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첫 번째 기적을 베푸시는 모습입니다. 복음사가 요한이 전해주고자 하는 복음의 메시지는 성모님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께 있습니다. 그 단서를 복음의 첫머리에 나오는 “사흘째 되는 날”에서 발견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 나오는 “사흘째 되는 날”은 예수님이 죽으신 후 사흘째를 말하고, ‘카나의 혼인 잔치’는 예수님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혼인 잔치는 우리가 다다를 종말론적 행복을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청한 ‘포도주’는 잔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예수님께서 표징을 통해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그 포도주는 신앙인의 언어로 말하면 영원한 생명입니다. 잔치에서 없어지질 않는 영원한 생명인 포도주를 마시며 사는 그날이야말로 신앙인들의 근본적 바람입니다.
요한은 ‘물’을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에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바라는 것은 인간의 갈증을 풀어줄 화학적 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단순한 물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물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물이 혼인 잔치에서도 등장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물이 포도주가 되는 ‘표징’이 일어나는데, 갈증을 풀어주는 물에서 영원한 생명의 포도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변화와 기적의 중심에는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당위가 됩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이 카나에서 일어난 표징을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사람은 그 창조주를 배반하여 범죄를 저질렀고 그 결과로 죽음이 왔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사랑하신 나머지 그들을 구원하시려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카나의 혼인 잔치 기적은 우리 믿음의 결과를 알려 주신 것입니다. 죽음에서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믿는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히 카나의 혼인 잔치에 초대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 고백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표징을 일으키시어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신다는 것을 믿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예수님께 이제야 진짜 포도주를 주냐고 투덜거리면서 흥청망청 술을 마시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물과 포도주는 이 세상에서 마음껏 맛있게 마시는 것과는 분명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갈릴래아 카나는 외진 곳이었습니다. 유다인의 본거지와는 거리가 있는 곳입니다. 다시 말해서 카나는 현실에서 권력과 부와 명예가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입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예수님과 어머니,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현실의 부와 권력, 명예와는 거리가 있는 카나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본거지인 카나보다는 유다인의 본거지인 예루살렘에 관심이 있는 것 아닌지, 곧 현실의 달콤함을 청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변화시켜 영원한 생명인 포도주를 주실 그분을 절실히 믿을 수 있는 진정한 신앙을 달라고 청하는 한 주가되었으면 합니다.
요한은 ‘물’을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에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바라는 것은 인간의 갈증을 풀어줄 화학적 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단순한 물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물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물이 혼인 잔치에서도 등장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물이 포도주가 되는 ‘표징’이 일어나는데, 갈증을 풀어주는 물에서 영원한 생명의 포도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변화와 기적의 중심에는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당위가 됩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이 카나에서 일어난 표징을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사람은 그 창조주를 배반하여 범죄를 저질렀고 그 결과로 죽음이 왔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사랑하신 나머지 그들을 구원하시려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카나의 혼인 잔치 기적은 우리 믿음의 결과를 알려 주신 것입니다. 죽음에서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믿는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히 카나의 혼인 잔치에 초대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 고백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표징을 일으키시어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신다는 것을 믿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예수님께 이제야 진짜 포도주를 주냐고 투덜거리면서 흥청망청 술을 마시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물과 포도주는 이 세상에서 마음껏 맛있게 마시는 것과는 분명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갈릴래아 카나는 외진 곳이었습니다. 유다인의 본거지와는 거리가 있는 곳입니다. 다시 말해서 카나는 현실에서 권력과 부와 명예가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입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예수님과 어머니,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현실의 부와 권력, 명예와는 거리가 있는 카나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본거지인 카나보다는 유다인의 본거지인 예루살렘에 관심이 있는 것 아닌지, 곧 현실의 달콤함을 청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변화시켜 영원한 생명인 포도주를 주실 그분을 절실히 믿을 수 있는 진정한 신앙을 달라고 청하는 한 주가되었으면 합니다.
양해룡 사도요한 신부
사목국 선교전례사목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