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신자 공동체의 삷 (사도2,42-47)
지난주에는 첫 신자들의 삶을 가르침과 친교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두 가지 모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두 가지 모습은 빵을 떼어 나누는 모습과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많은 분이 ‘빵을 떼어 나누었다.’라는 지점에서 성체성사를 떠올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는 지금과 같은 전례적인 형식을 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1코린 11,17~34을 보면 당시 주님의 만찬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옵니다.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신자들이 행하고 있는 주님의 만찬에 신랄한 비판을 합니다.
비판의 요지는 나눔의 식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순서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주님의 만찬은 두 부분, 음식을 나누는
애찬과 주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만찬으로 나누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코린토 신자들은 가난한 이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애찬 때 나눔을 하지 않은 채
각자 가져온 자기 음식만 먹었던 것 같습니다.
이에 바오로는 한데 모여서 먹기만 하는 것은 주님의 만찬이 아님을 지적합니다.
이것으로, 주님의 만찬에는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 주신 그분의 행적과 말씀을
기억하면서, 참여한 사람들이 함께 하는 나눔의 식사가 동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사에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선포되는 말씀 전례와 주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성찬 전례
한가운데, 가난한 이들과 교회를 위한 나눔의 예물 봉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눔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개인의 구원만을 위해 미사를 봉헌한다면, 참된
전례의 정신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초대교회 신자들은 기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형식은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2,46)라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다 공동체가 바치던 기도, 예배와
동일한 형태였을 겁니다.
이후 교회는 유다인들이 바치던 기도에서 벗어나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주님의 기도를
바치게 됩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2767항은 “교회의 최초의 공동체들은 유다인들의 신심으로 바쳐
왔던 ‘열여덟 가지 찬미’ 대신에 주님의 기도를 ‘하루에 세 번’ 바쳤다.”라며 초대교회의
기도의 삶이 어땠는지 알려줍니다.
이와 같은 초대교회 신자들의 삶은 온 백성에게 호감을 얻었고,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사도 2,47)” 주셨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많은 신자분이 방황하는 지금, 우리는 다시금 초대교회 신자들의 삶을
되새기며, 참된 신앙의 길을 찾고자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다른 비 신자분들에게 호감을 줄 것이고, 주님께서 성령을 통해 다시금
신앙의 열기를 불어넣어 주실 것입니다
-김덕재안드레아 신부 | 사목국 성서못자리 담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