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활은 무엇일까?

2023. 4. 12. 오전 4: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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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부활은 무엇일까?



부활절을 맞으면, 우리는 서로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한다고 인사합니다. 

그런데 보통 축하는 당사자에게 하는 것이죠. 

생일을 맞이한 사람에게, 대학교에 합격한 사람 본인에게 인사합니다. 

그렇다면 부활 축하 인사 역시 예수님께 해드려야 하는 거 아닐까요. 

“예수님, 부활을 축하드려요.”라고 말이죠. 

성탄도 마찬가지입니다. 

축하 인사는 태어나신 예수님께 해드려야 하는데, 우리끼리 합니다. 

물론 압니다. 

예수님의 성탄과 부활은 그분께만 국한된 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큰 기쁨이고, 

그래서 서로에게 축하 인사를 나눈다는 것을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있습니다. 

성탄과 달리, 부활은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죽었다 살아나 봤다면, 실감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지요. 

그럼에도 예수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 죽음 이전에 

나 자신의 부활 체험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부활이 간접적으로나마 나의 부활 체험과 연결되어, 형식이 아닌 

진정한 기쁨의 인사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부활 체험이란 무엇일까요? 

제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벗어나 빛의 여정으로 들어섰던 경험입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일을 버텨냈을 때, 끝없는 어둠의 유혹에서 벗어났을 때, 너무나 

부끄러운 언행을 용서받았을 때,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힘든 여정을 거치며 

성장한 제 모습을 깨달아갈 때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빛을 향한 여정에서 어렵사리 한발 한발 걸어온 ‘나’를 확인하는 것이지요. 


이런 체험에선 나 홀로 남겨진 경우가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어느 교수님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초등학생 때, 친구들과 성당에서 뛰어놀다 한쪽에 세워둔 도자기를 깨뜨렸답니다. 

엄청나게 야단맞을 거라며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수녀님이 오셔서 깨진 조각을 

일일이 맞추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얘들아, 이게 예수님의 부활이란다.” 

교수님은 그 사건 이후 부활에 관한 어떤 설명도 그때 경험에 비할 바가 안 됐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부활 체험은 그 교수님의 경험과 다른 게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육체적 부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생명을 파괴하는 죽음으로 이끄는 데는 질병, 배고픔, 폭언, 폭행뿐 아니라 증오, 중독, 

절망, 무관심 같은 것도 포함됩니다. 

그것이 심하면 심할수록 우린 깊은 상처를 받지요. 

하지만 거기서 벗어날 때, 우리는 빛과 생명으로 방향을 돌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체험하는 부활 사건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살려줘야 합니다. 

고통받는 이웃에게 환대와 돌봄, 용서와 기다림으로 사랑을 전하면, 그 사람을 살리게 

됩니다. 

동시에, 우리 자신도 되살아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사랑의 관계에 근간이 되기에, 

우리가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다면 부활의 기쁨은 각자의 마음 깊이 자리하게 될 

것입니다. 

과연 그렇게 될 것입니다. 



-현우석 스테파노 신부 | 얘기 들어주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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