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4일 연중 제18주

2013. 8. 4. 오전 6: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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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4일 연중 제18주 오늘은 연중 제18주일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 물질적인 탐욕이 안겨다 주는 허망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담겨 있지 않은 모든 열정은 탐욕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 주간 동안 우리가 애써 왔던 모든 일이 과연 하느님의 뜻에 따른 것인지, 단순히 인간적인 욕심 때문인지 곰곰이 헤아려 보아야 하겠습니다. 독서 <그 모든 노고로 인간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가?> 코헬 1,2; 2,21-23 <여러분은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콜로 3,1-5.9-11 복음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루카 12,13-21 코헬렛의 저자인 솔로몬 임금은 온갖 부와 명성을 누렸지만 그 모든 것이 허무라고 고백한다. 하느님의 뜻과 무관하게 움직이는 인간의 모든 노력은 그 무엇도 의미가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현세적인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천상적인 가치를 추구하라고 권고한다. 우리의 생명이 지상에 얽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제2독서). 어느 한 사람이 유산 분배에 관한 문제로 예수님을 찾아왔다. 예수님께서는 그 문제의 현상적인 측면에 응답하시기보다 '탐욕을 경계하라.' 는 말씀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신다(복음). *오늘 복음은 부유함에 대한 경계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곧,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 으로 전락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세 친구가 있었습니다. 제일 친한 친구는 그가 매일 만날 정도로 절친하였습니다. 그다음으로 친한 친구는 그가 아주 소중히 여기기는 했으나 첫 번째 친구 때문에 자주 만날 기회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세 번째 친구에 대해서도 참으로 소중하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앞의 두 친구와 만나는 바람에 거의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 사람이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가장 친한 첫 번째 친구는 죽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지자마자 그의 곁을 떠나 버렸습니다. 두 번째 친구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면서도 그의 무덤까지만 같이 가 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친구는 그가 죽는 순간뿐만 아니라 하느님께 인도되는 순간에도 함께하였습니다. 여기서 첫 번째 친구는 돈이고, 두 번째는 가족이며, 세 번째는 선행입니다. 우리가 가장 가깝게 생각하는 친구가 실제로는 결정적으로 함께해 주기를 바랄 때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돈이 있어야 삶이 제대로 보장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돈으로 보장되지 않는 것이 많을뿐더러 돈 때문에 더 큰 가치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아니, 참된 삶은 돈이 아니라 또 다른 가치로 보장됩니다. 우리는 과연 그러한 가치를 누리고 있습니까? 그 가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매일미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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