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1일 (녹) 연중 제22주일
오늘은 연중 제22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며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드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9월 첫날인 오늘, 예수님의 겸손하신 모습을 닮아 가기를 다짐합시다.
독서 <너를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
집회 3,17-18.20.28-29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입니다.>
히브 12,18-19.22-24ㄱ
복음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루카 14,1.7-14
집회서는 참지혜가 무엇인지 서술하고 있다.
지혜는 주님을 경외하는 데에서 온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말씀은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자신을 낮추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제1독서).
시나이 계약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현존을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새 계약을 맺은 우리는 천상 예루살렘
안에서 하느님을 두려움 없이 만날 수 있게 되었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어느 바리사이의 집에서 사람들이 윗자리를 탐하는 것을 보시고
오히려 자기 자신을 낮추는 이가 높아진다고 가르치신다(복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잔치에 초대되었을 때에 윗자리가 아니라 끝자리에
앉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끝자리'가 단순히 공간적인 뜻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앉고 싶지 않은 자리라면 거기가 바로 끝자리입니다.
이를테면 주일인데도 성당에 가기 싫다면 성당 좌석이 곧 끝자리입니다.
제삿날이지만 시댁에 가기 싫다면 시댁이 곧 끝자리입니다.
교회 활동으로 어려운 가정을 방문해야 하는데, 갈 때마다 불편하게 느껴지면 바로
그 집이 끝자리입니다.
보좌 신부 때에는 청년들과 함께하는 회식 자리가 잦았습니다.
스무 명이 넘게 모이는데, 보통 친한 이들끼리 가까이 앉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안에서 다소 소외되는 이들은 한쪽 구석으로 몰립니다.
결국 한쪽에는 인기가 좋은 이들이, 다른 쪽에는 소외되는 이들이 모이게 됩니다.
그러면 보좌 신부인 저는 어디에 앉아야 했겠습니까?
마음으로는 좀 더 매력 있는 청년들 쪽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반대로 행동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청년들에게서 "우리 신부님은 청년들을 편애하지 않는 것 같아."
하는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가기 싫은 자리, 하기 싫은 일, 선택하고 싶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것이 바로
'끝자리'에 앉는 것이고, 겸손을 향한 지름길입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하면, 앉고 싶은 자리만 앉으려고 하면,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만 모이려고 하면 겸손을 배우지 못합니다.
겸손을 배우려면 ‘끝자리’에 앉는 연습부터 해야 합니다.
-매일미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