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의 탄생에 관한 전설

2010. 6. 11. 오후 5:13:16

글자
 
세례자 요한
 
신비한 분위기·생생한 느낌 잘 살려
중심에 성모님 왼쪽 세례자 요한 오른쪽 예수
다빈치 특유의 ‘스푸마토’ 기법 잘 살린 작품
 


 
- 작품 해설 : 레오나르도 다빈치, 〈동굴 속의 성모〉, 198×123cm, 1483-86, 파리, 루브르.
 
 
세례자 요한은 즈카리아와 엘리사벳 사이에서 태어났다. 엘리사벳은 성모님의 사촌언니인데, 엘리사벳이 임신 여섯 달 되었을 때 막 아기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가 언니 집을 방문하였으니 요한은 예수님보다 여섯 달쯤 먼저 태어났으며 서로 6촌간인 셈이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에 관한 전설

‘황금전설’에 따르면 요한의 부모인 즈카리아와 엘리사벳은 늙도록 자식이 없었다. 유다의 사제 집안의 후손이었던 즈카리아가 당시의 관행대로 어느 날 성소에 들어가 제단에 분향을 하고 있는데 대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났다. 가브리엘은 성모 마리아께 아기 예수의 탄생을 예고한 바로 그 천사이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즈카리아에게 천사가 말했다.

“두려워 말라, 주님께서 네 기도를 들어주셨다.”

그러나 즈카리아는 이미 늙었고, 아내 엘리사벳 역시 임신이 가능한 나이가 지났으므로 천사의 말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주님의 뜻을 의심한 대가로 즈카리아는 그 즉시 벙어리가 되었으며 그가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의심이 풀린 후였다.

즈카리아가 성소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그가 벙어리가 된 것을 알았다. 그러나 비록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즈카리아는 자신이 신비한 체험을 했음을 알렸다. 일주일간의 성소 임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엘리사벳은 과연 아이를 갖게 되었으나 다섯 달 동안 부끄러움에 임신 사실을 숨겼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불임의 불명예에서 벗어난 것이 이들 부부를 한없이 기쁘게 했다.

임신 여섯 달이 되었을 때 성모 마리아가 사촌인 엘리사벳의 임신을 축하해주기 위해 방문하였고, 즈카리아가 말을 되찾은 것은 바로 이때다. 이 특별한 ‘방문’은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그림의 소재가 되었으며 본 기획연재에서도 소개한 바 있다. 마리아가 인사를 나누자 엘리사벳의 뱃속에 있던 아기도 기뻐 뛰놀았다고 전해진다. 마리아는 석 달 동안 엘리사벳의 집에 머물며 언니를 돌보았고, 요한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산파 역할을 해준 사람도 바로 성모님이었으니 요한은 참으로 축복 속에서 탄생되었다.

이 같은 사연 때문에 화가들은 성모님과 두 아기, 즉 세례자 요한과 아기 예수가 함께 노니는 모습을 즐겨 그리곤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동굴 속의 성모’도 그 중의 하나이다. 중앙에 성모님이 있고, 왼쪽에 두 손을 공손히 모아 경배를 드리는 아기가 세례자 요한이며, 그 맞은편에서 축성을 내리고 있는 아기가 바로 예수이다. 오른쪽 끝에서 관객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요한을 가리키고 있는 자는 천사로서 관객을 그림 속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그림에는 어슴푸레한 동굴 속에 있는 등장인물들과 갖가지 식물과 괴이한 바위들, 그리고 동굴 저편에 보이는 어슴푸레한 빛의 모습이 신비롭게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이 유명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다빈치 특유의 ‘스푸마토’라 불리는 회화기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스푸마토는 ‘뿌옇다, 혹은 흐릿하다’라는 의미로서 그림을 그릴 때 윤곽선을 뚜렷하게 그리지 않고 면과 면을 섬세한 명암법에 의해 그림으로써 보다 생생한 느낌을 살리는 방식인데 ‘동굴 속의 성모’는 이 기법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어둠 속에서는 윤곽선이 보이지 않는다.”

