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1일 (녹)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
한국 교회는 주교회의 1995년 추계 정기 총회의 결정에 따라 해마다 7월 셋째
주일을 농민 주일로 지내고 있다.
이날 교회는 농민들의 노력과 수고를 기억하면서 도시와 농촌이 한마음으로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맞갖게 살도록 이끈다.
각 교구에서는 농민 주일에 여러 가지 행사를 마련하여 농업과 농민의 소중함과
창조 질서 보전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오늘은 연중 제16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발치에 앉아 당신의 말씀을 귀담아듣는 마리아에게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고 하십니다.
우리도 지금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많은 염려와 걱정을 뒤로한 채 여기 모였습니다.
우리가 받은 좋은 몫이 온전히 구원의 열매로 성장하도록 주님의 뜻을
실천해야겠습니다.
또한 농민 주일로 지내는 오늘, 농민들의 수고를 주님께서 헤아려 주시기를 마음
모아 청합시다.
독서 <나리, 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창세 18,1-10ㄴ
<과거의 모든 시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가 이제는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콜로 1,24-28
복음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루카 10,38-42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그네 세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가신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들을 보자 마치 그들의 하인인 양 정성껏 대접한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 부부에게서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을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교회의 일꾼이라고 전한다.
이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특히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도 선포되게 하시어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굳건히 서 있게 하시려는 것이다
(제2독서).
예수님께서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의 집을 방문하신다.
마르타는, 예수님에 대한 시중은 뒷전인 채 예수님의 발치에서 그분의 말씀만
듣는 동생 마리아를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오히려 좋은
몫을 선택했다고 하신다(복음).
*한 청년이 매일같이 빵집을 들러 식빵을 사 갔습니다.
얼굴이 창백한 그는 늘 식빵만 찾았습니다.
빵집 여주인은 영양가가 부족한 빵만 사 먹는 그 청년을 볼 때마다 측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청년도 모르게 빵에 버터를 듬뿍 발라서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청년은 빵집을 찾아와 불같이 화내다가 마침내는 좌절한
표정으로 맥없이 주저앉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는 도시 계획의 설계 공모에 제출하려고 오랫동안 설계도 작업을 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설계도의 지우개로 사용하려고 지금까지 식빵을 사 갔는데, 하필 마무리
작업을 하던 그날 저녁 그 버터 빵 때문에 설계도를 모두 망쳐 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이러한 일이 적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처지는 전혀 모르는 채 그를 위하여 무언가를 해 준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사랑이란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를 중심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사랑에 필요한 것은 헤아림입니다.
이것이 없는 사랑은 상대방을 힘들게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을 향한 두 가지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사랑입니다.
마르타의 사랑은 예수님께서 지금 바라시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드리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하느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고 싶어 하시는데, 그녀는 그것에
대해서는 듣는 둥 마는 둥 시중만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바로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자기중심적인 사랑으로 오히려 상대방을 힘들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매일미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