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눈먼 이에게 눈을!

2010. 1. 25. 오전 10:51:00

글자
루카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였는지를 오늘 대희년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에게 예수님은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실현해주신 분이십니다. 특별히 이사야 예언자가 메시아에 관하여 예언한 두 본문을 루카는 선택해서 하나의 본문으로 엮어서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한 본문은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이사 61,1)이고, 다른 한 본문은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이사 58,6)입니다.

루카가 위의 두 본문들을 하나로 엮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사야 예언서에 나오는 메시아처럼 예수님은 하느님의 영을 받아 하느님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는 일을 실천하시는 분이심을 루카는 고백하고 있는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는 일이란 값비싼 희생제물이 잔뜩 있는 그런 제사를 많이 바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신앙에 충실하기 위해서 기꺼이 가난과 억압과 구금을 감수한 이들을 위로해주고 해방시켜 주며, 병든 이들에게 치유를 가져다주는데에 있습니다. 이런 일을 실천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사람이 되시어 오셨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루카는 치유가 필요한 병든 이들의 대명사로 “눈먼 이들”을 내세웠습니다. 귀가 먹거나 팔다리가 마비된 사람, 암에 걸리거나 정신병을 앓는 사람이 아니라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만 언급되고 있는데, 눈먼 사람은 치유가 되면 눈을 떠서 세계를 있는 그대로볼 수 있게 됩니다.

영적으로 눈먼 사람은 신체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어서 대부분 눈으로 보는 데에 불편을 겪지 않기 때문에 자기 ‘눈’이 멀었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습니다.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에게는 자기 욕심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이 행복한지 불행한지, 자기가 한 행동 때문에 그들이 기쁜지 슬픈지 화가 나는지 알지 못하고, 또 그런 것에 관심을 두지도 않습니다. 또 다른 욕심이 발동할 때까지 자기 욕심만 채우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에게는 자기 안정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주변에 불의가 저질러지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없는지 그는 알지 못하고, 또 그런 것에 사실 관심도 없습니다. 일단 나만 괜찮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탐욕이나 두려움 때문에 세상을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보지 못합니다. 영적인 눈을 뜬 사람들이 하느님을 볼 수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눈먼 이들’이 다시 볼 수 있도록 그들의 눈을 뜨게 해주기를 바라십니다.

교형자매 여러분, 올 한 해 우리 모두 세상의 불의를 고발하고, 참된 이웃사랑을 실천하며, 하느님 나라에 관한 복음을 선포하라는 예수님의 초대를 받아들이는 한해로 만들까요? 우리를 통해 하느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완성될 수 있도록, 우리 올 한 해에도 힘을 냅시다.
아자! 아멘!

신희준 루도비코 신부
사제평생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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