다빈치가 자신의 비망록에 쓴 이 글은 바로 이 작품을 두고 한 말인 듯 실감나게 느껴진다.
 
 
 
 
작품 해설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그리스도의 세례〉,
1440년경, 목판 위에 템페라와 유채, 167×116 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프란체스카 ‘세례 받는 그리스도’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세례자 요한이 성경에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광야에서 살던 그에게 하느님의 말씀이 내린 이후이다. 그는 이때부터 요르단 부근의 지방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를 촉구하며 물로 세례를 주었다.

요한은 낙타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으며,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화가들은 세례자 요한을 털옷을 입고, 가꾸지 않은 거친 수염과 헝클어진 머리 모양의 중년의 남성으로 그리곤 했다.

세례자 요한의 존재와 임무를 밝혀주는 것은 아래의 성경 구절일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이런 요한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셨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세례 받는 그리스도’는 요한이 종지에 물을 떠서 예수님의 머리에 붓고 있는 모습이다. 그림의 정 중앙에 정면으로 선 예수님은 두 손을 공손히 모아 세례를 받고 있는데 거의 전라에 가깝게 그려진 것은 인체에 대한 화가의 관심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요한은 옆모습으로 그려졌으며 두 사람의 키가 비슷하기 때문에 팔을 번쩍 들어 그리스도의 머리에 물을 붓고 있다.

그는 누런 털옷을 입고 있으며 허리에 띠를 두르고 있어서 성경의 구절에서 한 치도 벗어남이 없다. 예수님 옆에 있는 기둥처럼 단단해 보이는 나무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세례자 요한과 팽팽한 균형을 이루며 르네상스 회화 특유의 좌우 대칭의 원칙을 충족시키고 있다.

이들 아래쪽의 맑은 물은 시냇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요르단 강이다. 이처럼 맑고 깨끗한 풍경은 이전에는 거의 볼 수 없었던 것으로 빛에 대한 화가의 관심사를 잘 보여주며, 화면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이 맑은 대기가 강물에 풍덩 빠진 것처럼 투명하게 그려진 모습은 사소해 보이지만 사실은 당시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신선한 발상이다.

요한의 뒤쪽에서 막 옷을 벗고 있는 젊은이는 예수님 다음에 세례를 받을 자로서 이 같은 제3의 인물은 성경에는 없지만 그림에 재미를 더해주는 화가의 상상력의 소산이다. 화면 왼쪽에 그려진 세 천사는 예수 세례 장면에 흔히 등장하는 천사들로서 보통은 젖은 예수의 몸을 닦을 수건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여기서는 마치 고대의 3미신(美神)처럼 아름다움을 뽐내는 모습이 사뭇 정겹다.

예수님의 머리 위로 내려오고 있는 비둘기는 예수 세례 장면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가 세례를 받고 물 위로 올라오자 하늘이 열렸으며,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고 전했다는 비둘기 모양을 한 하느님의 영이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15세기 중반에 활동했던 가장 중요한 대가의 한 사람으로서 특히 빛의 표현과 원근법에 능했다.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얼음처럼 차가운 공기와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조차도 입체적으로 보이게 그려낸 것은 이 화가의 주특기라 할 사실 묘사 능력과 원근법의 표현 덕택일 것이다.
 
 
 
 
세례자 요한 3
숨은 스푸마토 기법의 비밀을 찾아보자
이 작품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그림 중앙은 헤로데 왕의 생일 연회, 왼쪽은 살로메가 요한의 목을 접시에 받고 있는 모습, 오른쪽은 살로메가 요한의 목을 어머니 헤로디아데에 바치는 장면을 묘사했다.
 
- 작품 해설 : 필립포 립피, 〈헤로데 왕의 연회와 순교당한 세례자 요한〉, 1452-64, 프레스코 벽화, 프라도 대성당.

