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롭게 받아들여 살아야 하는 새해입니다 : 서공석 신부

2014. 1. 2. 오전 6:5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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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롭게 받아들여 살아야 하는 새해입니다 : 서공석 신부

새해 아침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은혜로운 한 해가 될 것을 빕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고, 여러분의 가족들과 친지들에게도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충만하실 것을 빕니다.

2014년 한 해 동안 하느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시고, 은혜로우신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 여러분을 통해 여러분 주위에 실천되어 ‘아버지의 나라가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을 빕니다.

오늘은 교회 전례(典禮)상으로 세 가지가 겹쳐 있습니다. 2012년을 시작하는 정월초하루이면서,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 축일’이고 또한 ‘세계 평화의 날’입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라는 표현은 431년 에페소 공의회가 믿을 교리라고 발표하면서 사용하였습니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말하기 위해 사용된 표현이 아니고, 예수가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때, 이미 하느님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천명하기 위해 사용된 표현입니다.

에패소 공의회가 열리기 전, 콘스탄티노풀 주교 네스토리우스는 예수가 출생할 때는 인간이었지만, 후에 하느님의 아들로 책봉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대로 예수가 사람으로 태어났다가 후에 하느님의 아들이 되었다면, 그 시대의 사상으로는 예수 안에 하느님을 인식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예수가 출생 때부터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신앙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의회에 모였던 교부들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인 것과는 다른 뜻으로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하기 위해 그분은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의 아들이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라는 표현은 예수가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의 아들이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그 시대 신앙인들이 예수를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 필요했던 표현입니다. 이것은 마리아의 품위를 격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에서 우리는 실재하시는 하느님을 알아듣는다는 사실을 담은 표현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인 예수에 대한 교의(敎義)를 위해 그 시대에 필요했던 표현입니다. 이 표현을 사용한 오늘의 축일은 1970년에 제정되었습니다. 1500여 년 전에 에페소 공의회가 채택한 표현을 가져와 축일로 제정하였습니다. 오늘은 마리아를 사람의 어머니라고 고집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 하느님을 알아듣는 그리스도 신앙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키는 축일입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라는 오늘 축일의 이름은 이렇게 고색(古色)이 창연(蒼然)한 것입니다.

오늘은 세계 평화의 날이기도 합니다. 이 축일은 1967년에 제정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평화가 필요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과거에 평화는 통치자 한 사람이 보장하는 것이었습니다. 통치자가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해 주면 모두가 평화를 누렸습니다. 교회가 세계 평화의 날을 제정한 것은 이제 평화는 통치자 한 사람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찾아야 하는 가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전쟁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평화는 ‘하느님의 사랑 받는 사람들이 누리는 평화’(루가 2,14)를 의미합니다. 성탄날 밤, 베들레헴의 하늘에 울러 퍼진 천사들의 환호 소리라고 루가복음서가 알리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설교에도 “복되어라,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니.”(마태 5,9)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이웃을 돌보아주고 사랑하는 사람이 평화를 위해 일하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말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이웃의 자유를 빼앗으면서 평화를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의 생명을 삽니다. 하느님은 명령하고 지배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자녀로 살고 싶으면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쳐주고 죄인을 용서하면서 그 섬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이 보살피시기에 보살피는 생존을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어느 고을에서 죄인으로 소문난 여인이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적시고 머리칼로 닦은 이야기가 루가복음서에 있습니다(7,36-50).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죄는 용서받았습니다.....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했습니다. 평화 안에 가시오.” 하느님이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믿었으니 평화 안에 가라는 말씀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서 하느님이 어떤 보살핌이며 어떤 은혜로우심인지를 깨달았고, 이제 그 깨달음을 안고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으로 세상에 나갑니다.

우리 앞에는 또 한 해의 세월이 펼쳐져 있습니다. 은혜롭게 받아들여 살아야 하는 세월입니다. 우리 주변 사람들을 위해 은혜로운 세월이 되게 해야 하는 세월입니다. 새해 아침에 우리는 복 많이 받으라고 서로 인사합니다. 하느님이 베푸신 새해입니다. 은혜롭게 살자는 뜻이 담긴 우리의 인사말입니다. 베푸시는 하느님에 대한 생각이 우리 안에서 사라지면, 우리는 영원히 이 세상에 살 것 같이 착각하면서 욕심에 사로잡히고, 이웃에게 무자비한 사람이 됩니다. 노벨상을 받았던 작가 솔체니친이 고국인 러시아로부터 추방당하여 망명생활을 하다가, 고국에 돌아와 기차여행을 하면서 동내마다 폐허가 되어 서 있는 성당 건물들을 보고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저 건물들이 있어서 사람들이 두 발 가진 동물이 되지 않았다.” 은혜로우신 하느님을 기억하게 해 주는 성당 건물들이 있었기에, 사람들이 두 발 가진 늑대가 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은혜롭게 베풀어진 생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이웃들에게 은혜로움을 실천하여 그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물질과 명예를 위한 우리의 욕구가 충족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 욕구는 흔히 사람을 두 발 가진 동물이 되게 합니다. 하느님이 베푸셔서 있는 우리의 생존이며 세월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참으로 관대할 수 있고, 자유로우며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배워 실천해야 하는 하느님의 진리입니다.

하느님이 베풀어주신 한 해를 오늘 우리는 또 시작합니다. 그분으로부터 베푸심이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를 거쳐서 흐르고 또 흘러서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을 기원하며 새해 한 해를 또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좋은 한 해를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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