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마리아 사람
제목 : 착한 사마리아 사람
크기 : 73x60cm 캔버스에 유채
소재지 : 오델로 크럴러 뭘레 미술관
사마리아 지역
작가가 생존하던 시대에 성서에 대한 이해를 깊이하고 초기 크리스챤 정신으로 되돌아가려는 일련의 경향이 북유럽에서 강하게 일어났고
이것은 성서적 휴머니즘(Biblical Humanism), 또는 크리스챤 휴머니즘(Christian Humanism)이라 칭할 수 있으며,
이런 경향을 지닌 사람들은 산상수훈에 근거를 둔 소박하고 경건한 생활에 강조점을 두게 되었는데
이 작품은 바로 이런 시대 풍조의 열매로 볼 수 있다.
작가의 신앙 여정은 위선과 타성과 형식으로 포장된 기성 교회와는 담을 쌓은, 지나치리 만큼 결벽증적인 증세를 보이는 것이었기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극단의 투신, 아니면 가난한 사람들의 어려운 삶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인간미 표현에 노력했으며,
자연스럽게 루가 복음 10장 30-37절에 나타나고 있는 이 주제는 작가에게 큰 영감을 줄 수 있었기에
사람 냄새나는 크리스챤적인 모델로 제시되는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이 작품은 프랑스의 대표적 낭만파 화가로서 <지옥의 단테와 비르질리우스: Dante and Virgil in Hell, 1822)을 출품해
작가로서의 단단한 입지를 구축하였고, 종교화가는 아니었지만 종교화를 많이 그림으로서 그의 순수한 마음을 담아내었기에 우리에게도
<악의 꽃: Les Fleurs du Mal)이라는 작품으로 알려진
시인 보들레르(Charles Pierre Boudelaire: 1821- 1867)로 부터 종교화가가 부재(不在)하는 시대에 종교화를 이해한 유일한 작가로 평가받은
들라크로와(Ferdinand-Victor-Eugine Delacroix: 1798-1863)의 작품을 번안(飜案)한 것으로
들라크로와의 그림보다 밝고, 어두운 느낌을 주지 않으며, 색체는 격렬하지 않고 차분히 정돈된 인상을 준다.
위선 집단의 상징인 레위 지파의 사람,
항상 신도들에게 사랑을 가르치는 사제가 사랑의 십자가를 피하기 위해 버리고 떠난 강도 맞은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자기 당나귀에 태우는 사마리아 사람이야 말로 작가의 모습이며 작가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크리스챤이었기에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신앙관과 인생관을 표현하고자 했다.
항상 해바라기처럼 격렬한 빛을 발산하는 그의 다른 그림과 달리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너무 안온하고 평화스럽다.
강도만난 사람의 비참함 보다 한 인간다운 인간의 사랑과 배려를 받고 있는 모습을 부각시킴으로서
전체의 분위기가 비참함과 불의의 고발 차원이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으로 표현되는 복음을 살아가는
인간의 따뜻한 연민과 아름다운 마음씨가 돋보이고 있다.
왼쪽 아래에는 강도 만난 사람의 빈 돈 가방과 돈을 챙겨 떠나는 강도의 모습이 있으나,
이 강도의 뒷모습은 악과 포악성과는 전혀 거리가 먼,
힘없이 걸어가는 패배자의 모습으로 부각되고 있다.
보통 이런 그림은 색채나 내용에 있어서 극히 대조적인 강조를 하기 쉬운데,
작가는 이 작품에서 선과 악,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관계성의 차이를 극소화시키면서
사마리아 사람,
강도만난 사람,
강도를 한 인간 안에 있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작가는 강도만난 사람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여러 사정으로 강도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도 배려하였기에,
강도는 돈을 강탈해 떠나면서도 승리자의 힘찬 모습이 아니라 인간적인 우수와 패배감의 모습이며,
오히려 상처받은 사람은 하느님의 위로 안에 있고 승리한 가해자가 오히려 자신의 삶을 정화시켜야 할 가련한 존재로 부각시킴으로서
인간적인 미움과 분노와 공포에서 관객들을 자유롭게 만들어 관객을 아름다운 상념에 잠기게 만든다.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사실은
종교인이 아니라도 실천해야 하는 도덕률입니다.
그러나 간단하고 명확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실천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미국과 일부 유럽 국가에는 <착한 사마리아인 법 : The Samaritan Law>이라는 법률이 있습니다.
이 법은 지나가던 사람이 생명이 위급한 사람을 구조를 하지 않는 때 처벌하는 규정인데 우리나라도 도입 하였으면 합니다.
나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은 누구였던가?
나는 누구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인지 생각해 보는 주일 이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