 
 
 
헤로데 왕의 연회와 순교당한 세례자 요한

세례자 요한은 참수형에 처해졌는데 이 사실이 화가들을 자극했는지 명화 중에는 베어진 목을 들고 있거나 쟁반에 담은 잔혹한 그림들이 종종 있다.

세례자 요한이 활동할 무렵 유다의 통치자는 헤로데였다. 이 사람은 동생의 아내였던 헤로디아와 살고 있었는데 세례자 요한은 왕에게 동생의 아내와 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러 차례 충고했고 왕은 눈에 가시같은 요한을 괘씸하게 여겨 감옥에 가두었다. 때 마침 생일 잔칫 날 헤로데는 아내의 딸인 살로메에게 무엇이든 청하기만 하면 다 들어주겠다고 장담했다. 멋지게 춤을 추어 양부의 기분을 좋게 만든 살로메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달라고 청했다.

필립포 립피(Filippo Lippi, 1406-69)의 ‘헤로데 왕의 연회와 순교당한 세례자 요한’은 1452년부터 64년 사이 이탈리아 프라토의 대성당에 그린 프레스코 벽화다.

이 그림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중앙은 헤로데 왕의 생일 연회 장면으로 흔히 팜므 파탈로 표현되는 살로메가 우아한 동작으로 춤을 추고 있다. 헤로데 왕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방박사의 방문을 받고 두 살 미만의 베들레헴의 영아들을 모두 살해하도록 명령한 예수 탄생 시기의 헤로데 왕과 동명이인이자 그의 아들이다.

화면 왼쪽은 요한의 잘린 목을 살로메가 접시에 받고 있는데 처참한 모습에 그녀조차도 고개를 돌리고 있다. 화면 오른쪽은 살로메가 요한의 목을 어머니 헤로디아데에게 바치고 있는 내용이다.

내용상으로는 대단히 잔혹해야 하겠지만 잔칫상과 여인의 춤, 그리고 잘린 머리가 동시에 보여져서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뭔지 모르게 복합적이다. 감상자가 아직 요한의 잘린 머리를 보지 못했다면 잔치 장면만 그린 것으로 생각될 정도로 전체를 지배하는 분위기는 경쾌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인물 하나 하나를 살펴보면 뭔가 불안하고 묘한 표정들이다. 화가는 이들 인물들을 세속적이면서도 슬픔을 담고 있는 특유의 모습으로 그려냈다.

화가로서의 필립포 립피의 능력과 실험정신은 오른쪽 선반에 투명한 병들을 그린 것에서 알 수 있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이 유리병들은 화가가 눈에 보이는 사물의 모습을 재현하는데 관심이 많았음을 말해준다. 또한 살로메 뒤에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그려진 인물들은 마치 딴 세상 사람들처럼 그림에서 제외된 듯이 보이는데 자세히 보니 이들은 악사들로서 화가의 독특한 발상에 감탄하게 만든다. 다빈치가 이런 장면을 보았다면 무릎을 치며 감탄했을 것이다. 여기에는 다빈치 예술의 극치이자 시각 현상의 결정판인 스푸마토(sfumato) 기법의 비밀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정교한 기하학적 문양과 아름다운 색채로 그려진 대리석 바닥재는 립피가 원근법을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음을 증명하며, 배경에 보이는 두 창문은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의 배경과 일맥상통한다. 르네상스의 걸작 ‘최후의 만찬’도 결국 선배 작가들의 이 같은 노하우를 연구 발전시킨 결과였던 것이다.

필립포 립피는 카르미네 수도회 수도사였기 때문에 수사 필립포 립피라고 불린다. 그는 보티첼리의 스승인 것으로 유명하지만, 유려하고 우아한 선과 원근법에 의한 수학적 공간 표현에서 당대 최고의 거장으로 인정받았으며 이 작품은 이 같은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성인의행적과명화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