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내 천주상삼 수도회 임언기 안드레아 원장 신부님의 수도회 창립신부님 장례미사 강론

2008. 4. 21. 오후 4:37:03

글자
이번 미리내성지에서 꼬미시움 주관 꾸리아 간부피정(4/19~20일) 시 지도신부님이셨던 미리내 천주성삼 수도회 임언기 안드레아  원장신부님과 관련된  강론내용이 있어 이곳에 올립니다.
 
 
 
"부족한 제가 공경하올 창립 신부님의 영전에서 강론을 하게 된 것은 무슨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저희 수도회의 첫 사제라는 이유에서인가 합니다. 저의 부족한 강론이 가시는 창립 신부님과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 여러 어르신들께 누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성령께서 제 입술과 마음을 지켜주시기를 먼저 기도 드립니다.  

창립 신부님께서 1942년도에 대구교구 사제로 서품 받으시고 1948년도에 경북 상주 서문동 본당에 부임하셔서, 본당 신자 중에 성모성심 고통을 통해 천주성삼 특은을 받는 황 데레사를 만나게 되는데, 황 데레사는 성모님의 말씀에 따라 정 신부님께 지도를 청해오므로, 신부님께는 본당 사제로서 본당 신자에 대한 사목적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영신지도를 시작하게 됩니다.  

황 데레사는 뽕나무 위에 발현하신 성모님의 묵시를 보았는데, 가슴에는 한국을 상징하는 무궁화 모양의 성심에 칼날이 꽂힌 채 불타오르는 형상을 하고, 팔을 펼치고, 두 발 밑에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뱀 세 마리를 밟고 계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평화를 위한 묵주기도 간주경을 가르쳐주시며 이 경문을 넣어서 묵주의 기도 5단을 바칠 때마다 공산주의자 다섯 명을 회두시켜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며, 곧 전쟁이 터질텐데 한반도가 적화 통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경문을 적어도 6만 명에게 전파하여 바치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경문을 가르쳐 주신 날이 1948년 11월 17일이었는데, 그때 창립 신부님께서 황 데레사를 통해서 성모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그 기도문은 직접 받아 적으셨습니다.

"● 우리 예수여, 우리 죄를 용서하시며,
우리나라를 평화를 위하여 외교인들을 돌보시되 그 중에
천주를 핍박하는 악한 자들의 마음을 바른길로 인도하소서.
세계평화를 위하여 러시아를 구하소서. 예수성심이여,
티 없으신 마리아 성심이여, 우리 마음을 주의 마음과 같게 하소서.
◎ 이 세상에 악한 자를 없이 하시며, 우리 분심 중의 기도를 용서하소서.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성심이여, 지극히 티 없으신 마리아 성심이여,
우리 마음을 뜨겁게 하소서."라는 기도문입니다.

당시 대구 교구장이신 최덕홍 요한 주교님의 인준을 받아 기도하기 시작했지만, 그때 한국 교회의 신덕으로는 성모님의 절박한 메시지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후 곧 6·25를 겪게 되자 교우들 중에 그때부터 그 기도문을 열성을 다해 바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후 소비에트 공산 정권을 비롯한 동구원 공산 정부들이 무너진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후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이북 공산주의자들의 회개를 위해 이 기도를 계속 바치라는 성모님 말씀에 따라 '세계평화를 위하여 러시아를 구하소서'라는 구절을 '세계평화를 위하여 공산국가를 구하소서'라는 구절로 바꾸어 지학순 다니엘 주교님의 인준을 받아 기도해 왔습니다.
성모님께서는 황 데레사를 통한 묵시와 메시지로 숨은 역사들을 드러내고 개개인에 대한 영신지도를 해주셨는데, 메시지의 중심 내용은 가톨릭의 정통교리를 수호하고 교도권을 옹호하며 이 시대의 정결을 거스르는 죄를 배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메시지의 내용 자체가 전 세계 교회와 관련이 되어 있으므로 대다수 중요한 부분은 외국말로 번역되어 교황청에 이미 전달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황 데레사가 받은 메시지만 해도 책으로 엮는다면 수십 권의 분량을 헤아리며, 영신지도 메시지는 그 대상이 성직자, 수도자, 일반 교우, 주교님들, 그들의 가족들, 역대 여러 교황님들에 대한 메시지까지 그 대상이 가히 전 교회적이며, 그 분량에 있어서만도 수없이 많습니다.

