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늦은 후회
하느님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우리가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의 구원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요한복음은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목적과 하느님과 예수님의
관계를 나열하면서 어떠한 과정에서 구원이 되고 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 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요한 1,14)
하느님의 영광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서 구체화되며
죄에서의 구원도 바라봄을 통해 일어나고 있음을 그리고
예수님의 온 삶과 행동에서 죄를 용서하시고 없애는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에수님을 믿으면 누구나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은 요한복음의 두 번째 핵심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묵상하며
자신이 구원되어가고 있음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일상생활에만 쫒기고 자신의 의지로만
모든 것을 살아가려 한다면 예수님께서 차려놓으신
밥상에서 수저조차 들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차려놓으신 영적식탁에서 풍성한 은총의
양식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과
표징에 마음을 열고 다가가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어 하면서도 자신이 주님께서
차려 논 잔치에 시간의 동참을 하지 못한다면 순간의
기회를 놓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시간 속에 살고 있으며 시간은
누구를 위해 멈추지 않고 쉼 없이 흘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시간에 동참하여 하느님과 아우러지는 삶을
살아가려 할 때 얻어지는 은총입니다.
시간의 순간은 초를 다투는 극박한 순간이며 우리 생명은
예고 없이 언제 어느 때 끝을 맺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때늦은 후회란 바로 이런 순간 즉, 열차가 출발하고 난
다음 달려와서 좀 더 일찍 나오지 못하고 부산떨었던
순간을 후회하면서 자신을 탓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손용익 그레고리오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