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있는 갑곶성지에 오시는 분들은 세 마리의 강아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세 마리 강아지들의 관계는 ‘아빠, 엄마, 딸’이지요. 그런데 자세히 보시면 아빠와 딸은 친한데, 엄마는 늘 혼자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답니다.
소위 이 사회에서 ‘왕따’라는 것을 강아지 세계에서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이상하지 않습니까? 강아지 세계에서도 ‘왕따’라는 것이 있을까요?
제가 본 사실을 토대로 할 때, 강아지 세계에도 분명히 ‘왕따’는 있습니다.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미워하는 것도 아닙니다. 분명히 이유가 있더군요.
이 세 마리의 강아지 중에서 가장 힘이 센 강아지는 엄마 강아지랍니다. 아빠 강아지가 더 큼에도 불구하고, 노련미(2살 더 많음)로 싸우면 항상 엄마 강아지가 이긴답니다. 그러다보니 자기 맘에 안 들면 아빠 강아지나 딸 강아지를 물어버리곤 하지요. 따라서 이렇게 난폭한 강아지 곁에는 아예 가지 않는 현상을 보이는 것입니다. 심지어 잠을 잘 때에도 아빠 강아지와 딸 강아지는 한 개집에서 같이 자는데 반해서, 엄마 강아지는 혼자서 자고 있습니다. 사실 추운 겨울에 밖에서 키우기 때문에, 분명히 함께 자는 것이 따뜻하련만 이 세 마리는 결코 뭉치지 않습니다.
분명히 엄마 강아지가 제일 힘이 셉니다. 하지만 힘이 세다고 한들, 그 강아지 사회에서 얻는 이득이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추운 겨울에 웅크리고 혼자서 힘들게 자야 하는 것은 물론, 늘 외로움을 간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이 모습을 보면서 문득 예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입니다. 정말로 당신께서 원하시기만 한다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모든 힘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십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기념하고 있듯이,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그리고 우리 인간의 구세주이신 분이 인간의 세례를 받으시는 가장 낮은 자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 세상의 눈으로 보이는 힘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당신 스스로의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도 우리들은 왜 이렇게도 힘 센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각종 세속적인 능력의 있고 없음을 강조하고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스스로 선택하신 낮은 자의 모습. 그 모습이 바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리지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지금 내 모습은 과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일까요? 혹시 높은 자의 모습만 취함으로써 스스로 힘든 삶을 간직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낮은 자의 모습. 그래서 함께하는 삶.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삶이며, 그래서 나의 행복으로 나아가는 삶입니다. 이 삶을 향해서 나아가는 오늘이 되길 바랍니다.
빠다킹 신부
강아지 세계에도 분명히 '왕따'는 있습니다~^^*
2006. 1. 21. 오전 11:5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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