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와 종교 개혁

2011. 5. 13. 오후 4: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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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와 종교 개혁

1483년 독일 삭소시아 아이슬레벤에서 내어난 마르틴 루터는 20세에 철학, 법학 박사 학위를 획득하였다.

1505년 친구의 죽음을 회상하던 중 옆에 서 있던 친구가 벼락으로 급사하자, 성녀 안나에게 수도 생활을 맹세하고, 아우구스티노 수도원에 들어가 2년 만에 수사 신부가 되었다. 그 후 비테베르크 대학 교수가 되었고, 1512년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런데 이때 성 베드로 대성전 건립을 위해서 대사령이 공포되었다.
그래서 독일 지역은 알베르토 대주교가 책임을 맡게 되었고, 당시 명성이 높던 텟젤 신부는 선전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이렇게 되자 루터는 텟젤 신부를 은근히 시기하였고,  마침내 1517년 신학자들이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던 관례에 따라 텟젤 신부가 베텐베르크를 방문 했을 때, 그에 반항하는 95개 조항의 논문을 성당문에 부착하였다.

그러나 텟젤 신부 역시 이에 맞서 106개 조항의 반박 논문을 부착하였다.  그 후 서로 논박이 심해지자, 교황 레오 10세는 루터의 오견을 정정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루터가 계속 고집하자 1502년 교황은 '엑수르제'라는 교서를 내려 반성을 촉구하였다.그래도 루터는 이에 응하지 않고 공개 석상에서 교서를 불사르고 교황에 도전하였다. 드디어 그 이듬해 교황은 루터를 파문하기에 이르렀다.
이 때 루터는 공공연히 교황을 배척하고 세례와 성체성사만 제외하고  모두 폐기하고 다음의 3대 원리를 내세웠다.

1. 사람은 원죄로 완전히 부패되어 자유가 없다.

2. 구원은 예수를 믿음으로 얻는 것이요 인간의 선행이나 공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3. 신앙의 규범은 성서 하나뿐이다.

그 후 1525년 26세의 수녀 가카리나 보나와 결혼하였고, 1546년 세상을 떠났다. 물론 이때 일부 타락한 성직자가 있었다. 그러나 소위 종교 개혁이라는 것은 이와는 무관하다.  문제는 정통 교리를 자기의 임의대로 뜯어 고치려는 루터의 엉뚱한 생각에 있었다.

그가 한 평범한 인간이며 타락한 신부로서 구원의 하느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개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소위 종교 개혁이라기 보다는 종교의 분열만 조장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 후 교권을 완전히 무시한 성서의 자유 해석의 결과만 보더라도 현재 한국에는 90여개의 종파가, 그리고 세계적으로는 약 500파의 그리스도교가 난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로마서 3장대로 "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것과는 관계없이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를 관계를 맺는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28절)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 신앙으로만 구원을 주장하나
야고보서 2장에는 " 영혼이 없는 몸이 죽는것과 마찬가지로 행동이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입니다.26절)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은 원죄로 부패해서 어떤 선행도 할 수 없다고 하여 엉뚱하게 인간의 선행을 무시하지만 자신의 수도 서원을 깨뜨린 것을 변명하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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