성모님을 통한 이 은혜는 다른 나라에 내려질 수도 있었겠지만 특히 한국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비롯한 한국 순교자들의 희생 공로와 순국 선열의 충정 때문에 한국을 통해 주어지는 은혜이며, 이 은혜가 교회 안에 받아들여지면 한국에서 성모성심이 개선하고 조국의 평화 통일과 세계 평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1950년 2월에, 창립 신부님께서 당신의 고해 신부였던 경남 진영본당의 박재수 신부님께 갈 때, '같이 가라'는 성모님의 말씀에 따라 황 데레사도 같이 가게 되었는데, 2월 6일 그곳 진영성당에서 당시 복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황 데레사에게 나타나셔서, '천주성삼 은혜로 인한 이 시대에 필요한 방인 수도회를 창설하라'고 정 프란치스코 신부님께 말씀을 전했습니다.
전임 수원교구장이셨던 고 김남수 안젤로 주교님께서 1953년 왜관에 계실 때, 대구 교구장 최덕홍 주교님의 허락 하에 황 데레사를 여러 면에서 시험해 보신 후 이 일이 천주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그후 정 신부님께서 여기저기 수도원을 못하시고 옮겨 다니는 것을 보시고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성지 개발을 맡기셨는데 이 미리내 성지를 '기도하는 성지로 만들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창립자 신부님께서는 주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지 개발을 우선으로 하셨고, 그러다보니 수도원 창설이 더 늦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와 창립 신부님의 노고로 이제 수도 사제 수가 서른한 명, 현재 신학생이 열여덟 명, 종신서원 수사 마흔 일곱 명, 모두 백이십이 명의 천주성삼성직수도회와, 오백이십칠 명의 성모성심수녀회와, 칠십사 명의 성요셉애덕수녀회와, 낙태죄를 배상하고 가정 성화를 위해 기도 희생을 바치는 제3회원 천삼백여 명의 대가족이 있습니다.

창립 신부님께서는 신학생 때부터 환속하는 사제들을 보며 마음 아파했고 배상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매주 목요일 밤중 성시간 기도를 평생 바쳐 오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당신께서 주례하신 이 지상에서 바치신 마지막 미사도 6월 4일 0시의 성시간 미사이셨습니다. 예수성심께서 당신의 성심을 위로하기 위해서 바치는 이 사제의 미사를 즐겨 받으셨다는 그 표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62년 동안의 사제 생활 동안 단 하루라도 빠지지 않고 미사를 봉헌하셨고 매일 15단 이상의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육신의 많은 병고를 늘 겪으면서도 불철주야 기도하고 공부하며 수도원을 제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온 생애의 힘을 다하셨습니다.

창립신부님께서는 디모테오 후서 4장 6절 이하의 사도 바오로 말씀처럼 사셨습니다. "나는 이미 피를 부어서 희생 제물이 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가 왔습니다.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길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 날에 정의의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월계관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불러주시는 그 마지막 시간까지 수녀원 수련소 공사 현장을 둘러보시고, 당신의 여생에 남은 일들을 정리하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창립 신부님의 마지막을 뵙지 못한 불효자입니다. 그 시간에 저는 미국 LA에 있는 예수고난의 피정의 집에서 남가주 성령쇄신 묵상회 피정 지도를 하고 있던 중, 신부님의 비보를 듣고 성체대전에 오열하며 통곡했습니다, 아직도 할 일이 많으신데 아직도 건강하셨는데 왜 저희 신부님을 주님 데리고 가십니까. 차라리 희생이 필요하시면 저희들을 데리고 가시지요... 그분이 가신 후에야 제 안에 그분의 빈 자리를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국을 떠나올 때 창립 신부님께서 수도원에 내려오셔서 하셨던 말씀이 저에게는 마지막 유언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예수성심 성모성심 시대이다.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불타는 예수성심인데 그 사랑은 애가 타는 사랑이다. 이 예수성심의 사랑에 사랑으로 보답하는 인간의 사랑이 바로 성모성심인데 성모성심도 불타는 애가 타는 사랑이다. 우리 봉헌된 수도자들도 이처럼 주님과 교회에 대한 불타는 사랑으로 애가 타야 되지 않겠느냐." 하시며 열심히 살 것을 당부하신 말씀이 제 뇌리와 가슴에 각인이 되어 있습니다.

이제 창립 신부님께서 물리적으로는 저희들 곁을 떠나가시지만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는 더 강하게 저희들 안에 함께하며 주님 곁에서 저희 남녀 수도회를 위해서 튼튼한 보루가 되어 전구해주심을 모든 성인의 통공 안에서 굳게 믿습니다.

