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을 가장한 도망
어젯밤 아이들을 재우고 간식 서랍 앞에서 한참 서성였다.
밤에 간식을 먹는 건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안 하는 행동인데, 종종 유혹에
시달리곤 한다.
입맛을 다시길 몇십 분, 결국 과자를 뜯어 그릇에 쏟았다.
단맛만 먹으면 짠맛도 당길까 봐 아예 두 봉지를 뜯었다.
한참 고민하다 먹었으니 탄식이 나올 정도로 맛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집에 있는 간식을 다 먹어 치워도 먹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괜히 먹었다.
내일 아침엔 명치가 아프겠군. 후회에서 자책으로 넘어가는 건 순식간이다.
난 왜 자주 유혹을 느낄까. 후회할 걸 알면서 유혹을 이기지 못할까.
그동안 유혹을 잘 참았던 나는 깡그리 사라지고 유혹에 넘어간 나만 남았다.
익숙한 실망감이다. 오늘은 과자를 먹은 일로, 며칠 전엔 다른 일로 자책하지 않았던가.
가만 보니 자기비하도 중독이라는 걸 알았다. 묘한 쾌감이 있다.
작은 생채기가 생겼을 때 아물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기어이 손톱으로 긁어 피를
내는 사람이 있다.
내 얘기다.
인생의 중대한 일은 얼렁뚱땅 잘만 넘어가 놓고, 작은 일은 긁어 부스럼을 만든다.
별거 아닌 일에 나는 엉망진창이라느니 식의 자책을 한참 하고서야 잠잠해진다.
그리고 자신을 겸손한 사람이라 여긴다.
그게 정말 하느님이 바라시는 겸손이라면 영혼이 충만하게 채워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걸 보니 뭔가 오해하는 게 틀림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마태 5,15).
겸손은 자신을 하찮은 불씨로 여기며 함지 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 태워서 생긴 불빛으로 주변을 환히 비추는 것이 겸손이다.
자기비하와 자책은 겸손이 아니라 도망치는 거였다.
난 엉망진창이니까 나보다 더 능력 있고 정돈된 사람이 주님의 일을 할 것이요,
나는 중요한 역할을 해내지 못할 거란 체념. 체념한다는 건 어떻게든 주님에게서 멀어질
거라는 의지의 표현이다.
반면,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과 가까워지다 못해 아예 같아지길 바라신다.
우리가 당신처럼 강하고 지혜롭고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존재가 되길 바라신다.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이 바라시는 걸 나도 바라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만, 내가
주님과 똑같아질 수 있단 믿음만큼은 한사코 거부했다.
겸손해서가 아니라 가장 많은 것을 요구하는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믿음대로라면 우린 매 순간 영적 성장을 위해 노력하면서 분노를 누르고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매일 그토록 노력하면서 사느니, 나는 약하고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치부하는 편이
여러모로 편하다.
이렇게 한 번씩 겸손을 가장한 자기비하를 하면서. 그래도 희망은 있다.
비록 지금은 나에게 능력이 없다 해도 하느님의 은총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주님과 같아질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글도 은총에 의해 쓰였을 것이다. 스스로 가치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있던 내가 글을 쓰면서 나도 주님과 같아질 수 있다는 의지를 조금 갖게 됐으니
말이다.
하느님의 은총은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의 성장과 발전을 돕는다.
나는 은총의 강한 힘을 믿는다.
-정신후 블라시아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