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이삭:내과 의사를 꿈꾸다 신경외과 의사가 된 사연
의예과 시절(1971-1972)에는 휴학과 휴교가 잦아, 주로 주일학교 교사와 성가대
활동을 하며 대학 생활을 보냈습니다.
본과에 진입한 뒤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고교 시절 배웠던 라틴어가 빛을 발해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 병리학 등 학점 부담이
큰 과목도 어렵지 않게 공부할 수 있었던 덕분이었습니다.
여유가 생긴 덕에 가톨릭학생회에 가입하여 틈틈이 서울 변두리 지역 진료는 물론
여름·겨울 방학을 이용한 장기 진료에도 참여하며 재미와 보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1973년 청계천이 복개되면서 삶의 터전을 잃은 철거민들과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들이
천막촌을 형성한 성남시, 수색, 응암동 등을 찾아 한 달에 한 번 정도 주말 진료도
다녔습니다.
‘사제의 길에서 벗어나 하느님께 죄송했던 마음을 어느 정도는 갚겠다!’라는 유치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중에는 치과대학 가톨릭학생회와 합동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학창 시절 대부분을 주말마다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의료봉사 활동으로 보내곤
하며 큰 기쁨과 보람을 느꼈습니다.
평소 봉사를 나갈 때면 내과 교수님들이 청진기 하나로 심장 판막증, 폐결핵 등을
진단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 내과를 전공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졸업반이던 1976년 3월 17일 저녁, 아버지께서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
뇌수술을 받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다음 날 새벽 다섯 시에 수술이 끝나 중환자실로 나온 아버지는 12월 2일 돌아가실
때까지 한 번도 의식을 찾지 못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 침대 옆에 간이 침대를 놓고 자면서 아버지의 가래를 뽑고 체위를 변경하며
대소변을 받아냈습니다.
친한 동기생들과 가톨릭학생회 후배들의 도움으로 그나마 잠을 좀 자면서 의과대학
공부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시티(CT)라는 정밀 진단 기계가 국내에 도입되기 전이라, 수많은 뇌 질환을
혈관 촬영이나 척추 검사로 진단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수술 사망률이나 합병증이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기에, 신경외과
과장님께 신경외과 전공을 권유를 받고 처음에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아버지의 사고를 통해 저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뜻을
느끼고 결국 신경외과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지난 38년 동안 뇌종양 환자 3,100여 명을 포함해 8,000여 명의 뇌환자들을
수술했습니다.
시신경 근처 종양이나 청신경 종양을 수술하면서 성경의 예수님께서 맹인과 귀머거리
환자를 고치신 기적을 체험하고, 간질이나 반신불수로 내원한 뇌종양 환자들이 수술 후
회복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주님의 기적을 자주 체험했습니다.
아버지의 교통사고를 통해 주님께서 저를 신경외과 의사로 부르셨음을 확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영초 가시미로 요셉의원 병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