저는 1976년에 처음으로 창립 신부님을 뵈었지만 지금까지 돌아보면 정말 하느님의 사람이심을 당신의 온 생애를 통해서 저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수많은 박해와 반대 가운데서도 사제생활 전부를 오로지 하느님의 뜻만을 위해 자신의 전존재를 불사르셨고, 하느님의 뜻을 위해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으셨습니다. 루가 복음 12장 4절 이하에 "나의 친구들아, 잘 들어라.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은 더 어떻게 하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이 누구인가를 알려주겠다. 그분은 육신을 죽인 뒤에 지옥에 떨어뜨릴 권한까지 가지신 하느님이다. 그렇다. 이분이야말로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분이다." 하신 말씀대로 오로지 하느님만을 두려워하며 양심의 순교자로 사셨습니다.

저는 감히 창립 신부님의 삶을 다음 세 단어로 요약합니다. 첫째도 하느님 사랑, 둘째도 하느님 사랑, 셋째도 하느님 사랑, 첫째도 하느님 뜻에 순명, 둘째도 하느님 뜻에 순명, 셋째도 하느님 뜻에 순명, 첫째도 하느님의 영광, 둘째도 하느님의 영광, 셋째도 하느님의 영광만을 위해 사셨다고 증언합니다. 일생을 깨끗하고 순결하게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셨고, 많은 어려움 중에도 언제나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찬미의 노래를 드렸으며, 모든 일에 있어서 오직 하느님의 영광만을 추구하셨기에 창립 신부님의 삶은 저희들에게 전적인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셨습니다.

창립 신부님께서는 이 시대를 인간이 하느님께 드려야 할 마음의 정(精)을 온통 세상과 육의 쾌락에 돌리는 '정적(情的) 우상(偶像)을 섬기는 시대'라고 규정하시며, 그 어느 때보다도 정결을 거스르는 죄가 난무하고 있다고 지적하십니다. 인간의 이성이 하느님 계시 진리의 조명을 받을 때, 자기 안에 일어나는 감정과 애욕을 잘 다스릴 수 있게 되는데, 인본주의의 영향을 입은 현대인들은 자기 감정의 통제가 되지 않고, 정으로 기울어져 자신을 죄악의 도구로, 성(性)의 쾌락의 도구로 삼아버림으로써 반생명 풍조에 젖어 살게 되고, 이 시대가 저지르는 이러한 낙태 죄, 이중생활, 봉헌된 자들의 탈선으로 인해서 예수성심과 성모성심께 상처를 드리는 것을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이 시대의 죄를 배상하기 위해서 매주 목요일 밤중 성시간 기도를 바치셨고, 예수성심과 성모성심을 위로해 드리고 그 죄를 배상하는 남녀 수도회를 창설하라는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인류 구원 사업이 계승되는 성사적인 인간 집단인 교회 구성원들이 성화될 때 양심의 평화, 가정의 평화, 사회의 평화, 조국의 평화통일, 세계의 평화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새로 창설된 저희 수도회의 영성이고 카리스마입니다. 저희 남녀 수도자들은 창립 신부님의 뒤를 따라 정통 교리 수호와 교도권 옹호, 이 시대의 정결을 거스르는 죄를 보속하면서, 조심스럽게 그리고 겸손하고 성실하게 살아갈 것을 창립 신부님 영전에 또 천주성삼 대전에 다시 한 번 다짐해 봅니다.

당신이 받으신 사적 계시에 대해서 하느님께서 하신다는 표적을 보셨고, 그에 대한 확신을 가지셨음에도 불구하고 교계 제도 안에서 오는 순명의 의무를 완전히 다하기 위해서 겪으셔야 했던 그 갈등과 고통이 창립 신부님의 전 생애를 점철한 마음 고통이었고 정신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 안에서 언제나 하느님의 섭리와 안배에 온전히 의탁하셨고, 그 모든 것을 봉헌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 많은 열매를 맺듯이 창립 신부님의 온 생애를 통해서 이루어놓으신 일들이 이제 당신의 죽음으로 인하여 한국 교회 안에서 개화되어 천주성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천주성삼은 티 없으신 성모성심을 통하여 찬미와 영광을 받으소서. 아멘 "

댓글 1

  • 2008년 4월 21일 오후 6:49

    피정교육 수고 하셨습니다.미리내 창립 정행만(프란치스코)신부님을 15년전 생전에 한번 뵈옵고 저녁식사를 같이 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참으로 인자하시고 자상하신 분으로 기억되었으며 사제를 위한 기도때 매번 회상을 하였는데... 그 분의 가까운 동기 신부님은 금년90세로 서강대 박고영(토마스)신부님으로 아퀴나스 성음악 연구소 창립 신부님이시죠.그때 저녁 식사때 함께하고 나올때 과일도 봉지에 넣어주신 자상한 분 이심을 기억합니다.두분 신부님 대담때 한분은 성음악으로 한분은 미리래 수도원으로 함께한다시며 활짝 웃으시든 분이였죠 영전에 주님의 은총을 다시한번 드리며 기억합니다. 좋은 소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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