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누가 주님을 참칭(僭稱)하는가?

2023. 4. 24. 오전 4: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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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누가 주님을 참칭(僭稱)하는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가는 내내 그동안 예수님과 있었던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는 중간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합류하십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눈이 가리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날이 저문 후 예수님과 식사를 하게 될 때에야 가리어진 눈이 열려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요즘 한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한 편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 영상에 등장하는 이들은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주장합니다. 

자신들의 눈앞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와 같은 성경을 읽는 그들의 종교에서, 그들이 만났다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우리가 알고 있던 예수님의 모습은 전혀 다릅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과는 전혀 다르게 그들의 눈은 가리어져 있는 듯이 보입니다. 

물론 그들은 우리의 눈이 가리어져 있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요? 


성경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육신의 모습으로 

부활하셨다고 전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던 토마스 사도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오상의 흔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게 팩트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종교에서 그들이 만났다는 예수님은 토마스 사도가 만난 예수님이 

아니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변해서 예수님이 다르게 부활했다고 그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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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처음에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말씀과 

성체성사의 은총을 통해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르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그들은 공생활을 하시던 예수님의 

행적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성체성사에 대해서는 더욱 무지합니다. 


참칭(僭稱)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참칭(僭稱)의 뜻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분수에 맞지 않게 스스로 황제나 왕이라고 일컬음’ 부활하신 예수님은 부활하시기 전과 

다른 모습으로 오시지 않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부활하신 예수님은 변할 수 없습니다. 

시시때때로 자신을 바꾼 사람들 중에 올바른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물며 하느님이 그러신다면 그런 신을 어떻게 믿고 의지할 수 있겠습니까? 


3년의 공생활을 통해 당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하느님의 유일한 공적 계시이자 마지막 공적 계시라고 교리에서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누가 우리가 아는 예수님과 다른 예수님이 있다고 얘기한들, 설령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여러 기적들을 체험했다고 얘기한들 그들이 얘기하는 예수님은 예수님을 

참칭(僭稱)하는 이단에 불과합니다. 

속지 마십시오.



-하성용 유스티노 신부 | 사회사목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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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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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세상이 생긴 이래 빛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지만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왔듯이 

주님 역시 바로 옆에 늘 계셨는데도 알아보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성전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이렇게 미처 깨닫지 못하던 빛을 우리에게 인지하게 

해 줍니다. 

가까운 성전에서 우리는 빛이신 주님을 알아보고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빛이 전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작품설명-밫이신 주님:박정석 미카엘 | 루크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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