셨던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리스도 안의 형제 자매들에 대한 성도의 자세를 평가해 주는 영구불변의 표준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라고 했다. 그리스도는 어떤 마음을 품었는가? 바울은 그것을 이렇게 설명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라"(빌 2:8).

 그리스도의 죽음의 방식이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 자체이다.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던 것처럼 인자는 높이 들리워야 했는데,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었다(요 3:15). 그 결과 우리 그리스도인 들이 사도신경을 암송할 때,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는 단순한 말 속에 내포된 영생의 진리를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갈 6:14)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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