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15일 (녹) 연중 제24주일
오늘은 연중 제24주일입니다.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하신 이 말씀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회개를
그 무엇보다 가장 기쁘게 여기십니다.
일상 안에서 찌들어 있는 우리의 모습을 주님께 내어 보이고, 그분께서 우리를
말끔히 씻어 주시기를 간청합시다.
독서 <주님께서는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탈출 32,7-11.13-14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1 티모 1,12-17
복음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루카 15,1-32<또는 15,1-10>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백성을 대표하여 하느님과 계약을 맺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수송아지를 만들어 자신들의 신(神)으로 섬긴다.
하느님께서는 진노하시어 그들을 벌하려고 하셨지만, 모세의 간청에 재앙을
거두신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한때 예수 그리스도를 모독하고 박해하던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이처럼 죄인들 가운데 첫째가는 죄인인 자신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사도로 불러 주신 하느님께 찬미드린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비유를 드시며 하느님의 기쁨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여기서 하느님의 기쁨이란 죄인들이 회개하여 하느님께 돌아오는 것을
가리킨다(복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보면 무언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작은아들이 먼 고장으로 떠났다가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올 때의 장면입니다.
아버지의 가산을 챙겨 나갈 때만 해도 그는 분명 화려한 옷차림에 말끔한
용모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돌아올 때에는 그렇지 않았음이 확실합니다.
옷도 누더기였을 것이고, 신발도 없었을 것이며, 제대로 씻지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버지는 여느 거지나 다름없는 작은아들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을까요?
그것도 가까이서가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을 때"알아보았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였을까요?
자식 둔 부모라면 누구나 이 대목을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집을 떠난 뒤부터 줄곧 그 아들을 걱정하였을
것입니다.
끼니는 제대로 챙겨 먹기는 하는지, 거지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강도를
만나지는 않았는지, 죽은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돌아오려나?' 하는 마음이 한시도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거지 차림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먼 데서부터 알아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며 주님을 등져 버렸을 때에도 주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아버지의 마음을 지니고 계십니다.
우리가 당신 곁을 떠나 영혼이 파괴되어 버리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시며 마음
아파하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돌아오려나?' 하시며 늘 기다리십니다.
그것이 자비로우신 아버지, 우리 주님의 마음입니다.
-매일미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