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끌어안기
주일이면 챙겨보는 TV프로그램이 하나 있습니다.
연예인들이 여러 군부대를 다니며 다양한 군대 체험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흔히들 술자리에서 군대 얘기나오면 쉴새없이 많은 말이 난무합니다.
어떨 때는 지겹지도 않나 싶지만 나이드신 어르신들도 군대 얘기를 하는 걸 보면,
군대생활이 인생을 살면서 어떤 체험보다도 컸기 때문이리라 생각됩니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고 당연히 안될 일인데도 훈련을 받다보면 어느새인가
가능한 일이 되곤합니다.
그런 강렬한 체험이 아마도 남자들은 평생 가져가는가 봅니다.
오늘 복음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커다란 보물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너무도 잘 아는 주님의 기도이지요.
너무 흔해서 무의식적으로도 나올 정도니, 뭐 이정도면 한국불교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수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원효대사의 이 짧은 기도가 불교를 대중화하는데 공헌했다고 하네요.
그저 뜻도 모르고 해 재끼는 기도라면 그건 주문을 외는 것이 아닐까요?
기도는 해야 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하는 삶의 방식이
아닐까요?
하루를 지내면서 우리는 수십, 수백번 누군가를 부릅니다.
부모, 자녀, 직장동료, 친구를 부릅니다.
'부름'은 관계성이 유지되고 일이 성취되는 시작점에 자리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부름'이 없이는 관계가 유지되기도 어렵고, 일을 성취하기도
어렵지요.
기왕 부를 때 예의를 갖춘다면 금상첨화일테지요.
'불리움'을 듣고 '부름'으로 존재를 의식하게 됩니다.
곧 기도는 관계의 유지와 성취를 위해서 반드시 취해야하는 삶의 지혜요
방식이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숨도 들숨 날숨이 있고 만사가 들고 남이 있듯이 '불리움-부름'은 삶의
이치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의를 갖추고 기도하고자 합니다.
잘 먹고 살게 해 주세요.
천국가게 해 주세요.
주님과 함께 살고 싶어요. 마음편히 살게 해 주세요.
그같은 순수한 기도가 모두 '주님의 기도'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총7개의 청원기도 중에 전반부 3개는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직접 청원이며,
후반부 4개는 우리의 일상 가운데 필요한 육신의 양식과 마음의 평화
(영육간 건강)를 청합니다.
완벽한 기도입니다.
안 될 일도 되게 하는 군대 이야기처럼, 주님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 이에게는
이 모든 것이 공짜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막기위한 아브라함의 끈기를 배웠으면 합니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지정태 요한보스꼬 신부(관리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