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이삭:삶의 고비마다 나를 이끌어주신 하느님의 손길

2023. 4. 4. 오전 4:4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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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이삭:삶의 고비마다 나를 이끌어주신 하느님의 손길



저는 1985년 5월 한림의대 교수를 시작으로 인제의대를 거쳐 건대병원까지 이어온 

38년간의 교수직을 마감했습니다. 

암 환자들의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봉사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었던 차에 퇴임을 

6개월 앞두고 설립 초부터 봉사해왔던 요셉의원에서 병원장으로 와달라는 갑작스러운 

제안을 받았습니다. 

며칠 응답할 시간을 달라고 말씀드리고 감실 앞에서 묵상 중에 ‘내가 너를 의사의 길로 

불렀으니 하느님 사업에 전적으로 봉사하라.’는 부르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래서 즉시 원장 신부님께 ‘예.’라고 응답했고, 건대병원에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알려 2월 말에 퇴임했습니다. 


저의 어릴 적 꿈은 성직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흥남 철수 작전’ 때 거제도에서 피난살이를 시작한 부모님은 천주교 신자였던 친절한 

이웃 아주머님의 영향으로 신자가 되셨고, 저를 낳자마자 세례를 받게 하셨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청량리성당에서 복사를 시작했는데, 삼 형제가 모두 복사를 

서면서 본당 신부님께 ‘아들 하나는 하느님께 바치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던 부모님께서 

저를 꼭 사제로 바치겠다고 결심하시게 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1960년 4월 19일, 4·19 혁명 당시 초등학교 2학년생이었던 저는 하굣길에 시위에 

휩쓸리며 하룻밤, 외박하게 되었습니다. 

집은 청량리였지만 데모대를 따라다니며 구경하느라 용산 삼각지에서 계엄 사이렌을 

만난 것입니다. 

어떤 아저씨가 울고 있던 저를 자기 하숙집에 데리고 가서 씻겨주고, 먹여주고 다음 날 

집에 데려다주었습니다. 


이를 천사의 도움이라 여기신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저는 1965년 

성신중학교(소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찬물로 세수하고 잠이 덜 깬 채 아침기도와 미사를 바치는 것이 

힘들었지만 1970년 3월 신일고등학교 3학년으로 편입할 때까지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선배들의 저조한 예비고사 합격률은 저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고, 결국 고2 

겨울방학 때 편입 시험에 응시해 일반 고등학교 학생이 되었습니다. 

많은 과목이 어려웠지만 특히 수학 2가 어려웠습니다. 

독일어는 소신학교에서 배웠던 라틴어 덕분에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재수를 각오하고 응시했던 서울대 의예과에 단번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하느님의 크나큰 은총이었습니다. 


의대 시절부터 시작한 서울 변두리 지역 주말 진료와 방학을 이용한 장기 진료 봉사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거의 50년간 지속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2023년 4월부터 ‘가난한 환자를 하느님의 사랑으로 돌보는’ 요셉의원 원장으로서 

소명을 받았으니,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애초부터 주님의 계획대로 된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고영초 가시미로 요셉의원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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