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3일(다해) 연중 제30주일(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 주일
오늘은 전교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인으로서 받은 선교 사명을 깨닫고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하여 기도하고
행동합시다.
입당송 | 시편 67(66),2-3 참조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고 저희에게 복을 내리소서. 당신 얼굴을 저희에게 비추시고
자비를 베푸소서. 당신의 길을 세상이 알고, 당신의 구원을 만민이 알게 하소서.
제1독서 |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산으로 밀려들리라. 이사 2,1-5
화 답 송 | 시편 98(97),1.2-3ㄱㄴ.3ㄷㄹ-4.5-6(◎ 2 참조 또는 3ㄷㄹ)
◎ 주님은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 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
○ 비파 타며 주님께 찬미 노래 불러라. 비파에 가락 맞춰 노래 불러라.
쇠 나팔 뿔 나팔 소리에 맞춰, 임금이신 주님 앞에서 환성 올려라. ◎
제2독서 |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로마 10,9-18
복음환호송 | 마태 28,19.20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
복 음 |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마태 28,16-20
영성체송 | 마태 28,20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모든 민족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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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 사적지:양양 성지 (순교자 이광재 티모테오 신부)
양양 성당은 38선 이북에 위치해 한국 전쟁을 겪은 성당으로 이광재 신부의
이야기가 인상적인 곳이다.
6·25 전쟁 순교자인 이광재 신부는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남하(南下)하는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북한 주민들이 안전하게 월남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양들을 두고 떠날 수 없다."며 월남하지 않았다.
이후 공산군에 체포된 신부들의 본당에까지 찾아가며 사목을 이어갔다.
그러다 1950년 10월 8일, 원산 방공호에서 북한군이 쏜 총에 맞고 다음날
숨을 거두었다.
눈을 감을 때까지 '물을 달라.' '살려 달라.'는 신음과 비명을 빗발치는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응, 내가 물을 떠다 주지." "그래, 내가 가서 구해 주지." 하고 답하며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착한 목자'가 되었다.
춘천교구는 이광재 신부의 영성을 따라 걷는 '38선 티모테오 순례길'을 조성하고
시복시성을 준비하고 있다.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군청길 17
관할:춘천교구 / 033-671-8911 (도보 순례길 문의)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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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향기:겨자씨만 한 작은 실천이 우리를 주님의 성전으로 만듭니다
오늘은 전교주일입니다.
우리 교회는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복음의 기쁨', 곧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주일학교 어린이에게 장래 희망을 물은 적이 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놀고먹는 건물주"였습니다.
그 답변에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아마도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재미 삼아 한 대답일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는 은연중에 땀 흘려 일하지 않고 타인의 노동 대가를
자기 것으로 삼아 유유자적하는 삶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입니다.
혹여 어린이들의 마음속에 왜곡된 성공 상이 자리 잡진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인간에게 있어 노동 없는 육신은 자연의 섭리와 하느님 나라의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됩니다.
하느님 나라는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어리석고 비효율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나라는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이 실현되는 곳입니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있고, 공정과 정의, 희망과 평화 그리고 관용이 있는
곳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마태 28,19).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하느님 나라를 전할 수 있을까요?
심지어 '종교 없는 삶이 가장 아름답다.'라고도 말하는 현대인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이 아름답고 기쁜 소식'이라고 어떻게 선포할 수 있을까요?
하느님 나라가 희미해져 가는 세상일수록 우리는 자신의 삶으로 신앙의 가치를
보여 줘야 합니다.
바로 우리 각자를 보고 '그래, 이 세상은 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어.' 하고
용기를 낼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조금씩 변화되는 세상, 하느님이 원하는 세상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을 확실하고 분명히 전해야 합니다.
양적인 것보다 질적인 것이 소중하고, 물질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이 아름답다고
전해야 합니다.
세상을 '하느님 나라', 바로 주님께서 꿈꿨던 세상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를 위해서 제자들을 파견하셨고, 기쁜 소식을 선포하라 명하셨습니다.
'복음화'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분쟁이 아닌 평화, 차별이 아닌 관용, 심판이 아닌 자비가 꽃피우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교적 신자 수를 늘리고 재산 규모를 키울 때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닙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복음을 전하신 예수님을 따라 우리 삶의 방향을 바꿀 때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교회가 진정으로 걱정해야 하는 문제는 복음적 가치가 무엇인가,
그것을 어떻게 삶으로 진실하게 살아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겨자씨' 한 알이 자라나 대지의 열기를 식히는 큰 나무가 되듯,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어내는 우리의 작은 삶이 모이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누군가 순진하고 무모하다고 비웃을지라도, 우리는 '겨자씨'가 분명
'나무'가 된다고 전해야 합니다.
그 힘을 믿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전교의 달을 보내고 있는 요즘, 작지만 선한 생각과 말과 행동이 우리 주변을
따뜻하게 만들고 변화시켜 간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병길 이시도로 신부 원흥동 주임 (의정부교구)
