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주님 공현 대축일

2010. 1. 4. 오전 11:30:17

글자
오늘 주님 공현 대축일(Sollemnitas Epiphaniae Domini)에 전 세계의 가톨릭교회는 동방박사들의 아기예수 경배사건을 기념합니다. 이 경배를 통해 아기 예수가 비로소 세상에 드러났음을 교회공동체는 기억하기에 우리는 그 사건을 공현(Epiphania)라고 부릅니다. 교회의 전례력에 의하면 이 대축일은 1월 2일부터 8일 사이의 주일에 거행되어야 하는데, 보다 전통적인 지역교회에서는 그 날짜를 1월 6일로 고정하여 의무대축일로 지내기도 합니다.

신약성경에서 동방박사의 방문은 마태오복음 2장에등장합니다. 루카복음에서는 아기 예수를 방문하는 최초의 사람들이 목자들인 반면 마태오복음은 동방박사들이 처음으로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루카에게 있어서는 이렇게 ‘가난’이라는 신학적 주제가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등장하지 않는 내용들, 즉 아기 예수가 구유에 뉘어지는 장면부터 목자들의 방문, 그리고 그 후로 전개되는 루카복음서만의 독특한 내용들은 ‘가난’에 대해 때로는 직설적으로 때로는 은유적으로강조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마태오복음은 예수의 신원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가 메시아, 즉 ‘왕’의 위상을 지니고 있음을 복음서 전체를 통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의 탄생을 예고하는 천체의 징표를 읽은 이웃나라의 박사들이 ‘유다인들의 임금’을 찾아 헤로데에게 왔다는 보도를 통해 마태오는 복음의 서두에서부터 예수가 누구인지를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오복음은 본래 그리스어로 쓰여진 문헌입니다.그 원문에서 ‘마고스(MAGOS)’라는 어휘가 사용됩니다.
오늘날에는 이 단어가 마치 눈속임을 하는 마술(magic)과 같은 다소 폄하된 의미로 사용됩니다만, 이 단어는 천체를 보면서 세상의 이치를 밝히는 고대세계의 가장 지혜로운 석학들을 이를 때 사용되던 말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단어를 ‘점성가’라고 번역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말 성경의 ‘박사’라는 번역 역시 적절한 번역이라고 하겠습니다. 마태오복음은 그들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지 않습니다. 그들이 몇 명이었는지, 이름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복음은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복음은 그들이 동방에서 왔으며, 그들이 보물상자를 열고 아기 예수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주었다고 전할 뿐입니다. 복음이 언급하는 동방은 아마도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또는 더 나아가 페르시아 지역을 의미할 수 있겠으며, 이 두 지역은 모두 점성학이 많이 발달했던 지역이었습니다. 아마도 5~6세기경부터 몇몇 지역교회에서 이들을 동방에서 온 삼왕으로 보면서 그 세 임금의 이름을 카스퍼(Casper), 멜키오르(Melchior), 발타사르Balthasar)라고 부른 전통이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의 예물은 각기 신학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황금은 임금의 권위를, 유향은 사제적 지위를, 몰약은 예수의 죽음의 의미를 각각 함유하고 있다고 주석가들은 설명합니다. 그러나 마태오복음은 자신의 복음 전개를 통해 예수가 단지 ‘유다인의 임금’이라는 제한적 지위에 머무르지 않음을 분명히 합니다. 동방박사들의 경배로 시작한 마태오복음은 결국 예수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온 세상의 경배를 받아야 할 메시아임로 드러남을 고백합니다.

최승정 베네딕토 신부
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강론 및 훈화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