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요한 10,3)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 속 왕자의 별에 어느 날, 알 수 없는 씨앗 하나가
날아와 꽃을 피웁니다.
왕자는 참 아름답고, 그만큼 예민한 한 송이 꽃을 뒤에 남겨두고 다른 별로 여행을
떠납니다.
시간이 흘러 여러 행성을 거쳐 지구에 도착한 왕자는 한 정원에서 큰 충격을
받습니다.
나만의 꽃으로 알고 있었던 소행성의 유일한 그 꽃과 똑 닮은 꽃들이 무려 5천 송이가
넘게 피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교문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같은 교복의 학생들이나, 동일한 군복에 짧은 머리를 하고
있는 군인들 사이에서 남다름을 찾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교복의 파도 속에서 딸의 뒷모습을 찾아내어 이름을 부르고,
훈련소의 파르스름한 까까머리 속에서도 아들의 이목구비를 구분해 내고야 맙니다.
몰개성의 무리를 뚫고 얼굴을 알아보고, 이름을 불러주는 힘은 언제나 사랑에서
나옵니다. 사랑의 힘은 그야말로 대단해서 군중의 한 조각에 불과한 누군가를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로 빛나게 합니다.
언뜻 보면 절대로 구별되지 않고, 무리로 몰려다니는 양들이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지팡이를 따르는 것 역시 목자가 양들을 단순히 양 떼라는 덩어리로
여기지 않고,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기억하고 안아주기 때문입니다.(요한 10,3)
목자의 목소리 앞에서 양들은 더 이상 무리의 아무개가 아니라, 이름을 기억하고
아픔과 기쁨을 나누며 인격적인 역사를 함께 쌓아갈 수 있는, 대체할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거룩한 부르심을 뜻하는 ‘성소(聖召)’는 우리의 얼굴을 기억하고 이름을 불러주는
다정한 목소리이자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 곁에 우리들이 영원히 머물기 바라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나아가 그 응답으로, 당신을 닮아 같은 길을 걷겠다고 결심하는 용기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오늘날에도 많은 젊은이들이 귀로 당신의 음성을 듣고 입술로 응답하여
성소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목자의 부르심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깨달은 양들은 그 목소리에 응답을 시작합니다.
나를 만드시고 보기 좋아하셨던 태초의 미소를 생각하며 말씀으로 스스로를 채우고,
당신이 흐뭇해할 복음의 씨앗을 세상에 정성 들여 심게 됩니다.
그렇게 착한 목자의 목소리를 깨달은 착한 양들은 예수님을 닮은 참 목자의 삶으로
또 다른 양들을 찾아 나서게 될 것입니다.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킬 뿐이지만, 사랑의 부르심은 결코 마르지 않아
얻고 또 얻어 세상에 넘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요한 10,10)
이제 어린 왕자는 왜 자신의 꽃이 정원의 장미와 다른지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목소리로 길들여져 서로에게 책임이 생긴 그 장미는 다른 무엇으로도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진정한 그만의 장미가 되었습니다.
성소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를 불러주신 목자의 사랑과, 기꺼이 그 목소리에
길들여지기를 택한 모든 착한 양들의 마음을 기억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나니다.
-전진 세례자요한 신부 | 동성고 예비신학생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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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요한 10,7)
생드니의 쉬제르 주교는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빛을 보여주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천상의 예루살렘을 지상에 구현하려고 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천상과 지상을 이어주는 빛의 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공간을 물들인 빛은 점차 우리에게 젖어들어 내면에서부터
참된 자아에 이르게 하는 통로를 보여줍니다.
조용히 나를 물들인 빛을 순수하고 온전하게 받아들일 때 비로소 주님이 말씀하신
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작품 설명:천상의 문:박정석 미카엘 | 루크글라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