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평협회장님께서 보시는 월간사목정보 중에서 옮겨왔습니다.
우리본당 신부님, '거룩한 사제' 되라고 기도 드립니다.
바오로 형
산수유가 아파트 양지바른 곳에서 바람과 이야기합니다.
봄은 왔는데 봄은 아니라고…….
바오로 형
바로 어제 일인 듯 생생합니다.
“문정 성당 이가진 안드레아!”
“예, 여기 있습니다.”
2008년 1월 17일 오후 2시.
사제 3명과 부제 9명의 서품식이 있던 날.
젊은 그들은 장백의를 입고
전주 중앙 성당 제대 앞에 길게 엎드려 있었죠.
그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자며
이병호 빈첸시오 주교님은 목이 메셨습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
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성 베드로…….”
- 성인 호칭 기도 중에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영세를 받은 후 40년을 훌쩍 넘겼지만
한 번도 눈물을 흘리며 애절하게 기도해본 적이 없는 저는
그날, 성가대의 기도노래가 얼마나 애간장을 녹였는지,
그분 속으로 깊숙이 더 깊숙이 빠져 들어가 서품자들을 향한
그분의 자비를 속울음으로 애원하였습니다.
옆에 장궤를 한 아내 수산나와 이제 하나뿐인 딸내미 리드비나도
손수건을 적시며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날 사제, 수도자, 가족, 신자들 모두가 눈시울을 붉혔죠.
아들이 주교님께 안수를 받는 순간
‘네 아들은 육적으로는 네 아들이지만
이젠 지구촌 12억 가톨릭 신자의 아들이며 교회의 아들이다.’
라는 주님의 말씀이 번개처럼 스쳤습니다.
그 순간 제 아들은 죽어버리고
‘부제 이가진 안드레아’ 로 다시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자
제 머릿속은 ‘혼돈’ 바로 그 자체였습니다.
바오로 형
서품식 며칠 후, 형과 가끔 들러서 생맥주를 마셨던 그 카페에
저는 혼자 갔습니다. 한때는 같은 신학생 부모로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서로 마음 속 고해성사(?)를 보았던 곳.
이제는 해외에 나가 있지만 형 아들이 사제가 된 뒤
독하고 진한 ‘데킬라’ 한 병을 거뜬히 비우고
우리가 좋아했던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중 ‘몰다우’를 들으며
세월의 물 흐르는 소리를 들었던 곳.
그곳에서
방학 때면 집에 들렀던 6년간 아들의 모습을 회상했습니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말과 자세와 눈빛이 달라져가는 모습에
아들에 대한 신뢰가 쌓여갔지만
한편으로는 제 마음은 점점 불안과 초조와 헷갈림의 시간들이
엄습해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당에서 처신의 어려움, 성가정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
열성으로 다하지 못한 기도와 영성생활,
우리를 움츠리게 하는 주위 신자들의 눈과 말들…….
방학 때 조간신문과 함께 배달되는 아들, 지나친 음주,
혹시나 마음에 두는 여자 친구는 없는지,
언제 보따리 싸들고 신학교 팽개치고 아파트 초인종을 누르지는
않을지, 정말로 부르심을 받았는지…….
하지만 신학생들은 무질서 같지만 질서 있는 삶을 살고 있음을
굳게 믿고 있으며 인간의 눈으로 그들을 보지 말고
그분의 눈으로 그들을 보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바오로 형
서품 받기 며칠 전 호젓한 바닷가 찻집에서 아들과 긴 대화를
나눴습니다. 3학년, 4학년, 5학년 방학 때마다 말했던
“부모, 친척, 주위 신자들, 열심히 기도해주시는 수녀님들 눈치 보지
말고 ‘힘들면 나오너라’ 강요된 삶은 삶이 아니다.” 라고
또 한 번 얘기할 때 빙그레 웃던 아들.
그 말이 아버지의 사랑이었는지 아들에 대한 협박이었는지…….
바오로 형
올 2월 17일(사순 제2주일) 강론 때 이가진 안드레아 부제는
‘거룩하게 변모하신 예수’ 복음 말씀을 목에 메며 말했습니다.
“신학교 4학년 겨울방학 때 ‘30일 영신수련’
즉 30일 이냐시오 대 침묵 피정에 임했습니다.
그 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놔둔 채
오로지 하느님께만 머무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저는 마구간에서 배냇짓을 하던 갓난아기 예수,
세상 모든 것에 궁금해 하던 어린아이 예수,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몸과 마음과 정신’을 다하던 청년 예수,
당신을 어디에 쓸 것인지를 알고 온몸으로 거부하던 예수,
아버지의 뜻을 알고 그분께 의탁하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던 예수,
그리고 십자가의 길인 부활의 길에 서계셨던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부제의 삶이 아니라 부제가 되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회피하고 싶었던 아버지의 뜻을
이제는 온전히 받아들이는 예수’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형
그 강론은 “힘들면 나오너라.”며 사랑인 듯 협박인 듯 말했던 나에게
긴 침묵을 깨고 대답해준 것 같았습니다.
‘사제는 살아있는 순교자’라고 평소에 생각해왔는데
어느덧 순교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아들을 보며
예수님의 삶이 제 피부에 깊숙이 꽂혀버렸습니다.
별들이 낮게 깔린 캄캄한 밤,
한줄기 빛이 내 마음속에 또아리를 틀었고
평화를 위한 ‘성심의 불씨’가 지펴졌습니다.
바오로 형
서품식 이후 아내 수산나는 추울 때 수단 위에 입을
‘카디건’, 검은 털스웨터 뜨개질에 여념이 없습니다.
한 올 한 올 뜰 때마다 묵주기도를 중얼거리며 말입니다.
‘성모님의 흔적’을 그 털실 곳곳에 녹진하게 배어 있기를
기원하면서 말입니다.
전주교구 문정동 본당
이중호 디모테오
- 사목정보 2008년 4월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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