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45호 2023년 4월 30일(가해) 부활 제4주일 (성소 주일)

2023. 4. 30. 오전 3:5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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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45호 2023년 4월 30일(가해) 부활 제4주일 (성소 주일)



오늘 전례

해마다 부활 제4주일은 ‘성소 주일’이다. 

‘하느님의 부르심’인 성소(聖召)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특별히 사제, 수도자, 선교사 성소의 증진을 위한 날이다. 

성소 주일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진행되던 1964년에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 

하신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정하였다. 

이날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성소를 계발하고 육성하는 일에 꾸준한 기도와 

필요한 활동으로 협력해야 할 의무를 일깨우는 기회가 되고 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목자의 비유를 드시며 당신을 ‘양들의 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오늘 ‘성소 주일’을 지내며 주님의 뜻을 받들어 성직과 수도 생활을 지망하는 

이들이 주님의 부르심에 늘 귀 기울이도록 기도합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이 미사에 참여하며 주님께서 한국 교회에 풍성한 성소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한마음으로 청합시다.


입당송 | 시편 33(32),5-6 참조

주님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주님은 말씀으로 하늘을 여셨네. 

알렐루야.


제1독서 |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

               사도 2,14ㄱ.36-41


화 답 송 | 시편 23(22),1-3ㄱ.3ㄴㄷ-4.5.6(◎ 1)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또는 ◎ 알렐루야.)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네. ◎

○ 당신 이름 위하여,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 저에게 위안이 되나이다. ◎

○ 원수들 보는 앞에서, 제게 상을 차려 주시고,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옵니다. ◎

○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 ◎


제2독서 | <여러분은 영혼의 목자이신 그리스도께 돌아왔습니다.>

              1베드 2,20ㄴ-25


복음환호송 | 요한 10,14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


복 음 | <나는 양들의 문이다.> 요한 10,1-10


영성체송 |

착한 목자, 당신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셨네. 당신 양 떼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네.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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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위 성인 성녀 김 바르바라 (1805~1839)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김 바르바라는 13세경 서울로 올라와 교우 황 마리아의

집에서 식모로 생활하면서 교리를 배워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동정으로 살고자 결심하였으나, 부모의 강요를 이기지 못하고 외교인과 

혼인하여 남매를 두었다. 

혼인한 지 15년 되던 해 남편을 떠나보낸 후, 딸 하나만을 데리고 신앙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 체포되었고, 포청에 끌려가 심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다. 

그러나 끝까지 신앙을 고백하였다. 

3개월간의 옥살이 끝에 5월 27일,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옥사함으로써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그의 나이는 35세였다.


-성화_최수동 作, 「한국 103위 순교 성인화 특별전」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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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일:성소주일:부르심과 응답



부활 제4주일인 오늘은 특별히 교회가 해마다 성소(聖召) 주일로 정하여 지내고 

있습니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성소란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뜻합니다. 

이러한 성소는 예수님께서 씨앗을 심듯이 우리 모두에게 주신 아주 값진 선물입니다. 

누군가에게는 혼인성소로, 또 수도성소로, 사제성소로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러한 부르심에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응답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응답의 첫 번째는 그분의 음성을 우리가 ‘듣는 것’입니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꼭 나처럼 습관적으로 타인의 말을 기억해 두는 버릇이 없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마음에 꽤나 많은 말을 쌓아두고 지낸다. 

어떤 말은 두렵고 어떤 말은 반갑고 어떤 말은 여전히 아플 것이며 또 어떤 말은 

설렘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2017)에서이 말은 한 박준은 

시인이고 인용한 책은 산문집입니다. 

말이라는 것은 이처럼 참 재밌고 오묘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어떤 말들은 그저 소음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어떤 말들은 나를 정말 다시금 살아가도록 큰 힘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이러한 것들을 나누는 기준은 바로 그 사람과 나와의 관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이가 아무리 금과 같은 말을 하더라도 내가 그 말에 집중하지 

않고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 그것은 분명 무의미한 소음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와 정말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거나 영향력 있는 이가 하는 이야기라면, 

그것은 분명 우리의 삶에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의 음성에, 성경 말씀에, 주변 이웃들의 말들 속에 어떠한 모습과 태도로 그들 

앞에 서 있는지 말입니다. 


성소 주일은 부활 제4주간의 시작으로 보통 착한 목자와 양에 관한 복음이 자주 

등장합니다. 

곧 주님께서는 자신을 착한 목자로, 그 사랑을 받는 이들을 양으로 비유합니다. 

그리고 목자와 양은 서로의 소리를 알아듣는다고 합니다. 

서로의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것, 그것은 상대방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그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 허공으로 흩어지는 메아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장으로 날아와 우리를 

살게 하고 두근거리게 하는 음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주님의 양들로서 그분의 음성에 얼마나 귀 기울이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세상의 소음과 나의 소리만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삶의 매 순간을 그분의 음성을 들으려고 애쓰며 살아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분의 소리를 들으려는 자그마한 노력과 응답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언어와 소리를 그저 단순한 소음으로 듣고 있지는 않은지, 

그 속에서 나에게 말을 건네는 주님의 음성을 찾으려고 노력하는지 말이죠. 

이번 한 주간, 우리 각자가 자기 삶 속에서 주어지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찬환 프란치스코 신부 군종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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